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기조가 장기화되고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자산관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기업·재산의 안정적인 세대 이전이 주된 관심사다. 삼성증권은 최근 초부유층 전담 서비스 SNI를 전국으로 확대했다. ‘VVIP 전담 센터’에서 ‘VVIP 전용 브랜드’로 변신을 꾀하는 것이다.
▎박경희 삼성증권 상무는 지난해 12월 SNI본부장 취임 이후 고액 자산가 전용 대표 브랜드인 SNI 서비스를 확대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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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이 집계한 지난해 11월 말 기준 국내 부동자금은 1083조원. 정부 규제로 부동산 시장이 관망세에 접어든 데다 저금리 기조 탓에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아 오갈 데 없는 자금이다. 최근 이를 유치하기 위한 증권사의 경쟁이 치열하다. 자산관리(WM) 조직과 서비스를 강화하는 등 고객 확보에 나선 것. 시장은 매년 10% 이상 성장하고 있다.가장 눈에 띄는 곳이 삼성증권이다. 서울에서 운영하던 초부유층 전담 서비스 SNI(Samsung&Investment)를 전국 삼성증권 지점으로 확대해 자산요건을 갖춘 모든 고객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삼성증권은 기존 투자컨설팅팀을 SNI 고객전담 컨설팅 조직으로 확대하고, 금융·세무·부동산·투자은행(IB)·글로벌자산관리 분야에서 전문가를 충원했다. 정기적인 종합컨설팅 서비스뿐 아니라 가족 동반 맞춤형 서비스, SNI 전용라운지 제공 등 부가서비스도 강화했다.4월 중순 서울 강남 삼성증권 SNI에서 만난 박경희(51) SNI본부장은 “SNI 고객이 2000명을 넘었고 더 많은 수요가 예상되어 서비스를 전국으로 확대하기로 했다”며 “전문가들이 금융서비스뿐 아니라 가업승계와 기업경영 컨설팅, 세무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박 본부장은 남성 중심의 보수적인 증권가에서 몇 안 되는 여성 임원이다. 은행에서 시작해 2006년 삼성증권으로 옮긴 후 마스터 PB, 삼성타운금융센터장 등을 거쳐 지난해 SNI본부장에 올랐다.
VVIP 자산관리 서비스 전국으로 확대
▎삼성증권 CEO·CFO포럼은 법인 경영진에게 필요한 법률과 세무, IB 등 최신 정보와 각종 경영 트렌드 강의를 진행한다. 오너가 2·3세를 대상으로 한 ‘넥스트 CEO 포럼’도 운영 중이다. / 사진 : 삼성증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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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CS)가 내놓은 ‘2018년 세계 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서 상위 1% 자산가가 차지한 부는 전체의 26% 수준이다. 박경희 본부장은 한국의 초부유층을 크게 두 타입으로 나누었다. 기업 오너인 자산가, 기업을 소유하지 않은 자산가다. 박 본부장은 “2000년 이전에는 정부의 토지 수용으로 부를 축적하거나 선대로부터 상속(증여) 받은 부자가 많았지만 2000년대 들어 IT 창업 붐이 바이오와 벤처 등으로 이어지면서 자본시장에서 부가 창출되고 있다”며 “네이버가 대표적이고 최근엔 유니콘 기업이 속속 등장하면서 기업 오너 자산가가 크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삼성증권 SNI에 금융자산 30억원 이상을 맡기는 고객은 최근 몇 년 새 해마다 10% 이상씩 늘고 있다. 이들은 다른 금융사와도 거래를 하고 있어 총금융자산은 100억원, 여기에 부동산 자산을 합치면 평균자산 300억원으로 파악된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오너는 기업자산까지 합쳐 평균 500억원에 이른다. 박 본부장은 “삼성증권은 다른 증권사에 비해 초부유층의 비중이 월등히 높다. 이 고객들은 차별화한 종합 자산관리를 원한다”며 “이번 SNI 서비스 확대 개편으로 삼성증권 SNI 고객이라면 거주지역에 관계없이 전문가 그룹이 제공하는 균질한 고품질 컨설팅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SNI 확대 개편 내용은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SNI 서비스를 전국 삼성증권 모든 지점에서 제공한다. 둘째는 컨설팅의 품질을 대폭 강화했다. 팀 단위로 컨설팅그룹을 조직해 전국 SNI 고객을 대상으로 담당 PB와 함께 연간 1회 이상 심도 있는 정기 종합컨설팅을 제공한다. 가업승계와 본인이 경영하는 기업 관련 컨설팅까지 포함한다. 전국 12개 지점에 오피스 공유 서비스인 SNI 라운지를 설치해 자산가들이 어디서든 편하게 비즈니스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새로운 서비스다. 