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진호의 ‘음악과 삶’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의 음악 이야기 

영국 물리학자 로저 펜로즈는 다른 두 연구자와 함께 올해의 노벨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그가 쓴 책에는 음악과 예술에 관해 언급한 구절들이 있다.

▎2011년, 80세의 로저 펜로즈 / 사진:https://www.nobelprize.org/uploads/2020/10/advanced-physicsprize2020.pdf
로저 펜로즈(Roger Penrose)는 1931년생으로, 올해 나이 89세인 노학자다. 그는 평범한 교수가 학계에서 누리기 힘든 수준의 성공을 거두었다. 옥스퍼드대학교 석좌교수, 영국왕립협회 회원, 미국과학아카데미 외국인 회원 등이 그의 주요 경력이다. 전문적 학술논문을 쓴 학계의 권위자이자 베스트셀러 저서 작가이며, 스티븐 호킹과 함께 (과학과 예술 분야에서 꽤 권위 있는) 울프상(Wolf Prize)을 수상했다.

노벨물리학상위원회는 ‘2020 노벨물리학상의 과학적 배경’이라는 문건 3쪽에 펜로즈가 수상한 이유를 간명하게 적었다. ‘일반상대성이론이 블랙홀 형성을 강력하게 예측한다는 사실’을 펜로즈가 발견했다는 것이다. 펜로즈는 1960~70년대에 블랙홀이 상대성이론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주장, 블랙홀의 주요한 특징들, 이를테면 블랙홀 내부에 시간이 정지하고 있는 특이점(singularity)이 존재한다는 내용 등을 담은 논문들을 발표함으로써 상대성이론의 창시자인 아인슈타인조차 믿지 않았던 블랙홀의 실체를 분명히 밝히는 데 큰 공헌을 했다.

인간 예술가는 느끼고 표현하는가?


▎노벨물리학상위원회가 작성한 노벨상 수상 이유를 담은 문건: ‘2020 노벨물리학상의 과학적 배경(Scientific Background on the Nobel Prize in Physics 2020)’의 3쪽. / 사진:Scientific Background on the Nobel Prize in Physics 2020
젊은 수리물리학자로서 블랙홀 전문가로 명성을 얻었던 펜로즈는 58살이 되던 1989년에 블랙홀과는 별 관계가 없는 내용을 담은 『황제의 새 마음: 컴퓨터, 마음, 물리 법칙에 관하여』라는 책을 저술했다. 1994년에는 이 책의 내용을 더욱 보강한 『마음의 그림자: 과학이 놓치고 있는 의식에 대한 탐구』라는 또 다른 문제작을 출판했다. 이 책은 전작이 출간된 후 제기된 수많은 반론에 대한 저자의 체계적 응답이다.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충분한 권위를 얻은 노교수가 편안히 안주하며 여생을 잘 보낼 수 있었음에도, 자신의 분야가 아닌 분야에 일종의 도전장을 낸 것이고, 그에 따른 파장에 재차 응전한 셈이었다. 이런 도전적 학자의 존재도 놀랍거니와, 파장이 있었다는 것도 놀랍다.

