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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여성 CEO 65인] 박정림 KB증권 사장 

증권업계 첫 여성 CEO 자산관리 최고 전문가 

올 초 국내 증권가의 스포트라이트는 온통 박정림 KB증권 대표이사 사장에게 쏠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 증권업 역사상 ‘첫 여성 CEO’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기 때문이다.

▎1963년 서울 출생, 서울대 경영학· 경영대학원 졸업, 정몽준 의원 비서관, 삼성화재 자산운용실 팀장, 국민은행 WM본부장, 국민은행 여신그룹 부행장, 2019년~ KB증권 사장 겸 KB금융지주 자본시장부문장. / 사진:중앙 DB
박정림 KB증권 사장은 CEO 선임 전부터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차기 사장 후보군으로 꾸준히 이름이 회자돼왔다. 지난해까지 KB금융지주에서 자산관리(WM) 부문장(부사장)을 맡고 있었고, KB증권에서도 부사장을 겸임하며 지주 전체의 WM 비즈니스를 이끌어왔던 터다.

뱅커의 필수 덕목 중 하나인 마당발 인맥은 박 사장의 강점으로 평가된다. 1986년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은 체이스맨해튼은행(현 JP모간체이스은행) 서울지점이었다. 이후 대학원 진학과 결혼·육아로 회사를 떠났던 박 사장은 지인 소개로 국회의원 비서관으로 일하게 된다. 1992년 당시 정몽준 통일국민당 의원 사무실이었다. 박 사장은 “정책 수립과 대관 업무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며 이후 민간 부문에서 일하고 싶은 욕심에 다시 금융계에 발을 디뎠다고 말했다. 1994년 옛 조흥은행이 세운 조흥경제연구소에 책임연구원으로 들어간 박 사장은 이때부터 리스크 매니지먼트 전문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1999년 삼성화재 자산운용실을 거쳐 2004년부터 국민은행에 몸담았다.

KB증권은 지난 2017년 현대증권과 KB투자증권의 합병 직후 투자은행(IB)과 WM 부문을 책임지는 각자 대표 체제를 유지해왔다. 박 사장 선임으로 합병 2기 시대를 연 KB증권은 IB 부문에 김성현 사장을 선임함으로써 업계 예상을 깨고 올해도 각자대표 체제를 유지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한국 증시가 오랜 기간 ‘박스피’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이, 증권사의 전통적 수익원인 브로커리지(주식 위탁매매)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에 다다른 상황이다. 업계가 리테일 영업에서 벗어나 WM과 투자은행(IB), 자기자본투자(PI) 등으로 영업 전선을 확대하는 데 올인하는 배경이다. WM과 리스크 매니지먼트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로 통하지만, 은행 경력이 대부분인 박 사장을 배려하고, 안정적인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기 위한 지주 차원의 인선이 박 사장과 김 사장의 각자대표 체제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박 사장은 금융지주 시절부터 자타 공인 국내 최고의 WM 스페셜리스트로 통한다. 평소 뛰어난 업무처리 능력과 폭넓은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의 신임도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윤 회장과 박 사장은 서울대 경영대학원 선후배 사이기도 하다. 올해부터는 KB증권 사장 취임과 동시에 금융지주 내 자본시장부문장도 겸임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허인 KB국민은행장에 이어 벌써부터 차기 행장 하마평에 오를 만큼 탄탄한 경영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박 사장 취임 이후 KB금융지주와 증권업계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경영 성과, 즉 실적 추이에 쏠렸다. 지주와 증권에서 회장을 보좌하던 참모 역할에서 벗어나 CEO로서 홀로서기 시험대에 오른 만큼, 이전보다 나은 성과가 가장 큰 숙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내 증시는 ‘검은 10월’로 불릴 만큼 극심한 침체를 겪었다. 더욱이 지난해 4분기 KB증권은 자기자본 4조원 이상 초대형 IB 중 유일하게 적자 전환하며 어닝쇼크를 기록했다.

박 사장 취임 이후 달라진 KB증권의 분위기는 실적에서 드러난다. 지난해 2분기 누적 기준 3조4414억원이었던 매출액은 올해 2분기까지 4조5261억원으로 31.5%나 뛰어올랐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153억원에서 2181억원으로, 순이익은 1589억원에서 1804억원으로 각각 1.3%, 13.5% 상승했다. 악화된 실적을 회복하겠다는 경영 목표가 어려운 시장 상황에서도 실현되고 있다는 평가다.

실적으로 경영능력 증명한 스페셜리스트

박 사장의 주특기가 발휘된 WM 부문의 성장세가 특히 눈에 띈다. 2018년 말 20조4000억원이었던 고객 금융상품 잔고는 2019년 6월 말 기준 25조6000억원으로 6개월 만에 약 25%나 증가했다. 2017년 1월 통합 KB증권이 출범할 당시 12조8000억원과 비교하면 채 3년이 안 돼 고객 잔고가 두 배가량 늘면서 드라마틱한 자산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박 사장은 취임 이후 성장성이 저하된 국내 시장에서 벗어나 해외 우량자산 투자 비중을 높이는 전략을 강도 높게 추진해왔다. 해외 주요 4개국 거래 시 붙던 최소수수료를 폐지하고, 환전수수료 없이 원화로 해외 주식 거래가 가능한 ‘글로벌원마켓’ 서비스 등이 대표적이다. 글로벌원마켓 서비스를 이용하면 한국·미국·중국·홍콩·일본·베트남 등 글로벌 6대 시장의 주식을 국내 주식 거래하듯 쉽고 편하게 거래할 수 있다. 올 1월 출시 이후 8월 말 현재 이용자가 6만 명을 넘어서며 시장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실적 관리 외에 경영관리 효율화와 디지털 혁신 등도 박 사장 취임 이후 달라진 KB증권의 모습이다. KB증권은 2017년 말부터 RPA(Robotic Process Automation, 프로그래밍을 이용한 업무 자동화)를 도입해 130여 개 업무에 적용하고 있다. 연 환산 업무시간 기준으로 약 3만5000시간(8월 말 기준)을 절감했다는 자체 평가 결과도 나왔다. 박 사장은 RPA 적용 업무를 확대해 직원들의 스마트 워킹 문화를 확산하기 위한 다양한 계획을 추진 중이다.

증권업계 최초로 직원 대상 사내 업무 응대 인공지능 챗봇인 ‘톡깨비(Talk KB)’가 좋은 예다. 톡깨비는 자연어 처리 기술과 머신러닝 기반 학습 알고리즘을 활용해 고객·계좌관리, 출납, 매매 등 영업점 내 모든 업무에 답변을 해준다.

사석에서 만난 박 사장은 “서울대 경영학과 ‘똥파리(82학번의 별칭,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 김신 SK증권 사장이 동기동창이다)’ 출신들의 활약이 대단하다”는 말에 “나를 비롯해 모두가 ‘스쿨스마트’보다는 ‘스트리트스마트’에 가까웠다”며 웃었다. 박 사장 역시 외국계 은행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우정사업본부, 기획예산처, 국민연금 등에서 리스크 매니지먼트 업무를 익혔고, 이후 국회의원 비서관, 연구원, KB국민은행에 이르기까지 업계 누구와 견줘도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여성 특유의 소통능력과 마당발 네트워크, 다양한 경험치로 쌓아온 내공이 KB증권의 실적을 견인하고 있다”며 “박 사장의 리더십이 달라진 KB증권을 이끌고 있다”고 평가했다.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

201910호 (2019.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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