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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콥 울스타하프 휘슬러 CEO 

독일 명문 기업 생존의 힘… 175년간 이어온 창업 정신 

독일 경제의 중추는 강력한 오너십과 전문경영인의 역할이 조화를 이루는 강소 명문기업들이다. 이들은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와중에도 ‘고용 기적’을 이루며 위기 극복의 신화를 써냈다. 창업 이래 175년간 독일의 작은 도시인 이다어오버슈타인을 떠나지 않은 휘슬러도 그렇다.

▎제이콥 울스타하프 휘슬러 CEO는 175년을 이어온 전통과 글로벌 시장의 최신 니즈를 접목하는 것이 경영 목표라고 밝혔다.
“175년을 이어온 휘슬러만의 가치, 혁신을 강조한 창업 정신은 우리의 성공을 이끌었던 힘이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이어나갈 것입니다. 저는 여기에 고객과 시장을 지향하는 새로운 문화를 불어넣고 싶습니다. 전통을 이어가면서도 소비자 니즈와 글로벌 시장을 이해하는 안목을 조직 안에 심는 게 제 역할이자 과제입니다.”

올해 초 휘슬러에 합류한 제이콥 울스타하프(Jacob Osterhaab) CEO는 전문경영인으로서 자신의 경영 목표를 이같이 밝혔다. 그가 밝힌 각오는 독일 경제와 기업의 중추를 이루는 미텔슈탄드(Mittelstand, 중소·중견 제조기업)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흔히 독일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폴크스바겐이나 메르세데스벤츠, BMW, 지멘스 같은 대기업을 떠올리지만, 창업주 가문이 중심이 된 가족경영 기업이나 기업공개를 꺼리는 비상장기업이 대부분인 미텔슈탄트는 독일 경제를 떠받치는 핵심축이다. 370만 개에 달하는 이들 강소 명문기업은 독일 전체 기업 매출의 30%, 전체 고용의 70%를 차지한다. 독일 중소기업 중 95%는 이러한 비상장 가족기업이 차지하고 있다. 휘슬러도 창업주 칼 필립 휘슬러(Carl Philipp Fissler) 이래 오너가(家)가 직접 주요 경영 이슈에 참여하는 오너십과 전문경영인의 활약이 조화를 이루며 발전해왔다.

기업공개를 통한 자본조달이 일반화된 미국, 영국(한국도 이에 속한다)과 달리, 독일 강소 명문기업들은 폐쇄적 구조의 가족경영이 오랜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수만 명에 달하는 종업원을 고용한 대기업으로 성장하기보다, 여전히 창업자가 처음 터를 닦은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공장을 가동한다. 대신 경쟁사가 넘보기 힘든 기술력과 장인정신으로 무장한 마이스터들의 기술을 바탕으로 자기 분야에서 세계시장을 장악한다. 통일 후유증으로 ‘유럽의 병자’ 취급을 받던 2000년대 초반, 이어 2008년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 악재 속에서도 이들 명문기업의 활약은 독일을 유럽연합의 수장으로 옹립한 원동력이 됐다.

독일 경제 재건한 강소 명문기업


냄비와 압력솥, 프라이팬 등 주방기구로 유명한 휘슬러 역시 독일을 대표하는 명문기업이다. 조선 헌종 11년에 해당하는 1845년 창업한 이래 단 한 번도 세계 최고 프리미엄 주방기구 제조사라는 명성을 놓치지 않았다. 전 세계 주부들이 꿈꾸는 냄비와 솥, 프라이팬을 제작해온 휘슬러의 명성은 독일 기업과 경제의 저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생생히 보여주는 사례다.

