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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과 열정(4)] 임정욱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센터장 & 오치영 지란지교 창업가 

기자와 취재원의 20년 우정 

최영진 기자
동갑내기 친구가 말을 놓는 데 10여 년이 필요했다. 그만큼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신뢰라는 끈 하나로 20여 년 넘게 우정을 이어오고 있는 이들이 있다. 임정욱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센터장과 오치영 지란지교 CDO다. 우정과 열정 시리즈 네 번째 주인공이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지란지교소프트 사무실에서 임정욱 센터장(오른쪽)과 오치영 CDO를 만나 20여 년간의 우정 이야기를 들었다.
‘무료공개 통신SW 돌풍’. 1996년 9월 23일 조선일보 경제면 사이드 기사에 실린 인터뷰 기사 제목이다. 1994년 말 충남대 재학 시절 윈도우용 국산 통신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창업했고 ‘잠들지 않는 시간’이라는 소프트웨어를 무료로 공개해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 인터뷰에서 20대 창업가는 “누구나 컴퓨터를 통해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쉬운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이 꿈이다”라는 소박하지만 원대한 꿈을 밝혔다.

이 오래전 기사를 이야기하는 이유가 있다. 포브스코리아의 연재물인 ‘우정과 열정’ 네 번째 주인공들이 이 기사와 관련 있기 때문이다. 그때의 20대 창업가는 한 해 매출 900억원을 올린 기업가로 성장했다. 바로 오치영(50) 지란지교 CDO(Chief Dream Officer, 지난 3월 말 대표를 그만두고 새롭게 맡은 직책)다. 그리고 그를 인터뷰했던 취재기자는 현재 스타트업 얼라이언스를 이끌고 있는 임정욱(50) 센터장이다. 두 사람이 이번 호 우정과 열정의 주인공이다.

임 센터장에게 ‘우정과 열정’을 제안했을 때 오치영 CDO를 추천했고, 두 사람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90년대 중반 취재기자와 취재원으로 처음 만나 20년 넘게 우정을 이어오고 있는 사연이 궁금했다. 지난 4월 초 두 사람을 지란지교소프트 사무실에서 만났다.

통신 프로그램 ‘잠들지 않는 시간’ 덕분에 인연

우선 두 사람이 처음 만나게 된 사연을 들어봤다.

임정욱: 당시 조선일보 경제과학부 막내 기자로 ‘창업 엘리트’라는 연재기사를 쓰고 있었다. 당시는 SNS나 인터넷을 사용하기 전이라서 취재원을 찾는 게 힘들었다. 오 대표를 인터뷰한 것은 예전에 PC통신을 할 때 ‘잠들지 않는 시간’을 사용했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만들었는지 수소문해서 찾았고, 당시 대전에 사무실이 있어서 전화로 인터뷰를 했던 것 같다. 그 인터뷰 기사를 쓴 이후에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어느 날 오 대표가 서울에 왔는데 한번 보자며 연락을 해서 회사 근처의 커피숍에서 처음 만났다.

오치영: 인터뷰 기사를 잘 써줘서 고마웠고, 저녁이라도 함께하고 싶어서 연락했다. 바쁘다며 잠깐 차 한잔하자고 해서 회사로 찾아갔다.

임정욱: 기사를 써도 연락이 없는 취재원이 많은데, 대전에서 직접 나를 보겠다고 찾아온다고 해서 너무 고마웠던 기억이 있다. 그날 3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던 것 같다.

오치영: 중앙 일간지에 지란지교가 나간 후 주위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웃음) 창업에 대해서 좋게 생각하지 않았던 부모님이나 친구 등이 기사를 보고 좋아했다. 고마워서 직접 찾아간 것이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기자와 취재원 사이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취재기자와 취재원이 같이 차나 식사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렇다고 기자와 취재원이 인연을 꾸준하게 이어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기자의 취재 분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취재 분야가 달라지면 예전에 인연을 맺었던 취재원과 만나기 어려워진다. 이런 어려움이 있는데도 어떻게 인연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을까. 임 센터장은 “내가 IT 업계를 취재했으니 관련 행사에서 가끔 보게 됐다”고 전했다. 기자 생활을 그만두고 IT 업계에 뛰어들면서 두 사람은 더욱 자주 만나게 됐다고.

