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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빠진 기업 ‘베스트 뮤지엄'(12)] 한솔그룹-뮤지엄 산 

1세대 여성경영인의 역작, 산을 품다 

박지현 기자

▎안도 다다오 건축가가 설계한 뮤지엄 산 전경. 산책로 형태를 그대로 살려 건물을 지었다. / 사진:뮤지엄 산 제공
‘진정한 소통을 위한 단절’. 이 미술관의 콘셉트다. 자극이 많은 일상과 거리를 두고 온전히 예술과 연결하는 휴식처. 해발 275m 산자락에 있다. 한솔그룹이 운영하는 뮤지엄 산(Museum SAN)은 자연 공간에 예술을 입힌 곳으로 명소로 떠올랐다. 노출 콘크리트와 빛으로 대표되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힘이 컸다. 산책로를 비롯한 주변 경관을 그대로 살렸다. 전체 길이는 700m다. 웰컴센터, 플라워가든, 워터가든, 본관, 스톤가든을 연결하는 길은 풍요로운 산책로로 손색이 없다. 정원의 상징은 꽃, 물, 돌로 계절별로 가지각색 매력을 뽐낸다.

2013년 개관한 뮤지엄 산은 한솔문화재단의 공익문화사업 프로젝트였다. 올해 1월 말 작고한 이인희(91) 한솔그룹 고문의 역작이기도 하다. 이 고문은 이병철 삼성 선대회장의 장녀이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누나다. 한솔그룹은 1991년 삼성그룹에서 분리해 독립경영에 나섰고, 1992년 사명을 순우리말인 ‘한솔’로 바꿔 종합제지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전 회장이 자서전 『호암자전』에서 “사내로 태어났으면 그룹을 맡겼을 큰 재목”이라고 추켜세웠을 정도로 이인희 고문은 한솔그룹의 기틀을 닦은 1세대 여성경영인으로 꼽힌다. 섬세하면서도 담대한 리더십을 갖춘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산책로와 만나는 플라워 가든. / 사진:뮤지엄 산 제공
뮤지엄 산은 그의 예술경영 꿈을 완벽하게 입힌 리더십의 결정체로 보인다. 어린 시절부터 이병철 회장의 도자기, 회화, 조각 컬렉션을 보며 남다른 안목을 키운 그는 1995년 문화예술계 후원을 위해 한솔문화재단을 설립한 데 이어 2013년 뮤지엄 산을 건립했다.

건축으로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작품과 전시, 프로그램도 자연스레 뮤지엄 산만의 가치를 드러낸다. 전시들은 ‘일상의 재발견’이란 메시지를 일관되게 전달한다. [사유로서의 형식-드로잉의 재발견](2014), [판화, 다시 피다](2015), [자연, 그 안에 있다](2016), [색채의 재발견](2017), [일상의 예술, 오브제](2018) 등은 익숙함에서 낯선 풍경을 찾는 여정이다. 뛰어난 건축물의 상징성을 등에 엎고 건축 워크숍도 진행한다. 인문학 해설, 신진판화작가 공모, 아트컬래버레이션, 명상 등 전시를 넘어선 프로그램도 기획했다.


▎개관 5주년 기념으로 지은 명상관. 중앙을 가르는 아치형 천장으로 빛이 들어오는 돔 형태의 방이다. / 사진:뮤지엄 산 제공
올해 또 하나의 변화를 입혔다. 명상관 개설이다. 올해 1월 뮤지엄 산 개관 5주년 기념으로 열었다. 역시 안도 다다오가 설계했다. 바닥에서 봉긋 솟아오른 돔 형태로 40㎡ 규모다. 본관과 제임스터렐관 사이인 스톤가든에 자리했다. 외부는 돌을 자연 그대로 사용했다. 내부에선 중앙을 가르는 아치형 천장 덕에 시시각각 달라지는 빛과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인문, 예술, 신체활동이 공존하는 곳으로 탄생한 셈이다. 관람의 주체는 ‘자신’이다. 뮤지엄 산은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는 여유로 출발하자는 모티브를 공간 안에 충실하게 반영한다.

-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

201903호 (2019.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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