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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린이 만난 경영 구루(7)] 황호찬 한스바이오메드 대표 

‘3년 법칙’으로 끝없이 도전하는 집념의 개척자 

정리=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사진 원동현 객원기자
박혜린이 만난 경영 구루 일곱 번째 주인공은 황호찬 한스바이오메드 대표다. 한스바이오메드는 인체조직 이식재를 전문으로 다루는 곳이다. 끊임없는 도전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바이오 기업으로 성장했다. 황 대표는 오늘도 ‘세상에 없는 제품’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한스바이오메드가 내놓은 피부이식재, 뼈이식재, 인공유방 등은 ‘국내 최초’란 수식어가 붙는다. 특히 올해 스마트팩토리까지 완공하면서 인공유방 ‘벨라젤’ 생산 규모는 6배나 넘게 늘었다.
“스케일업(Scale-Up) 전략으로 밀어줬으면 엄청나게 성장했을 텐데….”

박혜린 옴니시스템 회장이 말끝을 흐렸다. 지난 4월 16일 오후 황호찬(61) 한스바이오메드 대표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스케일업’이란 스타트업에서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투자를 바탕으로 비약적인 스케일업 단계를 거치는 전략을 말한다. 해외에선 이 전략으로 다수의 스타트업이 수조원대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했다. 한스바이오메드도 유니콘 기업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도 그럴 것이 한스바이오메드가 내놓은 제품은 시장에서 일찍부터 독보적인 자리에 올라섰다. 2002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자체 개발한 인공피부 ‘슈어덤’, 같은 해 국내 최초로 개발한 유방보형물 ‘벨라젤’, 2012년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미국조직은행연합회(AATB)에서 동시에 승인받은 탈회골이식재 ‘슈어퓨즈’ 등이 이 회사 제품이다.

코스닥 상장사니 실적을 안 볼 수 없다. 매출액은 2016년 290억원에서 올해 700억원 돌파를 앞두고 있다. 3년간 2배 넘게 성장했다. 2020년 1000억원을 돌파할 거란 황 대표의 말도 무리가 아니다. 주가는 좀 더 극적으로 변했다. 2011년 2400원대에 머물던 주가는 2018년 1월 3만원을 돌파했고, 가장 최근(4월 18일 종가기준) 주가는 2만8500원으로 3만원대 근처에 머물고 있다. 8년 만에 주가가 10배 넘게 뛴 셈이다. 한미약품 오너 일가도 한스바이오메드에 투자해 꽤 큰돈을 벌었다. 한미메디케어가 한스바이오메드 주식에 투자해 3년 만에 100억원의 수익을 낸 것. 하지만 황 대표는 돈 얘기엔 무덤덤했다. 성공 비결을 묻자 그는 “일에 몰두했을 뿐이다. 돈의 뒤꽁무니를 쫓았다면 제품 자체를 개발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이에 박 회장도 맞장구치며 ‘일’에 꽂혔던 얘기부터 풀어갔다.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하셨잖아요. 항상 궁금했습니다. 지금 회사 일이 전공과 좀 동떨어진다는 생각을 했어요.

벌써 30년이 흘렀네요. 말씀대로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러다 80년대 초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생체전자공학을 공부했죠. 당시에 수많은 개구리를 해부하며 전기신호 자극을 주면 생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등을 실험했습니다. 전기차를 만드는 이순종 쎄미시스코 대표도 대학원 후배입니다.(웃음)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죠. 석사과정 한 학기를 남기고 진흥기업에 들어가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로 떠났습니다. 중동 건설 붐에 뛰어든 셈이죠. 월급도 많았습니다. 그러다 공사현장 의무실에서 일하게 된 게 인연이 됐습니다.

공사현장 의무실이요? 중동 건설 붐과 한스바이오메드, 아직도 연결이 쉽지 않습니다.

이게 참 지금 생각해도 묘합니다. 대학원에서 생체전자공학을 공부했다니 의무실 배정을 제안했습니다. 현장에 2000명 정도 근로자가 있었는데 의무실 의사가 집안 사정으로 그만뒀습니다. 당장 의사를 구할 수도 없고 회사에선 대학원에서 생체연구를 공부한 저를 의무실에 배치했죠. 가벼운 찰과상과 타박상을 입으면 상비약을 주는 의무병 같은 역할이었습니다. 밤을 새워가며 약 설명서를 읽고 공부했습니다. 생각보다 찰과상 환자가 많았고, 약도 발라주고 꿰매주기도 했습니다. 이게 작은 인연이 됐죠.

