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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와 진실-블록체인] 우리 회사에 블록체인이 필요할까? 

 

이기준 기자
금융거래는 물론 의료부터 물류, 거버넌스, 전자선거까지 온갖 제품과 서비스 앞에 ‘블록체인’을 붙여 내놓는 시대다. 여러 기업과 지자체가 앞다퉈 블록체인을 도입해 성과를 올리겠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여러 전문가가 블록체인이 실제 성과로 이어지기엔 아직 이르다고 지적한다. 블록체인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을 살펴봤다.

“블록체인은 거품이 아니지만 비트코인은 거품이다.” - 마윈 알리바바그룹 회장

“블록체인은 거품이지만 비트코인은 여전히 놀랍다.” - 스티브 워즈니악 애플 공동창업자


세계 굴지의 혁신적 창업가로 꼽히는 두 사람이 블록체인과 비트코인을 두고 내린 평가다. 마윈은 “블록체인은 빅데이터 시대에 사생활 보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으로서 가치가 있다”면서도 “블록체인은 금광이 아니다”며 이 기술을 단순히 일확천금의 수단으로 삼는 것을 경계했다. 워즈니악은 정반대의 견해를 내놨다. 그는 “블록체인은 닷컴붐 때와 같은 거품처럼 보인다”며 블록체인 기술의 가능성을 낮게 평가한 반면 비트코인에는 “달러화보다 더 순수하고 현실적”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두 기업인의 엇갈린 평가는 언뜻 모순처럼 보이지만, 어느 한쪽이 틀렸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현재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블록체인’이란 용어는 서로 다른 두 가지 개념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열려 있는 공개 블록체인(퍼블릭 블록체인)과 일부 사람에게만 공개되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이다. 블록체인을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이 두 가지 중 한 가지에 초점을 맞춘다. 예컨대 위에서 블록체인에 상반된 평가를 내린 두 기업인은 사실 이름만 같을 뿐 기능이 다른 두 가지 블록체인을 이야기하고 있다.

의미 희석된 블록체인


▎말레이시아 파항에 있는 비트코인 채굴 업장. 비트코인을 채굴하려면 막대한 전력과 컴퓨터 자원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대체 블록체인이란 무엇인가. 미국 IT전문지 더버지는 “블록체인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글, 음성 자료, 동영상 등이 수없이 많지만 그것들은 전부 정확하지 않다”며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블록체인에 대한 정의는 존재하지 않으며, 어떤 성질이 블록체인에 필수적인 요소인지에 대해 저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블록체인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사회적인 합의가 이뤄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블록체인에 대한 사전적 정의도 제각각이다. 메리엄 웹스터 사전에 따르면 블록체인은 “탈중앙적이며 공개적으로 접근 가능한 네트워크상에서 동시에 사용 및 공유되는 정보를 담고 있는 디지털 데이터베이스”를 뜻한다. 옥스퍼드대사전은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에서 생성된 거래 기록 시스템으로 개인 간 네트워크로 연결된 여러 컴퓨터상에서 유지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이처럼 미국의 대표적인 두 사전만 봐도 블록체인이 암호화폐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 탈중앙적인지, 공개적인지 아닌지 알기가 어렵다.

정의가 모호해진 까닭은 블록체인의 의미가 급속도로 확장됐기 때문이다. 블록체인 혁신의 시작점은 누구나 다 알다시피 비트코인이었다. 익명의 개발자 사토시 나카모토가 고안한 비트코인은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 화폐 체계다. 화폐를 발행하거나 운영 및 관리하는 주체가 없이 나카모토가 미리 만들어둔 블록체인 알고리즘에 따라 모든 것이 운영된다.

비트코인은 정부나 은행 같은 제3자의 개입 없이도 거래의 안정성이 담보되며 누구나 익명으로 참여 가능하다는 점에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워즈니악이 블록체인 기술 자체보다 비트코인이 더 뛰어나다고 한 것도 이 같은 탈중앙적 성격 때문이다. 워즈니악은 “비트코인은 수학적으로 정의되며, 이것을 운영하는 사람이나 회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비트코인은 스스로의 힘으로 성장하고 생존한다는 점에서 자연물에 가깝다”며 “자연물은 그 어떤 인공물보다 중요하다”고 극찬했다.

