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어디로 여행을 가야 할까 

 

지금 내 지갑에는 10만원쯤 있고, 통장을 뒤져보면 100만원도 넘게 소유하고 있다. 소위 ‘소유’라 함은 이와 같이 정량적이고 물질적인 소유를 얘기한다.
안정감을 주는 데 물질적 소유만 한 게 없기 때문에 10만원만 가지고 있어도 기쁠 수 있다. 하지만 10만원이든 100만원이든 ‘잘’ 썼을 때 ‘찐기쁨’을 누린다. 돈을 쥐고 있는 것은 소유이자 수단이고 ‘잘’ 쓰는 것은 사유(思惟)이자 목적이라는 것을 얼마 전에 깨달았다.

요즘 유행하는 ‘플렉스’(‘집은 없어도 차는 벤틀리를 사겠다’는 것처럼 고가의 물품을 구매하고 이를 과시하는 소비행태)를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 소유물을 가치 있는 다른 것과 ‘잘’ 바꾼다면 무엇일까? 건강? 부동산? 소위 건물주가 꿈인 사람이 많은 거 보면 가치가 있는 것 같다. 근데 그게 ‘잘’ 썼다 하기에는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님과 살기 위함이 아니라면 결국 투자 수단이지 목적은 아니라서 패스한다.

지난 고성장 시대에 대부분의 사회인은 물질적 소유를 위해 살아왔다. 저성장을 지나 이제 마이너스성장 시대에 접어든 요즘 시대의 단어는 아닌 것 같다. 행복을 탐구하는 사람이 어느 때보다 많아져서인지 소유는 좀 지치는 단어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소유했을 때보다 공유하고 사유할 때 행복하다고 느낄 것이다. 소유물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은 사실 그리 가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좋아하는 친구, 가족, 연인을 소유할 수 있는가? 연인에게 그런 소리 했다가는 요즘엔 차일 것 같다. 사람이나 행복, 마음 같은 것을 소유하겠다는 것은 집착이고 오만이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사진 몇 장과 스토리를 인스타그램에 소유할 수는 있겠지만 그 시간, 그 장소, 그 경험 자체를 소유할 수는 없다.

어서 여행을 가고 싶다. 복잡한 세상에서 도피하고 싶을 때면 늘 항공사 사이트부터 뒤적였었다. 더는 새로운 생각이 나지 않을 때면 새로운 곳에 가서 새로운 경험을 하다 보면 문제가 풀렸기 때문이다. 비행기 티켓을 끊을 때부터 시작되던 설렘은 이제는 어려워졌다. 근데 여행이 왜 비행기 타고 말이 통하지 않는 먼 곳으로 가야만 한다고 생각했을까? 차라리 잘됐다. 해외여행은 많아야 일 년에 두세 번이고 돈도 시간도 마음먹기도 힘들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좋은 데가 있는 줄 몰랐어.’ 요즘 유행하는 영화 대사인지 길거리에서도 몇 번을 들었다.


새로운 장소에 가보는 것만으로도 여행 기분을 낼 수 있다. 서울에 몇십 년을 살았지만 남산 한 번 안 가본 사람도 많다고 한다. 서울에만 약 450개 동(洞)이 있다. 몇 군데나 가봤을까? 여행의 최고 묘미는 그런 식의 다양한 경험을 연결하는 사유, 깨달음 같은 것에 있다. 소유는 의지의 능력이고 사유는 인지의 능력이다. 행복과 사람은 소유하는 순간 소멸될 것이고 사유하는 순간 생성될 것이다.

- 이의현 로우로우 대표

202009호 (2020.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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