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pany

Home>포브스>Company

독일 헨켈이 5대째 성장한 비결 

 

헨켈은 전 세계에 300개가 넘는 자회사를 둔 글로벌 기업이다. 직원 수는 5만3000명, 매출액도 26조원이 넘는다. 주가도 지난 10년간 시장 평균 상승률을 두 배나 뛰어넘었다. 가족기업 헨켈이 5대째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이 뭘까.

▎헨켈의 창립자 프리츠 헨켈은 1876년 독일 아헨에 헨켈을 설립했다. 세계 최초 세탁 세제 퍼실을 1907년 세상에 선보였다.
독일 피앤지(P&G)로 불리는 헨켈(Henkel)은 1876년 ‘프리츠 헨켈(Friz Henkel)’이 창업해 올해로 144년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헨켈은 1907년 세계 최초로 자체작용(self-acting) 세제인 퍼실(Persil) 브랜드를 출시했는데, 113년이 지난 지금도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헨켈은 모회사인 ‘헨켈주식합자회사(Henkel AG & Co KGaA)’를 정점으로 전 세계에 300개가 넘는 자회사를 둔 글로벌 기업이다. 직원 수는 5만3000명에 이른다. 2018년 기준 매출액 200억 유로(약 26조원), 영업이익 35억 유로(4조5000억원)로 수익성이 높다. 헨켈은 1985년 프랑크푸르트 증시에 상장해 지난 10년간 주가 수익률은 시장 평균을 두 배 이상 뛰어넘었다.

독일의 대표적 우량기업인 헨켈은 1세대 창업주 프리츠 헨켈 이후 5세대에 걸쳐 큰 잡음 없이 후손들이 경영권을 승계하고 있다. 그룹의 세대별 총수를 간략히 살펴보자.

프리츠 헨켈의 지분은 2세대 아들 프리츠(Fritz)와 휴고(Hugo)에게 각각 40%, 딸 에미(Emmy)에게 20%가 상속됐다. 2세대에서는 장남 프리츠가 경영 전반을 맡았고, 차남 휴고는 기술 분야를 담당했다.

3세대에서는 휴고의 둘째 아들인 콘라드 헨켈(Konrad Henkel)이 1961년부터 1990년까지 약 30년 동안 가문의 가부장 역할을 하며 그룹 회장 자리를 맡았다. 4세대에서는 2세대 에미의 외손자인 알브레히트 뵈스테(Albrecht Woeste)가 1990년부터 2009년까지 약 20년 동안 그룹 회장직을 수행했다. 5세대에서는 2세대 프리츠의 외증손녀인 시모네 바겔-트라(Simone Bagel-Trah)가 2009년 40세 나이에 그룹 회장 자리에 올랐고, 지금까지 헨켈그룹을 총괄하고 있다.

헨켈그룹 경영권 승계 역사에서 특징은 2세대를 빼고는 장손 승계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과 남자 자손뿐만 아니라 여자 자손에게도 승계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현재 헨켈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헨켈 가문의 구성원은 150여 명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지분 분산은 144년 회사 역사 속에서 5세대에 걸쳐 자손들에게 이루어진 상속 과정의 당연한 결과라고 하겠다. 이런 지분 분산에도 불구하고 헨켈 가문이 가족구성원 간 갈등 없이 확고하게 경영권을 유지하며 기업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던 비결은 ‘가족지분풀링협약(Family Share Pooling Agreement)’에서 찾을 수 있다.

가족지분풀링협약의 핵심 내용은 두 가지다. 첫째, 협약에 참여한 가족구성원은 각자가 보유하고 있는 지분을 협약 구성원 이외의 외부인에게는 매각하지 않는다. 둘째, 각자가 보유하고 있는 지분에 따른 의결권은 협약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결정된 방향으로 행사한다.

1985년 체결된 헨켈 가족지분풀링협약은 1996년에 2016년까지 연장됐고, 2016년에는 2033년까지 연장됐다. 2018년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헨켈 가족지분풀링협약의 구성원은 150여 명이고 이 협약에 따른 보유 지분은 61.2%로, 최초 협약 때보다 10% 이상 늘었다.

