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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벤처 창업가와 투자자의 만남 

‘굿 컴퍼니’ 소셜 벤처의 도전 

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사진 이원근 객원기자
2017년 10월 문재인 정부가 사회적경제기업 지원 정책을 발표했다. 그동안 스타트업 육성에 집중되어 있던 정책을 소셜 벤처로 확대한 것이다. 그동안 별다른 지원을 받지 못했지만 꾸준히 성장해온 소셜 벤처 생태계의 현재와 미래 이야기를 들어봤다. 대담에 초대한 이는 소셜 벤처 창업가 윤홍조 마리몬드 대표와 소셜 벤처 지원 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허재형 루트임팩트 대표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있는 헤이그라운드에서 윤홍조 마리몬드 대표(왼쪽)와 허재형 루트임팩트 대표(오른쪽)가 만나 소셜 벤처 생태계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2017년 10월 18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은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있는 ‘헤이그라운드’라는 공간을 찾았다. 이곳에서 제3차 일자리위원회 회의를 열고 ‘일자리정책 5년 로드맵’을 발표했다. 소셜 벤처로 대표되는 사회적경제기업의 창업과 성장을 위해 집중 투자하겠다고 천명했다. 이날 정부는 1000억원 규모의 소셜 벤처 전용 투자펀드 조성, TIPS(민간투자 주도형 기술창업지원)를 통한 소셜 벤처 육성, 공공기관의 사회적경제기업 판로 지원 등 다양한 지원책을 발표했다. 소셜 벤처 업계는 이 장면을 두고 “2018년은 소셜 벤처의 원 년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동안 별다른 정부 지원을 받지 못했던 소셜 벤처 업계에 어떤 변화가 생길까. 고군분투 해왔던 업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번 대담에 초대된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했던 헤이그라운드를 운영하는 비영리 사단법인 루트임팩트의 허재형(36) 대표와 소셜 벤처 업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마리몬드 창업가 윤홍조(32) 대표다.

각자 소개를 부탁한다.

허재형 2012년 컨설팅 회사 베인앤컴퍼니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소셜 벤처만을 위한 법인을 만들고 싶다는 이를 만났다. 지금 미국에 공부하러 간 루트임팩트를 만든 정경선 전 대표다. 현재 그는 루트임팩트에서 CIO(Chief Imagination Officer)를 맡고 있다. 아는 사람의 소개로 정 대표를 만났고, 서로 의기투합해서 2012년 7월 루트임팩트를 함께 만들었다. 루트임팩트는 체인지 메이커(루트임팩트는 소셜 벤처를 체인지 메이커로 부르고 있다)의 커뮤니티를 만들고, 이들을 중심으로 소셜 벤처 생태계를 조성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루트임팩트는 25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서 소셜 벤처 입주 센터 헤이그라운드를 만들었다. 2017년 6월 지하 2층, 지상 8층 규모로 완공됐다. 현재 50여 곳의 소셜 벤처가 입주해 있고, 500여 명이 이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윤홍조 2012년 10월 창업했다. 마리몬드는 라틴어로 ‘나비’라는 뜻을 가진 ‘Mari-posa’와 고흐의 명화인 ‘아몬드 나무’에서 따온 ‘Almond’의 합성어다. 못다 핀 꽃을 피어나게 하는 힘을 가진 나비처럼 ‘모든 존재는 소중하다’는 미션을 가지고 있다. 재조명이 필요한 이들을 동반자로 부르고, 그들의 삶과 스토리를 다양한 제품에 녹여내는 일을 하고 있다. 우리의 첫 번째 동반자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다. 할머니들이 그린 꽃을 가지고 패턴 북(포장지)을 만들기 시작했고, 지금은 노트나 펜 같은 팬시 용품부터 스마트폰 케이스, 니트 등 다양한 제품을 제작해 판매하고 있다.


▎허재형 대표
두 대표가 소셜 벤처 업계에서 일하게 된 이유가 있다. 대학에 다닐 때부터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는 점이다. 허 대표는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대학에서 사회적기업을 공부하는 동아리 ‘WISH’에서 활동했다. 주말에 빅이슈 코리아 경영을 돕는 프로젝트 등을 진행하면서 소셜 벤처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다. 허 대표는 “‘공부의신’이 소셜 벤처로 전환되는 과정에도 참여를 했다”고 전했다.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정경선 CIO와 손을 잡고 루트임팩트 창업 준비에 뛰어든 것도 이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윤 대표도 대학 시절 ‘인액터스’라는 동아리 활동을 했다. 지역 사회의 문제를 비즈니스 프로젝트로 해결하는 활동을 했던 곳이다. 경기도 광주에 있는 나눔의 집 단체와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면서 위안부 할머니를 처음 만났다고 한다. 마리몬드가 첫 동반자로 위안부 할머니를 꼽은 이유에 대해 윤 대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역사관에 가보고, 할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부채의식이 쌓였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오래전부터 소셜 벤처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이곳에 뛰어들게 됐다.