창업주 칼 필립 휘슬러는 1845년 독일 남서부 작은 도시인 이다어오버슈타인(Idar-Oberstein)에 주방기구 생산 공장을 세워 냄비와 프라이팬을 만들었다. 그는 애초부터 비즈니스가 아닌 혁신 DNA를 품은 발명가였다. 1855년 주방기구 생산라인에 처음 증기기관을 도입해 더욱 빠르고 정확하게 제품을 생산해낸 혁신을 시작으로, 1890년에는 세계 최초로 주방기구에 알루미늄 소재를 사용했다. 1892년 ‘굴라시 대포’라 불렸던 바퀴 달린 이동식 주방을 발명해,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야전식당으로 썼다. 야외 주방에서 120인분 식사를 책임진 시스템은 현재도 구호단체 활동이나 대규모 행사에 활용된다. 이 밖에도 최초의 단열 소재 손잡이, 열효율을 높이고 음식이 눌어붙지 않는 엠보싱 바닥, 다단계 압력계기가 부착된 최초의 압력솥 등 휘슬러는 단순한 주방기구를 넘어 독일의 장인정신을 상징하는 혁신기업으로 성장했다.

휘슬러 175년의 역사는 독일 명문기업의 특징과 경쟁력을 이해하는 열쇠이기도 하다. 첫째, 이들은 창업주가 견지한 기업 미션을 오롯이 이어가고 있다. 휘슬러도 창업 이후 ‘언제나 완벽하라(Perfect Every Time)’는 기업 이념을 모든 기획, 설계, 생산 과정에 적용하고 있다. 세계 최초 압력솥 개발 같은 기술혁신이 독일 특유의 장인정신과 결합해 창업주의 발명가 정신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지난 3월 말 서울을 찾은 울스타하프 CEO는 “휘슬러는 창업 이후 오랜 기간 혁신에 많은 투자를 해왔다”며 “보유 특허가 200여 개에 이를 정도로 제품과 기술의 리더가 되겠다는 핵심 가치를 이어왔다”고 말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주방기구 업계에서 가장 많은 특허를 보유하고 있지만, 최근 들어 특허출원에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방향으로 전환했다는 사실이다. 특허등록 자체가 기술 유출로 이어진다는 내부 논의 끝에 내린 결정이다. 창업 이후 이어온 혁신 DNA는 유지하되, 기업 경쟁력은 보호하겠다는 뜻이다. 실제로 최근 10년간 휘슬러가 새로 받은 특허는 두 건 정도에 불과하다.

오너가가 직접 이끄는 가족경영


▎이다어오버슈타인에 자리한 휘슬러 생산공장 전경. 휘슬러는 175년 간 단 한 번도 독일의 작은 소도시인 이 곳을 벗어나지 않았다.
기술 유출에 민감한 비즈니스 원칙은 독일 명문기업의 두 번째 특징인 지역 연고와 가족경영으로 이어진다. 1845년 이다어오버슈타인에 공장을 세운 휘슬러는 창립 이후 단 한 번도 본사와 생산공장을 다른 나라, 심지어 독일 안에서도 다른 지역으로 옮기지 않았다. 광산이 인접한 이다어오버슈타인은 17세기 이후 보석세공업이 발달하며 마이스터를 존중하는 특유의 문화가 자리 잡은 도시다. 휘슬러도 이곳에서 제품 기획, 개발, 생산에 이르는 시스템을 집약해 발전해왔다. 저렴한 노동력을 찾아 아시아 등에 생산기지를 구축한 여타 서구 기업 사례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전략이다. 이에 대해 울스타하프 CEO는 “제품을 기획하고 개발·생산하기까지 한 지역을 고집하는 것은 효율에 치중하기보다는 완성도에 초점을 둔 선택”이라면서 “아웃소싱 없이 독일 내 자체 공장에서만 생산한다는 원칙은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장기적인 비전과 안목으로 제조시설 확대와 투자를 진행하고 있지만, 기술 유출을 방지하는 것도 주요한 경영 원칙이라는 뜻이다.