작은 인연이 아닌데요?


지금 생각하면 뭔가 ‘끌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직장생활을 계속했죠.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하며 아현동에 집도 사고, 결혼도 했죠. 그러다 일본 미쓰이물산(일본 최대 재벌 그룹이었던 미쓰이그룹의 종합상사 기업, 2018년 기준 매출 약 49조원)에서 7년 정도를 더 일했죠. 당시 한국 상사보다 10배 이상 큰 기업이었죠. 그렇게 직장인으로 10년째 일하던 어느 날 내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도 인연인데 미쓰이물산에서 열교환기, 비상발전기 등 안 팔아본 물건이 없었습니다. 미국에서 100만원에 산 물건이 중동에 가면 200만원에 팔리던 시절이었죠. 이때 비즈니스가 뭔지 배웠던 것 같습니다. 사업하려고 회사를 나오니 수중에 2500만원이 있더군요.

2500만원으로 뭘 하셨나요?

미국 잡스트라는 의료기구 제조사를 찾아갔습니다. 이곳에서 3개월간 배웠습니다. 역으로 이 회사에 ‘흉터에 대해 가르쳐주면 제품을 한국에 가져다 팔거나 만들 수 있는 것은 만들어보겠다’고 제안했죠. 사우디아라비아 의무실에서 근무했던 기억으론 흉터는 어쩔 수 없었거든요. 관련 약품도 흔치 않았고, 일단 배워야 했습니다. 일종의 보따리상으로 사업을 시작한 거죠. 그렇게 3개월을 2500만원으로 버텼고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무슨 생각에선지 성수동에 사무실에 얻었고 명함엔 ‘흉터는 예방할 수 있습니다’란 문구를 새기고 병원에 영업을 다녔습니다. 열심히 다닌 덕에 매출이 생겼고 사무실을 유지할 수 있었죠. 1999년 IMF 외환위기 때 되레 돈을 벌었습니다. 관련 물품 수요가 폭증했고, 이걸 파는 수입상도 제가 유일했습니다.

이때 돈을 버시고, 의료소재 기업으로 거듭나신 거죠?

그런 셈이죠. 지금의 성수동 지식산업센터, 당시 아파트형 공장으로 사무실을 옮기고 회사다운 면모를 갖췄죠. 그렇게 살아도 됐는데 병원을 수없이 오가며 만난 화상 환자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특히 어린이 환자. 화상이 깊으면 엉덩이나 허벅지를 피부를 떼어 이식해야 했습니다. 고통스러운 일이죠. ‘원시적인 방법밖에 없나, 그냥 새 피부를 만들면 되잖아’란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미국에 자주 오갔기에 ‘무세포 진피제품’이 상용화 가능하다는 얘기를 듣고 카이스트에 달려갔죠. 7000만원을 연구비로 투자했고, 그러고 3년이 지난 2000년쯤 상용화 기반 기술이 되겠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뭐든지 3년을 기다리면 되는 것 같더군요.(웃음)

맞습니다. 일단 개발에 착수해서 3년은 기다려야 쓸 만한 결과물이 나오는 걸 저도 경험했습니다.

이후로도 ‘3년 법칙’이 이어졌죠. 그리고 2001년 성수동 사무실 한 공간에 생산시설을 만들고 피부결손 환자 이식용 무세포 진피제품을 만들었습니다. 세계에서 두 번째였죠. 그리고 병원에 영업하러 갔더니 엉뚱하게 관련 법이 없었습니다. 관계 당국을 찾아가도 이게 약인지 의료기기인지 유권해석을 내리기 모호했습니다. 당연히 시술이 불가했죠. 난감했습니다. 자주 오가던 곳이 미국이었으니 시장을 돌렸습니다. 그랬더니 지금 생산시설이 FDA 기준에 안 맞는 겁니다. ‘안 되겠다’ 싶어 대전에 500만 달러를 들여 온전히 미국 기준에 맞는 생산시설을 만들었습니다. 2003년 FDA로부터 인체이식재 기업으로 승인을 받았죠. 이게 아시아 기업 최초이고 세계 최고 수준이란 것도 나중에 알았습니다.

한스바이오메드가 제대로 자리를 잡은 때였군요. 불안하진 않으셨습니까? FDA 기준에 맞춘 공장이라니 적지 않은 자금이 들어갔을 텐데요.

