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pany

Home>포브스>Company

산업공구보감 30년째 발간_ 최영수 크레텍 회장 

“기록하세요. 성공이 보이고 역사가 됩니다” 

조득진 기자 chodj21@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1971년 자전거 행상에서 출발한 사업은 근 50년 만에 직원 667명, 연 매출 4500억원의 국내 최대 공구유통기업으로 성장했다. 한국산업공구보감 출간, 바코드시스템 도입, 빅데이터와 전산시스템 활용 등 그가 주도한 혁신은 이후 업계의 매뉴얼이 됐다. 최영수 크레텍 회장의 이야기다.

▎크레텍은 한국 공구산업계 내 포지션과 영향력에서 ‘아마존닷컴’ 같은 기업을 지향한다. 최영수 크레텍 회장은 “사업하는 데 곤란이야 많지만 이를 이기면 큰 기회가 온다”고 말했다.
“얼마 전 책장을 정리하다 1989년 경북대 최고경영자과정 때 쓴 논문 ‘한국기계공구상의 발전방향에 관한 연구’를 발견했어요. ‘산업구조의 변화 및 근대화와 함께 기계공업이 성장, 발전함에 따라 공구류의 수요는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기계공구류의 유통과정을 보면 앞으로 우리나라 기계공구 종합상사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게 핵심 내용인데, 지난 30년 동안 이 숙제를 해왔던 것 같아요. 제게는 마치 미래예견서 같은 것인데…. 사업을 하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기록해둔 것이 크레텍 성장의 원동력이 됐어요.”

국내 최대 산업공구유통기업 크레텍은 ‘공구상을 기업화한 국내 최초 경영모델’로 평가받는다. 방대한 산업공구 집대성, 바코드시스템과 온라인 주문시스템 도입, 재고 확보와 물류시스템 혁신을 통한 익일 배송시스템 구축 등 공구유통업계의 혁신은 모두 크레텍이 최초로 실행한 것들이다. 2019년 6월 현재 국내외 1200개 브랜드, 15만 개 품목을 제조사로부터 공급받아 국내 유통사와 산업현장에 공급하고 있다. 종업원 수는 700명에 달하고, 지난해 매출은 4500억원을 넘어섰다.

6월 12일 대구 인교동 본사에서 만난 최영수(72) 크레텍 회장은 “경영자는 세세한 행동강령까지 기록해두는 것이 중요하다”며 “글로 적으면 꿈이 되고, 실행으로 옮기면 역사가 된다. 지금 고민하는 것과 이루고자 하는 걸 기록하고 행동으로 옮기면 언젠가는 이뤄진다”고 말했다.

크레텍의 역사는 최 회장이 25세이던 1971년 직원 한 명을 데리고 설립한 ‘책임보장공구사’에서 시작했다. 고객의 요청은 무슨 일이 있어도 책임지겠다는 뜻으로 사용한 ‘책임’이라는 명칭은 지금까지 이어지는 기업경영의 기본철학이다. 크레텍은 1975년 공구 납품업, 1980년 도매업으로 확장하면서 공구생산과 소매만 있던 공구산업 분야에서 유통망 구실을 했고, 이는 국내 공구산업용품 유통업의 시초가 됐다. 회사명 크레텍(Cretec)은 creative & credit와 technology의 합성어다.

공구상이 연감·월간지를 내는 이유


▎사진 : 전민규 기자
크레텍이 ‘공구업은 크게 성장하기 어렵다’는 인식을 깨고 강소 중견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표준화와 전산화다. 공구상들 사이에서 ‘산업공구 옥스퍼드 사전’으로 통하는 『한국산업공구보감』이 대표적이다. 방대한 품목 수 때문에 정리되지 못했던 산업공구를 분류하고 집대성한 것으로, 1989년 ‘기계공구안내’ 카탈로그를 시작으로 30년째 격년으로 펴내고 있다. 1200여 개 메이커, 13만 품목을 수작업, 철물, 절삭, 측정, 전동, 에어, 용접, 산업·안전용품 등 9개 대분류, 42개 중분류, 257개 소분류로 카테고리화했다. 올해 나온 16판은 2672쪽에 달한다. QR코드를 사용해 스마트폰으로 동영상 정보를 볼 수 있고 제품 매뉴얼, 토막상식, AS 정보 등을 알 수 있게 했다.