독일 강소 명문기업 대부분이 가족기업(경영)인 것도 독일과 영미식 기업 형태를 가르는 키워드다. 독일 중소기업은 창업주 이래 가문의 후대 구성원들이 여전히 대 주주로 영향력을 유지하면서 기업 운영에 직접 관여하는 구조가 일반적이다. 과거 한국 재벌들이 극소수의 지분과 순환출자로 그룹 전체를 장악하거나, 지주사 체제로 전환해 제왕적 경영을 펼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또 독일식 가족경영은 소유(오너)와 경영(전문경영인)을 분리한 영미식 케이스와도 전혀 다르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일반론을 독일 기업에서 찾기 어려운 건 특유의 공동결정제가 경제 전반에 작동하고 있어서다.

공동결정제는 19세기 중반 이후 급속한 산업화와 패전국 신세가 된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독일 사회경제가 낳은 특유의 기업 지배구조이자 의사결정 시스템이다. 특히 파시즘이 절정으로 치닫던 나치 전체주의가 막을 내린 후 경제 민주화에 대한 요구는 독일 사회경제의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노동자들은 노조를 중심으로 2차 대전 이후 연합군에 의해 해체된 기존 콘체른(기업 카르텔) 이사회에 참여하고자 했다. 기업가·자본가들도 연합국 지배와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조와 손잡았다. 마침 서독 경제를 재건하려는 연합국의 전략이 맞물리면서 1947년부터 노사 동수의 공동결정제가 독일 기업의 독특한 지배구조로 자리 잡아 오늘에 이르렀다.

산업군과 종업원 수(기업 규모)에 따라 작은 차이가 있지만, 독일 기업은 종업원 500명 이상일 경우 감사위원회(Aufsichtsrat) 위원에 종업원, 즉 노동자 대표를 3분의 1로 채워야 한다. ‘기업구조법’ 적용을 받는 휘슬러도 감사위원회에 참여하는 노동자 대표가 3분의 1 이상이다. 종업원이 2000명 이상이면 노동자 대표가 감사위원회 위원의 50%를 차지해야 한다. 노동자 대표와 주주 측 대표로 구성되는 감사위원회는 CEO 등 경영을 직접 책임지는 경영이사회에 대한 감시를 넘어 임명권까지 갖는 경우가 많다. 오너와 전문경영인, 사외이사가 함께하는 영미식 이사회와 달리, 감사위원회와 경영 이사회가 분리돼 서로 견제하고 협력하는 시스템은 독일만의 독창적인 제도다.

노동자가 참여하는 감사위원회가 기업 차원의 의사 결정 기구라면, 개별 사업장 차원에서 공동결정제를 실현하는 기구는 사업장평의회(Betriebsrat)다. 독일에선 5인 이상 기업은 의무적으로 사업장평의회를 두어야 한다. 본사 직원이 800명 수준인 휘슬러는 노동자 대표 13인이 반드시 사업장평의회 위원으로 활동해야 한다.

사업장평의회는 철저하게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조직이다. 가령 평의회에 사전 보고되지 않은 노동자 해고는 독일법상 무효다. 이 밖에 작업장을 개조하거나 새로운 인사 계획을 세울 때, 사업장을 변경하거나 심지어 신기술을 도입할 때도 사용자는 사업장평의회와 협의해야 한다. 채용, 그룹화, 전환배치, 전근발령 등도 사업장평의회가 거부할 수 있다. 사용자가 이를 관철하려면 노동법원에 제소해 승소해야만 한다.

휘슬러도 이러한 공동결정제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울스타하프 CEO는 “오너가도 슈퍼바이저리보드(감사위원회)에 참여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소소한 경영보다는 장기적인 비전으로 중요한 전략 수립에 더욱 적극적으로 임한다는 설명이다. 현재 휘슬러는 창업자 이후 5대째로 이어지고 있다. 1956년생인 폴카르트 휘슬러(Folkhart Fissler)는 지난 1999년부터 휘슬러 모회사인 베스타(VESTA)의 이사회 의장 겸 휘슬러 회장을 맡고 있다. 휘슬러 내 감사위원회 의장은 그의 동생이 맡는 등 휘슬러 가문과 전문경영인, 노동자가 공동 결정제 아래 서로 견제·협력하며 경영에 나서고 있다.

