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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와 진실-양자컴퓨터] 호들갑 청사진 접고 장기 연구 몰입해야 

 

박성수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책임연구원
수백만 년 걸릴 소인수분해 계산을 며칠 만에 해치우는 강력한 성능을 지닌 양자컴퓨터가 개발 중이다. IBM, 구글,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등 거대 IT기업들이 뛰어들고 있다. 그러나 ‘다소 격양된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양자컴퓨터는 슈퍼컴퓨터를 뛰어넘는 무지막지한 계산능력으로 공학, 과학, 수학 등의 학문 분야뿐만 아니라 이를 응용한 실생활에서도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선두주자인 IBM은 개발된 양자컴퓨터를 인터넷으로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열어놓고 양자컴퓨터가 어떠한 것인지를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했다. 구글,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등 거대 IT기업들도 뛰어들어 연구개발 중이다. 개발이 완료되면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신세계가 열리게 된다.

양자컴퓨터가 정보를 다룰 수 있다는 것은 0, 1을 읽고 쓸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0, 1의 정보를 다루는 양자소자를 큐빗(qubit)*이라고 부르고, 이 큐빗의 개수가 많을수록 양자컴퓨터 성능은 기하급수적으로 좋아진다. 약 50~60개 큐빗이면 슈퍼컴퓨터급 성능을 낼 수 있고, 수천 개 정도라면 슈퍼컴퓨터로도 수백만 년 걸리는 암호해독을 며칠 만에 할 수 있다. 이것은 모든 금융거래, 전자상거래, 암호통신이 해독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글로벌 IT기업, 국가 간 경쟁 치열

IBM은 초전도회로 기술을 이용한 5개 큐빗을 가진 양자컴퓨터를 2016년 5월에 공개해서 2017년 말 기준으로 6만 명의 사용자가 170만 건의 계산을 해봤다고 밝혔다. 현재 수준은 50큐빗이다. 구글은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대학의 초전도 큐빗 연구팀을 흡수하여 3년 만에 72큐빗을 달성했고, 인텔은 네덜란드 델프트공대 기술을 도입해 2년 만에 49개 초전도 큐빗과 26개 전자스핀 큐빗을 만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2013년 창업해 초전도 큐빗을 개발하는 벤처기업인 리게티(Rigetti)는 19개 큐빗을 개발했고, 메릴랜드대학이 주축이 되어 2015년 창업한 이온큐(IonQ)는 7개 이온 큐빗을 만들었다. 마이크로소프트도 2012년부터 델프트공대로부터 기술을 도입해 에러율을 크게 줄인 새로운 (위상학적) 큐빗을 개발 중인데, 올해까지 가능성을 확인하게 되면 5년 내에 200큐빗까지 만들어내겠다고 장담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차세대 클라우드 서비스를 위한 컴퓨터에 양자컴퓨터 사용을 고려하고 있다.

이러한 비약적인 양자컴퓨팅 기술 발전에는 미국 정부의 기술개발 지원이 절대적인 공헌을 했다. 1990년대의 양자컴퓨터 기초이론 연구, 2000년대의 큐빗 구현 연구 등 대학의 기초기술은 2009년부터 양자컴퓨터로 응용 가능성 확인이라는 목적성을 가진 기술개발들을 거쳐 실용적 큐빗 개발로 이어졌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거대 IT기업들이 대학의 기술을 받아 추가 기술 개발을 성공시키면서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2011년부터 국가과기혁신계획에 따라 중대 과기 프로젝트로 추진해 20여 개 초전도 큐빗 개발 성과를 일궜다. 2020년까지 76억 위안(1조2000억원)을 들여 양자국가연구소를 신규 건설하고, 암호해독이 가능한 양자컴퓨터를 개발할 계획이다. 유럽연합은 ‘양자 역학을 만들어낸 유럽이 양자기술의 주도권을 뺏길 수 없다’는 자존심을 내걸고 내년부터 10년 동안 10억 유로(1조3000억원)를 투입한다. 기업을 참여시켜 가시적 성과를 보여주겠다는 계획이다.