최 회장은 “다니던 교회 주보에서 힌트를 얻어 만든 28쪽짜리 코팅 팸플릿이 시초였다”며 “조금씩 제품을 더하고 좀 더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하다 보니 1989년부터 보감 형태로 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장사를 하려니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제품에 대해 서로 정확히 이해하는 게 필요했던 것이다. 그는 “좋은 품질의 공구가 제 때, 알맞은 곳에 공급되면 산업현장의 생산성과 매출은 물론 안전성까지 향상된다”며 “현장에서 발생한 필요가 실천을 낳은 셈”이라고 말했다. 현재 산업공구를 체계화한 나라는 미국, 일본, 독일 정도. 크레텍의 공구보감은 정부 주도가 아닌 기업이 자체적으로 제작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크레텍이 1995년부터 발행하고 있는 월간잡지 ‘툴(TOOL)’도 공구인들의 필독서다. 산업공구계의 역사를 스토리텔링하고 공구유통상을 위한 조언과 경제상식, 제품 선별 노하우, 유통현장의 목소리 등을 담아 국내 9000여 공구유통상과 제조사, 서점 등에 배포하고 있다. 최 회장은 “공구보감은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양약이고, 월간 툴은 오래오래 가까이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몸이 건강해지는 한약과 같다”고 말했다.

크레텍의 공구보감이 등장하자 그동안 업계의 안내서로 쓰였던 일본 카탈로그는 자취를 감추었다. 공구보감은 공구를 체계적으로 분류했다는 의미와 함께 크레텍에서 취급하는 제품 위주로 카테고리화했다는데 의의가 있다. 소비자가 크레텍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묶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 회장은 “공구보감 판매만으로도 돈이 남는다. 하지만 이것을 통해 얻는 영업수익은 몇 배는 더 크다”고 말했다.

공구유통 투자·혁신은 현재진행형


최 회장은 혁신 분위기의 사각지대에 자리하던 공구유통 부문에서 전산화를 주도하며 업계 판도를 바꾸어 놓았다. 업계 최초로 바코드시스템을 도입해 상품의 입고, 출고, 검수 과정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만들었고 인터넷 주문 및 견적 시스템, 전국 화상회의 시스템, 자동이체시스템(CMS) 등 전산시스템 개발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2006년 구축한 온라인 주문시스템‘CTX(크레텍 익스프레스)’가 대표적이다. 전국 거래처에서는 이 시스템으로 온라인 주문, 재고와 가격 확인, 견적서 작성, 배송 상황까지 파악할 수 있다. 전체 매출 중 CTX를 통한 주문은 도입 첫해 10.4%에서 지난해 90%를 넘어섰다. 업무 효율성과 고객만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것이다. 최 회장은 “처음엔 그게 플랫폼 사업인지도 몰랐다. 플랫폼이라는 개념도 없었으니까”라며 웃었다.


50년 가까이 공구유통을 하다 보면 한국산업 구조의 변화가 한눈에 보이지 않을까. 최 회장은 “공구보감을 처음 내놓은 1989년만 하더라도 수공구나 단순한 제품 위주였지만 이후 절삭, 측정 등의 제품 수가 크게 늘었다”며 “그만큼 산업현장의 요구가 세분화되고 다양해졌다”고 말했다. 공구보감을 보면 2000년대 들어서 정밀분야 공구가 늘었고 2010년부터는 산업안전용품 증가도 뚜렷하다. 최근엔 자동화 분야가 급격히 늘고 있다. 그는 “국내 현장에서도 안전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레이저 거리측정기가 줄자를 대신하는 등 고효율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산업의 변화를 읽으니 자연스레 사업 영역도 다양해지고 전문화됐다. 2003년부터는 브랜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자사 브랜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스마토, UDT, 크레토스 등 PB 제품을 한국, 일본, 대만, 중국 등에서 주문제작하고 있다. 최 회장은 “수익도 중요하지만 고객만족을 위해 우리가 직접 품질과 가격을 관리할 필요가 있었다”며 “몇 년 후 대기업이 공구유통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PB 제품 덕분에 버텨냈다”고 말했다.