“너무 많은 일은 오히려 성과를 떨어뜨린다”


▎이다어오버슈타인에 있는 휘슬러 본사 전경.
글로벌 비즈니스를 추구하되 무리한 사업 확장은 지양하는 것도 독일 강소기업의 특징이다. 휘슬러는 발명에서 출발한 이력답게 ‘개선’을 뛰어넘는 ‘혁신’이 업무 스탠더드다. 따라서 신제품 개발 속도나 회전이 빠른 편이 아니고, 글로벌 시장에서도 80개국 정도의 코어마켓에만 집중한다. 울스타하프 CEO는 “휘슬러는 품질을 바탕으로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면서도 “당장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보다 코어마켓에 포커스를 맞추는 전략을 펼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미 진출한 80개국이 지역 거점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고, 이들 나라만도 여전히 시장 확대 여지가 크다는 판단에서다. 울스타하프 CEO는 “너무 많은 일을 하면 결과적으로 성과가 더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 휘슬러 가문과 나의 경영 철학”이라고 밝혔다.

휘슬러가 한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건 지난 1998년 휘슬러코리아를 세우면서다. 하지만 이미 1972년 출시된 ‘솔라 시리즈’ 냄비가 보따리상을 통해 국내에 들어오면서 주부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후 휘슬러는 1990년대부터 솔라 시리즈를 한국형 제품으로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했고, 현재 솔라 시리즈는 국내에만 출시되는 코리아 전용 라인업이 됐다. 한국 주부들이 주로 가스레인지를 사용하는 점을 고려해 압력솥 손잡이가 타지 않도록 더욱 길게 만들고, 찜이나 전골 요리를 즐기는 점을 반영해 냄비 뚜껑도 높이는 등 한국 시장의 니즈를 적극 반영한 제품들이다. 현재 휘슬러는 한국 소비자를 위한 소용량 압력솥을 오직 국내에서만 출시하고, 압력솥으로 밥만 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요리를 하는 식문화에 맞춰 압력을 4단계로 조절할 수 있는 시스템도 선보였다. 휘슬러가 추구하는 글로컬라이제이션의 실험장이 바로 한국인 셈이다. 올스타하프 CEO 역시 “한국은 아시아를 대상으로 한 신제품 시장의 훌륭한 테스트베드”라며 “한국 소비자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독일 본사에도 전용 연구 라인업을 구축했다”고 강조했다.

지난 2018년에는 한국 시장만을 대상으로 한 ‘솔라임’ 압력솥을 출시하기도 했다. 한국 고유의 조리 패턴을 연구하기 위해 우리 조리 문화와 주부들에 대한 연구를 휘슬러코리아와 함께 커뮤니케이션하며 개발에 나섰다. 글로벌 지사와 본사가 R&D에서 시너지를 이룬 케이스다.

무리한 사업 확장을 지양하는 내실 경영은 경영 실적으로도 드러난다. 지난 2013년 2억1900만 유로(2889억원)였던 휘슬러 매출은 지난해 2억8000만 유로(약 3456억원)로 늘었다. 최근 6년간 매출 규모가 27.9% 증가한 것으로, 매년 4.7% 수준의 완만한 성장세를 이어온 셈이다.

독일은 역설적이게도 국가의 명운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위기에 대응하며 오늘날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두 차례 세계대전 패배, 특히 2차 대전 전까지 극심했던 전체주의 사회의 후유증은 전후 재건 과정에서 사회동반자관계, 사회적 시장경제, 공동결정제 같은 독일 특유의 사회경제 시스템을 안착시켰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중 나타난 ‘고용 기적’은 독일 기업과 경제의 저력을 전 세계에 증명하기에 충분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독일의 실질 GDP는 -6.7%를 기록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4.8%에 미치지 못했다. 반면 실업률은 위기 발발 당시 7.9%에서 2년 후인 2010년 들어 오히려 7.0%로 감소했다. 독일 노동자(사업장평의회)와 기업(감사 위원회)은 대규모 해고 대신 노동시간 감축, 임금인상 자제 등 위기 극복에 힘을 합치기로 결단했다. 위기가 잦아들자 고용안정은 기업 경쟁력 유지와 안정적인 시장수요를 뒷받침하는 기제로 작용했다. 결국 금융위기 이후 독일은 유럽의 리더로 우뚝 섰다.

