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부러워하는 한국 메모리 기술
|
美 최고 권위 학회 “반도체 논문 절반 中서 나와”중국 현지 분위기는 어떤가?실제 정부가 엄청난 지원을 해주는 게 내 눈에도 보일 정도다. 칭화대 한 학생과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학과별 커트라인을 보면 전기전자가 가장 들어가기 어렵다고 하더라. 1980년대 한국에서 뜨거웠던 공대 입시 열기를 연상케 했다. 한국 반도체 업체 리더들도 1980년대 공대 수재들이다. 지금 중국이 딱 그렇다. 지식 게임으로 승부가 갈리는 반도체업계에선 이 부분이 가장 인상 깊었다.중국 반도체 기술 수준을 두고 갑론을박이 많다.지금도 상당한 수준이지만, 한국을 쫓는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다. 우리가 간 길을 쫓고 있어서다. 한국 제품이 새로 나오면 세밀하게 뜯어보고 테스트한다. 목표가 보이기에 쫓는 속도는 더 빨라질 수 있다. 게다가 중국은 시작부터 여러 경우의 수를 두고 자본과 인력을 함께 투입한다. 과거 한국이 10년 걸린 일을 3년 만에 해낼 수 있는 이유다. 그러니 한국은 자원(자본+사람)이 적으니 시간을 축적해 기술을 쌓았고, 중국은 자원을 쌓아 시간을 번다는 얘기가 나온다.한국은 결국 중국에 밀릴까?두 나라 모두 변수가 있다. 일단 한국은 메모리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생산수율을 자랑한다. 수십 년간 미세한 오류를 잡아가며 완벽에 가까운 노력을 기울인 결과다. 막대한 자본과 인력만으론 어렵다. 메모리 분야만 보면 한국 두 회사가 중국보다 기술 면에서 10년 정도 앞서 있다. 하지만 한국도 지금 당장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하지 않으면 장담할 수 없다.중국의 경우 두 자릿수 시장점유율 확보에 집중한다. 10%대에 진입하는 순간부터 정부 지원에 매달리지 않고 사업을 펼칠 수 있다. 중국 업계가 더 독하게 마음먹는다면 상황은 복잡해질 수 있다. 하지만 중국도 10%대 점유율에 안주하면 성장 동력을 잃고 정부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반도체 성장세를 유지하려면 뭐부터 해야 하나?정부가 컨트롤타워를 만들어 ‘신(新)격차’ 전략을 주도해야 한다. 지금까지 삼성과 SK는 남들이 아예 꿈도 못 꿀 ‘초(超)격차’ 전략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약간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기보단 응용하며 서서히 격차를 벌리는 신 격차 전략으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야 한다. 당장 한국의 반도체 산업 구조를 잘 이해하고 세계정세를 간파하는 전문가가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반도체는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기간산업이다. 미국이 세계 패권국가로 올라선 이유 중 하나도 IT 기술 표준을 마련해 컴퓨팅 시장을 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단단한 하드웨어를 쥐고 있지만 새로운 생각이 필요한 대기업, 기반은 없지만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많은 학계·중소기업이 이미 존재한다. 이들을 적절히 엮어주면 한국은 또다시 세계 최고 반열에 올라설 수 있다. 한 가지 더 있다. 지금은 중국과의 경쟁만 부각되지만, 협력을 고민해야 한다. 산업적으론 다소 민감한 부분이 있다면, 대학을 중심으로 공동 연구개발이라도 나설 필요는 있다. 중국의 반도체 육성은 앞으로 계속될 것이고, 완전히 따돌릴 수 없다면 손을 잡는 것도 전략이다.한국에 가장 유망한 분야가 있다면?‘뉴로모픽 컴퓨팅(neuromorphic computing)’ 연구 분야다. 이 기술은 인간의 뇌를 모방해 방대한 정보를 기억하고 처리하는 기술이다. 세계 최고의 메모리 기술을 기반으로 인공지능 기술을 펼칠 기회다. 이건 미국이 가진 IT 기술 표준과도 상관없다. 열린 시장이다.물론 현실은 아쉽다. 당장 한국 내에선 ‘세계 최고’보다는 구글을 따라잡자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어렵다는 소리다. 하지만 왕위(汪玉) 칭화대 교수는 미국 반도체 기업 자일링스(Xilinx)에 행렬가속기 기술을 이전했다. 쉽게 말해 인공지능이 굴러가는 딥러닝 소프트웨어의 핵심 기술을 콧대 높은 미국이 중국에서 사 왔다는 얘기다.반도체공동연구소가 생긴 이유도 이 때문인가?맞다. 누가 나서주길 기다릴 상황이 아니다. 반도체는 인재가 필요한 산업이다. 그래서 반도체 관련 대학생과 대학원생, 기업체 직원을 대상으로 140여 명 정원으로 2주간 반도체 기본 공정교육을 진행한다. 지금은 기업이 자동화해보지 못했던 반도체 웨이퍼도 직접 다 만져본다. 반응은 뜨거웠다. 한 번에 1000명씩 몰리는 높은 경쟁률 탓에 학교 서버가 다운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배출한 교육생만 1만3000여 명에 이른다. 비영리여서 현행 교육비로는 사실 시설 유지도 쉽지 않다. 연구소 클린 룸도 좁고, 각종 공정 장비에도 30년 세월이 묻어난다. 배정된 예산도 많지 않아 시간 나면 기업에 세일즈 아닌 세일즈를 나간다. ‘직원을 교육시켜주겠다. 대신 연구소에 후원해달라’고 수없이 설득했다.이 교수는 인터뷰 내내 근심을 털어놨다. 특정 누군가의 역할을 강조하지도 않았다. 모두가 한뜻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 반도체 기술을 한 단계 진화시켜야 할 때를 맞이했는데 맨투맨으로 중국이나 거래 시장을 상대하기란 불가능하다”며 “한국은 정부·학계·기업이 머리를 맞대고 치밀한 전략으로 시스템을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승산이 있다는 얘기다. 이종호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은 ‘융합, 지식, 창의’ 3가지 키워드를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소장 수당이 월 55만원입니다. 돈을 벌자고 이 자리에서 기업에 세일즈를 다니는 게 아닙니다. 다 한국 반도체업계를 짊어질 후학을 위해서입니다. 저도 그랬고 이 분야 종사자 모두가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반도체를 세계 최고로 만들겠다며 뜬 눈으로 지새며 청춘을 바쳤습니다. 지금 젊은이들에게 시대적 사고를 강요하자는 게 아닙니다. 세계 최고란 자리는 얻기도, 지키기도 어려운 자리입니다. 정부·학계·기업 모두가 힘을 합칠 때입니다.”-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사진 김현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