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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환 슈마커 사장 

미래 핵심 전력은 현장 직원 

지난 7월부터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있었다. 일본 본사가 지분 99.96%를 소유하고 있는 ABC마트가 표적이 됐다. 그 덕분인지 대항 업체로 토종 기업인 슈마커가 주목을 받았다. 특히 안영환 슈마커 사장은 ABC마트를 국내에 들여왔고, 신발 편집매장을 처음 만든 인물이다.

▎안영환 슈마커 사장은 “하루에도 수백 명의 고객을 상대하는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이야말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미래 엘리트”라고 강조했다.
“이런 식으로 주목받는 건 싫습니다. 이미 슈마커는 지난해와 거의 같은 수 매장으로 매출 두 배 성장을 기대합니다. 영업이익도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본의 아니게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터져 반사이익을 누린다지만, 3년 전부터 고객의 니즈를 좇아온 노력이 해가 갈수록 빛을 본 덕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안영환(57) 슈마커 사장이 말했다. 지난달 강남구 본사 사무실에서 만난 안 회장은 자신이 키운 ABC마트를 보는 심경이 복잡해 보였다. 그는 신발업계에 31년간 몸담으면서 사실상 신발 편집매장이란 유통 형태를 한국에 처음 소개한 사람이다. 2002년 일본 ABC마트가 한국에 상륙한 것도 그의 작품이다. 현재는 토종 업체 슈마커와 영국 신발 편집매장 브랜드인 JD스포츠를 이끌고 있다. 불매운동과 관련해서 그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으로 슈마커가 업계 1위가 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그런 일만으로는 하루가 다르게 마음을 바꾸는 소비자를 사로잡을 수 없다. 토종 업체라도 서비스나 품질 경쟁력이 떨어지면 언제든 불매운동이 무색해지는 게 시장이고, 냉혹한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그를 만난 건 불매운동 사태 때문이 아니다. 안 사장은 1988년 ㈜선경(현 SK네트웍스) 신발사업부에 입사해 2002년 ABC마트코리아를 창업했다. 2016년부터 현재까진 슈마커그룹(SMK T&I, JD스포츠코리아)을 이끌고 있다. 백화점이나 브랜드숍이 전부였던 국내 신발 유통체계를 완전히 바꾼 인물이다. 경영능력 또한 업계에선 꽤 유명하다. ABC마트를 이끈 10년간 회사는 매년 40%씩 성장했고, 슈마커를 맡은 지 3년이 지난 지금, 매년 거의 두 배씩 성장한 회사는 올해 매출 2000억원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만의 ‘밑그림’을 착실하게 그려온 셈이다. ABC마트에서 한국 신발 편집매장 유통의 가능성을 내다봤고, 슈마커에선 고객과 시장이 만나는 접점을 넓혀가고 있다. 두 기업에서 시작을 겪었던 안 사장의 삶엔 더 나은 시스템이나 제품보다 사람이 더 많이 남았다. 경영 비결을 꼽는 물음에도 역시 사람이란 답이 돌아왔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탁월한 성장 비결을 ‘사람’으로 꼽은 이유는.


사실 슈마커에 오고 나서야 깨달았다. 첫 회사에서 접한 신발이 내 인생에 전부가 될 줄은 몰랐다. 계속 달려왔고, 또 성장해왔다. 30년 넘은 경력과 추진력, 감각이 지금의 나를 만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언젠가 매장에서 고객과 대화하는 직원을 물끄러미 본 적이 있다. 고객의 목소리, 움직임, 눈짓 하나하나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반응을 시시각각 살피고 있었다. 아차 싶었다. 더 좋은 신발을 더 싸게 파는 게 아니라 고객을 설득하는 게 내 일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뭔가 깨달음이 있었던 것 같다.