오너와 전문경영인의 지속적 커뮤니케이션

사실 독일은 2000년대 초반부터 이어진 불황에 허덕이며 ‘유럽의 병자’라는 굴욕을 안아야 했다. 최근 독일의 위상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당시 독일은 불황을 타개하기 위한 수단으로 대대적인 노동시장 개혁에 나섰다. ‘어젠다2010’으로 정리된 하르츠개혁의 핵심은 규제 완화를 통한 노동시장 유연화로 정리할 수 있다. 사실 어젠다2010의 성과는 아직 독일 내에서도 완벽한 찬성과 격렬한 반대 두 가지뿐이다. 다만 금융위기가 하르츠개혁에 역행하는 사회동반자관계를 기반으로 한 ‘옛날 방식’을 다시 불렀고, 이후 고용 기적을 통해 위기를 극복했다는 사실은 노동시장 유연화가 대세인 오늘날 시사하는 바가 크다.

휘슬러 역시 오랜 지역 연고를 바탕으로 한 고용안정과 조직 역량 강화를 인사관리의 핵심 가치로 삼고 있다. 휘슬러 관계자에 따르면 10년 이상 장기 근속자뿐만 아니라 2~3대가 연이어 근무하는 직원도 상당수라고 한다. 울스타하프 CEO는 “구체적인 조직 구성과 역량 강화 시스템을 밝힐 순 없지만, 사내 교육개발센터 설립 등 인사 관련 투자를 지속적으로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회사의 비전과 미션을 공유하는 로열티를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인력 개발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운영 중”이라고 밝혔다.

울스타하프 CEO는 “독일 내 인적자원 투자뿐 아니라 휘슬러가 진출해 있는 해외시장과 지사에서 축적한 경험을 하나로 모으는 데도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유의 자국 내 개발·생산을 고집하면서도, 글로컬라이제이션으로 상징되는 경영환경의 변화도 놓치지 않겠다는 복안이다. 울스타하프 CEO 역시 독일이 아닌 덴마크 출신이다. 휘슬러 합류 전에는 노르웨이 프리미엄 유모차 브랜드인 스토케에서 CEO로 일한 글로벌 기업가다.

울스타하프 CEO가 밝힌 휘슬러 합류 과정도 흥미롭다. “솔직히 휘슬러에 오기 전까지는 회사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 다만 영입 제안 이후 개인적인 조사와 더불어 오너가와 여러 차례 미팅하며 비즈니스 현안을 상의했다고 한다. 이후에도 며칠에 걸친 미팅과 회의에서 외부인의 관점을 오너가에 전했고, 그 역시 휘슬러의 고유 가치를 오너가에서 전달받았다고 한다. 울스타하프 CEO는 “결국 나와 오너가, 슈퍼바이저리의 뜻이 맞았고, 기쁘게 사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오너가는 향후 성장 기회를 매우 중시하고 있다”며 “외부인의 시각으로 성장 전략을 재정의하고 구체화하는 게 나의 임무”라고 밝혔다.

