연재만화 ‘트라우마’와 웹툰 ‘가우스전자’를 그린 곽백수 작가를 만났다. 시리즈를 시작하고 셔츠 소매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 건 그가 처음이다. 자신이 편향된 모습으로 규정되는 것이 싫어서라고 했다. 욕심일까 아니면 강한 자의식 때문일까?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웹툰 전문 서비스 회사 ‘만화가족’에서 만난 곽백수 작가. / 사진:S.T.듀퐁클래식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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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길영: 가우스전자 작품 하단에는 ‘이 분 분명 직장생활 해봤다’는 댓글이 많이 달리더라.
곽백수: 직장생활은 전혀 경험이 없다. 소설, 드라마, 웹 서핑, 군생활을 통해 조직생활을 눈치껏 배웠을 뿐이다. 직장인 친구들에게 디테일을 묻긴 한다.
송길영: 가우스전자에서 토지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매우 흥미롭게 봤다. 국세청 개청 50년 만에 땅값이 4000배, 국세는 3000배가 올랐지만 GDP는 100배 늘었다. 서민과 젊은이들에게 근성이 없는 게 아니라 기회가 없단 생각이 들더라. 마찬가지로 곽 작가는 토지의 역할이 무엇인가 생산해 내는 근거가 아니라 되물림 정도의 속성으로 변했다는 걸 이야기한 것 같더라.
곽백수: 인류 전체가 충분히 복되게 살 수 있는데 쓸데없이 경쟁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땅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경쟁만 제거하면 힘들게 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서 그린 것으로 기억한다. 대학, 취업 등 우리는 모든 삶의 과정을 경쟁의 과정으로 살아간다. 땅값 역시 경쟁하니 오르는 것 아닌가. 우리가 힘든 이유는 우리에게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송길영: 모 대기업에서 강연을 마치고 한 직원이 “집 사기 힘들겠네요”라고 말하더라. 그래서 “현실이다. 아니면 사업해라”고 했다.
곽백수: 역사책을 읽어보면 우리 민족이 이렇게 안락하게 산 건 이 시대가 처음이다. 난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열심히 해보고 아무것도 할 게 없으면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120만원 벌어서 월세 40만원 내고 나머지 돈으로 신나게 플레이스테이션 하고 운동하고 그렇게 살아라” 우리 사회가 힘들다고 하지만 정말 그런가? 스트레스 안 받아도 살 만한 세상이다. 큰돈 들이지 않고도 재미나게 살 꺼리가 많다. 사람들은 기대치가 높아졌고 기업 그리고 사회는 그것에 도달하지 못하면 미래가 없는 것처럼 세뇌한다. 세상은 경쟁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는 것처럼 계속 겁을 준다.
송길영: 가우스전자 이야기를 해보자. 삼성전자를 모델링 했는데 이 기업에 애증이 있는 건가?
곽백수: 지배구조나 여러 비판이 있겠지만 그런 점은 해당 사람들의 문제이고 삼성이란 기업은 대견하다고 생각한다. 전 세계에서 애플과 경쟁한다는 게 대단하지 않나? 난 자랑스럽다.
송길영: 작품을 하면서 삼성 사람들을 만났나?
곽백수: 신입사원 연수에서 강연을 했다. 창의력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가 생각하는 창의력은 문제해결 능력이다. 생존본능.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으니 겁먹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송길영: 가우스전자는 어떻게 그리게 된 건가?
곽백수: 처음엔 캐릭터 만화를 그리려고 했다. 공간을 한정하려고 하다 보니 회사가 학교나 가정보다 넓으니 하나의 기업으로 정했다. 처음엔 삼성과 LG 두 개의 기업을 모델로 그리다 삼성 한 곳으로 내용을 모았다. 삼성을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잘 알아야하는 기업이지 않은가.
송길영: 가우스전자는 입시명문사립 정글 고등학교, 쌉니다 천리마마트처럼 사회풍자가 바탕에 깔려 있다. 사회에 대한 기본적인 시각의 흔적이 보인다.
곽백수: 공감하는 걸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나도 대중들의 생각을 따라가게 된다. 솔직히 인기 얻고 싶은 얄팍한 생각도 들었고. 세상과 다른 엉뚱한 소리 안 하고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으려고 웹 서핑을 엄청나게 한다.
▎사진:S.T.듀퐁클래식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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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길영: 그렇게 되면 자체검열 아닌가?
곽백수: 책임감이다. 만화가 비록 엔터테인먼트지만 댓글을 보면서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더라. 가우스전자를 그리면서 성숙해졌다. 사회, 사람과 공감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성숙해진 거다. 창작가로는 조금 아쉬운 면이 있다. 밋밋한 면 때문이다. 그래서 가우스전자 차기작은 스토리를 다 써놓고 피드백 없이 진행할 생각이다.
송길영: 웹툰 작가란 직업이 시장에 안착하기 전부터 웹툰을 시작하셨다.