맞다. 고객의 소비 욕구를 충족해주며 사는 업에 종사하면서 정작 내가 데리고 있는 직원을 제대로 살폈는지 의문이 들었다. 하루에도 고객 수백 명을 상대하는 최전선인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이야말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인재였다는 것도 뒤늦게 깨달았다. 사람을 상대하는 노련한 감정 컨트롤러들이 한층 더 복잡해질 소비시장을 잘 이해하는 인력으로 성장할 것이란 확신도 들었다. 이들은 물건을 살까 말까 1초에 수십 번 고민하는 고객의 마음을 잡기 위해 종합적으로 사고하는 과정을 수년간 단련하고 있었다.

인사시스템을 바꿨다고 들었다.

모든 게 달라져야 했다. 그때까진 대다수 직원이 현장 영업직을 꺼렸다. 본사 직원이 현장에 가길 꺼린다면 반대로 현장 직원에겐 본사가 큰 벽으로 느껴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간 제품과 유통망, 생산, 브랜드만 생각했는데 뭔가 큰 걸 놓친 기분이었다. 그래서 본사와 현장 근무를 통합해버렸다. 매장 직원이 곧 본사라는 생각으로 현장 직원에게 자율권을 줬다. 현장 직원이 충분한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는 다양한 수수료 체계(일반수수료, PB판매 장려 수수료, 급여지원금 등)도 만들었다.

지원자가 늘었겠다.

당연하다. 현장에서 뛰는 일은 고난도 업무다. 당연히 그만한 보상을 받아야 했다. 단지 이런 깨달음이 늦었던 것 같아 아쉬울 따름이었다. 직원들이 일손이 달리면 아르바이트를 둬도 된다. 이렇게 작은 매장을 순수 운영해볼 수 있도록 기회를 줬다. 사실상 사장이 된 거다. 본사는 이들을 철저히 지원하는 시스템으로 탈바꿈했다. 그들 위에 군림하려고 있는 조직이 아니다. 현장 엘리트를 위한 지원 조직임을 강조했다.

단순히 돈을 더 주거나 자율성을 주는 건 프로세스의 효율성과는 별개 문제 같다.

중요한 지적이다. 대다수 기업이 비슷한 제도를 실행해 효과를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매장 직원이 종합적인 사고 능력을 키우거나 현장 서비스 노하우를 진화시키려면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게 선행돼야 한다. 매장에 가보면 진열대에 신발이 깔끔하게 정리돼 있지만 모든 사이즈가 있는 건 아니다. 그래서 따로 창고를 두어 고객이 찾을 때마다 드나드는데 그 횟수가 하루에 적어도 1000여 번이 넘는다. 루틴한 일부터 줄이기로 했다. 그래서 매장마다 소팅(분류) 시스템을 도입해 입력하면 그 사이즈가 창고에서 매장으로 옮겨지게 했다. 단순한 일부터 하나씩 없앤 거다. 현장과 본사를 막론하고 직원들이 안전하고 계층이 없다고 느끼는 게 중요하다.

조직도 많이 달라졌나.

많이 바꿨다. 매장은 어쩔 수 없지만, 본사 근무 방식은 확 다 바꿔버렸다. 신발 편집매장 유통기업이라고 하면 다들 매일 술 접대에 전투적인 영업에 매달리는 줄 안다. 내가 회사 생활을 했던 1980~90년대 얘기다. 세상이 달라졌다. 회사를 인수한 후 영업본부장부터 불러서 6시면 다 퇴근시키고, 혹여 회식이 필요해도 7시 이전에 끝내라고 했다. 영업부뿐만 아니라 전사로 확대 적용했다. 일과 여가를 구분하지 못하는 게 더 큰 문제다. 격주로 3일 휴무제도 도입했다. 집중근무를 하는 게 훨씬 효율이 높다.

직원들의 생각도 많이 달라졌겠다.

