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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기업들의 혁신 오피스 | 국내기업 편(2)] 슈피겐코리아 SPIGEN 

배려와 자부심이 묻어나는 사무실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
이름만 들어서는 외국계 기업의 한국 지사로 착각할 만하다. 거울이란 의미의 독일어 ‘슈피겔(Spigel)’과 유전자란 뜻의 ‘겐(gen)’의 합성어다. 이름부터 일부러 한국 색을 지웠다. ‘최초, 유일, 최고’라는 타이틀을 거머쥐며 성장한 이 기업이 한국 토종 스타트업인 것에 한 번 놀라고, 강남 한복판 사옥을 보고 다시 놀라게 된다.

▎사장실이 있던 공간을 개방해 만든 라운지에선 선정릉이 내려다보인다. / 사진:슈피겐코리아
10년. 1세대 스타트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탈바꿈한 시간이다. 단시간에 미국 아마존 상위권을 탈환하더니 실리콘밸리에 지사까지 설립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국내에선 강남 사옥으로 이전하며 오피스를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몄다. 최근에는 드라마 촬영지로 쓰여 화제를 모았다. 모바일 액세서리 기업 벨킨과 유사 업종의 한국 기업으로 해외에서 더 잘 알려진 슈피겐코리아(이하 슈피겐) 얘기다. 순수하게 애프터마켓으로만 급성장한 모바일 패션 전문 기업이다. 설립 10년 만에 업계 ‘톱 3’에 올라선 성장 신화는 국내 스타트업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지난해 입주한 슈피겐 신사옥은 지하철 9호선 선정릉역 근처에 있는 구 올림푸스 타워다. 강남 지역에는 협소한 공간과 비싼 임대료를 못 버티고 떠나는 기업이 수두룩하다. 오히려 기업 성장이 뒷받침되면 수도권이나 지방으로 부지를 사 건물을 올리는 경우가 많다. 슈피겐코리아는 반대의 선택을 했다. 금싸라기 땅에 위치한 타워를 통 크게 샀다. 당시 시세 475억원이었다. 강남 부동산에 따르면 현재 가치는 600억원에 달한다.

슈피겐의 성장사와 닮았다. 슈피겐은 ‘역진출’로 출발했다. 세계 최대 유통망 아마존에서 이름을 먼저 알렸다. 김대영(48) 대표는 스마트폰이 떨어져 액정이 깨진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보호필름을 선보였다. 아이폰 3G가 국내에 출시되기 전 미국에서 먼저 케이스를 판매해 시장을 선점했다. 2000년 대 초까지 틈새시장에 불과했던 모바일 액세서리 시장에서 김 대표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지사를 두고 북미지역 접근성을 높였다. 지금도 해외 매출이 80% 이상이다. 현재 한국 본사는 국봉환(47) 국내 사업총괄부문장이 맡고, 김 대표는 실리콘밸리 지사에 있다.

휴대전화가 사람들의 필수품이 되면서 슈피겐도 호기를 맞았다. ‘튼튼하고 슬림한’ 케이스로 입소문이 나며 단기간에 시장을 장악했다. 아마존을 활용한 온라인 유통전략은 슈피겐 제품 성장을 견인했다. 현재 전 세계 60개국에 진출했고, 아마존 기준 전체 카테고리 7위로 올라섰다. 유럽 시장 점유율도 2015년 12%에서 22%까지 올랐다. 2014년 3000만불 수출의 탑 달성 이후, 2015년 7000만불, 지난해 12월 1억불 수출의 탑 달성으로 대통령 표창도 수상했다. 2017년 애플 아이폰 8·X 시리즈 공개 행사에서 무선충전기술 도입 발표와 함께 대표 브랜드로 소개되는 등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출시 10주년 한정판으로 애플컴퓨터 뒷면 설계도를 입힌 케이스는 미국에서 완판되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휴대폰의 기능이 좋아질수록, 액세서리 시장도 진화한다. 슈피겐의 기술력도 덩달아 섬세해졌다. 사실 소비자 트렌드가 가장 민감한 IT업계에서 애프터마켓은 과포화 상태다. 슈피겐은 경쟁력을 ‘기술’로 꼽는다. 필수적이지만 어려운 요건이기도 하다. 슈피겐은 디바이스에 가해지는 충격을 분산시키는 ‘스파이더웹’, 모서리 부분을 특히 보호하는 ‘에어쿠션’등 자체 기술로 특허를 받았다. 1.2m 높이에서 26회 이상 추락 테스트를 거치는 미군 군사 규격 ‘밀리터리 그레이드’ 인증도 통과했다. 피부에 직접 닿는 액세서리인 만큼 EU기준에 맞춰 유해물질 검출 여부를 관리한다. 사소해 보이지만 폰을 쥐었을 때 그립감이나 뛰어난 성능은 20~40대 남성 마니아층을 두껍게 만들었다. 지난해엔 여성 고객도 공략해 도시를 테마로 한 자수형 케이스가 호응을 얻고 있다.

