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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빠진 기업 ‘베스트 뮤지엄'(3)] 아모레퍼시픽그룹-아모레퍼시픽미술관 

아버지부터 이어온 컬렉션의 정수 

박지현 기자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에 설치됐던 ‘Blue Sun.’ /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제공
“가업을 이어 경영인이 되지 않았다면 미술 평론가가 됐을 겁니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이 평소 즐겨 하는 말이다. 그는 2015년 아트뉴스가 선정한 ‘세계 200대 컬렉터’로 꼽힌 미술 애호가다. 대표 소장품으로 ‘고려 수월관음도’와 ‘백자 달항아리’가 있다. 2017년 용산에 지은 아모레퍼시픽그룹 세계본사 신사옥도 달항아리를 형상화한 모양이다.

개인 취향은 기업의 방향키가 됐다. ‘한국의 미(美)’에서 출발했다. 서 회장은 ‘화장품은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문화 상품’이라는 철학을 예술 마케팅에 접목했다. 한방화장품 브랜드 ‘설화수’로 동양미를 강조해 [설화 문화전]을 10년 가까이 열며 전통문화 장인들을 후원하는가 하면, 2005년 일본에선 [한국 여성의 우아함과 아름다움] 전을 개최했다. 2008년엔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의 한국실과 여성관 신축을 위해 30만 달러를 기부했다. 한국 현대미술 작품 구입 자금만 매년 20만 달러씩 지원한다.

지난해 서울 용산에 있는 그룹 신사옥에 새롭게 둥지를 튼 아모레퍼시픽미술관도 설립 취지에 따라 시민과 직원, 예술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는 사옥 곳곳에서 예술과의 경계를 허물었다. 야외정원과 5층 루프가든에서도 세계적인 작가의 대형 설치작품과 마주하게 된다. 선정에만 몇 년이 걸린 작품들이다. 1층 로비 ‘아트리움’을 가장 많이 차지하는 공간은 미술관이다. 뮤지엄숍, 전시 공간, 세계 전시도록 라이브러리 등 시설은 여느 공공 미술관 풍경에 뒤지지 않는다.

서 회장의 열정적인 예술경영은 사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창업주 고 서성환(1924~2003) 회장은 평생 도자기, 그림, 병풍이나 비녀, 노리개, 부채 등 여성 장신구 등을 수집해왔다. 그 일환으로 1979년 문을 연 태평양박물관은 2009년 지금의 아모레퍼시픽미술관(APMA, Amorepacific Museum of Art)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향후 전시가 기대되는 이유는 그동안 서 회장 컬렉션이 공개된 적이 없어서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서 회장 부자(父子) 컬렉션을 조금씩 공개할 예정이다. 소장품이 포함된 기획전을 통해서다. 지난해 하반기 전시한 [조선, 병풍의 나라]에서도 문화재를 포함해 개인 소장품인 병풍이 공개됐다.

그렇다고 고미술이나 전통미에만 천착해 있는 건 아니다. 시민들의 예술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체험 요소를 기획하기도 했다. 지난해 라파엘 로자노-헤머 [디시전 포레스트]에선 대형 인터랙티브 작품으로 모래 70톤을 쏟아부은 인공 해변 ‘샌드 박스’로 인기를 끌었다. 폐쇄회로(CC)TV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를 즐거움으로 바꾼 ‘줌 파빌리언’ 등도 선보였다.

선대부터 이어온 컬렉터 기업인의 안목이 기업 역사를 어떻게 이어갈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아시아의 미’를 필두로 예술 수출의 거점지로 부상할지도 주목된다.


▎[조선, 병풍의 나라]에선 서경배 회장의 소장품도 함께 선보였다. /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제공



▎아모레퍼시픽은 관람객의 참여를 높이는 전시를 추구한다. 240인의 맥박을 명멸로 표현한 ‘Pulse Room.’ /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제공



▎모래로 직접 체험 요소를 높인 ‘Sand Box’. /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제공
-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

201903호 (2019.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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