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박은주의 ‘세계의 컬렉터’] MO MUSEUM 

미지의 신비로운 나라 문화를 예술로 승화 

부쿠스 부부(Viktoras Butkus & Danguole Butkiene)의 예술에 대한 사랑은 “The more art and art fans we have, the better off we’ll be (예술과 예술 애호가들이 많을수록 우리는 더 나아질 것이다)”라는 그들의 꿈을 낳았고, 그 신념은 리투아니아 빌뉴스의 MO박물관 설립으로 실현됐다.

▎MO Museum Photo Credit : Hufton and Crow
2017년 57회를 맞이한 베니스 비엔날레의 주제는 ‘예술 만세!(Viva Arte Viva!)’였다. 영예의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독일 작가 안네 임호프(Anne Imhof)의 [파우스트]는 전시 기간 내내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 바닥까지 투명한 유리로 된 설치 공간 속을 약간의 두려움을 안은 채 아슬아슬한 느낌으로 걸으며 발아래에서 펼쳐지는 연기자들의 몸짓, 춤, 노래 등 퍼포먼스를 내려다보게 된다. 관람객들은 강한 호기심과 함께 순간 처해 있는 상황으로 인해 극한 불안감을 느꼈다.

2019년, 제58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주제는 ‘흥미로운 시대를 살기를(May You Live in Interesting Times)’이었다. 랠프 루고프 총감독은 재앙으로 덮칠 환경에 관한 문제를 난민, 여성, 성소수자 등의 주제들과 더불어 한껏 포용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덮치기 바로 몇 개월 전에 열린 행사라 더욱더 인상적이었다. 그렇다. 예술가들은 가까운 미래의 유례없는 비극을 예견하고 있었다. 그들은 인류의 욕망으로 인해 파괴되어가는 환경과 그 환경에서 다른 생물들과 함께 변화에 익숙해져가는 과정을 각기 기발한 방식으로 예술 작품에 녹여냈다. 베니스 비엔날레의 황금사자상이 지아르디니와 아스날레에 전시관조차 없는 리투아니아관에 수여되었다는 소식은 의외였다. 리투아니아 파빌리온의 [태양과 바다(Sun & Sea)]는 루질 바르지루케트(Rugilė Barzdžiukaitė), 바이바 그래니크(Vaiva Grainytė), 리나 라프리트(Lina Lapelytė) 세 작가의 협업 작품이다. 관람자들은 기대에 부풀어 아스날레 부근, 좁은 마카치나 거리에서 비바람이 부는 을씨년스러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두 시간을 기다렸다. 건물 1층에는 모래사장을 연출한 인공 해변이 마치 연극 공연장처럼 세팅되어 있고 오페라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휴양객 모습으로 분장한 배우 20명이 퍼포먼스를 하면서 환경 재앙을 경고하는 노래를 부른다. 관람객들은 2층에서 하루 8시간 동안 긴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이 공연을 내려다본다.

제57회, 58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두 작품의 중심에 퍼포먼스가 자리한다. 이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전시와 공연이 음악을 배경으로 한 설치 공간 안에서 행해지는 복합 미디어 형식이다. 관람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순간순간 변해가는 극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집중력과 탄력적인 사고력이다. 이것이 이미 시각적으로 더는 변화를 찾을 수 없는 회화, 조각과 차별화되는 퍼포먼스의 가장 큰 매력이다. [태양과 바다]는 다른 사람의 에로틱한 행위를 지켜보는 관음증을 유도하는 마르셀 뒤샹의 에탕돈네(Etant donnes, 1946~1966), 이브 클랑의 20분 동안 단음을 반복하고 다시 20분 동안 정적하는 [모노톤-정적 심포니(Symphonie Monoton-Silence)]를 연주하는 동안 누드의 여인들을 붓 삼아 이브클랑 블루 물감으로 그린 [청색시대의 인간측정학(Anthropometries de l’epoque bleue)], 인공 태양 아래 누워 저마다 깊은 사색에 빠지게 하는 올라푸 엘리아손의 날씨 프로젝트(Weather project 2003) 등이 동시에 연상되는 기막힌 작품이었다.