기자로 시작해 ‘스타트업계 구루’로 변화한 임 센터장


임 센터장이 기자 생활을 한 것은 3년 정도다. 그는 “내가 회사에서 컴퓨터 분야를 잘 안다고 인정받았고, 편집국에서 3년 동안 일한 후에 사장실과 인터넷기획부장 등으로 발령을 받았다”면서 “취재기자로 일하면서 기자 생활에 대한 매력을 잃어 편집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편집국을 떠나면서 더 큰 기회를 얻었다. UC버클리 하스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했고, 조선일보JNS를 설립하고 대표를 맡으면서 직접 경영을 해보는 기회도 얻었다. 이런 경험 덕분에 2006년 다음커뮤니케이션에서 이직을 제안받았고, 기자 생활을 정리하고 IT 업계로 발을 돌렸다. 임 센터장은 “다음으로부터 제안을 받고 기자라는 프리미엄을 떼고 포털에 가서 잘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했다”면서 “당시 30대 중반이었는데, 40이 넘으면 새로운 도전을 하기 힘들다는 생각에 과감하게 자리를 옮겼다”고 말했다. 다음커뮤니케이션에서 서비스혁신본부장과 대외협력본부장, 글로벌센터장 등으로 일하다 2009년 2월 미국 보스턴에 있는 라이코스 CEO에 취임하는 기회도 얻었다. 임 센터장은 “당시 왜 나를 라이코스로 보내느냐라고 물어봤더니 ‘MBA도 취득했고 직접 경영도 해본 경력 때문이다’라는 말을 했다”면서 “다양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IT 기업에서도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런 다양한 경력과 트위터·페이스북을 이용한 소통 덕분에 ‘임정욱’이라는 이름은 이제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임 센터장의 트위터 팔로워는 45만 명이나 된다. 임 센터장은 “내 이름이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는 것은 나도 느낀다”며 웃었다.

임 센터장이 트위터를 시작한 것은 라이코스 대표로 일하면서부터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심심풀이’로 트위터와 블로그를 시작했다고. 그는 “2011년 즈음에 한국에 출장 갈 일이 있었는데 그때 팔로워들에게 한번 보자고 한 적이 있었다”면서 “그때 150여 명이 한자리에 있는 것을 보고 SNS 파워를 느꼈다”면서 웃었다.

2015년 11월부터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센터장을 맡으면서 스타트업 생태계를 활성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임 센터장은 “스타트업 얼라이언스는 기업의 코트라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내가 전면에 나서지는 않지만, 워낙 스타트업계에 매력적인 사람이 많아서 그들을 위한 행사를 하는 게 재미있다”고 말했다. 오 CDO도 “기자는 다양한 정보를 정리하고 분석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서 “여기에 다음과 라이코스 같은 기업을 직접 경영 해본 경험까지 있어서 업계를 바라보는 통찰력이 뛰어나다”고 칭찬했다.

20여 년간 오 CDO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1994년 지란지교 창업 후 1995년 ‘잠들지 않는 시간’을 론칭하면서 일반인에게 알려졌다. 1998년 쿨메신저를 출시하면서 지란지교의 성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쿨메신저는 전국 초·중·고에서 사용하는 메신저로 여전히 사랑을 받고 있다. 2000년 벤처기업 대상, 2001년 중소기업 신지식인으로 선정되면서 업계에서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2002년에는 지란지교의 성장을 이끈 ‘스팸스나이퍼’도 출시했고, 사옥도 마련했다.

하지만 지란지교의 성장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2003년 직원 절반을 구조조정할 정도로 힘든 시기를 겪어야 했다. 성장은 했지만 내실을 다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큰 타격도 입었다. 오 CDO는 “지금도 2003년 구조조정과 사옥이 매각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게 큰 아픔으로 남아 있다”면서 “가족 같은 직원을 내보내야 했을 때 무척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2004년 창업 10주년을 맞이했다. 내실화를 다지기 시작했다. 2005년 엑스키퍼로 SW사업자 대상을 수상했고, 2007년 모바일 보안 서비스 모바일키퍼를 출시하면서 매출 100억원을 달성했다. 이후에도 오피스키퍼, 오피스하드 등 지란지교의 대표적인 서비스를 연달아 출시했다.

후배에게 경영권 물려주고 CDO 역할 맡아

오 CDO는 창업 20주년을 맞은 2014년에 ‘드림 플랫폼’이라는 비전을 발표했다. 사업부 단위를 분사하고 자율경영을 도입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지란지교는 지란지교소프트·지란지교에스엔씨·지란소프트재팬 등 3개 회사만 있었다. 오 CDO는 “내 꿈은 돈을 많이 버는 게 아니라 임직원이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며 “드림 플랫폼을 내걸면서 독립 경영체제로 사업부를 분사했고, 투자와 M&A를 통해 계열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드림 플랫폼 시행 결과 현재 지란지교는 국내외 계열사가 28개로 늘어났다. 2017년에는 총매출 900억원을 올리는 성과도 냈다.

