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천루들이 빌딩 숲을 이룬 맨해튼 미드타운. 왼쪽에 허드슨강이 흐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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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늦봄, 뉴욕에 발을 디뎠다. 당시 20대였던 나는 뉴욕지사의 해외 판매 주재원으로 일하기 위해 그곳을 찾았다. 국제선 비행기도 난생처음 타봤다. 뉴욕으로 가는 길에 일본 도쿄와 하와이 호놀룰루, 로스앤젤레스에서 2~3일씩 머물며 낯선 해외를 조금씩 여행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는 단수여권이었고, 여권 발급에만 몇 달씩 걸리곤 했다. 경찰서에서 신원조회를 마치고 신원보증서를 제출한 후에 반공교육까지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를 시작으로 평생 동안 해마다 몇 달씩 해외 출장을 다녔다. 전 세계 여러 나라와 도시를 방문했고, 덕분에 항공 마일리지는 몇백만 수준인 밀리언 마일러가 됐다.
30년 전 파산 지경이었던 뉴욕시
▎오랫동안 뉴욕의 상징이 돼온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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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도착해서 처음 출근한 사무실은 ‘1500 Broadway, New York, NY’이었다. 브로드웨이 1500번지 건물은 맨해튼의 중심지로, 네온사인이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타임스퀘어에 있다. 매년 연말이면 제야 행사가 열리는 타임스퀘어에서 중앙의 정면을 바라보면 바로 왼쪽에 있는 검은색 고층 건물이다. 타임스퀘어는 전 세계에서 찾아온 관광객, 비즈니스맨, 예술인 등이 어우러지기 때문에 각양각색 인종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서로 어깨를 피해 가며 걸어야 할 정도로 항상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다.요즘은 맨해튼의 치안이 좋아지고 거리도 깨끗해져서 활보하고 다닐 수 있지만, 1978년의 타임스퀘어 인근에는 수많은 노숙자와 마약 중독자가 인도 여기저기에 누워 있었다. 거의 매일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등 공포 분위기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맨해튼의 새로운 관광 명소인 허드슨 야드 (Hudson Yards)의 베슬(Vesse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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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낮부터 번쩍거리던 네온사인은 대부분이 ‘XXX’ 등급 영화관이었다. 뉴욕시 재정이 거의 파탄 나면서 명소인 라디오시티 뮤직홀이 문을 닫을 지경에 이르자 시민들이 모금운동을 할 정도였다. 지금과는 무척이나 다른 풍경이다.당시 한국은 중동 건설 시장에서 거둔 성공을 바탕으로 기업들의 덩치가 커지고 있었고, 불황에 가격이 추락한 맨해튼의 부동산을 매입하려는 움직임도 많았다. 그러나 까다로운 외환관리법 때문에 거래가 성사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지금처럼 해외투자가 개방되었다면 아주 좋은 투자처였을 것이다.그때는 해외 건설사나 종합상사 등 수백 개 회사가 뉴욕에 지사를 두고 세계 경영을 펼치고 있었다. 요즘은 워낙 통신과 운송이 발달해 뉴욕에 지사나 상사를 둔 기업을 찾아보기 어렵다. 필자는 첫 뉴욕 주재원 경험 이후 지금까지 매년 한두 차례 뉴욕을 방문했다. 1981년부터 1986년까지는 현지 법인장으로서 5년간 뉴욕에 직접 주재하며 세계 경제와 금융 중심지인 맨해튼의 경기 상승기와 하강기 변화를 경험하고 관찰할 수 있었다. 앞서 언급한 1970년대의 불황과 그 이후의 호황, 2001년 9·11테러의 충격과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어진 호황과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 이르기까지. 지금껏 겪은 여러 경험은 ‘경제와 경영 사이클’에 대한 깊은 분석과 대비, 운용이 필요하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졌다.2008년 금융위기가 지나고 와튼 최고경영자 과정 원우들과 함께 맨해튼 다운타운에 있는 씨티은행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은행 고위 임원과 여러 주제로 토의 및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우리나라는 이미 IMF 외환위기로 많은 고통을 받은 터였던지라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미국은 금융 선진국이다. 그리고 세계 대공황, 블랙먼데이, IT 버블 등 수많은 경제위기와 호황을 경험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금융위기를 맞았다. 미국은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유사한 경제적 위기를 방지할 대책이 있는가?”그러자 충격적인 현답이 돌아왔다. “인간의 망각과 탐욕 때문에 이런 위기는 형태를 달리하며 지속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답변에 공감한 우리는 연이어 출현할 위기에 최선을 다해서 대비하면서 지속가능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경기 사이클 연구로 시행착오 줄여야
▎맨해튼 심장부인 타임스퀘어(Times Square). 세계적 기업의 광고와 브로드웨이 뮤지컬 광고가 휘황찬란한 곳이다.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보행자 거리가 마치 인종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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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들이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는데 필자는 요즈음 주변을 관찰하고 지난날을 반추하면서 ‘30년이면 생태계가 변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30년을 주기(Cycle)로 과거의 흐름에서 경험을 얻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를 대비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지혜를 얻어야 한다는 생각이다.양재천 옆길을 드라이브하다 보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숲을 만난다. 매봉터널이 아직 뚫리지 않고, 남부순환도로 옆 동호로도 막혀 있었던 30여 년 전에는 모두 사람 팔뚝 정도의 굵기였다. 이제는 엄청나게 크게 자라 새로운 생태계인 멋진 숲을 이루었다. 지난 30년간 회원으로 다니고 있는 골프장의 티(골프장에서 공을 치는 위치)를 보면 개장 당시의 화이트 티(White Tee) 위치가 블루 티(Blue Tee)로 둔갑하고, 화이트 티는 전방으로 한참 옮겨놓았음을 알 수 있다. 30년 전 40~60대였던 회원들의 연령이 70~90대가 되었기 때문이다.회사를 경영하며 채용했던 20대 젊은 신입사원들은 이제 50대 임원이 됐다. 입사할 때의 처녀 총각들은 저마다 가정을 이루었고, 이제는 그들의 자녀들이 대학을 다니고 군대에 간다. 서른 살이었단 사원은 환갑이 되어 손자 손녀를 보았다. 만 30년 전 한국그런포스펌프를 창립한 CEO로서 1인 사무실에서 시작한 회사는 이제 3개 회사에 3개 공장을 갖춘 기업으로 성장했다.