슈피겐 사옥은 역동적인 성장을 보여준다. 올림푸스 타워로 알려진 이곳은 와이그룹 양진석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이다. 지하 5층, 지상 12층 규모로 두 개로 이뤄진 빌딩 면적은 9498.23㎡다. 2010년엔 강남의 아름다운 건축물로 선정된 바 있다. 건물 외피가 마치 얇은 옷을 겹쳐 입은 듯한 느낌을 준다.

풍수지리 최상의 입지


▎슈피겐코리아 한국 본사의 라운지. 직원들의 휴게소이자, 때로는 와인 파티도 즐기는 곳이다. / 사진:슈피겐코리아
슈피겐 사옥은 풍수지리적으로 최상의 자리라는 왕릉(선릉과 정릉)을 끼고 있다. 시내에선 보기 드문 멋진 전경을 자랑한다. 꼭대기 층은 올림푸스에선 사장실로 쓰였던 곳이다. 가장 좋은 뷰를 직원들과 공유하고자 안내데스크와 라운지로 바꿨다. 채광이 잘되는 통유리로 바 테이블과 휴식 공간을 확대했다. 야외 덱(deck)으로 이어지는 곳은 탁트인 전경과 서울의 공기를 한껏 느낄 수 있다. 강남 한복판의 교통지옥과 전혀 다른 풍경이다. 건물 뒤로 이어진 산책로도 슈피겐 직원들이 사랑하는 공간이다.

소비자들이 액세서리를 선택하는 기준은 디자인이다. 강남 오피스도 슈피겐의 섬세한 설계가 돋보인다. 리모델링 당시 직원들의 창의력을 높이기 위한 공간으로 공을 들였다.

‘배려와 자유로움이 묻어나는 사무실.’ 김대영 대표가 꿈꾼 오피스다. 기업 슬로건인 ‘Something you want(당신이 원하는 어떤 것)’를 적용했다.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제공하듯, 경영진 입장에서 임직원을 위한 공간을 만들자는 취지였다.

슈피겐은 젊은 기업이다. 평균 연령이 30대 초반에 불과하다. 국봉환 부문장은 “내가 평균연령을 높인 편”이라며 웃었다. 아이디어와 디자인이 경쟁력인 만큼 업무 과정도 자유롭다. 직원들은 팀장과 부문장에게 언제든 의견을 낼 수 있다. 복잡한 업무 프로세스는 과감히 간소화했다. 빠른 의사결정을 위해 직원들 아이디어를 적극 차용하는 문화다.

빌딩 내부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거두는 작업을 했다. 좁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되 단순하게 만들었다. 화이트와 블랙으로 모던한 느낌을 강조해 자칫 답답해 보이는 부분을 해소했다. 기존 천장은 위로 더 뚫어 개방감을 추구했다. 미국 지사에도 동일하게 적용된 부분이다. 모션데스크는 미국 지사에서 처음 사용했다가 직원들 만족도가 높아 국내에도 도입했다.

사무실 가구는 우드패턴과 가죽, 천 소재를 활용해 집 안의 풍경을 끌어들인 듯했다. 아담한 카페테리아는 직원들 컵으로 가득하다.

많은 투자를 아끼지 않은 공간이 바로 휴게 공간이다. 층마다 수면실을 마련해 안마의자(리클라이너)를 두었다. ‘일을 잘 하는 사람은 본인 건강과 컨디션 조절을 잘해야 한다’는 기업 철학이 반영됐다. 슈피겐은 여가를 적극 독려하는 편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여가친화기업’으로도 선정됐다. 피트니스 센터는 무료로 이용 할 수 있고 한 달에 이틀은 단축근무(얼리이브닝) 제도를 운영 중이다. 연차 사용률은 2년 만에 95%로 올랐다. 업계 비수기인 7, 8월에 연차를 포함한 17일까지 휴가를 낼 수 있고, 50만원씩 지원한다. 직원들의 다양한 취미 활동을 지원해 골프, 농구, 와인, 애견, 낚시, 스크린야구, 그림그리기 동호회를 운영한다.

