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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얼 크리에이터(1) 김홍국 하림 회장 

“사람은 누구나 천재성을 가지고 있다” 

글 신수진 연세대 교수
시대가 달라졌다. 로봇이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인공지능이 자동차를 운전한다. 사람들의 가치관도 변하고 있다. 삶의 품격과 행복을 최우선시한다. 세상의 우선순위가 바뀌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새로운 시각과 방식으로 대응해야 한다. ‘생각의 힘’이 더 요구되는 이유다. 심리학자이자 예술기획자인 신수진 연세대 교수와 포브스코리아의 박종근 포토 에디터가 한 팀이 되어 매달 진정한 크리에이터를 만나 인터뷰한다. [편집자 주]

▎2016년 8월 하림의 ‘강남시대’를 연 서울 논현동 하림타워 15층 회장 집무실에서 만난 김홍국 회장.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자수성가해 자산 규모 10조원 이상의 대기업을 만든다는 것은 특별하다. 창업주가 당대에 스스로 대기업을 만든 사례가 그만큼 귀해졌다는 것인데, 이는 저속 성장기에 접어든 한국의 기업 환경을 정면으로 돌파한 성과이기도 하다. 하림의 성장은 제조업의 비중이 줄어드는 산업구조 속에서 먹거리에 기초한 제조업이라는, 새로운 산업적 접근 가능성을 확인하게 했다. 남다른 분야에서 실현시킨 고속 성장의 동력을 김홍국 회장과의 대화에서 찾아보았다.

인생과 사업에서 중요한 전환기로 꼽을 수 있는 시점은 언제였나요? 순서대로 복수로 말씀해주세요.

첫 번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외할머니에게 병아리를 선물 받은 일이고, 두 번째는 20대 말에 맞은 축산파동, 1998년 외환위기, 2003년 화재사건 등을 겪은 어려움들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2015년 팬오션 인수를 들 수 있겠습니다.

첫 번째와 세 번째는 기회였고 나머지는 위기였네요.


▎“놀면 피곤하다”는 김홍국 회장은 한 시간 여유가 생기면 집무실 한쪽에 마련된 독서대에서 책을 본다.
그렇습니다. 외할머니의 선물은 어린 저에게 스스로 적성을 발견하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저는 사람의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이에크(F. A. von Hayek)의 말처럼 인간은 인지능력에서 한계를 지닌 존재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 원리를 그대로 받은 소우주라서 인위적으로 조절하려고 하면 오히려 망가집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주신 사역에 따라 태어날 때부터 지닌 소명을 실천하면 누구라도 최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적성을 따르면 된다는 것이지요. 11살에 닭을 키우는 일이 제겐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모릅니다. 식구들이 먹을 쌀을 몰래 병아리 모이로 주기도 했고 들에 나가 개구리나 미꾸라지를 잡아다 삶아서 풀을 섞어 사료로 만들어 먹이기도 했습니다. 어린아이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습니다. 그렇게 키운 닭을 몇 달 만에 팔아서 병아리 값의 40배를 벌었고 그 돈으로 다시 병아리 100마리를 사서 키웠습니다. 적성에 맞는 일을 하면 절대 지루하지 않고 고난이 와도 포기하지 않게 됩니다. 실패할 수는 있지만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딴 길로 새지 않게 됩니다.

위기관리 능력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저는 똑똑하지도 지식이 많지도 않습니다. 처음엔 재미있는 일에 빠져들었고 경험이 쌓이면서 생각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게 되었고 저만의 철학이 생겼지요. 사업을 하면서 저에게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그게 다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 나이 서른이 되기 전에 축산파동이 났습니다. 닭과 돼지를 5만 마리 이상 키우는 농장들을 운영하고 있던 차에 돼지고기 값이 바닥을 쳤으니 그야말로 막막했습니다. 그런데 시장에 가서 보니 원자재인 돼지 값은 떨어져도 가공식품인 소시지 값은 그대로인 겁니다. 그때 농장, 공장, 시장을 통합하는 큰 그림의 필요성을 깨달았습니다. 1차 산업에만 머무르면 위기의 연속이지만 2, 3차 산업으로 확장된 통합경영을 이루면 기회가 펼쳐질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던 것입니다.

