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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 대기자의 ‘CEO의 서재를 위한 비즈니스 고전’(9)]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고품질의 비밀을 말하다 

 

1974년 출간돼 세계 23개 언어로 번역돼 600만 권 이상 팔려 나간 책이 있다. 정신병력 탓에 과거를 잃어버린 아버지와 정신병 초기 증세를 보이는 아들이 17일간 모터사이클 여행을 떠난다. 미국 미네소타에서 캘리포니아까지. 저자 로버트 피어시그의 자전적 이야기로, 여행으로 풀어낸 철학서다.

▎사진:이언 글렌디닝
“목적지 도착이 아니라 여정이 중요하다”라고 『황무지』의 저자 미국 태생 영국 시인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1888~1965)이 주장했다. 아니 말했다.

엘리엇의 주장에 손을 들어준다면, ‘좋아요’를 누른다면, 부귀영화건 명문대 입학이건 대기업 입사건 장차관이라는 감투건 국회의원 당선이건 임원 승진이건 고급 아파트 입주건··· 우리 회사가 우리나라 100대 기업이나 전 세계 100대 기업이 되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무엇이건 목표 달성은 중요하지 않다. 과정이 중요하다.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 전부다.

여행은 과정이다. 여행과 여정은, 인생을 가장 잘 표현하는 질리지 않는 은유(metaphor)다. 그래서 ‘인생은 여정이다’라는 말은 아무리 많이 사용해도 클리셰(cliché)가 아니다. 언어의 세계에서 아주 예외적인 경우다. 보통 자주 사용하는 표현은 상투적이다. 클리셰는 독자의 고개를 돌리게 한다.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가치에 대한 탐구(Zen and the Art of Motorcycle Maintenance)』(1974)는 17일간의 여행을 배경으로 삼는다. 미네소타에서 캘리포니아로 떠난 여행이다. 『갈매기의 꿈(1970)』의 저자인 리처드 바크가 “최면술사의 크리스털… 다이아몬드로 반짝이는(A hypnotist’s crystal… sparkled with diamonds.)”이라고 평한 책이다.

여행은 우주가 인간에게 준,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우리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여행을 한다. 역사책을 읽으며 과거로 여행 간다. 과학소설(SF)을 읽으며 미래를 방문한다. 우리가 사는 집에서 단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지금 우리는 ‘우주지구선(Spaceship Earth)’이라는 배를 타고 우주를 여행하고 있다.

여행은 쓸모가 많다. 여행을 통해 우리는 과거와 화해하고 현재와 화해하며 미래를 꿈꾼다. 저자도 과거의 자신과 화해하고 아들 크리스와 화해했다.

향년 88세로 별세한 로버트 피어시그(1928~2017) 또한 여행이 낳은 작가였다. 7세 때 측정한 그의 IQ는 170이었다. 너무 좋은 머리 때문이었는지 인생 굴곡이 순탄치 않았다. 학교 다닐 때 두 번 월반했지만 왕따였다. 피어시그는 그를 이해할 수 없는 범인(凡人)들과 자주 충돌했다.

성공하는 사람은 찬스에 강하다. 기회를 좀처럼 놓치지 않는다. (거꾸로 볼 수 있다. ‘기회의 신(神)’은 자신이 성공시키려고 마음먹은 사람을 찾아가 옴짝달싹 못하게 묶은 다음, 성공의 길로 이끈다.)

‘기회의 신’의 부름을 놓치지 않으려면 영감(靈感)에 사로잡힐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영감은 “신령스러운 예감이나 느낌”, “창조적인 일의 계기가 되는 기발한 착상이나 자극”이다.

피어시그는 ‘한국에서 받은 영감을 놓치지 않은 세계적인 저술가’라고 할 수 있다. 과장도 거짓도 아니다. 그는 1947~48년 18~19세 때 14개월간 한국에서 미군으로 근무했다. 우리나라 해방 이후, 한국전쟁 이전이었다. 그는 한국의 담벼락(Korean wall)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한국 담벼락은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의 기원 중 하나다.