유럽연합, 중국 등의 대규모 투자에 자극받은 미국은 내년부터 4년간 11억 달러(1조2000억원)를 투입해 양자컴퓨터 시스템의 공학적 개발 및 산업화, 산업인력 양성 등을 지원한다. 이런 내용이 포함된 법안(NQI법)이 6월 26일 하원에서 발의되었는데 상하원 의원들의 많은 지지를 받고 있어서 법안 통과가 유력시된다. 또 6월 5일에는 군사적 응용이 예상되는 양자컴퓨팅연구법이 상원에 발의되어 심의 중이다.

미국은 양자컴퓨터를 ‘새로운 우주경쟁(new space race)’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양자컴퓨터의 산업화와 군사적 응용도 가능한 수준으로 개발하고자 한다. 즉, 암호해독이 가능한 양자컴퓨터를 만들어내지 말라는 법은 없다는 것이다. 또 유럽이 산업 육성과 자존심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잡을지 아직 모르지만 대규모 투자에 따른 성과를 확실히 보여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시진핑이 올해 신년사에서 양자컴퓨터 자체개발 성과를 언급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고 있고 암호해독을 위한 양자컴퓨터 개발에 착수할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일본은 세계 최초의 초전도 큐빗 구현, 세계 최고 수준의 광통신 기술 등을 기반으로 자신들의 강점인 초전도 큐빗과 원자 큐빗을 주축으로 올해부터 5년간 110억 엔(1000억원)을 투입해 양자컴퓨터 기술을 개발할 예정이다.

이론상 강력하지만 증명은 주먹구구


▎올해 3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BI M 싱크 2018 콘퍼런스에서 전시된 ‘50큐빗 양자컴퓨터’의 저온유지장치.
지금까지의 기술개발 속도와 각국의 대규모 투자 등을 볼 때 암호해독이 가능한 양자컴퓨터가 당장 나올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암호를 해독할 정도가 되려면 5000 큐빗 이상 필요하다고 하는데, 5개 큐빗에서 50개 큐빗으로 늘리는 데 약 3년 정도 걸렸다. 현재 개발 속도로 단순비교하면 30년 후면 5000개 큐빗 생산 기술이 완성된다.

그러나 양자컴퓨터가 실용화되려면 500만 개 이상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다음과 같은 이유로 500만 개 이상을 만들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우선 양자컴퓨터의 성능은 큐빗의 개수도 중요하지만 개별 큐빗의 성능*도 중요하다. 정보를 오래 보전할 수 있는 큐빗이 좋은 성능의 큐빗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모든 큐빗은 시간이 지나면 정보를 잃어버리므로 에러보정*을 해야 한다. 암호해독을 위한 5000개 큐빗이라는 것은 실제로는 500만 개 이상 큐빗이 있어야 된다는 뜻이다.

존 프레스킬 캘리포니아공과대학 교수는 이러한 현재 개발 상태에 대해 2017년에 ‘NISQ시대’(잡음이 있는 중간형태 양자컴퓨터, Noisy Intermediate-Scale Quantum Computer)라고 명명했다. 만약 위에서 언급한 마이크로소프트가 5년 후에 획기적으로 우수한 성능*의 새로운 큐빗을 4000개 만들고 에러보정 하여 200개 에러보정 된 큐빗을 갖는 양자컴퓨터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면 양자컴퓨터 분야에서 아주 큰 획을 그을 것이다.

현재 개발된 에러보정 되지 않은 50개 큐빗의 양자컴퓨터로 어떤 계산을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연구도 미국 에너지부(DOE) 주관으로 지난해부터 진행 중이다. 미국 오크리지국립연구소는 양자컴퓨터와 디지털 컴퓨터를 연결해 활용성과 유용성을 높이는 연구를 진행하고, 샌디아국립연구소는 양자시뮬레이션 알고리즘 연구를 통해 신소재 개발, 신약 개발, 원자물리연구, 양자화학연구, 촉매거동 등에 활용될 수 있는 응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한다.

또 양자컴퓨터의 성능을 말할 때 슈퍼컴퓨터보다 계산이 빠르다(양자우월성, Quantum Supremacy라고 함)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직접적인 계산 비교는 못 하고 있다. 무작위로 선택된 양자계산을 했을 때 슈퍼컴퓨터의 무작위 계산보다 효율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현존 양자컴퓨터가 간단한 수준의 소인수분해도 가능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반증한다. 소인수분해를 예를 들어보자. 마이크로소프트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13비트 숫자를 소인수분해 하는 데 큐빗 27개를 사용하고 약 50만 번 양자연산을 했고, 5일 걸렸다고 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큐빗이 27개 필요하고 5일 동안 양자상태를 잃어버리지 않을 현존 양자컴퓨터는 없으므로 실제 양자컴퓨터가 아니고 큐빗을 시뮬레이션한 30GB 정도의 메모리를 갖는 PC를 사용했다.