1998년 국가적 외환위기 속에서 저희도 자금난을 겪었지만 IBRD 산하 국제금융공사(IFC)로부터 2000만 달러를 투자 받아서 한동안 탄탄하게 성장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2003년에 누전으로 인한 화재로 회사와 공장이 잿더미가 되어버렸지요. 그때는 정말 크게 상심했습니다. 온갖 회의가 들었지요. 하지만 결국 그 사건이야말로 중요한 체질개선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완벽한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경험이 저에게 준 교훈은 분명합니다. 나폴레옹의 말처럼 어려움은 정상을 향해 가는 과정일 뿐입니다. 어려움을 피하게 하려고 도움을 주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게 됩니다. 어려움이 있어야 혁신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고 충격을 통해서 성장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어려움이 없으면 창의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발휘할 기회도 없습니다.


▎김홍국 회장은 가장 영향을 받은 인물로 꼽는 나폴레옹의 긍정과 도전 정신을 강조했다. 나폴레옹의 상징인 이각모를 2014년에 약 26억원의 사재를 들여 낙찰받은 김 회장은 청소년들에게 ‘불가능이란 없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판교에 있는 NS홈쇼핑 사옥 별관에 나폴레옹 갤러리를 마련하여 상설 전시 중이다.
‘하림’ 하면 닭고기를 먼저 떠올리는데 식품산업을 근간으로 다양한 사업을 전방위적으로 구축하셨습니다. 2015년 팬오션 인수도 큰 그림의 일부였을 텐데, 먹거리 산업의 미래와 관련해서 어떠한 대비와 실천을 하는지 말씀해주세요.

올해 세계 식품 시장의 규모는 7조 달러를 넘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자동차, 철강, IT 시장을 합한 것보다도 큽니다. 특히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식품 시장은 유럽이나 미주보다 훨씬 역동적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경제 성장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데, 먹는 양은 GDP에 대비해서 일정 수준까지 꾸준히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단백질의 소비량은 현격히 증가합니다. 우리나라 주식이 이제 더는 쌀이 아닌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1970년대에 연간 식품 소비량은 1인당 450kg이었는데 지금은 600kg으로 늘었습니다. 그 가운데 쌀 소비량은 135kg에서 61.9kg으로 줄었습니다. 탄수화물 소비량은 줄고 단백질 식품의 비중이 급격하게 늘어난 것이지요.

시대에 따라 음식의 소비 패턴도 달라졌다는 말씀이네요. 시대에 발맞추어 기업을 변신시켜나 가시는군요.


▎하림타워 회장 집무실 창밖으로는 한남대교와 동호대교가 한눈에 들어온다.
네,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식품산업의 경쟁력은 생산량 면에서만 본다면 그야말로 미미합니다. 그래서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 식품 제조와 유통의 종합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많은 회사를 인수 합병하게 된 것입니다. 궁극적인 목표는 분명합니다. 농식품 사업을 심화시키기 위해 사료, 축산, 도축가공, 식품제조, 유통판매, 곡물유통, 해운으로 이어지는 생태계를 자체적으로 구축해나가는 것입니다.

모든 사업영역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네요.

우리는 동아시아 식품 시장에서 관리자 역할을 해야 합니다. 제가 해운에 공을 들인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지요. 동북아시아의 곡물 생산량은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한국과 일본의 자급률이 30%에도 미치지 못하니까요. 우선 우리는 아시아 곡물 유통 1위를 목표로 합니다. 유럽에서는 네덜란드가 그 역할을 하고 있고 우리도 그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합니다. 목표가 분명하고 방법이 올바르면 성과가 있게 마련입니다.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미얀마 등지에 세운 회사들이 생산량과 판매량 면에서 기대보다 빨리 적응하고 선전하는 것을 보면 상당히 고무적입니다.

산에 오르다 보면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이 계속해서 바뀝니다. 미국 델라웨어에서 공장을 인수하고 식품 가공 회사를 현지화해 운영하다 보니 그동안 한국의 관점에서 바라보던 세계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이라는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사업에서 현재의 비전은 그렇게 계속 바뀌게 마련입니다. 그에 따라 당면 과제들이 설정되는 것이지요. 지금 하림이 가야 할 길은 ‘더 싸고, 더 건강하고, 더 맛있게’ 먹거리를 제공하는 일입니다.


