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좋은 밴드가 얼마나 많은가. 방탄소년단의 실력으로 초대박급 성공을 얼마나 설명할 수 있을까? “아미(ARMY, 방탄 팬클럽)가 저희에게 날개를 달아줬기 때문이에요.” 겸손한 체하는 말은 아닌 듯하다.
▎방탄소년단(BTS) 공연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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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ABC 방송 [굿모닝 아메리카]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방탄소년단(BTS, 방탄)을 세계 최고의 보이 밴드라고 소개했다. 과장이 아니다. 월드 투어 중인 방탄이 가는 곳마다 난리가 난다. 10월 6일 뉴욕 시티 필드에서도 콘서트가 열리기 일주일 전부터 공연장 앞에 텐트를 치고 노숙하는 팬의 행렬이 이어졌다. 길에서 먹고 자던 팬 머리 위로 하루는 천둥 번개와 함께 폭우가 쏟아졌다. “텐트가 날아가고 다들 비명을 질렀어요. 하지만 앞자리에서 공연을 봐야 한다는 일념으로 자리를 지켰죠.” 한 10대 미국 소녀는 방송 인터뷰에서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지구 곳곳의 팬들이 방탄의 신곡 ‘아이돌’의 안무를 따라 하는 영상을 ‘아이돌 챌린지’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올렸다. 어느 나라 팬들이 이 SNS 놀이판에 동참했는지 궁금해서 살펴보니, 전 세계적 현상이다.체계적인 훈련과 탄탄한 기획의 상징인 엑소, 아시아 보이 밴드의 지존인 빅뱅도 못 한 일을 방탄소년단이 해냈다. 어떻게 이 수준의 성공이 가능했을까? 궁금해서 주변의 10대 소녀들에게 물었다. “사람들이 방탄을 왜 좋아하는 거니?” 입을 모아 외치는 대답은 ‘출중한 실력’이었다. “격렬하게 춤추면서 라이브로 노래하는 모습 보셨나요? 그런 퍼포먼스를 할 수 있는 아이돌은 별로 없어요.” 데뷔 초부터 기본기 탄탄한 그룹으로 소문났던 건 사실이다. 7명 멤버 전원이 자기 몫을 톡톡히 한다.
팬과 양방향 소통에 에너지 집중한 BTS
▎팬이 공연 모습을 스마트폰에 담고 있다. 이 콘텐트는 SNS에서 공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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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이 세상에 좋은 밴드가 얼마나 많은가. 방탄의 실력으로 초대박급 성공을 얼마나 설명할 수 있을까? 프린스턴 대학의 사회학자 매슈 살가닉은 음악성이 밴드의 상업적 성공을 예측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인공적인 온라인 음원 시장을 만들었다. 48개 새 음원을 가수 이름표를 뗀 채 경쟁시켰다. 온라인 시장을 찾은 만 명이 무명 밴드의 신곡 48개 중에서 각자 좋아하는 노래를 골라 다운로드했다. 유일하게 주어진 정보는 각 음원의 다운로드 현황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노래를 주로 듣는지 슬쩍 알려준 거다. 유명 스타의 노래라서 무조건 내려받는 가수 후광 효과는 제거하되 인기 순위 정보가 구매에 주는 영향을 파악하고자 한 것이다.실험 결과 음악성은 성공을 담보하지 않았다. 음악적 수준이 동일하게 높은 노래 중에서 한쪽은 대박, 다른 쪽은 쪽박으로 나타났다. 형편없는 노래가 큰 인기를 끄는 경우는 드물었으니 밴드의 실력과 성공이 완전히 무관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음악성이 높은 한 밴드가 초대박을 칠 때, 비슷한 수준의 다른 밴드는 폭삭 망하는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났다. “망할 작품은 알아봐도 대박 날 작품은 알 수가 없어요.” 방송, 영화 관계자들이 오랜 경험으로 아는 이 진리를 대규모 온라인 실험에서 확인한 것이다.메가 히트는 무작위적 행운에 가깝다. 역사에 기록된 레전드급 밴드의 초기 성공도 마찬가지다. 에픽하이의 타블로는 노래 ‘강남스타일’ 신드롬이 한창일 때 싸이와 함께 있었다. 최근 케이팝을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그는 자신이 관찰한 바를 이렇게 전했다. “자기 노래에 폭발적 반응이 이어지는 기간 내내 싸이는 혼란스러워했어요. 지금도 이해하지 못해요.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행운의 주인공도 얼떨떨할 뿐이다.실력으로 성공을 예측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연구에 따르면 다운로드 현황과 같은 인기 순위 정보, 즉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주범이다. 거꾸로 말하면, 나 홀로 깜깜이 구매를 할 때 이 예측불가능성은 사라진다. 어떤 의견도 듣지 않은 채, 혼자 노래를 들어보고 마음에 들면 음원을 구매한다. 아주 심플하다. 많은 사람이 노래를 좋아할수록 실력 있는 밴드라고 가정한다면 이 조건에서는 실력만큼 성공하는 세상이 구현된다.그러나 현실에선 ‘나 홀로 선택’이 불가능하다. 음악 차트의 순위, 미디어를 통한 홍보, 인터넷 영상 조회수, SNS의 ‘좋아요’와 ‘리트윗’ 횟수 등 모두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다. “내가 좋아하는 케이팝 밴드야. 노래 어때?” 소셜미디어로 소통하는 밀레니얼 세대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정보의 바다 한가운데서 문화 상품을 소비한다.예측 불가한 이 역동을 통해 슈퍼스타가 탄생하는데 이번 행운의 주인공은 방탄이다. 고밀도 초연결 사회에서 실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만들어내는 역동성이다. 이 지점에 방탄의 특별함이 있다. 그들은 서로 전달하고 전달받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통해 팬들의 마음에 스며들었다. 소셜미디어 입소문의 잔잔한 물결이 임계점을 넘어 거대한 파도가 되었고 전 세계 밀레니얼의 연결망을 휘저었다. 팬과 소통하는 데 에너지를 집중한 선택이 슈퍼 럭키 잭팟을 터트린 거다.최근 분석 기사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방탄의 성공 요인은 SNS 전략이다. 그렇다면 다른 신인 밴드가 SNS 활동을 열심히 하면 방탄의 성공을 재현할 수 있을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방탄이 성실하게 뿌려놓은 소셜미디어의 작은 씨앗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커다란 얼굴을 가진 화려한 꽃들로 만개했는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꽃씨는 방탄이 뿌렸지만 온라인에 억만 송이 꽃을 가득 피운 것은 예측할 수 없는 연결망의 역동이다. 대박 스타는 하늘이 내는 것이다.
