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진호의 ‘음악과 삶’] 공정하지 못한 삶, 그리고 음악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와 같은 정치적 이상을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상을 실현하는 일은 무척 어렵다. 인간의 역사는 대체로 이런 이상과 거리가 있었다. 음악가들의 삶 역시 그랬다.

▎1861년 파리 체류 시절의 여윈 바그너. 옷을 여러 개 껴입은 모습이다. / 사진:wikipedia
[아마데우스]는 평범한 이들의 대표자 살리에리가 천재 모차르트에게 시기심을 가졌다는 내용을 다룬 영화다. 이탈리아 사람 안토니오 살리에리는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반까지 오스트리아 궁정음악가로 활동했다. 모차르트를 돕기도 했고 시기하기도 했던 그가 영화에서 그려진 것처럼 모차르트를 질투하여 파멸로 이끌었을까. ‘모차르트 살해자 살리에리’라는 관념은 러시아의 문호 푸시킨의 희곡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에서 처음 제시된다. 이후 러시아 작곡가 림스키 코르사코프는 이 희곡을 오페라로 만들었고, 이런 전통이 [아마데우스]로 이어진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이야기와 관련해 ‘살리에리 증후군’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이것은 범재이며 2류인 사람들이 천재이며 1류인 사람들에게 느끼는 시기심을 표현한다. 살리에리가 정말로 모차르트를 죽게 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모차르트가 프랑스혁명으로 뒤숭숭했던 1791년 당시 비밀경찰 국가 오스트리아에서 35세 나이에 독살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신빙성이 있는 것처럼, 우리가 모르는 어떤 음모에 살리에리가 가담해 완전범죄를 저질렀을 수도 있다. 그 가능성이 크지는 않다.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의 재능을 시기했고, 모차르트는 살리에리의 현실적 성공을 시기했다. 두 사람에게 세상은 서로 다른 맥락에서 - 공평하지 못했고 정의롭지도 못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을 지켜봤던 어떤 흙수저 음악가가 있었다고 치자. 그의 눈에 두 사람은 금수저였고 그들의 대립은 금수저들 간의 것이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아버지는 잘츠부르크 궁정음악가로 재직했던 레오폴드 모차르트였고, 살리에리는 부유한 상인 계급 출신이었다. 레오폴드의 조기교육과 아들 모차르트에게 전해준 선천적 음악성은 당대의 흙수저 음악가에게는 넘을 수 없는 벽이었을 것이다. 살리에리는 1825년 사망했고 그때까지 비엔나의 궁정에서 잘 살았으니, 1827년 사망한 베토벤의 적이기도 했다. 베토벤도 모차르트처럼 비엔나에서 활동했고, 궁정음악가라는 안정적 직장을 원했지만 살리에리의 존재로 인해 꿈을 접어야 했다. 베토벤에게도 세상은 공평하지 못했고 정의롭지도 못했다.

자신의 성공을 가로막았던 대상에게 시기심을 가졌던 천재적 작곡가가 많았다. 리하르트 바그너는 19세기 독일의 오페라 작곡가로, 모차르트보다 더 참담하게 살았다. 오늘날 라트비아 수도인 리가를 비롯해 파리, 스위스의 몇몇 도시는 거장이 도망 다녔던 곳이다. 바그너는 빚, 정치적 수배 등을 이유로 평생을 떠돌아다녔고, 그런 삶 속에서 아내가 다른 남자와 도망가기도 했다. 파리에서의 삶은 특히 극한적이었는데, 한겨울 내내 그 어떤 난방도 없이 추위에 떨며 살아야 했다. 그런 그에게 유대인 자코모 마이어베어의 성공은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진지하지 못한 대중성도 능력


▎영화 [아마데우스] 포스터 / 사진:wikipedia
자코모 마이어베어는 바그너보다 한 수 아래 작곡가였지만 19세기 중반에는 신화적이었다. 큰 성공에는 배경이 있었다. 1830년 입헌 혁명 이후 유대인 신흥부자들이 서서히 자리를 잡은 파리에서는 유대인 예술가들의 예술적 창작과 발표를 위한 좋은 장소로서 살롱이 생겨났고, 살롱 음악회는 유대인 음악가들이 데뷔해 성장하는 발판이 되었다. ‘살롱(salon)’은 ‘응접실’이란 뜻의 프랑스어인데, 당시에는 상류사회 부인들이 열었던 사교의 장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혁명과 함께 대중적 낭만주의가 파리의 지배적 예술경향이 되었고, 마이어베어의 극적인 오페라들은 이런 흐름에 잘 부합했다. 너무 진지하지도 않았고 너무 어렵지도 않으면서 적당히 화려한 그의 관현악법은 파리 대중이 쉽게 수용할 수 있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바그너의 음악은 파리 대중은 물론 독일 대중에게도 너무 진지하고 너무 어려우며 너무 긴 것으로 여겨졌다. 바그너는 이런 음악을 쓸 수밖에 없는 인물이었다. 르네상스형 인물이었던 그는 당대의 새로운 진보적 사상과 철학을 잘 이해할 정도로 지적 능력이 뛰어났고, 그의 오페라는 그런 그의 지적 능력을 잘 표현했다.