지분풀링협약은 기본적인 계약이지만, 그 자체로 독일 민법상 조합으로 법적 지위를 인정받는다. 따라서 이 협약은 권리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다. 독일 민법상 조합의 의사결정은 만장일치로 이루어지지만, 조합에서 달리 정한 경우 다수결 원칙이 적용될 수 있다. 이러한 지분풀링협약의 법적 안정성을 기초로 헨켈 가문은 가족구성원들의 지분 분산에 따른 경영권 위협에 대응하고, 경영승계 작업도 합리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헨켈의 가족지분풀링협약이 기업승계를 위한 핵심 인프라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토대로 한 헨켈 가문의 경영권 승계 과정상 특징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경영능력 사전검증을 기반으로 한 경영권 승계자의 선임이다. 5세대 시모네 바겔-트라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가장 먼저 그의 경영능력을 검증했다. 그의 나이 40세에 가문 내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회장으로 선임돼 세간을 놀라게 했지만, 그는 이미 10년 넘게 그룹 안팎에서 다양한 기업경영 활동을 하며 경영 능력을 입증한 터였다.

29세에 미생물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후 바이오분야 컨설팅 회사에서 2년간 일했고, 이후 바이오 벤처회사를 창업하여 최고경영자로서 회사를 운영했다. 헨켈그룹에선 2000년 네덜란드 자회사의 감사이사회 일원으로 시작했다. 학업 이후 불과 몇 년 만에 탁월한 경영 능력을 보여주면서 2001년 그룹 모회사의 감사이사회 일원이 됐고, 2005년부터는 회사의 주주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됐다. 더 나아가 2008년부터는 주주위원회 부의장직도 겸임하면서 경영 능력을 입증했다.

둘째, 경쟁은 있지만 합의와 절차를 지키는 경영권 승계다. 4세대 그룹 총수였던 알브레이트 뵈스테는 자신이 74세가 되던 2009년 후임 회장을 선임하기 위해 가족주주 대표 5명과 외부인사 5명으로 구성된 회장선임 위원회를 구성했다. 시모네 바겔-트라는 헨켈 가문 내에서 경영 수업을 받은 다른 후보 5명과 경합했다.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3대 총수였던 콘라드 헨켈의 아들인 크리스토프 헨켈(Christoph Henkel)이었다. 그는 가문의 전설적 리더였던 콘라드의 적통이자 5.8% 지분을 보유한 최대주주이기도 했다. 회장선임위원회는 회장은 반드시 본사가 있는 뒤셀도르프에 거주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크리스토프는 자신이 살던 영국 런던을 떠나지 않겠다는 입장을 피력하면서 탈락했다. 이후 시모네가 가족주주들의 합의 등 최종 선임 절차를 거쳐 그룹 회장으로 선임됐다.

셋째, 가족구성원 간 소통 증진과 유대감 강화다. 헨켈 가문에는 2세대 프리츠, 휴고, 에미 등 3남매의 자손 별 세 지파가 형성돼 있지만, 가문의 연장자들은 가족 구성원들이 종횡으로 서로를 이해하면서 강력한 연대의식을 갖도록 노력했다. 원로회의에서 리더급 가족구성원 사이에 소통이 이뤄지고, 연령대별 조직체를 구성해 활동하도록 했다. 가족신문도 발행하고 있으며, 가족구성원 전용 온라인 플랫폼에 가정사 등을 알린다. 10대 자녀들은 소위 ‘사자클럽’의 일원으로 수련회에 참가하는 등 어려서부터 여러 활동을 같이한다.

이렇게 다진 유대감은 매년 가족지분풀링협약으로 개최하는 공식적 가족총회를 거쳐 더 공고해진다. 가족 총회 전날 세 지파의 대변인은 총회 안건에 대한 지파별 의견을 수렴해 발표하는 식으로 그룹 경영에 공식적인 의견을 피력한다. 앞으로도 독일 헨켈그룹은 가족지분 풀링협약을 통한 가족주주 구성원 간 합의와 강력한 유대감을 바탕으로 기업승계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 이성봉 서울여대 경영학과 교수

202004호 (2020.03.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