이 회사에서 일하면 10년 후 뭐가 돼도 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었다. 단순히 유학을 가고, 전문직이 되는 것만이 사회적 성공이 아니라 이곳에서 사장처럼 매장을 경영해보고, 돈도 잘 벌고 나중에 독립해서 CEO가 될 수 있는 능력자로 거듭날 수 있다는 희망 말이다. 상생이 별거겠나. 일단 성과가 있다면 직원과 나눠야 하고 그들부터 사로잡아야 한다. 직원들과 고객은 다른 세상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다. 결국 같은 하늘 아래 사는 인간이다. 갖고 싶고, 보기 좋다고 느끼는 것들이 조금도 다르지 않다.

요즘 시장 트렌드가 너무 빨리 변하지 않나.


CEO 입장에서 단순히 세상이 변했다고 탄식할 문제가 아니다. 특히 신발을 파는 시장은 더 그렇다. 자동차나 부동산은 워낙 고가라서 상품을 더 꼼꼼하게 따져보는 고관여 상품이다. 그런데 신발은 특이하게 자동차나 부동산보다 훨씬 값이 싼데도 고관여 상품으로 분류된다. 취향도 다양하다. 예를 들어 장갑을 살 때는 그냥 손을 따뜻하게 하는 제품을 찾는데, 운동화는 그 종류를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운동하는 목적도 있지만, 수집하는 이들까지. 참 까다로운 상품이 아닐 수 없다. 초기 대리점 체제일 때 쉽게 보고 덤벼들었다가 재고를 처리하지 못해 망하는 사업주가 많았다.

슈마커는 100% 직영인가.

그렇다. 슈마커를 인수할 때만 해도 대리점 체제였다. 그러나 대리점주들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젊은이들 취향을 잡을 수 있었겠나. 분명, 이 제품이 잘 팔릴 거라 생각하고 발주했는데 재고가 쌓이기 일쑤였다. 큰 그림을 봐야 하고 지역마다 다른 특성과 소비층을 잡아야 하는 데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직영으로 가려면 본사의 과감한 투자와 결정이 있어야 한다.

대량 장기 유통이 쉽지 않은 게 신발이라 들었다.

맞다. 패션잡화 유통 분야가 CRM(고객관계관리) 유혹이 큰 곳 중 하나다. 고객 정보를 탈탈 털어서 뭔가 취향에 맞는 물품을 계속 추천해주고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다 고객이 실제 좋아하지도 않은 제품을 가지고 마진을 더 내겠다며 대량 주문 시스템과 연계해버리면 낭패를 보기 쉽다. 2000년 대 초반만 해도 이걸 연계해서 뭔가 해볼 생각도 못 했다. 지금이야 매장마다 고객 가입을 유도하고 사는 제품과 재고관리를 할 수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신발이 고관여 상품이긴 하나 CRM을 활용할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과거 데이터가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정말 어려운 시장 같다.

정말 진땀 나게 하는 시장이다. 팔릴 것 같으면서도 끝까지 안 팔리는 게 있다. 가격과 별점 후기가 최고인 시대도 아니다. 학생들만 해도 친구가 나이키를 신었다고 해서 우르르 따라 신는 세상은 지났다. 당장 진짜 운동에 필요한 신발을 찾는 고객, 변신을 시도하려는 고객, 다른 브랜드를 이용하려는 고객, 그냥 예뻐서 소유하려는 고객 등. 돈을 얼마나 어떻게 쓸지 방향성도 모두 다르다. 그래서 매장을 타깃화해 나누기로 했다. 영국 프리미엄 신발 편집숍 JD스포츠를 합작으로 들여온 이유다. 저가 운동화부터 고가의 한정판 신발까지 종합적으로 아우르는 유통 환경으로 나눠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온라인 쇼핑몰도 대대적인 개편을 계획 중이다. 또 사내 스타트업을 통해 모바일 시장을 더 활성화할 유통 모델도 선보일 예정이다.

업계 1위 ABC마트와의 경쟁도 불가피하겠다.