국내 최대 규모의 물류센터 구축도 최 회장의 적극적 투자와 혁신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2015년에 공구업계 최대 규모 물류센터인 ‘크레텍 서대구센터’를 대구에 설립한 데 이어 2017년 4월에는 경기도 군포에 이보다 더 큰 규모의 ‘크레텍 서울통합물류센터’를 오픈했다. 공구유통 산업의 수도권 비율이 60%에 육박하자 건평 3만㎡(9300평) 규모의 대형 물류센터로 대응한 것이다. 최근엔 화상회의, 제안 시스템, BMS 등을 모바일로 한 번에 통합해 관리할 수 있는 클라우드를 구축하고 있다.

최 회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IPTV와 유튜브로 공구상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책과 인터넷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공구상들이 매장에서 텔레비전 보듯이 공구티비를 보며 업계 현황과 제품을 알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곤란을 느낄 때 지혜가 나온다”


▎최영수 회장은 지난 4월 미국 휴스턴에서 열린 ‘산업재 공급사 포럼’ 참석에 이어 미네소타 세인트폴에 있는 3M 미국 본사를 방문했다. 짐 폴 3M 부사장과 만나 3M의 한국 내 유통망 등 전략적 제휴를 논의했다.
자전거 행상에서 소매상, 도매상을 거쳐 공구유통 산업의 리더가 되기까지 그를 끊임없이 혁신하게 만든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최 회장은 “직원들에게 ‘인간의 뇌는 곤란을 느끼지 않으면 지혜를 내지 않는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며 “1998년(외환위기)과 2008년(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 회사의 성장 그래프가 급격히 올라갔는데, 어려움이 왔을 때 지혜를 내어 기회를 잡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은 지혜를 자신에게서만 찾지 않는다. ‘삼류 리더는 자기의 능력을 사용하고, 이류 리더는 남의 힘을 사용하고, 일류 리더는 남의 지혜를 사용한다’는 한비자의 문구를 문 앞에 걸어둔 그는 “세상이 변하는 속도에 나와 회사의 혁신 속도를 맞추어야 한다. 목표는 지식과 기술 습득이고, 방법은 인재 영입”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를 ‘접붙이기 경영’이라고 표현했다. 수박을 박과 접붙여 상품으로 만들 듯 인력 부문에서도 외부 수혈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한국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LG 등에서 영입한 임원급 인재들은 크레텍의 영업·무역·디자인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했다. 군 장성 출신의 임원은 강한 추진력으로 바코드시스템을 전면 도입하기도 했다.

크레텍의 성장과정을 눈여겨본 허문구 경북대 교수(경영학)는 논문에서 “표면적인 성공요인으로는 카탈로그 발행, 바코드시스템 도입, 온라인주문 및 결제 시스템 도입 등이 있다. 그러나 내부 성공요인을 짚어보면 차별적 전략을 구사해 고객과의 신뢰를 높이고, 유통망과 품질관리에서 이전에 없던 전문성을 확보한 덕분이다. 이는 중소기업도 전문성을 가지고 시각을 달리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지주회사 크레텍은 기계공구 유통을 맡은 크레텍책임, 용접과 산업 안전용품 유통을 담당하는 크레텍웰딩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 최 회장의 두 아들인 최성문 사장과 최성용 사장이 2015년부터 각각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 최 회장은 두 아들을 혹독하게 교육했다. 10대인 두 아들을 방학 때 대구에서 서울까지 걸어가게 하거나, 새벽에 신문 배달을 시키는 등 말 그대로 ‘사서 고생’을 시켰다. ‘힘든 일을 경험해봐야 역경을 이겨낼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최 회장은 두 아들에게 평소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감사하라”고 강조한다. ‘곤란을 이기면 기회가 된다’는 것이 그의 일관된 철학이다.

2021년이면 크레텍은 창립 50주년을 맞는다. 공구유통 시장에서 혁신을 주도한 창업자에 이어 2세 경영자들은 유통 플랫폼으로서의 기능 확장에 주력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최근 세신버팔로 브랜드 인수와 글로벌기업 3M과 전략적 제휴 모색은 이런 고민을 반영한 결과다.