1990년경에는 도시가스가 전국에 처음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겨울용 난방기기인 연탄 및 기름 보일러의 대체재로 가스보일러가 새로운 제품으로 등장했다. 그전까지 여름용 냉방기기를 생산하던 기업들은 겨울 비수기를 채워줄 수 있는 새로운 시장으로 난방기기인 가스보일러 시장에 뛰어들면서 사계절 비즈니스를 영위할 수 있는 기회에 대거 투자를 시작했다. 기존 보일러 전문 회사들은 연탄 및 기름 보일러 대신 청정에너지를 사용하는 가스보일러 생산으로 전환했다. 기타 설비 관련 시공 업체 등 수십 개 기업이 가스보일러 시장에 일시에 진출했다.필자는 가스보일러에 심장과 같은 역할을 하는 소형 온수순환 펌프를 공급하고 있었기에 모든 가스보일러 업체와 거래를 시작했다. 거대한 울산 현대조선소, 수원 삼성전자, 창원 LG전자 등 내로라하는 굴지의 대기업 수십 곳이 가스보일러를 생산했다.한편 유럽 및 미주 시장에서 많은 경험을 한 글로벌 기업들은 한국에는 5개 정도의 가스보일러 기업이면 공급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에는 5곳의 가스보일러 관련 기업이 가동 중이다. 앞서 언급한 초대형 기업을 포함해 수십 개 공장이 문을 닫았다. 새로운 산업이 태동될 때 기업 및 국가적 손실을 방지하기 위하여 시장 규모, 기술 경쟁력, 서플라이체인 등 시장조사를 심도 있게 진행하고 경기 사이클에 대한 연구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함을 보여주는 사례다.일하는 방식도 완전히 바뀌었다. 예전에는 텔렉스와 팩스로 국제 무역 업무를 처리했는데 이제는 모두 사라지고 손안의 스마트폰 덕분에 언제 어디에서나 국제통화가 가능해졌다. 이메일 발송과 수신도 스마트폰 하나면 되고 이를 통해 전 세계와 소통한다. 30년 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생태계의 변화다.약 30년 전 덴마크에서 출장 온 브랜딩 이사 킴 클래스트럽(Branding Director, Kim Klastrup)은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그림 한 장을 보여주었다. 1950년대 미국인들이 50년 후인 2000년에 생활하는 가정과 사무실, 도시의 모습을 그린 상상도였다. 이제는 2000년에서도 20년이나 지났다. 돌이켜보니 오로지 상상이었던 그 그림이 이제는 거의 다 현실이 됐다. 평면 컬러TV나 퍼스널 컴퓨터, 휴대전화를 지금은 누구나 사용하지만 과거에는 상상 속에서나 그리던 장면이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미래를 여행하는 기분이다. 지난 1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전시회를 방문해보니 날아다니는 자동차, 무인 자동차가 곧 현실이 될 것 같다. 최근 일론 머스크가 쏘아올린 민간 우주선을 타고 우주관광을 하고 화성 식민지에 이민을 가는 일도 곧 현실이 되지 않을까?요즘도 맨해튼은 나날이 달라지고 있다. 허드슨강 페리 위에서나 강 건너편 뉴저지 쪽 언덕에서 사진을 촬영하며 바라본 맨해튼의 30~40년 전 모습은 이제 새로 건설되고 있는 수많은 마천루에 의해서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 『주역(周易)』에서 이야기하듯이 모든 것은 바뀌고 변한다. 규칙적이든 때로 불규칙적이든 변화하는 경기와 경영 사이클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를 통해서 시행착오를 줄이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준비와 안목, 대안을 갖추어야 함을 도시의 변천사를 보며 깨닫는다.
※ 이강호 회장은… PMG, 프런티어 코리아 회장. 덴마크에서 창립한 세계 최대 펌프제조기업 그런포스의 한국법인 CEO 등 37년간 글로벌 기업의 CEO로 활동해왔다. 2014년 PI 인성경영 및 HR 컨설팅 회사인 PMG를 창립했다. 연세대학교와 동국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고, 다수 기업체, 2세 경영자 및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경영과 리더십 코칭을 하고 있다. 은탑산업훈장과 덴마크왕실훈장을 수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