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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행 스트리미 대표 

무법지대 암호화폐 시장, 규제화는 필연 

국회 정무위원회가 특금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암호화폐 시장을 둘러싼 최소한의 법적 울타리가 생긴다는 의미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 존재하는 암호화폐를 감출 수도 없는 법. 정부는 제도권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오래전부터 규제화를 주장해온 이준행 스트리미 대표를 만났다.

▎암호화폐 시장의 규제화를 주장하는 이준행 스트리미 대표.
“2006년 미국 하버드대학에 다닐 때였어요. 역사학에 관심이 컸기에 관련 수업을 듣고 있었습니다. 저명한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Niall Ferguson) 교수가 강의한 세계금융사가 지금도 기억나요. 당대에도 사기와 거품 등 많은 논란이 있던 유가증권과 주식시장의 출현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금융 시스템의 근간이 됐잖아요.”

이준행(35) 스트리미 대표는 학창 시절을 떠올렸다. 그로부터 8년 후 그는 비트코인을 접했다. 금융자산이라 불리며 전 세계를 휩쓸었고, 기존의 법 테두리에서 정의된 금융 자산과는 성질이 다른, 기술적으로 기존 금융 역사를 뒤흔들 만한 패러다임의 전환이었다. 이 대표는 “비트코인을 보면서 유가증권과 주식시장이 처음 등장했을 때처럼 변화가 똑같이 나타났다고 봤다”며 “화폐라는, 인류의 기가 막힌 발명이 가진 사회적 함의나 역사적 맥락을 공부한 입장에서 이 분야로 나가야 한다는 확신이 섰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장은 그가 기대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암호화폐 시장은 가격 급락과 함께 수많은 병폐를 양산했다. 비트코인은 탈중앙화된 시스템으로, 금융업의 본질을 어느 정도 구현하지도 견제하지도 못했다. 또 손쉽게 투자금을 모으려고 말도 안 되는 파생 코인까지 쏟아내며 시장은 어지럽게 흘러갔다.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속속 해킹을 당하면서 가상자산의 불법 유출 피해까지 속출했다.

관련 투자자 피해보상이나 보호 등을 규정한 제도도 마땅치 않았기에 해킹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들의 몫으로 남았다. 그렇다고 비트코인의 존재를 없던 일로 치부하기엔 이미 너무 커져버렸다. 암호화폐 정보업체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2019년 12월 17일 기준으로 시가총액만 146조원이 넘었다. 누군가는 자산 거래를 하고 있다는 뜻이지만, 여전히 ‘암호화폐는 사기’라는 편견이 팽배하다.

이 대표도 이런 상황을 모르지 않았지만 가는 길을 멈추지 않았다. 스트리미가 운영하는 암호화폐 거래소 고팍스는 자발적으로 국제표준화기구(ISO)와 국제전기표준회의(IEC)가 제정한 정보보호인증 ISO/IEC 27001을 획득했고,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의 정보보호인증인 ISMS(정보보호관리체계)도 받았다. 투자자 신원확인(KYC), 자금세탁방지(AML) 의무를 강화하고, 경찰청·한국핀테크산업협회·디지털포렌식학회 등 각종 기관과 협력해 불법 자금 거래 차단에 적극 나서고 있다. 최근 보안기술에도 일가견 있다고 알려지면서 80억원 규모의 제도권 투자도 받았다. 유경PSG자산운용이 리드한 이번 시리즈A 투자엔 미국과 유럽의 이름난 벤처캐피털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2월 16일 강남 본사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지난 2~3년간 파란만장했던 업계를 돌아봤다.

지난 2~3년간 암호화폐는 사회 광풍 같았다.

2015년부터 장기적인 관점으로 블록체인 사업을 준비하던 회사의 CEO로서는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암호화폐 광풍이 업계와 사회에 끼칠 역풍이 두려웠다.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 단계는 초기적인 수준인데 반해 당시에는 마치 암호화폐가 조만간 기존 금융 시스템을 완전히 대체할 것이라는 시장 분위기가 팽배했다. 암호화폐에 대한 “묻지마 투자”가 시작되었고 “묻지마 상장”을 한 특정 거래소들은 흥했다. 시세조종 행위와 암호화폐 다단계 사기가 수없이 벌어졌다.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인터넷 경제 공동체, 데이터 주권 등의 블록체인의 이상을 바라보고 달려온 초창기 업체들도 다 함께 사기꾼으로 치부되기 시작했다.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암호화폐보다 다른 걸 내세우면 부정적인 인식을 피해 갈 수 있지 않았을까.

스트리미는 개방형 블록체인 회사다. 즉, 암호화폐가 있는 블록체인이 세상이 바꿀 것이라고 믿고 그쪽 인프라를 발전시키는 목표로 한 길을 걸어왔다. 인류가 인터넷을 없애지 않는 이상은 암호화폐는 없앨 수 없다. 거래 인프라가 없어진다면 암호화폐는 대규모 암시장에서 거래될 것이고, 더 큰 사회문제를 야기할지도 모른다. 차라리 제도권으로 끌어내 투명하게 거래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 그래서 거래소 등록 요건 및 의무사항, 이용자 보호시스템 구축, 자금세탁 방지, 보안 시스템 구축 등 거래소 운영기준 요건을 만들어 제시해 왔다.

“규제와 원칙은 사회적 합의”

탈중앙화를 꿈꾼 암호화폐를 다시 규제한다는 게 아이러니하지 않나.

