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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남의 TRAVEL & CULTURE] 이집트 카이로(Cairo) 

현대 이집트를 상징하는 나일강 변의 카이로 탑 

고대 이집트 문명을 낳은 나일강은 아프리카 대륙 깊숙한 오지에서 발원하여 남부 이집트의 고지대를 거쳐 평지를 가로지른 다음 카이로를 거쳐 북부의 비옥한 삼각주(델타, Delta) 지역을 지나 지중해로 흘러 들어간다. 이집트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는 단연 기자의 피라미드다. 그렇다면 그다음으로 유명한 랜드마크는 무엇일까? 이곳 사람 상당수는 카이로 탑을 꼽는다.

▎이집트 문명을 낳은 나일강. 오른 쪽에 카이로 탑이 솟아 있다.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는 나일강이 삼각주로 흘러가는 길목에 있다. 우리 귀에 익숙한 ‘카이로(Cairo)’는 현지 아랍어 지명으로는 알카히라(Al-Qãhira)이다. 서울 시가지를 통과하는 한강에 여의도가 있듯 카이로 시가지를 통과하는 나일강에는 게지라섬이 있다. 이 섬의 남쪽 지역에 높은 탑이 있는데 현지에서는 이것을 보르그 알카히라(Borg Al-Qãhira)라고 부른다. ‘카이로탑’이라는 뜻이다. 날씨가 좋은 날 이 탑에 오르면 서쪽으로는 멀리 고대 이집트 파라오 시대를 대표하는 피라미드가 보이고, 동쪽으로는 이슬람 시대를 대표하는 카이로 성채가 눈길을 사로잡는다(이집트는 640년에 이슬람화됐다).

피라미드와 카이로 성채 사이


▎19세기 중엽에 세워진 무함마드 알리 모스크가 돋보이는 카이로 성채.

▎카이로 외곽 기자에 있는 파라오 쿠푸의 피라미드.
고대 이집트는 지리적으로 넓고 비옥한 삼각주가 있는 하부 이집트와 좁고 그리 비옥하지 못한 상부 이집트로 나뉘는데 최초의 통일은 기원전 3000년경에 이루어졌다. 고대 이집트를 대표하는 건축물은 단연 피라미드다. 피라미드는 신격화된 파라오가 영생불멸하는 모습을 상징화한 것으로 어떻게 보면 인간이 신을 향해 하늘로 올라가거나 신이 인간을 향해 지상으로 내려오는 듯한 형상이다.

카이로 외곽 도시 기자의 시가지 서쪽 사막에는 피라미드 세 개가 있는데 그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은 기원전 2589년부터 2566년까지 이집트를 통치했던 파라오 쿠푸의 피라미드로 대(大)피라미드로 불린다. 이 피라미드는 2.5톤 직육면체 돌덩어리를 51도의 경사각으로 정교하게 230만 개나 쌓아 올린 높이 139m(원래는 146m) 밑변 230m의 고대 최대 건축물이다.

그런가 하면 게지라섬에서 동쪽으로 약 3㎞ 지점에는 마치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처럼 모카탐 언덕이 솟아 있다. 이 언덕 위에 세워진 카이로 성채는 카이로에서 가장 매력적인 장소 중 하나로 전 세계에서 온 수많은 관광객의 발길을 끌어들인다. 19세기 중엽에 세운 무함마드 알리의 모스크가 돋보이는 이 성채의 기원은 12세기 십자군 전쟁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방에 ‘살라딘’으로 알려진 살라 알 딘(Salah al-Din, 1137~1193)이 십자군 침공으로부터 카이로 지역을 방어하기 위해 모카탐 언덕을 요새화했다. 그 후 이 요새는 세월이 흐르면서 여러 이슬람 사원과 궁전 등이 세워진 우아한 ‘작은 도시’의 모습으로 발전했는데, 19세기까지 약 600년 동안 이집트의 정치 및 종교 중심지 역할을 했다.

이처럼 고대 파라오 시대의 랜드마크 피라미드와 이슬람 시대의 랜드마크 성채 사이에 세워진 카이로 탑은 나일강에서 솟아 나와 파피루스 줄기처럼 날렵하게 하늘로 치솟아 오른 기둥 같은 형태다. 이집트 사람 상당수는 이 탑을 피라미드 다음으로 중요한 랜드마크로 손꼽는다.


