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후계자의 길 

 

최영찬 선보엔젤파트너스 공동대표
한국 산업은 세대교체 시기를 맞고 있다. 단순히 창업가가 자식에게 사업을 물려준다는 개념보다 고차원적이다. 창업가와 후계자 간 간극을 좁히는 일은 기업의 명운을 가른다.

한국 대기업 2·3세 경영자 관련 이슈가 연일 경제·산업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이들의 리더십과 경영능력을 우려하는 이가 많기 때문이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 창업가의 유산을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2·3세 경영자들이 이어나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창업가가 보여준 리더십이나 경영능력과 비교하면 후계자들의 능력이 많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창업가와 2·3세 경영자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30여 년 전 부친은 30대 중반에 자본금 300만원으로 선보 공업을 창업해 부산을 대표하는 중견기업으로 성장시켰다. 2015년 즈음 조선업의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부친은 다시 한번 창업가의 리더십을 보여줬다. 기술 개발과 우수 인재 영입에 과감하게 투자했다.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했다. 노동집약적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이에 대비하기 위해 기술집약적 사업으로 전환하기 위해서였다.

또 내가 스타트업 투자 회사인 선보엔젤파트너스를 설립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했다. 부친은 가업을 이을 후계자에게 기술집약적 사업의 초석을 마련하게 한 것이다. 부친은 투자 회사를 통해 기술경영을 접목하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쌓을 것이라 판단했다. 이를 국내 제조업과 다시 연결하면 국내 중견기업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길이라 여겼다.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2·3세 후계자들이 투자 회사를 찾아오고 있다. 부산, 울산을 시작으로 이제는 대구, 광주, 서울, 베트남 등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견기업 2·3세 경영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함께 지혜를 모으기 위해서다.

후계자들이 조직 외부에서 축적한 경험과 네트워크는 중견기업 혁신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우리를 중심으로 국내 중견기업 후계자들이 다양한 기술 분야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고, 이를 제조업과 연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창업가가 다져온 기존 전통기업을 혁신할 수 있는 촉매를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창업가가 일궈낸 과거의 경험은 후계자들이 준비하는 미래의 영역과 이어지고 있다. 앞 세대가 일궈온 경영환경을 다음 세대가 혁신하려는 시도다.


이런 시도가 가능한 것은 부친이 물려주고자 했던 삶의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후계자의 몫은 창업가가 보여준 경영자의 태도를 배우고 한편으로 새로운 시각으로 잘할 수 있는 것을 익히는 것이다. 경영 승계는 단순히 경제적 관점의 문제가 아니다. 고민을 함께 나누고 행동하면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후계자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201906호 (2019.05.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