사실 초조했습니다. 기반 기술은 2000년에, 제품은 2002년에 만들었는데도 팔 곳을 못 찾은 거잖아요. 한국도 안 되는데 미국 법을 어떻게 통과할 거냐는 비아냥도 많았습니다. 말이 쉽지 FDA 기준을 다 지키려니 돈도 엄청 들었습니다. 이러다 기존에 해오던 사업도 망하겠다 싶었죠. 일단 FDA 승인을 받았다고 다시금 관계 당국을 찾아갔더니 같은 해 인체조직 이식에 관한 법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듬해인 2004년 인체조직은행이 운영되기 시작했고 시술이 시작됐죠.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또 ‘3년 법칙’에 도전하신 겁니까?


▎황호찬 한스바이오메드 대표는 2017년 문정동 신사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본사 건물 9층에 연구센터를 또 하나 열었다. 이곳에서 첨단의료기기와 줄기세포 당뇨병 치료제는 물론 유전자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런 셈이죠. 인공피부를 만들어서 화상 환자나 잇몸치료, 인대손상 등에 쓰이긴 했지만, 사용범위가 넓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척추수술이나 치과시술 등 시장이 10배나 큰 ‘뼈’에 주목했습니다. 그런데 피부와 뼈는 또 완전히 달랐습니다. 살짝(?) 고민했죠. 뼈는 무기질로 인한 석회화로 매우 딱딱해 뼈를 이식재료로 만들려면 무기질 성분을 모두 제거해야 하는데 쉽지가 않았습니다. FDA 심사기준을 충족한 회사도 전 세계 10곳에 불과했죠. 그래도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3년이 흐르자 성과가 나왔고, 2012년 FDA로부터 탈회골이식재(무기질을 제거한 뼈이식재) 승인을 받았습니다. 같은 해 전 세계의 인체조직 관련 표준을 만드는 AATB(미국조직은행연합회)에 가입하면서 시장에서 물꼬가 확 트였죠.

‘3년 법칙’ 대단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그 유명한 유방보형물 ‘벨라젤’ 얘기가 안 나왔습니다.

스토리가 있습니다. 사실 2002년에 유방 보형물 개발은 끝마쳤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국내 승인이 나질 않았습니다. 그냥 2003년부터 유럽과 남미 시장으로 눈을 돌렸고, 승인을 받았습니다. 한국 시장엔 바로 못 팔았지만, 세계적으로 꼼꼼한 한국 의사 얘기를 많이 들었죠. ‘수술할 때마다 해외 제품을 쓰는데 막상 수술에 들어가면 위인지 아래인지 모르겠다’, ‘표면 처리는 좀 세분화됐으면 좋겠다’, ‘돌출 정도도 좀 다르면 좋은데…’라고 했죠. 항상 ‘2%’ 차이라고 하죠? ‘디테일의 문제를 지적했는데, 우린 개발에 다 반영했습니다. 벨라젤에는 어린이 새끼손톱 크기의 돌기 3개가 달려 있어 안 봐도 상하를 맞출 수 있습니다. 더불어 보형물의 형태, 표면처리, 돌출 정도에 따라 15개로 세분화했습니다.

정말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겠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아직도 좀 생소해 보이는데요.

네, 맞습니다. 미국, 유럽, 남미에서만 수술 케이스가 10만 건이 넘고, 시술한 지도 10년이 넘었습니다. 횟수와 시간이 이 제품의 품질을 인정한 셈이죠. 해외에선 꽤 유명한 명품 유방보형물로 인정을 받습니다. 한국에선 개발한 지 13년 만인 2015년에 승인이 떨어졌습니다. 한국 기업이 최초로 개발한 유방보형물이다 보니 각종 임상 결과부터 복잡한 인허가 과정을 거쳐야 했는데 이미 해외에서 10년 이상 임상기록이 쌓이다 보니 어느 순간 승인이 급물살을 탄 겁니다. 이듬해 중국에서 판매 허가가 나면서 출시 1년 만에 시장점유율 30%를 넘어섰습니다.

요즘엔 당뇨병 치료제까지 만드신다면서요.