두 대표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나.

윤홍조 마리몬드는 원래 서울 신당동에 있는 서울문화재단 레지던스에 있었다. 계약 기간이 끝나는 시점이었는데, 당시 루트임팩트 정경선 대표가 성수동에 오피스를 확보해서 소셜 벤처에게 임대해주는 비즈니스를 했다. 그 제안을 받고 성수동으로 옮겼다.

허재형 2015년 초에 처음 만났다. 당시 서울 성수동에 소셜 벤처가 하나 둘씩 들어오던 시기였다. 마리몬드는 초창기 멤버였다. 그해 5월 대학생들에게 소셜 벤처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그때 마리몬드가 참여를 했다.

윤홍조 당시 프로젝트 관계자들과 이야기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성수동에 역량이 있는 소셜 벤처가 많다는 것을 느꼈다. 소셜 벤처 대표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 좋았다. 그때 성수동이 소셜 벤처를 대표하는 지역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허재형 윤 대표의 말대로 성수동은 소셜 벤처에게 좋은 생태계 역할을 하고 있다. 성수동에는 200여 곳의 소셜 벤처와 투자자 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셜 벤처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면 정체성이 부각되기 어려운데, 뜻을 같이 하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성수동으로 들어오면서 생태계가 구축됐다. 헤이그라운드는 소셜 벤처의 커뮤니티를 커뮤니티답게 만들고 있다고 자부한다. 좋은 뜻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모이니까 시너지 효과도 크다.

윤홍조 헤이그라운드에 입주하면서 가장 좋은 것은 일하는 환경이 너무 쾌적해졌다는 점이다.(웃음)

허재형 헤이그라운드는 소셜 벤처가 성장하는 데 모든 것을 지원하고 있다. 저렴한 비용을 내고 공간을 사용할 수 있고, 법무법인과 회계사의 도움도 받을 수 있다. 소셜 벤처 임직원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소셜 벤처 커뮤니티를 만드는 게 우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윤홍조 그렇다고 헤이그라운드가 소셜 벤처를 보호하는 곳은 아니다.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한다는 목표를 계속 유지하려면 시장에서 경쟁을 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헤이그라운드는 소셜 벤처가 시장에서 경쟁을 할 수 있게 준비하는 데 도움을 준다.

허재형 윤 대표의 말대로 우리는 소셜 벤처에 더 많은 기회와 자원을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의 계획 중 하나가 성수동에 있는 몇몇 조직과 힘을 합쳐 소셜 벤처 얼라이언스를 만드는 것이다. 계속 추진하고 있다.

윤홍조 헤이그라운드의 또 다른 장점은 좋은 사람을 뽑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헤이그라운드 건물 자체가 잘 만들어져 있어서 면접을 보러 오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부끄럽지 않다는 게 좋다.(웃음) 좋은 건물에 입주해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경우 사람을 채용할 때 큰 차이가 생긴다.

소셜 벤처는 좋은 의미의 활동을 하니까 매출을 올리는 것보다 일하는 의미가 더 중요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허재형 소셜 벤처에 대한 선입견이다. 스타트업이나 소셜 벤처나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것은 똑같다.

윤홍조 사람들은 이기적이어야만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이타적인 행동을 하면서 돈을 번다는 것을 생소하게 느끼는 것 같다. 소셜 벤처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소셜 벤처에 좋은 인재를 끌어들이려면 월급도 많이 주고, 복리후생도 잘 갖춰야 한다. 일하는 의미만 강요해서는 좋은 인재가 들어오지 않는다. 소셜 벤처도 ‘주니어 삼성전자’가 되어야만 성장할 수 있다.

허재형 월급 때문에 소셜 벤처에서 일하는 것을 꺼려하는 현실을 해결해야 한다. 후원이 아닌 비즈니스로 매출을 만들고 수익을 올리는 사례를 계속 만들어야 한다. 마리몬드는 브랜드와 스토리로 사회에 계속 임팩트를 주는 좋은 사례다. 언론도 이런 가치 지향적인 서비스를 계속 조명해줘야 한다. 이런 변화 때문인지, 투자자들도 소셜 벤처에 대한 관심이 높다.

윤홍조 제너럴바이오라는 소셜 벤처가 상장 예비심사를 신청했다. 소셜 벤처 상장 1호가 될 가능성이 큰데, 이런 회사가 더 많이 나와야 한다.