이 책들은 마음의 물리학을 다룬다. 그러니 저자의 전공인 물리학과 완전히 무관한 책은 아니다. 하지만 블랙홀과 마음은 분명 거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마음은 많은 물리학자와 심리학자, 신경과학자, 철학자, 고고학자, 생물학자뿐만 아니라 컴퓨터공학과 인공지능 분야의 연구자들도 다룬다. 수많은 학자가 하나의 질문을 공유한다. “인간 뇌는 컴퓨터의 CPU와 같은가?” 펜로즈는 다르다고 말하며, 같다고 하는 이들의 반론에 맞서 위의 책들을 썼다. 비컴퓨팅적(non-computational) 물리작용이 인간의 의식적 행동 양식의 바탕을 이룰 수 있다고 보는 견해가 그의 핵심 개념이다. 그에 따르면 컴퓨팅 그 자체로는 의식적 감정이나 의도가 생겨날 수 없다. 컴퓨터나 인공지능은 의식적 감정이나 자발적 의도를 가질 수 없다. 의식적 사고가 발생하려면 단순한 컴퓨팅으로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요소를 반드시 갖추어야 한다. 그 요소들은 무엇일까. 주류 신경과학자들에게 그것은 인간 뇌의 구성 요소인 뇌세포, 즉 뉴런들이다. 뉴런의 활동은 물리학 중에서도 고전역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 과학저술가 미카엘 브룩스(Michael Brooks)는 우리 뇌의 세포들 뒤에 세포들보다 더 작은 단위인 양자(quantum) 세계가 있고, 이 세계는 잘 알려져 있듯이 비결정론적(non-deterministic)이며 임의적(random)이지만, 뇌세포의 활동을 연구함으로써 의식과 마음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 양자 세계를 무시해도 좋다고 말한다. 그것을 무시하고 결정론적인(deterministic) 고전역학적 연구를 하는 것이 오컴의 면도날(Ockham’s Razor) 원리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오컴의 면도날 원리는 ‘같은 현상을 설명하는 두 개의 주장이 있다면, 간단한 쪽을 선택하라’는 제안인데, 마음과 의식, 감정과 정신 등을 설명할 때 양자를 언급하는 것은 복잡한 설명이며, 세포를 언급하는 것은 간단한 설명이라는 것이다.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면 굳이 복잡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펜로즈에게는 의식적 사고가 발생하기 위해 갖추어야 하는 것이 세포 아래의 양자 세계다. 그가 이 두 책에서 양자역학을 많이 다룬 이유다. 펜로즈는 이렇게 은하 및 우주와 같은 초거대세계와 양자가 노니는 극미시세계를 아우르는 학자가 됐다. 그렇다고 그가 이 세계들을 일관되게 통일한 것은 아니다. 상대성이론이 의미가 있는 초거대세계와 우리가 살고 있는 감각적 고전역학의 세계, 그리고 원자보다 작은 미립자들의 극미시세계를 통합하려는 통일장 이론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인간의 마음은 통일된 이론을 통해서만 이해되고 설명될 수 있는 것일까.


▎블랙홀 내부의 특이점을 보여주는 도표: ‘2020 노벨물리학상의 과학적 배경’ 7쪽. / 사진:Scientific Background on the Nobel Prize in Physics 2020
펜로즈는 왜 뇌세포만으로 의식과 마음을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하는가. 뇌세포처럼 활동하는 컴퓨터의 CPU가 무언가를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를 못 하는데, 특히 느끼지 못한다. 미학적 자질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펜로즈는 쉽게 지나치지 않는다. “로봇이 실제로 어떤 것도 느낄 수 없음을 인정하더라도, 영특하게 프로그래밍된 컴퓨터는 위대한 예술 작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질문을 던지고는 다른 질문을 추가한다. “컴퓨터가 자신의 미학적 기준을 개발하고 자신의 판단을 내리기 위해 왜 실제로 느끼는 일이 필요할까?” 펜로즈는 필요하다고 답한다. 느끼지 못하는 컴퓨터는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의문을 제기한다. 인간 예술가는 느끼고 표현하는가? 독자들은 당연히 그러지 않겠냐고 생각할 것이다. 나는 몇 년 전 대학원생 제자에게 특이한 연구 주제를 주고 그 결과로 석사학위 논문을 쓰라고 했다. 프랑스 작곡가 드뷔시의 ‘어린이의 영역(Children’s Corner: 한국에서는 보통 ‘어린이의 차지’라고 번역한다.)’이라는 모음곡 중 네 번째 곡인 ‘춤추는 눈’과 함께 총 다섯 곡을 사람들에게 들려준 후 그 다섯 곡 중 어느 곡이 눈을 표현한 것인가라고 설문조사를 하게 했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의미 있는 다수가 정답을 맞히지 못했다. 이 연구에는 여러 문제가 있었다. 하여튼 이것은 음악작품이 무언가를 잘 표현하는지에 대한 음악학자들의 의심을 불식하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한 연구 결과였다. 사람들은 음악이 무언가를 표현한다고 철석같이 믿지만, 또 음악가들 중에서도 그렇게 믿고 자랑하고 다니는 이가 많지만, 나름의 과학성과 엄밀성을 추구하는 일부 음악학자들은 19세기 이래로 음악이 무언가를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는 통설에 의심을 제기해왔던 것이다.

