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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주목하는 ‘코리안 파워’] 정세주 눔 대표 

“다이어트부터 암환자 건강까지 돌본다” 

2019년 뉴욕에 본사를 둔 모바일 헬스케어 스타트업 눔(Noom)이 세쿼이아캐피털 등 실리콘밸리 유수 벤처캐피털로부터 675억원 투자를 유치했다. 이 투자에는 와츠앱 공동창업자 얀 쿰, 오스카헬스의 공동 창업자 조시 쿠슈너 등이 참여하며 화제를 모았다. 2007년 창업한 이후 지금까지 유치한 총투자액은 1억1470만 달러(약 1374억원), 지난해 매출은 2700억원으로 전년 대비 4배가량 성장했다. 한국인 창업자가 뉴욕 나스닥 상장(IPO)의 꿈을 이룰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

▎20대 한국 청년이 뉴욕에서 맨땅에 헤딩하듯 모바일 헬스케어 솔루션 시장에 뛰어들어 리딩업체로 성장한 정세주 눔 대표의 스토리는 유명하다. / 사진:Noom
20대 한국 청년이 뉴욕에서 맨땅에 헤딩하듯 모바일 헬스케어 솔루션 시장에 뛰어들어 리딩업체로 성장한 정세주 눔 대표의 스토리는 유명하다. 25세에 미국으로 건너간 승부사는 15년의 세월을 거쳐 올해 마흔이 됐다. 그동안 쉬지 않고 달리며 미국 헬스케어 솔루션 시장에서 리더로 자리 잡은 정세주(40) 대표의 현재와 미래가 궁금했다. 개인 일정차 잠시 귀국한 그를 만났다.

25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창업에 뛰어든 지 올해로 15년 차가 됐다. 한국에서 대학 시절 희귀 음반을 팔았던 첫 번째 사업, 뉴욕에 건너가 시도한 뮤지컬 사업, 투자자의 배신으로 오랜 기간 뉴욕 할렘가에서 방황하다 구글의 수석 엔지니어인 아텀 페타코프(Artem Petakov)를 만나 지금의 ‘눔’을 창업하기까지 숱한 실패를 딛고 계속 도전하는 삶을 살고 있다. 현재 눔은 어떤 목표를 위해 뛰고 있는지 궁금하다.

눔은 행동 변화 기술을 연구하는 회사다. 헬스케어 전반에 필요한 라이프스타일을 매니지먼트한다. 당연해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 해보면 굉장히 어려운 사업이다. 현대인들이 겪는 수면 스트레스 장애, 당뇨, 고혈압, 심부전증, 뇌졸중 등은 모두 생활습관 매니지먼트가 필요한 질환이다. 행동 변화가 건강에 주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생활습관이 개선되면 삶이 좋아진다’는 비전으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대표님과 공동 창업자인 베테랑 엔지니어 아텀 페타코프는 2007년 ‘워크스마트랩스’를 창업해 눔의 전신인 ‘카디오 트레이너’를 출시했고, 이 서비스가 2008년 구글 안드로이드 마켓헬스 분야에서 1위를 하더니 2009년엔 구글이 선정한 최고의 안드로이드 앱이 됐다. 이때부터 눔을 창업하기까지 두 분의 관계는 어떻게 깊어지고 성장해왔나.

우리 둘 다 헬스클럽에서 운동하는 게 너무 재미없었고, 재미가 없으니 효과도 떨어진다는 점에 착안했다. 마침 그 무렵 아이폰이 등장하면서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고 있던 터라 스마트폰으로 건강을 관리하는 회사를 만들기로 뜻을 모았다. 카디오 트레이너는 스마트폰을 몸에 지니고 운동하면 운동 관련 정보를 기록해주는 스마트폰 앱이었다. 출시 후 다운로드 수가 1000만 건을 돌파할 정도로 시장 반응이 뜨거웠다. 그런데 앱을 운영하면서 처음 개발 단계에서는 생각지 못했던 점들을 발견했다. 그래서 칼로리 관리를 도와주는 ‘칼로리픽’을 이어 출시했다.

운동량을 측정해주는 카디오 트레이너와 칼로리를 관리해주는 칼로리픽의 기능을 통합해 탄생한 것이 ‘눔’인가.

그렇다. 초기엔 단순히 운동을 열심히 하게 만들면 건강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 앱을 안 쓰고 이미 ‘몸짱’인 사람들이 더 잘 관리하기 위해 쓰더라. 카디오 트레이너에 보너스 기능으로 ‘만보기’ 옵션이 있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많은 사용자가 이 기능을 사용했다. 사람들이 건강하려는 의지는 강한데 운동은 하기 싫으니 만보기 기능을 주로 사용하는 거였다. 그때 일반 사람들의 몸에 가장 기여하는 건 운동이 아니라 음식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칼로리픽을 만들었고, 결과적으로는 운동량과 칼로리 섭취를 기록하는 것만으로는 행동 변화가 쉽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눔 코치’가 탄생했다.

두 분은 성향이 비슷한가, 아니면 정반대인가.