당연한 얘기다. ABC마트만 생각하면 아직도 심경이 복잡한 건 어쩔 수 없다. 그간 여러 매체를 통해 억울함을 호소해왔고, 회사 측과 법정 싸움에 휘말릴 정도로 뒤끝은 좋지 않았다. 내가 죄가 있다면 사람을 너무 믿었고, 회사 일을 사랑했다는 점이다. 2014년, 2015년 법정 공방이 이어가면서 이코노미스트와도 인터뷰하고 참 다사다난했던 시간을 보냈다. 마음의 상처도 꽤 깊었지만, 사업가가 언제까지 과거에 매몰될 수는 없지 않나. 이제 ABC마트는 시장 내 경쟁자고, 선의의 경쟁을 통해 고객에게 한 발 더 다가가는 게 우선이라고 본다.

인생의 절반을 신발과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시절 선망하던 대기업에 들어가서 신발 부서를 택했다니 놀랍다.

아직도 수화기 너머로 들리던 아버지 목소리가 생생하다. “신발부? 신발 해서 우째 살라고?” 입사 당시가 1988년, 이보다 3년 앞서 한국 대표 브랜드 ‘프로스펙스’의 국제상사가 망했다. 신발 공장이 몰려 있던 부산 지역은 초토화됐다. 그런데 아들이 제일 잘나간다는 선경그룹(현 SK그룹)에 들어가 신발부를 지원해 부산으로 내려오겠다고 하니 다그치듯 나를 채근했다. 아버지 걱정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아버지 역시 신발 제조, 도매업에 종사했던 이른바 족장이(당시 신발업 종사 직업군을 지칭하는 말)였으니 말이다. 얼마나 싫었을까. 하지만 난 신발이 반드시 사양 산업의 굴레를 끊고 성장할 수 있는 분야라 확신했고, 만 30세에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의 길로 들어섰다.

그 과정에서 에피소드도 많았겠다.

몇 날 며칠을 얘기해도 부족하다. 신발 경력 30년, 회사 창립(슈마커) 20년을 기리는 뜻에서 그간의 일을 에세이처럼 기록해두기도 했다. 이렇게 경험이 많아 좋은 건 어떤 위기에도 중심을 잘 잡을 수 있다는 점이다. 별의별 일을 다 겪고, 폭풍 같았던 홍역을 치르고 나니 의사결정 상황에서 개인의 욕망을 앞세우지 않게 됐다. 사심을 빼니까 나도 직원도 의견을 자유롭게 낼 수 있었다. ‘뭔가’ 나만의 이익을 앞세우는 순간 조직 어딘가에선 균열이 일어날 거라 믿는다.

사실 인터뷰에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얘깃거리가 많았다. 30년 신발쟁이로 살아온 안 회장이 걸어온 길은 그만큼 파란만장했다. 세월과 함께 성숙해진 그는 몇 년 전보다 훨씬 더 단단해져 있었다. 특히 IT 경험으로 이전 세대가 구가했던 하드웨어 사업이 무너지고, 폐쇄적인 경계가 사라진 시대에 거는 기대가 컸다. 아직도 시장은 백지 같다는 안영환 슈마커 회장은 밑그림을 살짝 보여주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젠 우리가 온라인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전체 유통의 30% 이상이 온라인에서 이뤄집니다. 백화점 모노숍이나 한 벤더가 절대 잡을 수 없는 시장이 된 겁니다. 아직 시장이 제대로 열리지도 않았어요. 1988년 종합상사에 처음 발을 들였던 때만큼 가슴이 뜁니다. 유통은 플랫폼이고 플랫폼 사업이 곧 유통이죠. 내가 가진 제품과 브랜드를 독점하는 게 아니라 서로 풀고 엮고 품는 겁니다. 결국 파이를 키우는 거죠. 글로벌 시장을 누볐던 경험을 이제 해외 시장 개척에 쏟을 겁니다. 일종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죠. 채색이요? 현장에서 단련된 직원들 몫입니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사진 지미연 기자

201912호 (2019.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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