2016년 세신버팔로 브랜드, 그러니까 상표권을 인수한 것은 단순 유통기업에서 벗어나 브랜드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비전을 보여준다. 스테인리스 식기로 유명했던 세신실업이 모태인 세신버팔로는 포스코에서 철을 가져와 원료가 좋고 특히 단조 기술이 좋아 세계 최고 수준의 수공구 브랜드인 미국 스탠리사 제품을 OEM 생산했다. 하지만 스탠리가 중국으로 OEM을 옮기고 1998년 외환위기를 맞아 워크아웃을 선언하면서 성장세가 멈추었다. 최 회장은 “우리 PB 제품이 매출의 30%를 차지하고 있는데 여기에 세신버팔로 브랜드를 키워 기존 유통 외에도 브랜드라는 새로운 영역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브랜드 인수, 3M 제휴로 비전 제시


▎크레텍은 『한국산업공구보감』 외에 월간 TOOL, 신상품모음집 신바람 등 업계 정보지를 30년째 발간하며 고객과 소통하고 있다.
3M과 전략적 제휴 모색도 새로운 비즈니스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기 위함이다. 최 회장은 지난 4월 미국 3M 본사를 방문해 한국 내 3M 산업용품 유통을 크레텍이 맡는다는 내용의 상호 협력 방안을 모색했다. 최 회장은 “한국에서 3M의 생활용품은 11번가 유통망을, 산업용품은 크레텍 유통망을 쓴다는 전략적 제휴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경우 크레텍이 3M 브랜드를 활용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은 스스로의 성공 비결을 ‘끈기’에서 찾았다. “제가 한 일 중에는 아주 조그마한 일이 큰 성공으로 이어진 것들이 많습니다. 공구보감도 처음에는 28쪽짜리 인쇄물에 불과했어요. 하지만 이것이 이듬해 52쪽이 되더니 이어 500쪽을 넘고 올해는 2700쪽에 달하는 책이 됐어요. 처음부터 이런 책을 만든 건 아니었죠. 실행하다 보면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그렇다고 한두 번 해보고 포기하면 성취할 건 없어요. 경영자에게 끈기는 두뇌, 가문, 인맥보다 더 중요한 자질입니다.”

[박스기사] ‘대구의 작은 삼성’으로 불리는 크레텍


▎크레텍이 기증한 기념공간에 설치된 ‘삼성상회 재현벽’. / 사진 : 크레텍
크레텍은 ‘대구의 작은 삼성’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1993년 삼성그룹의 모태인 삼성상회 ‘별표국수’ 공장 터(대구 중구 달성로)에 본사를 세우면서다. 최영수 크레텍 회장은 회사가 소유한 땅 일부를 2011년 대구시에 기부 체납했다. 이곳에는 1938년 당시 삼성상회의 옛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도록 높이 5.95m, 너비 8.7m의 ‘삼성상회 재현벽’과 삼성상회 실물을 250분의 1로 축소한 청동모형이 설치됐다.

삼성을 벤치마킹한 철저한 인재관리, 풍부한 사원복지 혜택도 눈에 띈다. 크레텍은 연말 성과급제를 시행하고, 지방기업으로는 드물게 모유수유 우수기업으로 뽑히는 등 대구·경북 일대에선 ‘대기업 못지않은 좋은 직장’으로 꼽힌다. 영업사원과 마케팅 부서 직원은 지역 사무실이 있는 현지에서 채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1971년 1명이던 종업원 수는 2019년 667명으로 크게 늘어 연평균 7.5%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기업 이익의 사회 환원에도 적극적이다. 대구제일여자상업고등학교와 1사1교 산학협약으로 장학금과 취업을 지원하고, 경상중학교 야구꿈나무 지원에도 나섰다. 2014년 말엔 불우이웃 성금 실적이 저조하다는 소식에 1억원을 지역사회에 쾌척했고, 2015년에는 전 직원이 합심해 통일기금으로 3억1400여만원, 네팔 지진피해 구호금으로 2500만원을 기부했다. 2016년에는 서문시장 화재복구를 위해 1억2000만원을 전달하기도 했다. 최 회장 개인으로는 올 초 경북대에 장학금 10억원을 출연했다. 5억원은 도서관(크레텍존) 리모델링에 쓰이고, 5억원은 ‘크레텍 최영수 장학금’으로 운용 중이다. 최 회장은 “대구에서 출발해 성장한 기업이니까 지역인재 양성과 지역대학 살리기에 힘을 보태는 게 맞다”고 말했다.

201907호 (2019.06.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