아템은 우크라이나 출신, 나는 한국 출신으로 둘 다 미국에서 실력으로 증명해야 하는 삶을 살아온 것은 비슷하다. 또 기술을 활용해 사용자에게 최대한 집중하면 좋은 서비스가 나올 거라는 비전도 같았다. 사용자에게 초점을 맞추지 않은 서비스들이 망가지는 것을 많이 봐왔다. 특히 헬스케어 시장에는 이해당사자가 많다. 사용자뿐 아니라 의사, 약사, 보험사, 정부, 고용주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또 산업 자체는 큰데 비용을 지불하는 사람이 환자가 아닌 경우가 많다 보니 실제 사용자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서비스가 많지 않았다. 우리는 실사용자가 변화를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2012년 선보인 눔 코치는 이후 3년 8개월 동안 구글 플레이스토어 헬스 분야 매출 1위를 달성했고, 2017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회원을 확보한 건강관리 앱이 됐다. 눔이 기존 모바일 헬스케어 서비스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우리는 사용자의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코칭한다. 단순히 식단과 운동법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용자들의 식단, 운동량, 건강상태 등을 AI 기반으로 분석한 결과를 보고 전문 코치가 직접 관리한다. 현재 눔에서 일하는 인력은 1900여 명으로 모두 정직원이다. 이 가운데 1650명이 헬스케어 코치다. 그들이 전 세계에서 눔을 이용하는 회원 5000여 명을 관리한다. AI 알고리즘으로 개인별 상태를 분석해서 알려주는 게 핵심 기술이다.

결국 습관이 변해야 하는 건데 코치가 붙어도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맞다. 시간도 걸리고 쉬운 과정도 아니다. 하지만 분명히 지속가능한 결과를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사용자가 왜 행동 변화를 해야 하는지 인터뷰를 통해 근본 원인부터 파악한다.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CEO로서 역할도 계속 커지는 데 따른 부담은 없나.


▎정세주, 아텀 페타코프 눔 공동 창업자. 2007년 창업한 이후 지금까지 유치한 총투자액은 1억1470만 달러(약 1374억원), 지난해 매출은 2700억원으로 전년 대비 4배가량 성장했다. / 사진:Noom
지난 1년간 일하는 패턴이 많이 바뀌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직접 투자자를 만나 영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이제는 더 장기적인 비전을 세우기 위한 일에 집중하고 있다. 일의 우선순위를 더 명확히 세우게 됐다.

평소 일과를 알려달라.

보통 오전 6시에 일어나서 7시까지 이메일을 처리한다. 8시까지 가족들과 식사를 하고 출근해 10시부터 7시까지 근무한다. 저녁 식사 이후 12시~1시까지 일하다 잠드는 생활을 반복한다.

스케줄 관리는 어떻게 하나.

스케줄을 관리해주는 비서가 있다. 내 일정은 회사에 모두 공개된다. CEO가 회사의 우선순위에 맞게 하루를 보내는지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보통 중요한 일보다 급한 일에 시간을 쓰게 되는데 그걸 방지하기 위해 비서가 도와준다. CEO에게 중요한 일이란 대부분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CEO가 하지 않으면 할 사람이 없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일보다는 해야 하는 일을 먼저 하기 위해 노력한다.

B2C 사업은 이제 안정기에 들어섰고, B2B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올해 매출 5000억원 달성과 흑자전환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B2C 회사는 사용자들의 신뢰와 지지가 있어야만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2년 전엔 미국 국민의 3% 정도만 눔을 알았다면, 이젠 36%가 우릴 안다. 브랜드 인지도가 어느 정도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더 힘을 쏟아야 할 부분은 미국 헬스케어 시장의 이해관계자들과 접점을 넓히는 것이다. 눔은 헬스 트레이너 앱에서 다이어트, 당뇨 관리 분야로 영역을 넓혀왔고 암 질환 관리와 심혈관계 질환 관리 서비스에도 힘을 쏟고 있다.

현재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인가.

회사 매출이 매년 4~5배씩 늘면서 이제 조직문화와 시스템을 다음 단계로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뉴욕 오피스도 1개 층만 쓰다가 지금은 4개 층을 쓰고 있다. 작년에만 870명을 뽑았고, 올해도 1000명을 추가 고용할 계획이다. 현재의 규모에 맞는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꾸준히 성장하는 위대한 회사를 만드는 것이다. 위대한 회사의 정체성은 서비스에서 나온다. 미국 헬스케어 시장은 세계적으로 규모가 가장 크고, 기술로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2년 전 암 질환 관리 서비스를 만든 것도 환자가 자가면역 관리를 통해 암을 극복할 수 있게 돕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폐암으로 잃었기 때문에 암에 대해 항상 생각해왔다. 국내에서는 현재 대학병원과 임상실험을 추진해 만성질환과 중증질환으로까지 프로그램을 확장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국립암센터와 암환자 토털 헬스케어 공동연구를 시작했다.

인생의 롤 모델이 있다면.

아이코닉한 롤 모델은 없다. 다만 책을 많이 읽고 강연도 매일 듣는다. 특정 분야를 떠나서 뛰어난 정치인, 예술가 등 영감을 주는 인물이 있다면 뭐든 배우려고 한다. 궁극적으로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항상 생각한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죽음을 일찍 경험했기 때문인 것 같다. 21살 때 외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때 헬스케어 분야에 대한 사명감이 생겼다. 아버지가 51세에 돌아가셨는데 아버지 나이에 가까워질수록 더 생각을 많이 한다. 무엇을 하고 살든 인간은 모두 늙고 죽음을 맞이한다. 그래서 항상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매 순간을 충실히 제대로 살아야 한다.

- 김민수 기자 kim.minsu2@joins.com

202003호 (2020.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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