한국 노동자에게 영어를 가르쳤던 미군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한글판 표지
피어시그는 2006년 영국 명품지 가디언과 인터뷰할 때 다음과 같이 한국 근무를 회상했다. 당시 대부분의 미군은 한국인을 기회 있을 때마다 구타했다. 그래서 한국인은 미군을 싫어했다.

피어시그는 부대에서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한번은 노동자들에게 “영어는 단지 26개 글자로 전 우주를 표현할 수 있다”라고 했더니 노동자들은 “아니오(No)”라고 했다. 한국인 노동자들의 “노”라는 답은, 피어시그에게 ‘질문’이었다. 한국 노동자를 통해 동양과 서양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생각하기 시작했다.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은 121개 출판사에게 출간을 거절당했다. 한 군데서 연락이 왔고 현재까지 약 600만 부가 팔렸다.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을 분류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자전적 소설이자 철학소설, 문학서이자 철학서다. 혹은 둘 다 아니다. ‘인생 기행문’이다. ‘개똥철학서’ 인지도 모른다. 저자에 따르면 “관념에 관한 한 권의 책이자 사람들에 관한 또 한 권의 책”이다. 인식론·철학사·과학철학 등 철학에 기반한 경영철학서라고 볼 수도 있다. 경영의 철학적 기초를 제시한다. 아르헨티나 혁명가 체 게바라(1928~1967)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2004)를 떠올릴 수도 있다.

‘나(I)’라는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지옥은 나다(Hell is me)’라고 할 수 있다. 지옥은 싸움터다. 우리의 마음과 뇌 속에서 의식과 무의식이 다툰다. 의식이나 무의식 속에서도 ‘나’는 결코 단일하지 않다. 나와 타인의 싸움보다 ‘내 안의 또 다른 나’들 사이의 싸움이 오히려 더 처절하다.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에서 저자는 ‘과거의 나’인 ‘파이드로스’와 ‘현재의 나’, 그리고 어쩌면 ‘미래의 나’인 아들 크리스가 싸운다. 삼자는 결국 서로 이해하고 화해한다.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은 ‘복원’하는 작품이다. 잃어버린 내 과거를 복원하고 나와 아들 사이의 관계를 복원한다. 또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에게 밀렸기 때문에 잊힌 고대 그리스 소피스트 전통을 복원한다. 패배한 소피스트들은 오늘날에도 궤변론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다.

한글판 799페이지, 영문판 문고판은 540페이지인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은 책 제목과 달리 선(禪)이나 모토사이클과 별로 관련 없는 책이다.

잃어버린 과거와 부자 관계를 복원하는 얘기


▎서양미술사에서 고품질 작품으로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의 조각상. 루이지 팜팔로니(1791~1847) 작품. / 사진:피터 K 버리언
선(禪)에 대해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은 이렇게 말한다. “산의 정상에서 여러분이 발견할 수 있는 선(禪)은 오로지 여러분이 정상으로 가지고 올라간 선이다.(The only Zen you can find on the tops of the mountains is the Zen you bring up there.)” (이런 식의 대꾸도 가능하겠다. 저자는 선에 대해 이해가 부족하다. 선은 어떤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게 아니다.)

저자 피어시그는 부처를 이렇게 이해한다. “신성한 자인 부처는 산의 정상이나 꽃잎에서와 마찬가지로 디지털 컴퓨터의 회로이건, 모터사이클의 자동변속기 기어에서건 편안하게 머문다. 그렇지 않다고 다르게 생각하는 것은 부처를 비하하는 것이요 스스로를 비하하는 것이다.(The Buddha, the Godhead, resides quite as comfortably in the circuits of a digital computer or the gears of a cycle transmission as he does at the top of the mountain, or in the petals of a flower. To think otherwise is to demean the Buddha?which is to demean oneself.)”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은 경영과도 ‘일차적’ 연관성은 없다. 하지만 『논어』나 『손자병법』이 경영 고전이라면, 이 책 또한 경영학 고전이다. 경영에 영감을 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의 핵심 주제는 퀄리티(Quality), 즉 질(質, “사물의 속성, 가치, 유용성, 등급 따위의 총체”)이다.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는 퀄리티·질보다는 고품질(高品質, “물품의 성질과 바탕이 우수하고 좋음”)을 다루는 책이다.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에서 퀄리티의 법칙을 몇 가지 뽑아낸다면 다음과 같다.(저자는 퀄리티의 법칙을 뽑아내는 것을 싫어할지도 모른다.)