▎사진 : 김영문 기자
문정동 신사옥에 이사 온 지 벌써 2년이 지났습니다. 오자마자 건물 9층에 ‘줄기세포 재생의학 연구소’를 만들었습니다. 탯줄 유래 줄기세포를 이용한 당뇨병 치료제인데요. 보통 매일 한 번씩 배에 주사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없애고, 한 번 맞으면 6개월은 정상 혈당을 유지하는 치료제를 개발하는 프로젝트입니다. 관련 연구인력도 대폭 늘렸고, 그 노력을 인정받아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에서 지원도 받습니다. 5년 내 개발 목표였는데, 앞으로 3년이 더 남았습니다. 물론 ‘3년 법칙’처럼 올해가 가면 구체적인 성과가 나올 겁니다. 늘 그랬듯이.

흉터치료제 ‘스카 클리닉’, 피부·뼈 이식재, 인공유방 ‘벨라젤’ 등은 국내 최초이고 리프팅 실 ‘민트리프트’도 모두 세계 최초입니다. ‘최초’란 타이틀을 특별히 의식하시거나 욕심내시는 건가요?

전혀 아닙니다. 박 회장님도 아시다시피 돈이나 그런 피상적인 목표를 좇아 사업을 하면 결과가 좋지 못하지않습니까. 일단 관련 업계 종사자로서, 사업가로서 문제가 보이면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접근합니다. 닥치면 풀릴 때까지 달려드는 거죠. 그런데 여기서 포인트, 그때까지 버틸 만한 사업력(자금력)은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박 회장님도 인수합병(M&A)을 목표로 마구잡이로 사업을 확장하신 건 아니잖아요.

100% 공감합니다. 타이어 회사도 다들 어려울 때 중도소매 업체를 인수해달라고 찾아왔었고, 바이오스마트를 인수할 때도 인수합병을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단지 어떤 사업을 시작할 때 대박보단 견딜 수 있는 기초 체력 같은 매출을 올릴 수 있을까, 못해도 70%는 건져보자는 생각이 앞서죠.

저도 그렇습니다. 사업 제대로 하는 사람 중에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이 없습니다. 신사업, 신제품 개발할 때면 버틸 수 있는 체력부터 따져보죠. 회사는 안 되면 접는 곳이 아니잖아요. 지금 한스바이오메드도 직원이 350명입니다. 그에 딸린 가족은 1000명이 넘겠죠. 하다가 그만두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닌 거죠. 그렇게 버텼고, 또 그렇게 새로운 사업으로 기업을 키웠습니다. 다 말씀은 못 드리지만, 앞으로 내놓을 신제품이 많습니다. 그만큼 자신 있습니다. 대표가 주가만 들여다보고 있다고 저절로 오르는 게 아니죠. 요즘 스타트업 열풍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다짜고짜 정부 지원금만 바랄 게 아니라 본인이 장사하든 개발을 하든 뭔가 초기에 버틸 임계점을 넘었을 때 지원금이 진가를 발휘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박혜린 옴니시스템 회장은 앞으로 ‘3년 법칙’이 어떻게 이어질지 물었다. 황호찬 한스바이오메드 대표는 “경영에 시시콜콜 참견하지 않는다”며 대신 ‘역할’ 얘길 꺼냈다.

“재무면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찾으면 되고, 마케팅이 급하면 최고 마케팅 책임자(CMO)와 논의하면 됩니다. 저는 새로운 성장 기회를 찾는 역할을 합니다. 요즘도 개발하고 싶은 분야가 너무 많습니다. 참고 있죠.(웃음) 그만큼 기회가 많다는 얘기입니다. 이번에 ‘스마트팩토리’ 공장을 지었습니다. TV에 하도 자주 나와서 외주업체가 많을 줄 알았는데 정작 해외 로봇을 미세한 공정에 활용하는 솔루션 업체는 없더군요. 명색이 바이오 기업인데 스마트팩토리팀을 꾸렸고, 시스템을 전반을 직접 설계했습니다. 전 스마트팩토리를 도입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방향타만 잡았습니다. 덕분에 올해부터 ‘벨라젤’을 연간 5만 개에서 최대 30만 개 이상 생산할 수 있게 됐습니다. 대표는 그만큼 멀리 봐야 하고, 동료이자 직원은 좀 더 치밀해야 합니다.”

※ 박혜린은… 신용카드·전자화폐시스템 업체 바이오스마트, 스마트전력계량플랫폼 기업 옴니시스템, 라미화장품 등 10개 회사의 매출 총합은 3000억원을 넘었다. 2018년 5월 출판사 시공사를 인수했다. ‘영업이익의 10%를 무조건 기술개발에 투자한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201905호 (2019.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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