진지하지 못한 음악을 쓰는 것도 능력이다. 그런 능력이 없는 이들은 그런 능력을 바탕으로 성공하는 이들을 혐오할 수밖에 없다. 모차르트와 바그너에게 세상은 평등하지 못했고 공정하지 못했으며 정의롭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이들은 대개 울분을 토해낸다. 초연한 모차르트는 예외였지만 바그너는 이런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가 1841년에 쓴 『파리에서의 최후』라는 소설의 몇 구절을 소개해본다. “그곳(파리)에는 방탕의 늪과 진창이 있고 나는 침몰해 있었다. … 그곳에서 우리는 (마이어베어로 추정되는) 그 불쌍한 광대를 열심히 참배했다. … 불쾌함이 가득한 파리가 쓰레기 속에서 활활 타오른다면, 그 불길이 여기저기에서 차례로 옮겨 붙는다면, 그 불길이 감격스럽게도 도저히 청산 불가능해 보였던 부패한 도시를 다 불태워버린다면, 정신건강을 위해 얼마나 좋은 일일까? 나는 더는 혁명을 꿈꾸지 않으며 다만 파리가 홀라당 타버리기만을 기대하고 있다고 당신에게 분명히 말한다.” 1876년 작 [신들의 황혼]에서 바그너는 모든 신과 영웅이 수장되는 엔딩을 보여준다. 현실 세계에 대한 철저한 부정, 즉 라그나로크의 예술적 구현이다. 라그나뢰크(Ragnarök)는 북유럽 게르만족의 일파였던 노르드족의 신화다. 이것은 미래에 일어날 것이라 예언되는 일련의 사건들이다. 거대한 전쟁이 일어나 거의 모든 이가 사망하고, 최종적으로 세계가 물에 잠겨 멸망한다. 와중에 참된 인간성을 가진 두 명만 생존하여 그들로부터 참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이렇게 과격한 신화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아득한 옛적부터 인간의 삶이 평등하지 못했고 공정하지 못했으며 정의롭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영화 속 모차르트는 타고난 천재이며 그의 천재성은 전문적 음악가들에게도 놀라운 것이었다. [아마데우스]에서 살리에리를 찾아간 모차르트의 철부지 아내는 모차르트의 작업 방식을 털어놓는다. 그녀에 따르면 모차르트는 머릿속에서 완벽하게 완성한 음악을 악보에 그대로 적을 뿐이다. 놀랍도록 아름다운 음향이 적힌 악보에는 수정한 흔적이 전혀 없다. 모차르트의 후배였던 베토벤은 3번 [영웅] 교향곡의 2악장 주제를 위해 수십 장의 종이가 필요했었다. 처음 그의 머리에서 나온 악상은 많이 초라했지만, 수십 번의 수정을 거쳐 차츰 나아졌다.

천재성은 타고날 수도 후천적으로 계발될 수도


▎바그너의 [신들의 황혼]의 초연 당시 무대 스케치. 신들이 사는 발할성이 불타고 있다. 신들은 그 시대의 지배자들을 상징한다 / 사진:wikipedia
현실의 모차르트는 베토벤처럼 노력가였고 일 중독자였다. [아마데우스]의 모차르트는 실제와 많이 다르다. 모차르트는 그렇게 가난하지 않았으며, 꽤 도덕적이었고, 세상 돌아가는 방식을 잘 알았고, 그래서 순진하지 않았다. 당시 사람들의 경제적 삶과 비교하여 최고 수준의 부를 누리곤 했는데, 다만 그런 부를 지속적으로 유지하지는 못했다. 최초의 프리랜서 작곡가로서 다소 삶이 불안정했던 것이다. 제대로 된 모차르트 상을 알지 못했던 많은 이는 - 심지어 전문적 음악가들조차 - [아마데우스]에 묘사된 모차르트의 모습을 마음속에 담고 있었다.

천재성은 타고날 수도 후천적으로 계발될 수도 있다. 우리는 보통 후천적으로 계발된 천재성을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천재성을 후천적으로 계발’하는 일도 따지고 보면 선천적인 생물학적 특성이며 특수한 사회문화적 배경하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다. 아프리카 오지에 사는 원시인들의 사회에서는 ‘노력을 통한 능력의 후천적 계발’이라는 문화적 관념이 유행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관념이 보편적으로 퍼진 한국이나 미국 같은 사회에서, 그 관념에 충실한 실천을 할 수 있는 생물학적 특성, 이를테면 끈기 있게 의자에 앉아 무언가에 집중하고 반복적으로 노력할 수 있는 능력도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 김진호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 대학교의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매혹의 음색』(갈무리, 2014)과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갈무리, 2017) 등의 저서가 있다

201911호 (2019.10.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