특히 10여 년 동안 한 달에 세 번가량 출장을 갈 정도로 공을 들였던 일본 시장에서도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해 일본에서 1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오 CDO는 “올해는 150억원 정도를 예상하고 있고, 2020년까지 100억원의 추가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이를 바탕으로 2011년 설립한 지란지교재팬의 자회사인 제이시큐리티를 2020년 일본에 직접 상장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임 센터장도 “일본 사업을 해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일본에서 지란지교가 성과를 내는 것을 보면 놀랍기만 하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만난 지 10년이 지날 때도 서로 존댓말을 했다고. 임 센터장은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말을 쉽게 놓지 않고, 심지어 후배들에게도 존댓말을 하는 성격”이라며 “사회에서 만난 사람 중에서 말을 놓은 이는 두 명뿐”이라고 말할 정도. 오 CDO는 “나는 친한 사이가 되면 바로 말을 놓는데, 임 센터장의 성격을 아니까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굳이 말을 놓지 않았다”며 웃었다.

두 사람이 지금처럼 편하게 말을 놓게 된 사건(?)은 임 센터장이 라이코스 대표로 미국에서 일하고 있을 때라고. 어느 날 오 CDO가 만나러 가겠다고 연락을 해왔고, 두 사람은 라이코스 사무실에서 만났다. 오 CDO는 “라이코스 사무실에 갔는데 임 센터장이 유일한 한국인이었고 임직원 모두가 외국인이어서 놀랐다”면서 “더욱 놀란 것은 호텔에서 자지 말고 자기 집에서 자고 가라고 한 말이었다”고 한다. “임 센터장 성격상 집에 초대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임 센터장은 “아내가 그렇게 하라고 해서 오 대표를 보스턴 집으로 초대한 것”이라며 “우리가 함께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던 아내가 ‘친구인데 왜 존댓말을 하느냐. 그냥 말 놓아라’라고 이야기했다”며 웃었다. 오 CDO도 “그 말을 듣고 말을 놓아버렸다”면서 “웃긴 것은 다음 날 임 센터장이 다시 존댓말을 하길래 내가 그냥 말을 놓아버렸다”고 회고했다.

이 일화에서도 나타나듯 두 사람은 정반대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런 차이에도 20년 넘게 우정을 이어올 수 있던 이유를 두 사람은 ‘신뢰감’이라고 말했다.

10여 년 동안 말을 놓지 못했던 동갑내기


▎취재기자와 취재원으로 처음 만난 동갑내기 두 사람. 오치영 CDO는 임정욱 센터장이 사회에서 만나 말을 놓고 지내는 단 두 사람 중 한명이다.
오치영: 우선 나이도 비슷하고 사업 초기 큰 언론사에서 지방에 있는 회사까지 취재를 해준 것에 대해 늘 고마움이 있었다. 무엇보다 임 센터장은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다. 신뢰할 만한 사람이고, 서로 말이 잘 통하기 때문에 우정을 이어올 수 있었다.

임정욱: ‘우정과 열정’을 제안받았을 때 오 대표를 추천한 것은 신뢰할 수 있는 친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여 년 동안 한결같은 사람은 별로 없을텐데. 오 CDO는 처음 만났을 때와 지금이 똑같다.

오치영: 나는 사람을 만나면 오랫동안 지켜본다. 임 센터장을 지켜보면서 우리 회사 경영을 맡겨볼 생각까지 했다. 라이코스를 그만두고, 스타트업 얼라이언스를 맡을 때 차라리 사업을 하고 돈 많이 벌 수 있는 일을 하라고 이야기한 이유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내 생각이 틀린 것 같다. 임 센터장은 우리나라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맡아야 할 사람인 것 같다.

임정욱: 뭐 그런 이야기를 하나. 쑥스럽다.(웃음) 오 대표 말대로 스타트업 얼라이언스는 창업가를 서포트하는 조직이다. 내가 전면에 나서지 않는 자리다. 센터장 자리를 제안을 받은 시기가 커리어나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던 때다. 예전부터 내 트위터를 보고 도움을 요청하는 창업가가 많았다. 그때는 내 일도 있고 해서 조금 부담스러웠는데, 센터장 제안을 받았을 때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보다 재미있다.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를 발전시키는 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두 사람에게 배울 점이 있는지 물어봤다. 오 CDO는 “임 센터장은 기술과 비즈니스에 이해가 높아 통찰력이 남다르고,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사고의 밸런스가 좋다”면서 “또 상대방에게 신뢰를 주는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장점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임 센터장은 “친화력과 끈기 그리고 실행력이다”면서 “지란지교를 키워왔던 능력을 후배들에게 잘 전수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 센터장의 말을 듣고 있던 오 CDO는 “임 센터장은 정말 나라를 위해서 일을 하는 역할을 맡았으면 한다”며 웃었다.

- 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사진 김현동 기자

201806호 (2018.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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