전사 직원들이 함께하는 해외 워크샵은 인기가 많다. 회의실에는 다녀온 해외 워크숍 장소로 이름을 붙였다. 액자에는 자연스러운 직원들 모습을 스냅샷으로 담았다. 사무실 벽에 걸린 자신의 모습을 보면 애사심도 고취된다고 한다.

슈피겐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는 제품의 스튜디오 촬영이다. 온라인에서 접하는 제품의 첫인상인 만큼 다양한 각도로 소비자들에게 선보인다. 지하 1층과 5층, 11층에 전문 스튜디오를 마련했다. 스튜디오형 회의실은 거실이나 파우더룸을 연상시킨다. 아늑한 소파와 테이블, 거울까지 갖춘 이곳은 회의실로도 활용한다.

하이라이트 공간이 있다. 복합문화공간 ‘슈피겐홀’이다. B동 지하 2층에 있는 슈피겐홀은 총 200석 규모로 기업의 상징적인 공간이다. 최고 수준의 음향·영상 시설을 갖췄다. 스타트업들의 네트워크 장소나 강연회 등을 지원하는 공간으로 활용한다. 이동식 무대로 자유로운 연출이 가능하다. 최근 연말 종무식도 전 세계 슈피겐 직원들과 페이스북 라이브로 진행했다.

공연장 맞은편엔 체험형 매장 ‘슈피겐 선정릉 직영점’을 열었다. 자사 제품뿐 아니라 유망한 스타트업 제품을 함께 판매하는 채널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신사동에 연 단독 로드숍 가로수길 직영점도 늘 인산인해를 이룬다. 온라인 기반 마켓에서 판매하는 제품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다.

슈피겐은 1세대 스타트업의 성공 사례답게 신규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금액 투자는 물론, 창업 초기 성패를 가를 유통과 물류 노하우를 전수해 ‘제2의 슈피겐’이 탄생할 수 있도록 돕는다. 유기농 여성용품 스타트업 ‘라엘’은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창업 초기단계부터 슈피겐이 시드머니 투자와 유통·물류 노하우 등 멘토링을 해 아마존 내 카테고리 1위 달성을 도왔다. 앞으로 슈피겐은 물류 대행(3PL) 등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도 구상해 시너지 창출을 도모해나갈 계획이다.

슈피겐은 제품 다각화로 몸집을 불리고 있다. 액세서리가 아닌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확대했다. 무선 충전기, 블루투스, 음향기기까지 IT 주변기기도 속속 선보인다. 최근엔 원거리 무선전력전송기술 선두 기업인 오시아(Ossia)와 개발 협력을 체결했다. 지난 2월 열린 ‘CES 2019’에서 시제품을 공개했고, 올해 안에 첫 모델을 출시할 계획이다.

인도법인 설립과 중국 온라인몰 진출 등 아시아 시장 개척에도 팔을 걷어 붙인 슈피겐의 성장은 모두 강남 본사를 거점으로 삼고 있다. 슈피겐의 새로운 성장 역사를 써나갈 곳이기도 하다.


▎여성 고객층을 타깃으로 출시한 씨릴 ‘포틀랜드 컬렉션’. / 사진:슈피겐코리아



▎마치 방처럼 꾸민 스튜디오 겸 녹음실. / 사진:슈피겐코리아



▎슈피겐코리아 사옥. / 사진:슈피겐코리아



▎아이폰 10주년을 맞아 출시했던 케이스 클래식C1. / 사진:슈피겐코리아



▎라운지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들. / 사진:슈피겐코리아



▎파우더룸처럼 꾸민 스튜디오. 회의실로도 쓴다. / 사진:슈피겐코리아



▎슈피겐홀은 복합문화공간으로 제품 설명회나 작은 콘서트를 할 수 있는 다목적 공간이다. / 사진:슈피겐코리아



▎슈피겐홀 맞은 편에 있는 체험형 매장 ‘슈피겐 선정릉 직영점’. / 사진:슈피겐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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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호 (2019.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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