리투아니아 작가 250명의 5000점 전시


▎MO Museum exhibition [The Origin of Species 1990s DNA] Photo Credit : Rytis Seskaitis
[태양과 바다]를 관람하면서 리투아니아 작가들과 문화가 더욱 궁금해졌다. 같은 유럽 내에서도 발트3국(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이 손꼽히는 여행지로 알려져 있지만 과연 리투아니아 문화에 관해 충분한 지식이 있었던가? 우선 숀 코넬리가 소련에서 탈출하려는 리투아니아 출신의 라미루스 함장 역을 맏았던 영화 [붉은 10월호], 소설 『새들은 페루에서 죽다』를 쓴 리투아니아 작가 로맹 가리(Romain Gary), [아이언맨]의 할리우드 스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등이 떠오른다. 리투아니아는 유럽의 다른 나라들처럼 작은 마을에도 오래된 역사를 지닌 성당이 있는 전통적인 가톨릭 국가다. 14세기에는 현재의 폴란드, 러시아,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까지 지배했던 강대국이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자행한 대량 학살의 피해국이었기 때문에 리투아니아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은 고향을 탈출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일까? 그들의 그림 속 분위기는 강한 색을 띤 작품일지라도 전반적으로 어둡고 멜랑콜리하다.

리투아니아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 꼭 방문해야 할 곳은 빌뉴스(Vilnius)에 있는 MO Museum(Modern Art Center Vilnius:MMC)이다. MO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현대미술 작품 5000여 점이 대부분 리투아니아 예술 작품이기 때문이다.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는 MO박물관은 과학자이자 자선사업가인 당귀올&빅토라스 부쿠스(Danguolė & Viktoras Butkus) 부부가 설립한 개인 박물관이다. 이들은 2008년에 수집을 시작하면서부터 특별한 방향을 추구했다. 리투아니아 보자르의 라민타 주르네트(Raminta Jurėnaitė) 교수와 다른 미술사학자들의 조언을 받아 회화, 그래픽, 사진, 비디오, 조각, 퍼포먼스, 설치작품들을 구입했던 것이다. 개인적 취향을 뒷전에 두고 리투아니아 예술사를 이해하도록 돕는 리투아니아 국립미술관과 같은 방향을 잡은 선택이었는데, 이는 100여 개가 넘는 박물관을 방문한 경험을 바탕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중국 역사와 예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작품들만 선별해서 소장했던 스위스 수집가 울리시그와 같은 선택이다. MO 컬렉션은 소비에트 시대에 이데올로기적으로 거부되었고 당시 정치적 견해로 인해 리투아니아 최고의 박물관에서 주목받지 못한 예술을 포함해 리투아니아가 독립한 후부터 현재 활동하고 있는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Šarunas Sauka. Mother, 2012, oil on canvas, 201×220. MO Museum collection


2018년 10월, 남녀노소 모든 관람자가 여가를 자유롭게 보낼 수 있는 공간으로 탄생한 MO박물관은 전시회뿐 아니라 영화 상영, 교육 아카데미, 콘서트와 이벤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과 활발한 커뮤니티를 기획한다. 또 MO박물관에서는 알기르다스 스테포나비시우스(Algirdas Steponavičius)와 비루테 지리트(Birutė Žilytė)가 제작한 1972년 프레스코화의 디지털 복원 조각도 감상할 수 있다.


▎Mikalojus Povilas Vilutis. Aggression II, 1979, \serigraphy, 41×34. MO Museum collection
2015년에 시작해 2018년에 완공한 MO박물관은 높이 17m, 총면적 3100㎡로 스튜디오 리베스킨트(Studio Libeskind) 디자인을 바탕으로 DO Architects 건축회사가 완성했다. 부쿠스 부부는 1500만 유로를 들여 박물관을 건축했다.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beskind)는 MO박물관이 그가 완성한 가장 작은 프로젝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프로젝트라고 고백할 정도로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내부 나선형 계단은 그의 경력 중 첫 번째 원형 형태였다. 이탈리아 뉴스 에이전시 ANSA가 세계 10대 21세기 박물관 중 하나로 Mo박물관을 꼽을 만큼 유럽에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MO박물관은 빌뉴스 시내에서도 특히 역사적, 문화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 빌뉴스의 방어 제방은 14세기에 MO박물관의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박물관 옆에 있는 빈그리에(Vingriai)는 19세기까지 개방된 빌뉴스의 주요 수원(water source)이었다. MO박물관과 퐁피두센터처럼 박물관 내부에 영화관이 자리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흔치 않은 일이다. 리투아니아에서 규모가 가장 큰 사립 박물관인 MO박물관에 영화관이 있는 이유는 MO박물관의 건설이 리에투보스(Lietuvos) 영화관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2012년 퐁피두센터의 Cinema 2에서 조나스 메카스(Jonas Mekas)의 [리투아니아와 소련의 붕괴]가 상영됐다. 조나스 메카스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영화감독이자 시인이다.