박 본부장은 “기존의 SNI가 초고액 자산 고객 대상 PB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을 의미했다면 이제는 초고액 자산 고객에게 맞춤형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브랜드 개념으로 확장된 것”이라고 말했다.최근 부각되는 SNI 고객의 고민은 ‘부의 안정적인 세대 이전’이다. 박 본부장은 “최근 자산관리에서 중요한 변동 인자는 저성장과 고령화”라고 분석했다. 그는 “초부유층은 정기예금만 넣어놓아도 복리가 붙었던 시절에 부를 형성했지만 지금은 저금리에 증여세·상속세 부담은 그대로인 상태”라며 “기업 오너 자산가는 증여세·상속세 재원을 마련하는 것도 새로운 고민이 됐다”고 말했다. 베이비붐 세대 창업자들이 은퇴를 앞둔 시점에서 자신의 자산을 다음 세대에 어떻게 이전할지 고민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가업승계연구소·넥스트 CEO 포럼 특화삼성증권 SNI가 ‘패밀리 비즈니스’에 역량을 집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 본부장은 “승계를 위해선 자녀들이 해당 업종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업종을 바꾸고 싶어 하는 이들이 상당하다”며 “산업 구조의 변화, 자녀에게는 자신과 같은 험한 업종을 물려주고 싶지 않은 부모 입장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가업승계와 관련한 체계적인 컨설팅을 제공하는 한편 다른 업종으로 전환하기 위해 회사를 매각하려는 기업에는 외부 회계법인과 협력해 해결하고 있다는 설명이다.박 본부장은 “고객의 니즈가 다양해지면서 우리의 솔루션도 디테일해지고 있다. ‘고객 유치→니즈 발생→솔루션 개발→고객 유치’의 선순환이 이뤄지면서 SNI라는 플랫폼에 많은 서비스가 장착되고 있다”고 말했다. 2017년 기업 오너 고객이 늘면서 CS(Corporate Service)팀을 만들고, 기업자산에 대한 고민이 늘자 법인컨설팅팀을 만든 식이다.백미는 ‘가업승계연구소’ 설립과 오너가 2·3세를 위한 ‘넥스트 CEO 포럼’ 운영이다. 박 본부장은 “초부유층 자산가는 자녀의 교육, 결혼, 가업승계에 누구보다 관심이 많다. 자녀들에게 자산 이전과 함께 철학 이전도 중시하는 분위기”라며 “대부분 금융사가 투자컨설팅팀 위주로 운영하는 데 반해 우리는 가업승계연구소를 설립하면서 기업 오너 고객의 고민 해결에 나섰다”고 말했다.지난 3월 공식 출범한 가업승계연구소는 ‘다음 세대’를 위한 자산관리다. 사실 증권사가 패밀리 비즈니스에 성공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가업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2·3세들이 부모 세대와는 다른 곳에서 자산관리 솔루션을 찾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증권은 예외적으로 부모 세대의 자산을 관리하던 것에서 다음 세대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승계형 비즈니스에 강하다는 평가다. 이런 솔루션 서비스를 총괄하는 곳이 바로 가업승계연구소다. 후계자 선정 플랜과 가업 매각 플랜 서비스를 두 축으로, 이와 관련한 인력을 육성하는 프로그램도 선보였다. 세무·회계·부동산·투자 전문가 11명이 상근하고, 법무법인과 세무법인 9곳과 협력하고 있다.박 본부장은 “노무라증권의 자산승계연구소에 방문해보니 일본 기업가들도 2세가 기존 가업을 뒤집고 신사업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아 우리와 고민이 비슷했다”며 “하지만 고용 등 경영의 영속성 조건을 갖추면 상속세 등 세금을 유예해주는 일본과 달리 우리는 상속공제에도 불구하고 세금 부담이 커서 가업 매각을 고민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 매각이나 인수합병(M&A) 또는 업종 전환을 위해 매각 후 새로운 기업을 사는 것에 이르기까지 고객의 니즈에 가장 적합하고도 구체적인 솔루션을 제안하는 것은 다른 금융사와 비교해 가장 큰 차별점”이라고 강조했다.승계자가 참여하는 넥스트 CEO 포럼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올해로 9년째 운영 중이며, 해마다 70명 정도가 참여해 동문이 600명을 넘는다. 1년 과정으로 매년 3월 개강하는데 삼성그룹 사장단 교육에 나서는 명강사들이 격주로 강의를 진행하고, 글로벌 연수도 떠난다. 시가총액 3000억원 이상 기업 또는 매출 3000억원 이상 기업의 2·3세가 수강 조건이다. 박 본부장은 “총동문회 형태로 운영되는 넥스트 CEO 포럼 출신들의 거대한 네트워크는 부모들이 물려줄 수 없는 이들만의 새로운 자산”이라며 “동문 내에서 벌써 커플 4쌍이 탄생하기도 했다”고 말했다.박 본부장은 “초부유층의 투자 위탁 성향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믿을 수 있는 금융사에, 프라이빗하게, 자신만의 맞춤형으로 주문한다는 것이다. 그는 “삼성증권은 2000년 초반부터 자산관리에 집중했고, 2010년 SNI 발족 이후 쌓아온 초부유층의 자산관리 노하우도 상당하다”며 “SNI 서비스를 전국으로 확장하기 위해서는 인프라가 더욱 많이 투입되겠지만 5년 내 확실히 차별화된 경쟁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