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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년후견인 제도의 이용 

 

최병선 변호사
2013년 성년후견인제도가 도입됐다. 정신적인 제약이 있어 자신의 재산관리와 신상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 없을 때 성년후견인을 신청해 보호받을 수 있다. 제도 취지는 이랬다. 하지만 성년후견인제도를 활용해 효도한다며 간병을 이유로 와서 재산을 팔아먹고, 뒤통수를 치는 사례도 있다.

한 상담고객 얘기다. 이 고객은 혼수상태에 빠진 어머니를 모신 아들이다. 외국에 살기에 자주 찾아뵙지는 못한다. 평상시 건강하셨던 어머니는 불의의 사고로 의식을 잃고 병상에 계신다. 아들 입장에선 여동생도 문제다. 상황이 이런데 여동생은 낭비벽이 있는 남자친구와 살며 어머니가 계신 곳과 가깝다며 생활비를 가져갔다. 어머니가 혼수상태에 빠지자 어머니 통장에서 생활비를 꺼내 쓸 뿐 돌보지 않았다.

그 돈은 수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어머니와 평생 모은 재산이다. 아들은 여동생이 어머니의 재산을 낭비하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여동생은 전혀 연락을 받지 않았고, 재산을 합리적으로 쓰자는 어떤 합의에도 나서지 않았다. 아들이 모친의 재산을 제대로 지켜낼 방법이 있을까.

필자는 이렇게 솔루션을 제안했다. 물론 아직 모친이 살아 계시기에 상속권을 가진 아들이 재산을 온전히 보전할 수 있는 방법은 잘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모친이 의사무능력자임을 전제하면 성년후견인제도를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장 성년후견인을 선임하자고 나섰다. 아들도 외국에 거주하기에 여동생과 감정싸움을 하기보다는 법적인 절차를 밟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여동생이 변호사를 선임해 대응한다면 더 냉철하고 엄격한 합의가 이뤄질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성년후견인제란 질병, 장애, 노령 등으로 스스로 의사 결정과 판단이 어려운 정신적 제약을 가진 피성년후견인을 위하여 친족 또는 제3자를 후견인으로 선임하는 제도다. 그 후견인은 법률행위, 재산관리, 사회복지 서비스 이용, 신상보호, 기타 사회생활에 긴요한 사무를 처리할 수 있고, 인권옹호와 자기결정권 존중, 잔존능력을 활용해 무능력자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다.

피성년후견인(위 사례에선 모친)의 주소지 관할 가정법원에 본인, 배우자나 4촌 이내의 친족, 기타 일정한 청구권자가 청구하여 심판을 거치면 성년후견인을 선임할 수 있다. 일용품 구입이나 식당 이용 등 일상적 법률행위와 가정법원이 정하는 행위를 제외하고는 성년 후견인에게 취소권을 줘 피성년후견인이 한 비정상적인 법률행위의 효력이 소멸하게 만들 수 있다. 성년후견인으로 법인이 선임될 수도 있는데, 국내 L모 그룹 회장도 이 방식을 택했다.

법률행위가 아닌 피성년후견인의 신상에 관하여는 상태가 허락하는 범위에서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다. 일정한 경우 성년후견인이 피성년후견인의 신상을 결정할 수 있지만 가정법원의 사전 허가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 ▲격리, 의료행위의 직접적인 결과로 사망 또는 상당한 장애를 입을 위험이 있을 경우 ▲피성년후견인이 거주하고 있는 건물 또는 그 대지에 대하여 매도, 임대, 전세권 설정, 저당권 설정, 임대차계약 해지, 전세권 소멸 ▲그 밖에 이에 준하는 행위를 하는 경우 등이다. 성년후견 개시의 원인이 소멸하면 본인, 배우자 4촌 이내의 친족, 기타 일정한 청구권자가 후견 종료를 청구할 수 있다.

이 사례는 어떻게 진행됐을까. 성년후견 개시 청구를 하자 딸은 변호사를 선임해 아주 강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성년후견 개시를 하겠다는 아들이 재산을 빼돌리려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서 누그러지긴 했다. 그러던 와중에 모친이 유명을 달리했다. 성년후견 개시 신청은 의미를 잃게 된 셈이다. 바로 상속 절차로 넘어갔고, 아들·딸 모두 자신의 지분을 받고 다툼은 끝났다.

성년후견 개시 청구가 자식들 사이에 벌어진 갈등의 골을 봉합할 수 있었을까. 이런 절차 없이 자식들이 다투지 않았으면 가장 좋았을 일이다. 하지만 또 성년후견 개시 청구를 하지 않았다면 딸은 계속해서 모친의 재산을 낭비했을 것이고, 남매 관계가 더 멀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성년후견인제도가 본래 취지와 다르게 이용되는 경우도 종종 일어난다. 얼마 전 S회사의 주주 일가와 관련해서 최대주주의 성년후견인이 최대주주의 주주권을 행사하면서 그 아들을 회사의 대표이사에서 교체하려고 했다. 물론 피성년 후견인마다 상황이 다르기에 성년후견인의 권한도 사안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다만 법원이 포괄적 대리권을 인정했고, 주주권도 대리할 수 있는 것으로 보면서 대표이사를 교체한 것이다. 성년후견인제도가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본래 취지대로 의사 무능력자를 보호하는 데 쓰이길 바란다.

- 최병선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201901호 (2018.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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