퀄리티라는 것은 존재한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것들은 다른 것들보다 낫다. 즉, 더 많은 퀄리티를 지니고 있다.(Some things are better than others, that is, they have more quality.)”

퀄리티는 통상적인 인위적 방법으로 만들 수 없다. 뭔가를 인위적으로 만들려면 그 뭔가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퀄리티는 정의할 수 없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퀄리티를 정의할 수는 없지만, 여러분은 퀄리티가 무엇인지 안다.(Even though quality cannot be defined, you know what quality is.)”

퀄리티는 지식이나 믿음을 떠난 체험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퀄리티는 지적인 관념으로부터 독립적이며, 지적 관념에 선행하는 직접적인 체험이다.(Quality is a direct experience independent of and prior to intellectual abstractions.)” “선을 풍부하게 체험한 사람에게 그가 선(禪)을 믿는지 부처를 믿는지 묻는 것은 우스꽝스럽다. 그가 공기나 물을 믿는지를 묻는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퀄리티는 여러분이 믿는 뭔가가 아니라 여러분이 체험하는 뭔가다.(To an experienced Zen Buddhist, asking if one believes in Zen or one believes in the Buddha, sounds a little ludicrous, like asking if one believes in air or water. Similarly Quality is not something you believe in, Quality is something you experience.)”

퀄리티는 우리가 잘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기예(技藝)란 무엇이든 여러분이 잘하는 것이다. 무엇이든 여러분이 퀄리티와 더불어 할 수 있는 것이다.(Art is anything you can do well. Anything you can do with Quality.)”

퀄리티는 케어(care)다. 케어는 뭔가를 중요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케어와 퀄리티는 같은 것의 내적·외적 측면이다.(Care and Quality are internal and external aspects of the same thing.)”


[박스기사] 로버트 피어시그의 말말말…

“여러분이 더 많이 살필수록 여러분은 더 많이 본다.(The more you look, the more you see.)”

“과거는 오로지 우리 기억 속에 존재한다. 미래는 오로지 우리의 계획 속에 존재한다. 현재가 우리의 유일한 현실이다.(The past exists only in our memories, the future only in our plans. The present is our only reality.)”

“힘든가? 여러분이 올바른 태도를 지닌다면 힘들지 않다. 올바른 태도를 지니는 게 힘들다.(Is it hard? Not if you have the right attitudes. It’s having the right attitudes that’s hard.)”

“세상을 향상할 곳은 우선은 우리 자신의 가슴과 머리와 손이다.(The place to improve the world is first in one’s own heart and head and hands.)”

“인간이 종교를 발명하는 게 아니라 종교가 인간을 발명한다. 인간은 퀄리티에 대한 답들을 발명한다. 답들 중에는 인간 자신에 대한 이해가 포함됨다.(Religion isn’t invented by man. Men are invented by religion. Men invent responses to Quality, and among these responses is an understanding of what they themselves are.)”

“어떤 것들은 너무 작아 여러분이 간과한다. 어떤 것들은 너무 커서 여러분이 못 본다.(“Some things you miss because they’re so tiny you overlook them. But some things you don’t see because they’re so huge.)”

“여러분이 가는 곳과 여러분이 있는 곳을 보면 전혀 앞뒤가 맞지 않다. 하지만 여러분이 있었던 곳을 뒤돌아보면 패턴이 발견된다.(You look at where you’re going and where you are and it never makes sense, but then you look back at where you’ve been and a pattern seems to emerge.)”


※ 김환영은… 중앙일보플러스 대기자. 지은 책으로 『따뜻한 종교 이야기』 『CEO를 위한 인문학』 『대한민국을 말하다: 세계적 석학들과의 인터뷰 33선』 『마음고전』 『아포리즘 행복 수업』 『하루 10분, 세계사의 오리진을 말하다』 『세상이 주목한 책과 저자』가 있다. 서울대 외교학과와 스탠퍼드대(중남미학 석사, 정치학 박사)에서 공부했다.

201911호 (2019.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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