곽백수: 출판만화에 도전해 잘 안됐다. 그나마 신문에 ‘트라우마’를 연재해 조금은 풍족해졌다. 웹툰으로 돈을 많이 받지 못해도 생활이 힘들지 않아 버틸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안정적인 생활을 했다.
송길영: 조석 작가 ‘마음의 소리’를 보면 1회부터 지금까지 그림의 완성도가 높아지더라. 곽 작가는 1회부터 그림의 완성도가 상당하다. 그림 수련 기간이 길었나?
곽백수: 낙서를 좋아한다. 엉뚱한 생각도 많이 하고. 평소 만화를 보면서 스토리와 그림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다 군대에서 만화를 그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연습했다. 안될 거란 생각보단 남들이 하니 나도 할 수 있겠다고 해서 그냥 실행했다. 그림은 그리다 보면 늘거라 생각했고 이야기를 시작해서 마무리 지을 수 있을 지가 걱정이었다. 의외로 처음부터 그려지고 스토리가 만들어지더라. 재능이 조금은 있었던 것 같다.
송길영: 왜 문하생으로 들어가진 않았나?
곽백수: 난 오히려 내가 사무실을 내고 어시스트를 데리고 있었다.
송길영: 데뷔도 제대로 하기 전에?
곽백수: 지금 생각하면 우습다. 작가가 되고 싶은데 정식 연재물이 없으니 우선 어시스트를 데리고 모양새부터 갖췄다. 나름 발상의 전환이라 생각한다. 이후에 그 친구와 작업한 것이 트라우마다.
송길영: 부모님 지원도 상당했던 것 같다.
곽백수: 끊임없이 신뢰하셨다. 학교 다닐 때 성적표 한번 보여드린 적 없는데도. 군대 다녀와서 만화를 그리겠다고 했을 때도 반대하시지 않더라.
송길영: 하고 있는 업의 스승이 없다는 것이 유리한 점도 있을 것 같다. 미생의 윤태호 작가의 그림을 보면 허영만 선생의 작법이 느껴진다. 오마주 또는 습이 따라오기 마련인 것 같다. 나만의 스타일을 만드는 게 쉽지 않았나?
곽백수: 동료 작가 중엔 김양수, 이말년 작가의 경우는 자신만의 스타일이 확고하다. 난 여전히 이것저것 시도하고 있어 아직 스타일이 정해진 건 없다.
송길영: 서사가 있는 스토리 만화는 안 해보고 싶나?
곽백수: 가우스전자는 10년이 되는 2년 후 마무리하고 스토리 만화를 할 생각이다. 이제 단편은 능력의 한계를 느낀다.
송길영: 스토리 만화를 위해 쌓아둔 스토리는 있나?
곽백수: 정해둔 건 없다. 그 시점에 가서 여러 아이디어 중에 고를 것 같다. 원래 40살까지 만화 그리고 은퇴하려고 했는데… 노력하거나 꾸준히 한다고 되는 건 아니더라. 운이 필요하더라.
송길영: 시대가 그 사람을 원할 때가 있는 것 같다.
곽백수: 그렇다. 흥행요소를 조합하고 이것저것 해봤지만 노력만으로 되는 건 없더라.
송길영: 브랜드 웹툰도 인기가 많다. 작가에 대한 호감 때문에 브랜드를 좋아하는 경우도 많다.
곽백수: 원고료가 좋아서 많이 한다. 내 경우만 해도 브랜드 웹툰이 주수익원이다. 원고료가 많지는 않다.
송길영: 인기 작가인데도 포털에서 받는 금액이 적은 이유는 뭔가?
곽백수: 웹툰이 인기라지만 포털의 직접 판매는 여전히 수익이 크지 않다. 웹툰은 엄청나게 쏟아지지만 웹툰이라는 시장의 성장성에도 한계가 있다. 만화가 6000편이 론칭이 된다고 할 만큼 호황이지만 시장 사이즈가 커지지 않으니 결국 N분의 1이 됐다. 다행인 건 0.1% 정도는 한 달에 수억씩 벌어가는 작가들이 나온다는 점이다.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웹툰 ‘치즈인더트랩’은 한 달 유료결제가 12억원을 기록하기도 했으니.
송길영: 작가와 포털 사이에 분배 시스템은 잘 되어있나?
곽백수: 대표적으로 네이버는 웹툰으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아닌 것 같다. 초창기 분배 시스템을 구축할 당시 작가들이 많은 부분을 관여했다.
송길영: 웹툰 시장이 성장하려면 해외로 나가야 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역사나 문화가 아닌 SF 장르로 나가야 할까?
곽백수: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굳이 따라갈 필요가 있을까? 인터넷, 유튜브 덕분에 글로벌 청소년·젊은이들이 동질감, 가치관을 같이 공유하는 것들이 많아졌다. 웹툰 외무지상주의만 하더라도 대만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송길영: 셔츠 소매에 이름 대신 철학을 새기자고 시작한 프로젝트인데, 이름을 새기셨다. 이유가 뭔가?곽백수 뭘 해도 있어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하나의 모습으로 규정되는게 싫어서다.- 대담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 진행·정리 유부혁 기자 yoo.boohye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