비트코인은 어떻게 블록체인을 이용해 제3자 없이 개인 간 신뢰도 높은 거래를 실현할 수 있었을까. 블록체인이란 말 그대로 블록(block)이 사슬(chain)처럼 연결된 것을 말한다. 각 블록엔 개개인의 거래 내역이 기록돼 있고, 이 블록들은 거래가 승인되는 순서대로 쌓여서 긴 사슬 형태의 장부를 이룬다. 기존의 금융 시스템에선 이 승인을 은행이나 정부 등 공인된 제3자가 대신하지만, 블록체인에선 미리 만들어진 컴퓨터 알고리즘에 따라 제3자 없이 승인이 이뤄진다. 블록체인을 탈중앙화된 분산거래 시스템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블록체인을 통해 거래된 모든 비트코인의 내역은 실시간으로 비트코인 네트워크에 전송돼 전 세계 비트코인 이용자들에게 공개된다. 신용카드 사용 내역이 카드사로 전송되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비트코인 이용자들은 이 거래 내역을 함께 검증하고 확실하게 검증된 거래 내역만 새로운 블록으로 엮어 거래 장부에 추가한다. 이처럼 검증된 블록을 새롭게 장부에 추가하는 것이 ‘채굴’이라 불리는 과정이다. 검증 과정에 참여해 새로운 블록을 만든 사람에겐 비트코인이 대가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공인된 제3자만 거래 승인이 가능한 기존 금융 시스템과 달리 비트코인 네트워크에선 누구나 채굴, 즉 거래 승인이 가능하다.

블록체인, 혁신인가? 아닌가?


문제는 거래 승인의 안정성이다. 누구나 거래를 승인할 수 있다면 누군가가 거짓 거래 내역을 작성해 임의로 승인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의미다. 이를 막기 위해 블록체인에선 가장 많은 사람이 합의한 블록만 거래 내역으로 인정된다. 따라서 누군가가 비트코인 네트워크 전체의 절반 이상을 장악한다면 조작된 블록을 승인하는 것도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그러나 비트코인 네트워크의 크기가 굉장히 방대하기 때문에 그 절반을 장악하고 블록을 조작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과거의 블록을 조작하려면 그 블록 이후에 형성된 모든 블록을 전부 조작해야 하기 때문에 과거의 장부를 조작하거나 수정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블록 하나를 만들려면 천문학적인 전력과 컴퓨터 연산을 쏟아부어야 하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처럼 누구나 참여 가능한 퍼블릭 블록체인엔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거래 승인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블록 형성을 아주 어렵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블록을 쉽고 빠르게 만들 수 있다면 블록 조작이 아주 쉬워질뿐더러 거짓 블록을 검증하고 걸러내기도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비트코인을 비롯한 공개 블록체인(퍼블릭 블록체인)엔 블록을 형성하기 위해선 아주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어야 하는 등 비트코인의 가치와 사실상 관계없는 제약이 걸려 있다. 블록 하나를 형성하기 위해 전문 업자들이 수백, 수천 대의 컴퓨터를 동원해서 연산을 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처럼 어려운 수학 문제로 제약을 걸어 블록 형성을 지연시키는 기술을 작업증명이라고 한다.

퍼블릭 블록체인에선 블록 형성이 아주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거래 승인 과정이 늦어진다. 일반적인 신용카드 거래는 초당 수만 건이 처리되지만 비트코인에선 아직까지 초당 5건 안팎을 처리하는 게 고작이다. 탈중앙성(분산성)과 보안을 높인 대가로 거래의 확장성이 희생된 것이다. 김용대 카이스트 교수는 이 같은 한계를 블록체인의 ‘트릴레마’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블록체인의 트릴레마란 확장성, 보안, 분산성 이 세 가지를 모두 좋게 할 수 없다는 딜레마를 뜻한다. 어느 한 가지를 좋게 하면 나머지 기능이 떨어지게 된다”며 “이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면 응용 분야는 매우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분산성을 약간 희생한 대신 확장성을 높인 것이 최근 기업 솔루션으로 등장하고 있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이다. 프라이빗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블록체인은 정해진 일부 사람들만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거래 내역을 검증하는 사람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누구나 참여 가능한 비트코인처럼 블록 형성을 어렵고 복잡하게 만들 필요가 없다. 과거 장부 조작이 어렵고 중개인이 필요 없다는 블록체인의 장점을 살리면서 블록 형성 속도를 높이려는 시도인 셈이다. 마윈이 강조한 ‘솔루션으로서의 블록체인’도 바로 이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두고 한 말이다.