양자컴퓨터 종류에는 양자어닐러, 양자시뮬레이터, 범용양자컴퓨터 등 성능과 원리가 조금씩 다른 것이 있지만 이를 모두 양자컴퓨터라고 불러 혼동을 일으킬 수 있다. 양자어닐러는 최적화 문제* 풀이에 특화된 것으로, 캐나다 D-Wave사가 판매하고 있다. 양자시뮬레이터* 는 큐빗의 양자 상태를 그대로 모델링에 사용하여 전자, 원자 등의 상호작용 등을 알아낼 수 있다. 범용양자컴퓨터는 모든 큐빗의 상태를 제어하는 게 가능해 여러 가지 문제를 풀 수 있는 것으로, 암호해독도 이 범주에 해당하고 앞에서 말한 모든 내용은 범용양자컴퓨터를 기준으로 설명했다.

수준 낮은 국내에서도 기술개발 추진해야

양자컴퓨터는 장기적으로 슈퍼컴퓨터를 월등히 능가하는 계산능력을 가지는 컴퓨팅 시스템이 될 것이라는 점에 많은 사람이 기대하고 있고 현재까지 이룬, 눈부신 가시적 성과는 놀라울 정도다. 그러나 양자컴퓨터의 유용성과 발전 가능성을 구체화하기 위해서 앞으로 5~10년 정도 차분한 연구개발이 필요하다.

최근 놀라운 성과에 전 세계가 새롭고 강력한 계산 도구의 출현에 많은 기대감을 가지게 되었고, 선진국에서는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기술력이 낮은 국내에서도 시급히 기술개발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서 ‘다소 격양된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고 오랫동안 양자분야를 연구한 학자들이 우려를 표시할 정도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큐빗의 개수뿐만 아니라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아 장기적으로 연구개발해야 할 분야이므로 차분히 기술력을 쌓아가면서 차근차근 접근한다면 우리나라도 양자컴퓨터 개발 경쟁에서 밀려나지 않고 두각을 낼 수 있을 것이다.

[박스기사] 용어 정리

(1) 큐빗은 이온, 원자, 초전도회로, 전자스핀 등 다양한 방법으로 구현 가능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디지털에서 전압이 0V면 0, 5V면 1로 정보를 인식하는 것처럼 양자에서는 전자의 스핀이 up이면 1, down이면 0으로 보면 되고, 다른 형태의 양자인 이온, 원자, 초전도회로에서는 에너지가 낮은 상태는 0, 높은 상태는 1로 인식하게 되면 정보를 다룰 수 있다는 원리다.

(2) 큐빗에 실린 정보는 짧게는 수천 초분의 1, 길게는 1일 정도가 지나면 정보를 잃어버리게 되는 성질도 있으며, 양자계산을 할 때 엉뚱한 계산결과를 낼 수도 있다. 즉, 큐빗에 실린 정보가 없어지거나 달라진다는 것.

(3) 1개 큐빗의 에러보정을 위해 수백~수천 개의 여분 큐빗이 필요하다.

(4) 위상학 큐빗이라는 것인데, 에러보정에 10~20개 큐빗으로도 가능한 정도의 성능.

(5) 최적화 문제의 대표적 예는 여러 도시에 출장 가야 하는 세일즈맨으로 도시 간 거리, 비용, 시간 등이 모두 다를 것이고 방문 도시의 순서에 따라 출장의 효율성이 다를 것이다. 그러나 방문해야 할 도시의 개수가 늘어날수록 고전컴퓨터로는 빠른 시간 내에 풀기 어려운 문제가 된다. 비슷한 예로 금융투자 포트폴리오, 교통 및 물류최적화 등이 해당된다.

(6) 실제로 풀 수 있는 문제유형으로 광합성, 질소고정, 촉매 등의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고 한다. 하버드, 메릴랜드대학 등에서 50큐빗 정도의 시뮬레이터 초기형태를 개발했다.

- 박성수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책임연구원

201809호 (2018.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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