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성모병원은 2014년 9월 세계 최초로 3D 프린터로 환자 맞춤형 생분해성 보형물을 제작해 안면윤곽 재건 수술에 성공했다. 수술 후 체내에서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남아 부작용을 일으키는 티타늄, 플라스틱 같은 의료용 물질을 대체할 수 있는 생체재료가 사람 몸에 처음 적용된 순간이었다.
수술에는 티앤알바이오팹이 만든 생분해성 인공지지체가 사용됐는데 2~3년에 걸쳐 환자의 체내 조직으로 대체된 후 분해되어 사라진다. 티앤알바이오팹의 생분해성 인공지지체는 상용화 수순을 밟아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1만여 건이 넘는 수술에 활용됐다.티앤알바이오팹은 4차 산업혁명의 주요한 혁신 기술인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해 생분해성 의료기기, 바이오잉크, 오가노이드(미니 인공장기), 3D 프린팅 세포 치료제 등을 개발, 상용화하고 있다. 2013년 티앤알바이오팹을 설립한 윤원수 대표는 실제 장기를 완벽하게 재현한 인공장기를 만들어 세계 최초로 인체에 적용하기 위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전 세계 재생의학 시장 규모는 42조원으로 연평균 26%씩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가운데 생분해성 인공지지체 시장은 2022년 약 4조원 규모까지 커질 전망이다.
기존 재생의학 기술의 한계를 3D 바이오프린팅 기술로 혁신해나가고 있다. 3D 바이오프린팅 기술로 치료 및 재생할 수 있는 생체 조직과 장기는 무엇인지, 어느 수준까지 올라와 있는지 말해달라.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손상된 조직, 장기들을 인공 조직, 장기로 대체하는 것이다. 완벽한 장기를 만들어 이식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단계를 하나씩 밟아나가고 있다. 그중 하나가 조직재생용 지지체다. 임플란트라고 생각하면 이해가기 쉽다. 뼈가 손상된 곳에 맞게 인공지지체를 만들어 넣어주는 것이다.
인공지지체를 3D 프린팅하는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나.환자의 CT 이미지를 바탕으로 필요한 부위를 디자인하고, FDA가 승인한 생체 적합성 재료를 이용해 맞춤형 인공지지체를 3D 프린팅한다. 이식 후에는 주변 조직들이 지지체에 침투해 자가조직으로 대체되고, 3년 정도 걸쳐 서서히 분해된다. 이 같은 기술을 구현하기 위해 생체재료 제조 기술, 세포 기술, 공정 기술, 장비 등 3D 바이오프린팅에 필요한 모든 기술을 확보해 왔고, 계속 발전시켜나가고 있다.
몸속에서 자연 분해되는 환자 맞춤형 인공지지체의 장점은 무엇인가.안와골절 등 다양한 부위에 필요한 인공지지체를 환자 맞춤형으로 사전에 제작하기 때문에 수술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고, 티타늄이나 실리콘처럼 몸속에 계속 남아 있지 않고 분해되어 부작용이 없다. 이미 베트남과 태국, 필리핀 등에 수출하고 있고 미국과 유럽, 중국, 대만 진출을 위한 인증 작업을 진행 중이다.
상용화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나.티앤알바이오팹의 인공지지체는 국내에서는 이미 의료기기로 품목 허가를 받았다. 세계시장에서도 오랜 기간에 걸쳐 1만5000여 건 이상의 세계 최대 규모 임상 사례를 확보했다. 현재까지 국내 150여 개 병원에 공급되어 1만여 건이 넘는 수술에 사용됐다.
티앤알바이오팹은 세계 최초로 탈세포화된 세포외기질을 이용한 바이오잉크(세포 프린팅용 생체재료)를 개발했다. 어떤 기술인지 설명해달라. 바이오잉크는 세포를 프린팅할 때 세포의 손상을 막고, 프린팅 후 세포가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생체재료다. 3D 프린팅 과정에서 세포만 프린팅하면 세포가 다 터져 죽기 때문에 바이오잉크와 함께 프린팅해줘야 한다. 현재 피부, 뼈, 연골에 대한 바이오잉크는 상용화됐고, 간, 심장, 호흡기, 뇌, 혈관에 대한 바이오잉크를 개발하고 있다.
바이오잉크를 활용해 만들 수 있는 제품은 무엇인가.줄기세포와 바이오잉크를 섞어 3D 세포 치료제를 만들 수 있다. 3D 세포 치료제를 재생이 필요한 조직이나 장기에 이식한다. 현재 심장근육, 피부, 간, 혈관 재생을 타깃으로 한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치료와 재생은 어떻게 다른가.단순 치료가 아니라 ‘재생’이 핵심이다. 심장근육의 경우, 20세가 지나면 더는 스스로 재생되지 않는다. 피부 세포는 2주에 한 번 재생되고, 뼈 세포도 10년 주기로 재생되지만 심근 세포는 스스로 재생되지 않기 때문에 심장근육 세포를 3D 프린팅해서 손상된 부위에 주입해 재생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 현재까지 동물실험 결과는 성공적이었고, 하반기에 동물실험이 마무리되면, 임상 단계를 밟게 된다. 이렇게 심근경색 부위나 간 경화 조직을 재생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치료제를 만들기 위해 많은 의료진과 연구진이 노력하고 있다.