▎와이셔츠 차림의 김홍국 회장은 2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동안의 도전과 앞으로의 꿈을 이야기했다.
말씀을 들을수록 11살부터 지금까지 한 길을 걸으셨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 일관성이 놀랍습니다. 보통 10대나 20대엔 학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면서 경제활동을 하기 어려운 현실을 고려하면, 일생을 통틀어 거의 두 배 가까운 시간을 일에 쏟고 계시네요.

제가 앞으로 10년 정도 더 일을 한다고 가정하면 60년간 같은 일을 하게 되는 거니까 짧은 시간은 아닙니다. 제 인생엔 시간 낭비가 없었습니다. 교육의 낭비도 없었지요. 저는 네덜란드의 교육제도를 높이 평가하는데, 초등교육 과정에서 적성을 찾아내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게 함으로써 각자 자기 역할에서 최고가 될 수 있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먼저 아이들에게 지식을 가르치려 하지 말고 소질이 뭔지를 알게 해줘야지요. 이 의견에 많은 분이 공감하실 겁니다.

사업에서 혁신을 강조하시지만 인생에선 초등학교 교육에 답이 있다는 말씀을 자주 하십니다.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는 글씨도 큼직해서 5분이면 다 읽을 수 있어요. 그런데 내용은 보편적 진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성경 내용과 가장 가까운 책이지요. ‘부모를 공경해라’, ‘부지런해라’와 같이 당연한 말씀을 실천하기는 의외로 쉽지 않습니다. 중요하다는 것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는 것과 그것을 내 이야기로 만드는 것은 별개입니다. 스스로 깨달아야 합니다. 쇠에 담금질이 필요한 것처럼 연단을 통해서만 창조가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생각들이 모여서 실천을 만들고 그러한 실천이 쌓여서 성과를 만듭니다. 그래서 경영의 본질은 철학입니다.

[즉문즉답]

1. 10대 시절 장래 희망은?

양계업자. 병아리 10마리 키울 때는 100마리 만들었으면, 100마리 키우게 되고 나선 1000마리 키워봤으면….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2. 20대에 가장 몰두했던 일은?

축산업. 축산업에 기초한 가공식품 산업을 구상했다.

3. 40대에 품었던 인생의 목표는?

수직 계열화 확장. 규모의 경제 추구. 소품종 대량생산 실현.

4. 스스로 생각하는 경쟁력의 원천은?

적성에 맞는 일을 선택.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 부모도 반대했지만 달란트를 잘 발견했다. 적성에 맞는 일을 하면 어려움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그 길을 계속 가게 된다.

5. 앞선 인물(부모나 의미 있는 사람 누구든)에게서 받은 물적, 심적 유산은?

성경책. 부모님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6. 현재의 나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은?

나폴레옹. 그가 지닌 긍정의 힘이 나로 하여금 끊임없이 도전하게 한다. 만약 그가 흙수저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황제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7. 좋아하는 책이나 물건은?

아담 스미스의『 도덕 감정론』. 우주의 섭리로 경제를 이해할 수 있었다.

8. 충전이 필요할 때 찾는 장소나 사람은?

사우나. 딱히 찾는 사람은 없다.

9. 휴식할 때 주로 하는 행동은?

한 시간이 비면 독서를 한다. 놀 줄을 모른다.

놀면 피곤하다. 누가 놀러가자고 하면 참 따분하다.

10.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식품산업 분야에서 국제적인 혁신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나에게 사업은 오락이며 철학이다.

11. 한국의 청소년이나 청년에게 하고 싶은 말

남 신경 쓰지 말고 나의 적성을 찾아라. 사람은 누구나 다 천재성을 가지고 있다.

※ 신수진은…심리학자이며 예술기획자이다. [더 리얼 크리에이터]를 연재하면서 문화예술과 경영을 관통하는 창의성의 비결을 탐구하고자 한다. 차별적 성과를 만드는 경험과 생각의 연결고리 속에서 새로움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글 신수진 연세대 교수·사진 박종근 포토 에디터

201807호 (2018.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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