▎윤홍조 대표
이번 대담을 마련하면서 허재형 대표에게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 소셜 벤처 소개를 부탁했다. “마리몬드가 좋은 사례”라고 적극 추천했다. 허 대표의 말대로 마리몬드는 소셜 벤처 업계에서 성과를 내는 대표적인 기업이다. 창업 이후 마리몬드가 지키고 있는 원칙은 영업이익의 최소 50% 이상을 기부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위안부 할머니 관련 기관에 기부한 금액만 16억1000만원이 넘는다. 여기에 수지와 박보검 등의 유명 연예인이 마리몬드 제품을 사용한다는 것까지 알려지면서 매출이 급성장했다. 2017년 예상 매출액이 100억 원에 이른다. 중국과 미국에서도 마리몬드 제품을 역직구 하는 이들도 꾸준하게 늘고 있다. 윤 대표는 “현재 마리몬드에는 60여 명의 임직원이 일하고 있는데, 월급 수준은 높은 편”이라며 “앞으로도 동반자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2017년 소셜 벤처 생태계를 평가해달라.

허재형 소셜 벤처가 어느 때보다 더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았던 해다. 점점 더 많은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이 소셜 벤처와 연결되고 있다. 심지어 대학에서는 소셜 벤처·사회혁신·체인지 메이커를 말하고 커리큘럼을 구성하고 있다.

윤홍조 허 대표의 말대로 많은 관심이 시작된 한 해였다. 그동안 이 생태계 안에 있는 기업들이 잘 버텨왔는데 새해에는 더 큰 성장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허재형 정부가 소셜 벤처를 육성하기 위해 임팩트 펀드와 TIPS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지자체도 나름의 방식으로 소셜 벤처를 지원하고 있다. 기존 투자자들도 소셜 벤처와 임팩트 투자에 대해 준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기업들도 CSR과 사회공헌 파트너로 소셜 벤처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 가능한 소셜 벤처를 만드는 것이다.

윤홍조 비전을 지키고 기업을 키울 수 있는 역량을 가진 플레이어를 끌어들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 여기에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회 안전망도 필요하다. 예를 들면 연대 보증제는 폐지되어야 한다. 투자자들도 소셜 벤처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해서 이 생태계를 이해한 후에 투자를 결정했으면 한다.

허재형 맞는 이야기다. 모든 기업이 그렇듯 소셜 벤처는 기본적으로 수익모델을 잘 구축해야 한다. 경쟁력을 갖춘 건강한 조직을 만들어야 지속 가능해진다. 소셜 벤처로서 정체성과 지향점을 조직 내외에서 일치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만약 이 부분이 이뤄지지 않으면 소셜 벤처의 미션이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윤홍조 그런 면에서 두손컴퍼니와 베어베터가 기억에 남는 소셜 벤처라고 생각한다. 두손컴퍼니는 우리와 함께 협력하고 있는 파트너사이고, 베어베터는 정말 대단한 선배 기업이다.

허재형 나는 두손컴퍼니와 마리몬드 두 곳을 인상 깊게 생각한다.(웃음) 특히 마리몬드의 놀라운 점은 위안부 할머니를 동정하고 도움을 줘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용기 있는 인권 운동가로 재조명한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을 다양한 제품에 스토리를 잘 풀어냈고 고객이 제품을 구매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인식하고 관심을 갖도록 했다. 마리몬드는 비즈니스를 하는 데 소셜 임팩트의 잠재력을 최대한 실현해 나가며 성장하는 좋은 사례다. 두 손컴퍼니는 소셜 미션과 비즈니스 모델을 조화롭게 결합시키고 있다. 홈리스를 위한 일자리 창출을 위해 종이옷걸이를 광고 매체로 풀어내는 제조업으로 시작했는 데, 지금은 물류 대행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다양한 크라우드펀딩 플랫폼과 협력해 크라우드펀딩 프로젝트 개설자의 물류를 대행하면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상당히 전략적인 움직임이라고 본다.

두손컴퍼니는 노숙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친환경 종이옷걸이, 컵홀더 등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베어베터는 발달장애인에게 인쇄 및 제과, 화환 제작 등 다양한 영역에서 고용기회를 제공하는 소셜 벤처다. 220여 명의 임직원 중 발달장애인이 80%를 차지하고 있다.


▎허재형 대표(오른쪽)와 윤홍조 대표(왼쪽)는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소셜 벤처 지원 정책에 대해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소셜 벤처가 추구하는 ‘사회에 임팩트를 준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허재형 사회적으로 혹은 환경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풀어내고 공동선을 증진하는 것이 소셜 임팩트라고 생각한다. 이는 비단 정부만의 몫이 아니다.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조직과 개인들이 나름의 몫을 가지고 있다. 정부와 기업, 그리고 시민사회 주체가 따로 또 같이 협력하고 견제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윤홍조 다양하게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 사회 문제와 관련된 많은 사람들이 해당 기업이나 조직의 존재를 고마워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이 과정에서 정부보다는 기업이 좀 더 효율적으로 접근하고 창의적인 해결방법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정부가 소셜 벤처를 육성하려는 정책은 굉장히 기대가 크다.

- 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사진 이원근 객원기자

201801호 (2017.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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