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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은 살아 있다] ‘혁신 전도사’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의 조언 

재빠른 기술혁신으로 시장을 선점하라 

답은 ‘리더’다. 모든 조직은 리더의 자세, 열정, 역량에 따라 성쇠가 갈린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제조업도 결국 리더가 극복해야 한다. 벤처 1세대이자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 이사장인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을 권오준 포브스코리아 편집장이 만나 현시점에서 리더가 할 일이 뭔지 알아봤다.

황철주 회장은 한국 제조업계의 전설적 인물이다. 1993년 주성엔지니어링을 창업했다. 반도체 공정 장비를 개발하며 모방하지 않고 세계 최초 기술을 18개나 개발했다. 특허도 2100개가 넘는다. 50여 개 반도체 공정 장비를 만들어 미국·일본·대만·중국·싱가포르·유럽 등에 수출한다.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 이사장, 대·중소기업 상생협의회장 등을 맡아 한국 제조업 부흥을 위해 밤낮으로 뛰고 있다.

권오준: 한국 제조업은 정말 끝났는가.

황철주: 인류가 존재하는 한 제조업은 불멸이다. 제조업이 없는 금융, 서비스가 있을 수 있나. ‘제조업이 끝났다’는 말은 잘못됐다. 제조업의 ‘경쟁력’이 예전보다 약해진 것이다. 우리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베트남을 예로 들어보자. 베트남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이 국가의 성장 원동력은 지식·기술이 아닌 노동 혁신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진국·선진국들이 들여온 기술력과 자본에 노동력만 더해 제품을 만들어낸다. 이 상황에서 베트남 경제가 성장해 인건비가 올라가면 어떻게 될까. 중진국·선진국들은 주저 없이 저렴한 노동력을 찾아 다른 국가로 향할 것이다. 베트남은 지금까지 성장해온 방법을 하나도 써먹을 수 없고 자체적으로 물건을 생산할 수도 없게 된다. 성장 속도는 급격히 떨어질 것이다. 노동 혁신을 통한 성장은 막을 내려야 한다. ‘기술혁신’이 일어나야 제조업의 경쟁력을 지속할 수 있다. 살길은 기술혁신뿐이다.

권: 우리 기업은 ‘패스트팔로어’ 전략으로 성공했다. 갑자기 ‘퍼스트 무버’로 변신하는 것은 어렵지 않나.

황: 우리나라는 1960년대부터 본격적인 산업화 과정을 거쳐 지금까지 성공적인 길을 걸어왔다. 우리나라 대학 진학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가장 높다. 우리가 지식이 없나, 기술이 없나. 리스크가 따를 수밖에 없는 혁신에 과감하게 나서지 않는 것이 문제다. 기술혁신을 할 수 있는데도, 해보지도 않고 어렵다고만 말한다.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이다.

권: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황: 혁신하려면 지식은 기본이고 열정과 목표의식이 필수다. 그동안 우리는 ‘빵’을 위해 일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자원과 기술이 없는 우리가 먹고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지식이었다. 그렇게 쌓은 지식으로 우리는 선진기술을 모방한 제조 분야에서 그 어느 국가보다 빨리 성장했다. 더는 모방할 게 없을 정도다. 이제 모방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직접 혁신할 차례다. 혁신의 핵심은 속도다. 지금은 모든 분야의 기술·정보·통계가 빛의 속도로 세계 모든 사람에게 공유되는 시대다. 다른 사람이 잘 모르고, 잘 못 하는 걸 내가 먼저 해야 경쟁력이 생긴다. 남보다 늦으면 아무리 혁신적 아이디어도 ‘모방’일 뿐이다. 기존과 다른 가치를 가져야 시장을 선점하고, 고부가가치도 창출할 수 있다. 특히 정보통신기술(ICT)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는 지금, 초기 시장을 놓치면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다. 속도를 내려면 혼자서는 안 된다. 같은 목표와 철학을 가진 사람·기업·단체가 뭉쳐 분업적 협력을 해야 한다.

권: 분업적 협력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황: 지난해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해 불화수소가 화제가 됐다. 당시 정부·대기업·중소기업이 분업적 협력 체계를 만들었고, 단기간에 불화수소 국산화에 성공했다. 각자의 장기를 살려 협업한 덕분에 위기를 극복하고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강국으로 가는 발판을 만들었다. 이처럼 분업적 협력 관계는 빠른 성과를 내는 데 효과적이다.

권: 중소·중견 제조기업 CEO들의 머릿속에 공포감이 대단하다. 중국의 추격, 패러다임이 바뀌는 4차 산업혁명 등 환경의 변화 때문이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소연하는 이들에게 어떤 말을 들려주고 싶나.

황: 환경 변화는 혁신할 수 있는 찬스로 봐야 한다. ‘난세에 영웅 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혁신은 기득권과의 싸움이다. 환경이 어려워지지 않으면 기득권은 절대 물러나지 않는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면 전쟁터를 누빌 수도 없는 고령의 장군도 물러날 이유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전쟁이 나야 비로소 젊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바뀔 수 있다. 혁신을 원하는 기업가들에겐 지금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권: 경영자들은 쓸 만한 사람이 없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은 “환경변화는 시장을 선점할 기회다. 두려워하지 말고 이용하라”고 조언했다.
황: 왜 없겠나. 모방하는 사람이 없다는 건데, 이젠 혁신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혁신은 기존에 없는 걸 하는 것이니 경험자가 없는 게 당연하다. 모방 잘하는 인재는 많아야 하지만, 혁신하는 인재는 숫자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몇 명만 제대로 나와도 그 사회는 발전한다. 이런 인재는 학력과 스펙에서 결정되지 않는다. MBA 출신이라고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지식과 정보가 무슨 경쟁력이 되겠나. 다른 사람이 모르는 걸 알고, 다른 사람이 못 하는 걸 할 수 있는 사람이 쓸 만한 사람이다.