치료제 개발에 사용되는 세포는 어떻게 조달하나.기증받은 사람의 세포 조직으로 역분화줄기세포(IPS)를 만든다. 역분화줄기세포는 다 자란 체세포에 특정 유전자를 주입해 원하는 장기로 자랄 수 있도록 만든 세포다. 지난 5월 하버드대 김광수 교수 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환자의 피부 세포를 도파민 신경세포로 만드는 역분화줄기세포 기술로 파킨슨병 환자의 임상 치료에 성공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역분화줄기세포를 이용한 조직 재생 기술들은 앞으로 더욱 활발하게 쏟아져 나올 것이다.
자가세포가 아닌 역분화줄기세포를 이용하는 이유는.실제 환자의 신체조직에서 필요할 때마다 세포를 분리해내려면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미리 세포를 많이 만들어놓고 보관하다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기에 가장 적합한 기술이 역분화줄기세포다. 이를 심근 세포, 피부 세포, 간세포 등 필요한 조직으로 분화할 수 있다. 현재 경북대학교병원과 협력해 FDA 기준을 충족하는 수준으로 상용화가 가능한 세포주를 구축하고 있다.
역분화줄기세포를 활용한 피부재생기술도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궁극적으로 피부를 완벽하게 재생해주는 기술이 가능해질 것이다.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창상, 화상 등 여러 질환으로 손상된 피부를 완벽히 재생할 수 있다. 과거 로레알과 함께 완전히 새로운 피부를 만들어내는 ‘페이스오프’ 연구를 공동으로 진행한 바 있다.
2016년 서울성모병원, 포스텍과 함께 3D 프린팅 기반 임상센터를 오픈하고, 안면 및 경부 골격과 안면 피부 재건 임상시험, 인체 장기 재건 연구 등을 진행해왔다. 현재 상용화를 앞두고 있는 연구가 있나.서울성모병원 김성원 교수의 주도로 3D 바이오프린팅 기술로 만든 인공기관(호흡기)을 환자에게 이식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올해 또는 내년, 세계 최초로 3D 바이오프린팅 기술로 만든 인공기관을 신체에 이식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완벽한 인공장기를 인체에 이식할 수 있는 시기는 언제쯤 올까.미국의 웨이크포레스트대학은 몇 년 전 손바닥 크기의 신장을 3D 프린팅하는데 성공했고, 최근 이스라엘 연구진은 미니 심장을 만들어 박동하는 모습을 공개했다. 아직 생물학적으로 완벽히 작동하는 인공장기를 구현하긴 힘들지만 기술 발전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부분적인 것부터 해결해나가고 있다. 심근경색 치료제, 퇴행성 관절염 치료제, 인공피부, 인공혈관, 인공 간 조직 등은 상대적으로 빠른 시일 내에 상용화될 것이다.
티앤알바이오팹의 단기적 목표와 5년, 10년, 그 이후를 내다본 장기적 목표는.충분한 미래 성장 가능성을 기반으로 수익도 내는 회사로 키워나가려 한다. 사업적인 측면에서는 3년 내에 흑자전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동시에 지속적인 연구개발로 미래 성장 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다. 기술적으로는 인공 조직 또는 장기를 만들어서 세계 최초로 인체에 이식하는 기업이 되고 싶다.
※ 티앤알바이오팹이 걸어온 길2013.03. 설립
2014.07. 4등급 의료기기 품목 허가 획득
2014.09. 개발 제품의 첫 임상 적용
2015.12. 한국산업은행으로부터 20억원 투자 유치
2016.03. GMP 시설확장 및 GMP 적합인정 승인
2017.02. 바이오의약품 산업 경쟁력 강화 공로 표창 (식품의약품안전처장)
2017.04. 바이오잉크 출시
2017.11. 중소벤처기업부장관 표창
2018.11. 코스닥 기술특례상장
2019.01. 베트남 진출
2020.02. 존슨앤드존슨 메디칼 에티콘 (Ethicon), 공동연구 계약 체결
2020.05. 생분해성 인공지지체 제품 CE인증 획득
※ 윤원수 대표는… 현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 / 현 대학중점연구소장(3D 바이오프린팅 연구소) / 대한민국 100대 기술 주역: / 3D 바이오프린팅 기술 부문 선정(2017.12.) / 신산업창조프로젝트 3D 프린팅 사업단 단장 / (2014.7.~2016.6.) / 포항공대 기계공학과 박사- 김민수 기자 kim.minsu2@joins.com·사진 김현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