유가증권 시장도 제도화를 통해서 역기능을 제어하고 순기능을 취해왔다. 인터넷이 처음 등장했을 때에도 규제에 틀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저항이 있었고, 인터넷에 의해서 허물어진 나라별 경계 속에서 사회적 합의점을 찾는 논의를 해 나가고 있다. 적절한 규제와 원칙은 사회적 합의다. 암호화폐가 화폐로서 역할을 못 한다는 비판이 있기는 하지만 화폐와 닮은 점은 사회적 합의 그 자체라는 점이다. 화폐를 통해서 거래를 하고 그 약속이 지켜질 것이라는 암묵적인 합의와 믿음을 바탕으로 경제 공동체간 세대간 분업을 가능하게끔 해준 사회적 발명품이다. 국가 경제에서 정부는 매우 중요한 이해당사자이다. 주요 이해당사자로서 암호화폐라는 사회적 발명품이 보다 안전하고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쓰일 수 있는 방향으로 규제를 만드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암호화폐라는 아이템을 이용해서 소비자를 속여서 한탕 하려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런 와중에 누군가는 제대로 사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4년 11월에 처음 비트코인을 알게 되었을 때는 호기심으로 접근했고, 알면 알수록 더욱 깊게 들어오게 되었고, 2015년에 창업을 해서 지금은 거래소, 예치원 등 제대로 된 개방형 블록체인 인프라를 만드는 일에 “올인”한 상태이다. 지난 1년간 우리의 접근법을 특이하게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투자자를 만났을 때 “이 시장에서 고팍스의 접근법이 신선하기는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렇게 사업하면 안 된다”라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었다. 고팍스의 운영 원칙들이 과연 상식인지 아니면 우리나라 암호화폐 업계에서는 사업 생존의 문제인지 혼란스러운 시기도 있었다. 결과적으론 오기가 생기더라. 정도로 사업해서 결국 제도권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다.

경찰청이 믿는 암호화폐 거래소라고 들었다.

아마 불법으로 취득한 암호화폐를 경찰청이 적발해 위탁하는 거래소라 붙은 별명(?)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관련 업체 중 우리만 고소당한 적도, 해킹당한 적도 없다. 심지어 그 흔한 과태료 처분도 받은 적이 없다. 기술적으로도 보안기술이나 암호화폐 기술특허를 국내에서 제일 많이 가진 업체다. 시중은행도 문제가 생기면 우리한테 달려온다. 우리의 초기 투자자도 신한금융지주다.

암호화폐 거래소를 차린 이유가 뭔가.

거래소는 암호화폐 기술의 총체이며 가장 기본적인 인프라다. 글로벌 IT기업 출신 연구원, 사이버경찰청 출신 보안 전문가 등과 함께 그런 믿음에서 거래소 서비스를 시작했다. 사업 초창기인 2015년에는 암호화폐를 이용한 결제 및 송금 서비스인 ‘스트림와이어(StreamWire)’를 시작했다. 암호화폐를 이용하는 모델인 만큼 거래소에 대한 의존성이 생기는데 생각보다 인프라로써 거래소에 접근해서 운영하는 업체가 없었다. 그러던 중 세계 최대 거래소의 해킹 사건이 발생했다. 개방형 블록체인이 금융업의 보완재가 되기 위해서는 안정적이고 믿을 수 있는 인프라로서의 거래소가 필수적이다. 우리의 역할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2016년 암호화폐 거래소 ‘고팍스’를 준비하게 되었다. 투자금의 상당 부분을 보안기술 개발에 투자했다. 지갑 접근 권한, 내부통제 규정 등 내·외부 컴플라이언스 시스템도 공들여서 만들었다.

규제가 발목을 잡진 않았나.

2016년 4월 비트코인을 활용한 해외 송금 서비스를 출시하기 위해서 기획재정부의 외국환거래법 위반 가능성에 대한 유권해석을 요청했다. 국내에서는 은행이 송금의 주체이며 스트리미 또한 해외에서 라이선스를 갖췄기에 합법적인 모델이지만 유권해석을 해줄 수 없다는 의견을 받았다. 1년 동안 은행 리스크 부서, 기재부, 금융위 등을 만나러 돌아다녔다. 결국 이 서비스는 국내에서 출시하지 못 했다. 거래소의 경우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일관적으로 피력해왔다. 그러던 중 지난 11월 말 국회 정무위원회가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 개정안을 처리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남은 절차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의결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이번 개정안엔 사업자 신고·등록 의무와 자금세탁 방지 의무 부여, 감독수단 미구축 시 처벌 등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에서 합의한 기준을 반영했다. 암호화폐 관련 업체도 ‘가상자산 사업자’로 정의했다. 또 사업자 신고를 의무화하되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을 획득하지 못한 사업자, 실명 확인할 수 있는 입출금 계정(실명계좌)을 통해 금융거래를 하지 않는 사업자는 당국이 신고를 수리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규정했다. 암호화폐 거래소 사기 등을 방지하고 금융자산으로서 암호화폐를 바라볼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여전히 시장은 얼어붙어 있다.

시장은 침체기도 있고 활황기도 있기 마련이다. 개방형 블록체인 기반의 경제가 기존 인터넷 경제의 일부를 흡수하고 기존 금융의 대체자산에 대한 수요도 일부 흡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장기적으로는 더욱 파이가 커지는 커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시적인 시장 상황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오히려 장기적인 비전에 공감하고 믿음을 가진 사람들만 남아서 함께 차분한 마음으로 일하기에는 더욱 좋은 상황이다.

이 대표는 기술보단 투명한 상장과 법제화 등이 왜, 어떻게 필요한지 설명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시장에서 드러난 숱한 부작용 때문에 기술의 가치가 묻혀버렸다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이준행 스트리미 대표는 “정부를 믿고 달려보겠다”며 “없어지지 않을 분야라면 정공법으로 묵묵히 걷는 게 정답”이라고 말했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202001호 (2019.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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