그러나 프라이빗 블록체인의 경우 명확한 운영 주체가 있어야 하고, 그 운영 주체의 틀 안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제3자 없이 누구나 동등하게 참여 가능하다’는 블록체인의 혁신성을 없애버린 것과 마찬가지라는 지적이 나온다. 아빈드 나라야난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이라는 용어는 그저 (기존의) 공유 데이터베이스를 더 어렵게 부르는 이름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나라야난 교수는 “비트코인의 안정성과 성공은 탈중앙화에 있었다. 이 탈중앙화는 작업증명 채굴이라는 혁신적 방법 덕분에 가능했다. 그러나 오직 정해진 소수만 참여할 수 있는 블록체인에선 작업증명이 작동하지 않는다”며 “그렇게 되면 남는 것은 신원이 확인된 사람들만 참석 가능한 공유 장부일 뿐이다. 이런 블록체인이 기존 데이터베이스보다 나을 것이 뭐가 있겠는가”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블록체인이 주목받는 여느 기술과 마찬가지로 기업의 마케팅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에스토니아의 블록체인 전자주민증이다. 에스토니아 정부는 2008년 블록체인을 정부 시스템에 도입했고 2012년부터는 보건, 형사, 법제, 사업자 등록 등 다양한 정보를 블록체인으로 저장하고 있다고 홍보해왔다. 2008년이면 비트코인이 등장하기도 전이고, 블록체인이 뭔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던 시기다. 핀테크 컨설턴트인 데이비드 버치는 “지난해 에스토니아 정부 최고정보책임자(CIO, 경제통신부 사무차장) 심 시쿠트를 만나 ‘에스토니아에 블록체인 주민증이 있다는 신화(myth)는 어디서 나온 거냐’고 물었다. 그는 ‘에스토니아의 정부 데이터를 보호하는 기술이 블록체인과 유사해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고 답하더라”고 말했다. 미국 IT전문지 더버지는 ‘에스토니아 블록체인 주민증’을 “에스토니아 정부에 IT 제품을 공급하는 업체의 마케팅 전술”이라고 평했다.

우리 회사에 블록체인이 필요할까?

여러 한계를 감안했을 때 블록체인은 아직 우리 삶을 획기적으로 바꿀 혁신적 기술이라 하기엔 어렵다. 기업이 겪는 보안과 생산성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줄 ‘요술 방망이’도 아니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블록체인이 기업이나 공공 조직에서 특정 서비스를 제공할 때 상황에 따라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도구라고 설명한다. 세계경제포럼(WEF) 산하기관인 4차산업혁명센터는 지난 4월 블록체인 도입 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는 자가진단 설문을 발표했다. 블록체인 도입을 고려하고 있는 경영자들은 이 설문에 포함된 11가지 문항에 답해보면 자사에 블록체인이 필요한지 알아볼 수 있다.

먼저 고려해야 할 사안은 이 사업에서 거래하는 당사자들의 관계다. 블록체인은 서로를 잘 모르거나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는 개인 간의 거래에 최적화된 시스템이다. 그런 경우 제3자인 중개인을 사이에 두고 거래를 처리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만약 중개인을 없애는 것이 사업상 아주 큰 이익을 가져다줄 경우엔 블록체인 도입을 고려해볼 수 있다. 만약 중개인 없이도 거래 당사자들이 서로를 잘 알고 있으며 신뢰할 수 있는 관계라면 블록체인은 필요 없다. 카를 뷔스트 스위스 취리히연방 공대 교수는 “블록체인은 서로를 믿지 않는 당사자들이 서로 정보를 교환하기를 원하면서도 제3자의 중개에 동의하지 않을 때만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블록체인으로 다루려는 제품 또는 정보의 성질도 확인해야 한다. WEF는 본질적으로 디지털 자산만 블록체인으로 관리할 수 있으며 “만약 해당 자산이 형태가 변하는 물질적 실체를 가지고 있다면 블록체인으로는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없다”고 밝혔다. 예를 들면 공급 과정에서 빵으로 바뀌게 될 밀을 블록체인으로 추적할 경우, 블록체인 시스템은 밀이 빵으로 변하는 과정을 관리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다음으로는 해당 디지털 자산에 대해 영구적이고 신뢰도 높은 기록을 생성할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WEF는 이 문제가 블록체인 도입 여부를 판가름하는데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블록체인은 일단 정보가 기록되면 이 정보가 바뀌지 않도록 보호하는 데는 탁월하지만, 애초에 잘못된 정보가 기입되는 것을 방지할 장치는 가지고 있지 않다. 게다가 한번 블록체인에 기록된 정보를 수정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블록체인 도입을 고려하는 업체는 해당 자산에 대해 신뢰도 높은 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지, 한번 생성된 정보를 수정할 필요가 없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WEF는 “일부 사람들은 블록체인이 세계적인 경제 불평등부터 스타트업의 자금 조달, 난민을 위한 신분증명서, 공급망 문제 해결, 부동산 중개인 없이 집을 사고팔기 등 온갖 문제에 해결책을 제공하리라고 믿는다”며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고 오해를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이 기술에 대해 균형 잡힌 관점으로 의사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WEF는 “블록체인은 아직 초기 단계기 때문에 비용, 보안, 규제 등 수반되는 위험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섣불리 도입할 경우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며 블록체인 도입에 앞서 이 기술이 정말 필요한지 숙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용대 교수는 “기본적으로 퍼블릭 블록체인은 투명성이 필요하거나 검열을 피해야 하는 분야에서 응용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넘어서 일반적인 분야에서까지 응용을 다루기엔 여러 가지 성능상, 보안상의 문제가 많다”고 밝혔다.

- 이기준 기자 lee.kijun@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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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호 (2018.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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