▎나일강에 있는 게지라섬. 이 섬의 남쪽 지역(왼쪽)에 카이로 탑이 솟아 있다.
파피루스 줄기처럼 날렵한 카이로 탑


▎카이로 탑 입구. 엘리베이터가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줄 서서 오래 기다려야 한다.
이 탑의 외장에 사용된 석재는 아스완의 화강암이다. 즉 고대 이집트인들이 파라오의 신전을 지을 때 쓰던 돌이다. 이 탑은 여러 개 줄기가 서로 얽혀 나선형으로 꼬여 올라가며 다이아몬드 형태의 기하학적인 이슬람 문양을 이루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가벼우면서도 간결한 인상을 준다. 또 줄기 끝부분은 밖으로 살짝 벌어져 막 피어나는 연꽃잎을 암시하는 듯하다. 고대 이집트의 유물을 보면 상부 이집트와 하부 이집트의 상징은 각각 연꽃과 파피루스였으며, 통일된 이집트 왕국의 상징은 연꽃과 파피루스 줄기가 서로 얽힌 다발 형태로 나타난다. 이런 사실을 알고 나면 이 탑의 디자인 의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탑이 완공된 것이 1961년이니 연륜으로 비교하자면 4600년 전에 세워진 피라미드와 전혀 상대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피라미드보다 43m가 더 높은 187m로 북아프리카에서는 카이로 텔레비전 송전탑을 제외하고는 가장 높은 구조물이다. 1971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힐브로우 타워가 세워지기 전까지 10년 동안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최고의 높이를 자랑했다. 당시 이렇게 높은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을 세우기 위해서는 건축적으로나 기술적으로 또 정치적으로도 과감한 도전이 필요했다.

이 탑의 건립 기원은 195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집트 정부는 나움 셰비브(Naoum Shebib)에게 설계를 의뢰했다. 그는 이집트에서 가장 뛰어난 건축가이자 구조 엔지니어로 카이로에서 고층빌딩을 설계해본 유일한 인물이었다. 공사는 1954년에 시작됐고 수에즈 전쟁 중에는 거의 3년 동안 중단되었다가 1956년에 재개해 1959년에 종결됐다. 공식 오프닝은 나세르 대통령(1918~1970)이 참석한 가운데 1961년 4월 11일에 있었다. 범아랍주의(Pan-Arabism)의 기수였던 나세르 대통령은 사회주의, 세속주의, 민족주의 성향의 정책으로 1950~60년대에 아랍 세계로부터 많은 지지를 얻었던, 현대 이집트의 파라오와 같은 인물이었다.


▎이집트인의 자존심과 현대 이집트를 상징하는 카이로 탑.
현대 이집트를 상징하는 탑


▎카이로 탑 정상부에서 내려다본 카이로 야경.
이 탑은 모두 56층으로 전망대와 송신탑 기능을 갖추고 있다. 전망대 아래에 있는 카페-레스토랑은 아주 느린 속도로 360도 회전하는데 시간은 70분이 걸린다. 메인 코스를 마치고 디저트를 맛볼 때쯤 되면 완전히 한 바퀴 돈 셈이 될 것이다. 이곳에서 나세르 대통령도 가족과 함께 저녁 식사를 즐겼다고 한다. 사실 방명록에는 이곳에 다녀간 여러 대통령과 거물 정치인의 사인이 있고 벽면에도 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곳을 정치가들만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미국의 유명한 여배우 캐서린 헵번(1907~2003)은 이 탑을 가장 먼저 찾았던 할리우드 스타다. 그런데 당시 이집트는 소련에 우호적이었지만 미국과의 관계는 껄끄러웠다. 나세르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미국 정부는 나세르의 심복을 매수해 그에게 당시 기준으로 엄청난 액수인 600만 달러를 몰래 건넸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은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 미국이 자신을 매수하려고 했다는 사실에 나세르가 격분했던 것이다. 당시 이집트 정부는 재정적으로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나세르는 5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이집트가 200여 년밖에 안되는 짧은 역사를 가진 미국 입김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것을 미국 납세자들에게 확실하게 보여주기로 작정이라도 한 듯 이 돈으로 피라미드보다 더 높은 현대 이집트를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탑을 세우겠다고 공표했다. 그러고 보니 카이로 탑의 형태는 미국을 향해 마치 가운뎃손가락을 엄청난 크기로 확대하여 꼿꼿하게 세운 것 같기도 하다(가운뎃손가락을 세우는 것은 욕의 표시다).


▎카이로 탑 정상부에 있는 레스토랑.
카이로 탑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밤 1시까지인데 이 탑에 오르는 시간은 해 질 무렵이 좋다. 석양에 물든 카이로와 해 진 후 수백만 개 불빛으로 빛나는 카이로 시가지가 장관이다. 또 여유를 갖고 카페-레스토랑에 앉아 이집트의 유명한 맥주 스텔라(Stella)를 들이키면서 나일강을 내려다보며 고대 이집트 역사에 한번 빠져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맥주의 기원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고대 이집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집트에서는 피라미드를 건설할 때 갈증 해소와 영양 공급을 위해 일꾼들에게 맥주를 하루에 4~5리터 배급했다고 하니 말이다.

- 글·사진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 정태남은…이탈리아 공인건축사 정태남은 서울대 졸업 후 이탈리아 정부장학생으로 유학, 로마대학교에서 건축부문 학위를 받았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건축 외에 음악· 미술·언어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30년 이상 로마에서 지낸 필자는 이탈리아의 고건축복원전문 건축가들과 협력하면서 역사에 깊이 빠지게 되었고, 유럽의 역사와 문화 전반에 심취하게 되었다.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대기업·대학·미술관·문화원·방송 등에서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역사, 건축, 미술, 클래식 음악 등에 대해 강연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 『건축으로 만나는 1000 년 로마』,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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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호 (2018.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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