MO박물관이 소장한 작품들은 홈페이지(www.mmcentras.lt/ kolekcija/209)에서 온라인으로 감상할 수 있는데, 한 작가의 다양한 작품을 수집했음을 알 수 있다. MO박물관은 사이트에서 작품을 감상한 개인적 소감을 제출하게 해서 적극적인 감상과 자유로운 해석을 유도한다. MO박물관은 리투아니아 작가 250여 명의 개성 넘치는 작품을 5000점 이상 소개하고 있다. 작가와 작품들은 예술사 접근 방식과 문화유산 보전이라는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엄격한 선별 과정을 거쳐야 한다. 즉,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리투아니아 미술사 프로그램을 구축하기 위한 견고한 기반이다.


▎MO Museum Storage Room, Photo Credit : Rytis Seskaitis
미지의 신비로운 나라의 문화를 한 개인 수집가의 노력 덕분에 예술이라는 매체를 통해 발견하는 기쁨은 우리를 예술 수집가를 향한 동경으로 강하게 이끈다. 리투아니아 수집가 부쿠스 부부는 어떤 사람들일까? 리투아니아의 화학자, 물리학 박사, 자선사업가인 빅토라스 부쿠스(1954년 러시아 크라스노야르스크 출생)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리투아니아 사람들을 위한 박물관을 설립해서 우리의 소장품을 국내외 관람객들에게 제공하고 싶었습니다. 컬렉션은 리투아니아의 문화유산에 관한 것입니다…. 건축가 리베스킨트의 작업은 표현력이 풍부하고 혁신적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도시의 미래와 연결되는 동시에 과거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빅토라스 부쿠스는 생명공학 회사 ‘페르만타스(Fermantas)’를 설립해 35년간 생명과학 연구 및 진단을 위한 고품질 분자생물학 제품의 개발, 제조 및 마케팅 분야에서 세계적 리더로 발전시켰다. 소비에트 이후의 활발한 기업가 그룹의 일원이었던 부쿠스는 2010년 2억6000만 달러에 판매된 페르만타스 지분을 매각하여 큰 수익을 거두었다. 부쿠스는 국제 과학 언론에 40편 이상의 저서를 발표했으며 발명품은 16개에 이른다. 부쿠스 부부의 예술에 대한 사랑은 “The more art and art fans we have, the better off we’ll be(예술과 예술 애호가들이 많을수록 우리는 더 나아질 것이다)”라는 꿈으로 이어졌고 그 신념은 빌뉴스 MO박물관의 설립으로 실현됐다.


▎Kostas Dereškevči ius. Thursday, 1976, oil on canvas, 88,5×99,5. MO Museum collection
리투아니아가 1991년 독립한 이후 박물관과 수집가들은 소비에트 시대와 소비에트 이후 시대의 작품을 구입하지 않았다. 지역 박물관들은 이데올로기적인 이유로 소련 시대에 무시되었던 작가의 작품들을 구입하지 않았는데, 독립 후에도 자금 부족으로 인해 작품들을 구입할 재정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부쿠스 부부가 재정적으로 준비가 되자 곧 1956년, 소비에트 해동과 다시 태어난 모더니즘 시대(침묵 모더니즘), 리투아니아 근현대 미술을 모으기 시작했다. 또 부부는 그들의 소장품에 반드시 동시대의 리투아니아 미술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동시대 예술은 그들에게 리투아니아 사회와 시대의 일종의 거울로서 의식의 변화를 반영한 그들의 정체성 형성을 드러내는 매체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작품 5000점 중 잔카우스카스 캄파스(Jankauskas Kampas), 리나스 카티나스(Linas Katinas), 오드론 페트라시우나이트(Audrone Petrasiunaite), 코스타스 드레스케비시우스(Kostas Dereskevicius)를 선호하는 부부의 역사적인 수집품들을 일컬어 독일의 예술사학자 에카르트 길렌(Eckart Gillen)은 “진정한 폭로(a true revelation)”라고 평했다. 리투아니아 예술을 수호하는 부쿠스 부부의 걸작인 MO박물관을 방문할 그 날을 기다리는 지금, 벌써 가슴이 뛴다.

※ 박은주는… 박은주는 1997년부터 파리에서 거주, 활동하고 있다. 파리의 예술사 국립 에콜(GRETA)에서 예술사를, IESA(LA GRANDE ECOLE DES METIERS DE LA CULTURE ET DU MARCHE DE L’ART)에서 미술시장과 컨템퍼러리 아트를 전공했다. 파리 드루오 경매장(Drouot)과 여러 갤러리에서 현장 경험을 쌓으며 유럽의 저명한 컨설턴트들의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2008년부터 서울과 파리에서 전시 기획자로 활동하는 한편 유럽 예술가들의 에이전트도 겸하고 있다. 2010년부터 아트 프라이스 등 예술 잡지의 저널리스트로서 예술가와 전시 평론을 이어오고 있다. 박은주는 한국과 유럽 컬렉터들의 기호를 살펴 작품을 선별해주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202011호 (2020.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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