‘예측 불가’를 ‘예측 가능’으로 바꾼 인지도방탄이 칭찬받아 마땅한 점은 팬과 교류하기 위해 무던히 애쓴 진정성이다. 그들은 일원화된 소통 채널에서 자기들 내면의 소리를 매일 공유했다. 멤버 7인은 데뷔 전부터 하나의 통합 트위터 계정을 사용해왔다. 기획사가 SNS를 관리하는 다른 아이돌 그룹과 달리, 팬과 양방향 소통에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방식으로 관여했다.방탄의 미래는 밝다. 이제부터 게임의 양상은 ‘예측 불가’에서 ‘예측 가능’으로 전환된다. 방탄은 이미 원 히트 원더(one hit wonder, 한 곡으로 큰 인기를 누린 뒤 사라진 가수)’를 넘어섰다. 확보된 인지도는 큰 힘을 발휘할 것이다. 배후에는 자기 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 현상이 있다. “방탄 인기 최고야! 이번 노래도 좋을 거야.” 이런 기대를 가진 사람은 노래를 들어보고 구매하고 소개할 가능성이 크고 이는 실제 음원 매출 증가로 이어진다. 예언이 스스로 자기를 실현하는 거다.살가닉은 후속 연구에서 이 현상을 확인했다. 몇천 명에게 48개 새 노래를 들려준 뒤 1위부터 48위까지 선호도를 파악했다. 그리고 새 고객들에게 선호도를 거꾸로 뒤집은 가짜 순위를 제공했다. 관전 포인트는 48위로 제시된 노래(실제 1위)가 시간이 흘러 권좌를 되찾을지 여부다. 결과는 예스. 그러나 음악성만으로 일궈낸 짜릿한 차트 역주행은 이게 다였다. 47위로 제시된 실력파 밴드의 노래(실제 2위)는 맥을 못 추었고 실제론 거의 꼴찌였던 가짜 2위는 승승장구했다.신곡을 발표할 때마다 1위에 오르는 인기 밴드는 착각한다. 탁월한 음악성 덕분에 성공을 거듭하는 거라고. 요즘 유행하는 ‘리액션 비디오’는 특정 영상을 보면서 반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찍은 것이다. 누군가 방탄의 ‘아이돌’ 뮤직 비디오를 처음 본 뉴질랜드 친구들의 리액션을 담아 유튜브에 올렸다. “춤은 잘 추는군.”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방탄을 처음 접한 사람들의 표정은 종종 이렇다. 방탄이 이름표를 떼고 무명 밴드로 돌아가 경쟁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방탄은 성공 비결을 묻는 질문에 줄기차게 한 가지로 답한다. “아미(ARMY, 방탄 팬클럽)가 저희에게 날개를 달아줬기 때문이에요. 다른 이유는 없어요.” 겸손한 체하는 말은 아닌 듯하다. 소년들은 이미 스타가 어떻게 탄생하고 지위를 유지하는지, 그 역동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 역동을 기억한다면 오랫동안 초심을 잃지 않을 것이다. 실력과 겸손함을 갖춘 방탄소년단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팬 곁에 오래 머물기를 기원한다.- 조지선 연세대 인간행동연구소 전문연구원(심리학 박사)
※ 조지선 전문연구원은…스탠퍼드대에서 통계학(석사), 연세대에서 심리학(박사)을 전공했다. SK텔레콤 매니저, 삼성전자 책임연구원, 타임워너 수석 QA 엔지니어, 넷스케이프 커뮤니케이션 QA 엔지니어를 역임했다. 연세대에서 사회심리학, 인간행동과 사회적 뇌, 사회와 인간행동을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