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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타깃으로 떠오른 대기업들 

 

김영문 기자
해묵은 논란인 줄 알았는데, 재벌이 시스템통합(SI) 업체를 이용한 일감 몰아주기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 김상조 공정위 위원장이 재벌의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 ‘SI 업체’를 정조준하면서 논란은 더 뜨거워졌다. 상당수 총수 일가가 SI 업체 지분을 정리했지만 그룹으로 쏠린 ‘내부거래’를 향한 공정위의 눈초리는 여전히 매섭다.

▎대기업집단 SI 계열사 대부분은 이미 이 규정에 저촉되지 않도록 지배구조를 개편했다. 하지만 여전히 매출 대부분을 내부거래에 의존하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하 공정위)의 말이 발단이었다. 6월 14일 취임 1주년 기자 간담회에서 그는 “총수 일가가 대기업의 핵심 사업과 관계없는 회사 지분을 보유한 뒤 일감을 몰아줘 부당이익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지목한 업종은 ▶시스템통합(이하 SI) ▶물류 ▶부동산관리 ▶광고회사 등 총 네 가지다. 이 중에서도 총수 일가 지분이 아직도 많은 SI 업체에 이목이 쏠렸다. 이어 그는 “(지분 매각을) 법으로 강제할 수는 없지만(따르지 않을 경우) 사익편취, 부당 지원 혐의가 짙은 기업부터 공정위 조사와 제재 대상이 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SI 업체가 뭘까. SI 업체는 시스템 개발, 유지보수, 정보기술(IT) 컨설팅 등의 업무를 주로 한다. 특히 그룹 내부에서 벌이는 IT 프로젝트를 도맡으며, 자연스레 일감 몰아주기의 중심이 됐다.

8~9년 전에는 그 정도가 심했다. SI 업체는 대기업 오너들이 2~3세에게 기업을 ‘변칙’ 상속하는 수단이 됐다. 특히 SI 업계 ‘빅3’로 통하는 삼성·LG·SK그룹 외에도 현대자동차·롯데·한화·현대·동부그룹 등이 이런 식으로 SI 자회사를 키웠다. 2011년 현대차그룹의 현대오토에버는 정보보안 분야에 뛰어든 지 2년 만에 그룹 내 전산시스템 구축과 운영, 보안 업무를 총괄했다. 그 과정에서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 보안 사고의 책임 회사로 지목되는 등 많은 무리수로 지탄을 받았다. 이러다 보니 매출도 2001년 485억원에서 2009년 5669억 원으로 10배 가까이 껑충 뛰었다. 롯데그룹의 자회사 롯데정보통신, 한화그룹의 한화S&C, 현대그룹의 현대유엔아이(현 현대무벡스), 동부그룹의 자회사 동부씨앤아이, 태광그룹의 티시스 등도 비슷한 방식으로 일감 몰아주기에 나섰다.

이유는 간단하다. 계열사의 IT 전산시스템을 구축한다는 명분으로 계약을 하면 기업을 쉽게 키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SI 기업이 전산망을 통합하면서 그룹 상황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일종의 감시카메라(CCTV) 같은 역할을 해줬기 때문이다.


그러다 박근혜 정권에선 공정위가 “기업 핵심 정보에 접근이 가능한 전사적 자원관리(ERP) 개발·관리 등 SI 업무는 계열사와 거래하더라도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면서 SI 업체는 ‘부당 내부거래’ 딱지를 떼는 듯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취임하면서 SI 업체는 사익편취의 ‘핵’으로 다시금 떠올랐다.

김 위원장이 정조준한 곳은 상위 30개 그룹 내 SI 업체 중 비상장이면서 내부거래 비중이 60%가 넘는 업체다. 해당 기업의 지분을 총수 일가가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경쟁 없는 성장은 곧 ‘총수 일가의 부를 대물림하는 수단’이나 다름없다는 게 공정위의 완고한 입장이다.

실제로 삼성그룹의 SI 자회사인 삼성SDS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총수 일가가 지분 17%를,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은 현대차그룹 SI 자회사 현대오토에버의 지분 19.46%를 소유하고 있다.

한화그룹 한화S&C의 경우, H솔루션을 통해 간접지배의 끈을 놓지 않았고, 롯데정보통신도 총수 일가 지분은 없어도 그룹에서 주는 일감이 대부분이다.

대기업도 할 말은 있다. 익명을 원한 한 대기업 계열 SI 업체 관계자는 “대기업 업무 시스템에 장애나 보안 사고가 생기면 그룹 전체가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기술이나 인적 자원이 부족한 중소기업에 위탁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며 볼멘소리로 말했다.

삼성SDS의 주가하락 논란 등 반발이 거세지자 김 위원장도 한 발 물러섰다. 그는 6월 19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분명 비상장 계열사라고 했는데 어느 상장회사 주가가 폭락하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있다”고 말했다. 이로써 제재 대상은 ‘비상장·비주력’으로 뚜렷해졌다.

현재 공정거래법은 총수 일가의 지분이 상장사의 경우 30%, 비상장사의 경우 20% 이상이면서 내부거래 규모가 200억원 이상이거나 매출의 12% 이상이면 규제하도록 정하고 있다. 공정위는 이를 더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

201809호 (2018.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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