[박스기사] 준비된 오너가 이어온 175년 역사 - 엔지니어링 전공…전문경영인과 지속적 소통


▎창업주 칼 필립 휘슬러(좌)와 폴카르트 휘슬러 현 회장.
창업주인 칼 필립 휘슬러가 1845년 창업에 나선 이후, 현재 휘슬러는 5대째인 폴카르트 휘슬러(Folkhart Fissler)가 오너십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현재 휘슬러 모회사인 베스타(VESTA) 이사회 의장이자 휘슬러 회장이다. 폴카르트 회장의 부친이자 선대 회장인 헤럴드 휘슬러(Herald Fissler)는 지난 2013년 타계했다. 헤럴드 회장은 생전에 대학에서 엔지니어링을 전공한 후 1952년부터 경영진으로 참여해 다수의 특허와 혁신으로 신제품을 출시하는 데 기여했다. 다단계 압력계기가 부착된 최초의 압력솥, 단열 소재 손잡이가 부착된 스테인리스스틸 제품 등이 모두 그의 리더십하에 이뤄진 혁신 사례들이다.

폴카르트 회장은 1999년부터 최대주주로서 회장직을 이어받았다. 전문경영인이 없었던 2002~2003년에는 직접 휘슬러 CEO로 재직하기도 했다. 휘슬러의 경영 승계는 오랜 경영자 교육과 준비를 통해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전공은 물론 다른 기업에서 일하며 업무 능력을 쌓는 과정이 일반적이다. 폴카르트 회장 역시 뮌헨공과대학에서 기계공학과 경제학을 전공했다. 이후 글로벌 컨설팅 기업, 독일 내 기업 등에서 경력을 쌓은 후 1999년 휘슬러에 합류했다.

폴카르트 회장은 경영 전반은 물론, 제품 개발에서 생산에 이르기까지 세세한 시스템을 그룹 내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전문경영인에게 많은 사안을 위임하고 있지만 수시로 밀접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의사결정에 나서고 있다. 한국형 제품 라인업 관리 및 개발에도 직접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스기사] 도전 받는 공동결정제의 미래 - 굼뜬 의사결정… 부정부패 온상 ‘오명’도


▎‘어젠다2010’으로 노동시장 개혁에 나섰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
공동결정제는 독일식 경영과 지배구조의 핵심이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독일 역시 영미식 주주자본주의 도전을 거세게 받고 있다. 1980년대까지 독일에선 주식판매를 위한 투자자 모집이 ‘상스러운’ 일로 간주됐지만, 1990년대 이후 주식 광고를 싣는 경제지가 늘기 시작했다. 또 이때부터 영미식 경영을 익힌 CEO를 외부에서 수혈하는 경우가 많아지며 매니지먼트 방식에서도 기존과 다른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성과급 제도 확산도 과거부터 이어온 독일 노동자들의 ‘연대적 임금정책’에 힘을 빼고 있다. 더욱이 메르세데스벤츠, 폴크스바겐, 지멘스 같은 대기업들이 그간 사내유보금으로 지급하던 기업연금을 연기금으로 분리하자, 노동자들 역시 기금 운용에 관한 수익률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게 됐다. 이런 추세는 독일 제조기업의 명성을 땅에 떨어뜨린 폴크스바겐의 디젤 스캔들이라는 부작용으로 전이됐다. 막강한 권한을 가진 종업원 대표(사업장평의회)를 경영진이 구워삶고, 견제 기능이 사라진 상황에서 양측이 수익률 제고에만 혈안이 됐던 것이 폴크스바겐 게이트의 본질이다.

느리고 굼뜬 의사결정 과정, 새롭게 떠오른 부정부패의 고리라는 비판 속에서도 독일 특유의 공동결정제가 거둔 성과를 인정하고 유지해야 한다는 견해도 물론 강력하다. 김호균 명지대학교 교수는 공동결정제가 시행된 배경과 의의를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애초 공동결정제가 자본권력에 대한 내부 통제장치로 등장한 것이지, 기업 효율성 제고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등장한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저서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에서 “공동결정제는 오히려 사용자의 무한한 이윤 욕망을 제어하기 위한 장치이므로, 그 자체로 기업 효율성 목표에 거스르는 것이 존재 이유”라고 말했다. 효율성을 이유로 공동결정제의 정당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본질에서 벗어난 경제주의적 오독이라는 주장이다.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사진 김현동 기자

202005호 (2020.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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