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 로버츠와 휴 그랜트 주연의 [노팅힐](1999)이라는 영화를 보면 유명 영화배우로 나오는 여주인공이 남주인공을 만나는 장소가 다름 아닌 로컬마켓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로컬 문화를 보면 이 영화의 배경이 그다지 허무맹랑하지만은 않다. 미국처럼 땅이 넓은 나라에서 농산물을 옮기려면 동에서 서로, 남에서 북으로 이동하면서 물류를 이용해야 한다. 트럭이나 기차 같은 수단을 이용해 옮기면 석탄이나 기름을 사용할 수밖에 없고, 이는 곧 가격 상승과 환경오염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비합리적인 낭비를 막고, 지역의 특성과 다양성, 삶의 질과 사회적 가치를 강조하기 위해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서는 1970년대부터 로컬마켓이 아주 보편화됐다.로컬마켓에서는 소규모로 농산물을 재배하고, 이동시간이 길지 않기 때문에 신선한 제품을 일반 시민에게 즉각 제공할 수 있고, 중간 유통 단계가 줄어들기 때문에 가격도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어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유리하다. 도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한다면 이쪽이 훨씬 더 삶의 메커니즘에 적합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우리나라는 2000년대 중반부터 골목상권이라는 형태로 로컬마켓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예술가적 성향의 사람들이 모여 공간의 차별성을 만들어낸 홍대 거리와 가로수길, 오래된 한옥이 남아 있는 골목을 중심으로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삼청동과 외국 문화의 집결지인 이태원, 이 네 상권이 중심이 된 것이다. 이후 홍대 주변에 문화시설을 세우고 경의선 숲길을 조성하면서 합정, 상수, 망원, 연희, 연남까지 골목상권 영역이 확대됐다. 삼청동은 북촌과 예술가들이 많이 모여 살았던 골목길 서촌까지 영역을 넓혔다. 그 외에도 을지로, 익선동, 해방촌, 성수동 등 수많은 골목상권이 생기며, 개성 있고 특색 있는 동네 브랜드가 모인 골목이 자연스럽게 지역 발전을 견인하고 있다.로컬마켓이 좋은 이유는 그 지역 사람들에게는 매일 만나는 일상이지만, 타지 사람들에게는 이전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감성과 분위기를 느끼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차별성이야말로 골목상권의 경쟁력이며, 소비자들이 열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