권: 지금 혁신을 추진하려는 리더는 당장 무엇부터 해야 하는가.

황: 그것은 리더의 몫이다. 기득권을 타파하고 혁신을 주도해야 한다. 기득권은 잘 먹고 잘 살 뿐만 아니라 권력도 갖고 있다. 당연히 몸과 마음이 편하다. 변할 이유가 없다. 이들은 혁신을 터부시한다. 경험에 기반한 고정관념으로 자기를 합리화한다. 물론 성장은 거기까지다. 혁신은 리스크를 짊어지는 것으로 시작된다. 리스크 없는 혁신, 리스크 없는 일등은 있을 수 없다. 혁신은 지금까지 없는 새로운 길을 만드는 것이다. 그 길의 미래가 장밋빛일지, 지옥일지 아무도 모른다. 직원들에게 혁신을 강요해서도 안 된다. 리더가 솔선수범해야 조직에 혁신문화가 생겨난다. 솔선수범하는 리더란 ‘제가 앞서 걷겠습니다. 혹시 제가 낭떠러지로 추락하면 당신들은 다른 길로 가십시오’라는 마음으로 앞장서는 사람이다. 그러면 직원들이 따라올 것이다.

권: 그래서 기업가 정신을 강조하는 것인가.

황: 그렇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경영자들에겐 기업가 정신이 없다. 나는 기업을 이끄는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눈다. 남의 기술·돈·노동력으로 돈을 버는 ‘사업가’와 스스로의 능력으로 인프라를 키워 사회·국가와 함께 성장하는 ‘기업가’다. 그런데 우리나라엔 사업가만 있고 기업가가 없다. 열심히 노력해 뛰어난 결과를 창출하면 어떻게든 깎아내리는 세력이 있어 그렇다. 우리 사회에는 남의 눈에 띄지 않고 혼자 잘 먹고 잘 사는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만연하다. 그런데 세상을 바꾸려면 기업가가 필요하다. 정부에서 사업가가 아닌 기업가를 육성하고 지원해야 하는 이유다. 지금 우리나라에 필요한 기업가는 일을 통해 행복을 창출하는 리더다. 과거 배고프던 시절 우리나라 국민이 ‘빵’을 위해 노동했다면 지금은 행복을 위해 일해야 한다. 노동은 하면 할수록 괴롭고, 일과 혁신은 하면 할수록 즐겁다.

권: 기업가의 존재 이유가 달라져야 한다는 뜻인가.

황: 기업가는 행복을 만드는 사람이다. 행복은 좋은 일을 할 때 느끼는 감정이다. ‘좋은 일’이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닌, 국가와 사회, 공동체의 일원들을 위한 일이다. 다른 사람이 생각하지도 못하거나 실행하지 않은 일이다. 한마디로 돈 버는 사람이 아니고, 행복을 만드는 사람이다.

권: 초조한 일부 경영자들은 스마트 팩토리를 구원자로 여긴다.

황: 스마트 팩토리는 제대로 구현하는 데 투자가 많이 필요할뿐더러 오래 걸린다. 빠른 속도로 변해야 하는 중소기업, 대량으로 생산하지 않는 산업군에서는 무리할 필요가 없다. 이들이 스마트 팩토리를 완성했을 땐 이미 구닥다리 기술로 취급받을 가능성이 높다. 스마트 팩토리가 아니라 스마트 컴퍼니가 돼야 한다.

권: 최근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 4관왕이 화제다. 봉 감독처럼 우리나라엔 저력 있는 인재가 많다. 제조업에서도 ‘봉준호’가 나올 수 있겠나.

황: 경쟁이란 내가 아무리 강해도 나보다 힘센 사람을 만나면 지고, 내가 아무리 약해도 더 약한 사람을 만나면 이기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봉준호 감독의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시운( 〈기생충〉보다 훌륭한 작품이 출품되지 않은 것)을 만나 좋은 결과를 냈다. 우리나라에 인재가 많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근육과 육체를 가진 사람도 평소 훈련·단련하지 않으면 대회에서 메달을 딸 수 없다. 기회를 만났을 때 인재가 능력을 발휘하려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이 준비를 시키는 게 리더의 역할이다. 다만 너무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3억 명이 넘는 인구를 가진 미국에서도 혁신기업이 10년에 10개도 안 나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권: 제조업 후배들에게 조언한다면.

황: 기술은 지식의 오감을 다루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지식인들은 현장에 나가지 않는 것 같다. 오감은 현장에서의 정성과 노력에 의해 느끼는 건데 책상에만 있으니 혁신적인 기술이 못 나오는 거다. 지식인, 리더가 현장으로 나가야 한다.

- 정리=신윤애 기자 shin.yunae@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202003호 (2020.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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