펜로즈는 인간에게 놀라운 총체적 사고 능력이 있다고 말한다. 어떤 영감을 무의식적으로 일거에 띄워 올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거의 완성된 어떤 음악작품, 어떤 수학적 아이디어 등을 이후의 의식적 사고를 통해 깎아내리고 다듬어 최종 완성한다고 말한다. 인간이 무언가를 창작할 때는 이렇게 띄워 올리기와 깎아내리기 두 작업을 한다. 알고리즘으로 무장한 컴퓨터는 깎아내리기는 할 수 있겠지만, 띄워 올리기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펜로즈는 띄워 올리기를 했던 위대한 천재들의 사례들을 제시한다. 우선 블랙홀 문제를 고민했던 1964년의 자신을 회상한다. 그해 가을, 그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한동안 전혀 성과가 없었는데, 한 동료가 방문해 함께 자신의 연구실로 걸어가면서 전혀 관계없는 주제로 담소를 나누었다. 대화는 길을 건너기 위해 잠시 중단되었다가 건너편에 도달하자 다시 계속되었는데, 그 잠깐 사이에 어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하지만 대화가 재개되면서 그 아이디어는 뭉개져버렸다. 얼마 후 그 친구가 떠났고 잠시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희열을 느꼈지만, 그게 무언지 가늠할 수 없었다. 펜로즈는 자신의 마음을 찬찬히 살펴본다. 결국 어떤 아이디어가 자신의 머리 한편에서 맴돌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 아이디어는 노벨상위원회의 문건 4쪽에도 인용된 ‘갇힌 표면(trapped surface)’이라는 개념이었다. 길을 건너면서 떠올렸던 희미한 수준의 아이디어가 나중에 성찰을 통해 더 분명해졌지만, 이미 길 건널 때 꽤 ‘완성된’ 형태로, 다만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로 그의 마음속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다. 펜로즈는 이 상황을 영감과 통찰력, 총체적 사고가 작동했던 순간으로 본다. 당연히, 컴퓨터에는 이런 영감과 통찰력이 없다.

뜻하지 않은 영감이 완성된 채 분출하듯이 떠올라 역사에 남는 무언가를 만든 사람들을 펜로즈는 『황제의 새 마음』에서 소개했다. 버스를 타려고 발을 올리는 순간, 그 이전의 고민들을 일거에 해결해주는 완성된 아이디어를 자각했던 프랑스 수학자 푸앵카레가 소개되었고, 모차르트의 이야기도 인용했다. “내가 기분이 좋고 쾌활한 상태거나, 마차를 탈 때나 좋은 식사 후에 산책할 때, 혹은 잠 못 이루는 밤중이면 내 마음속에는 수만 가지 상념이 몰려 들어온다. 어디에서 어떻게 오는 것일까? 나는 알지도 못하고 또 나의 의도와는 상관이 없다. 그들 중 나를 기쁘게 하는 것들은 머릿속에 남겨두고 이를 콧노래로 불러본다. 최소한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그렇게 말한다. 일단 처음 주제가 접히면 다른 멜로디가 나타나서 작곡 전체의 필요성에 따라 자신을 그 앞의 멜로디에 연결한다. 대위법이 이루어지고 각 악기의 파트와 선율 조각이 합쳐지면서 하나의 곡이 완성된다. 그러면 나의 영혼은 영감으로 타오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곡은 차츰 커지기 시작한다. 나는 자꾸 이를 확장하고 마음속에서 차츰차츰 명확하게 다듬어서 결국 그것이 아무리 길더라도 전체 작품이 머릿속에서 완성된다. 그러고는 마치 나의 눈길이 아름다운 그림이나 빼어난 젊은이의 용모를 사로잡듯이 내 마음은 그 완성된 곡을 붙잡게 된다. 이때 내 마음속에서는 이 곡을 연속적으로 듣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전체로서 듣는다. 물론 나중에는 이를 순서적으로 생각하며 여러 가지 파트의 자세한 부분을 완성해나가지만.”

펜로즈는 이 글을 프랑스 수학자 아다마르의 책에서 인용했다. 그 시대의 누구나 위의 독백을 모차르트가 했다고 알고 있었다. 우리는 사회 속에 살며 그 사회가 낳은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본다. 위의 독백을 누가 실제로 했는지 혹은 누가 창작했는지는 누군가가 밝혀야 할 것이다.

※ 김진호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 대학교의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매혹의 음색』(갈무리, 2014)과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갈무리, 2017) 등의 저서가 있다.

202011호 (2020.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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