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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욱의 對話(17) 구자관 삼구아이앤씨 책임대표사원 

“CEO여, 우두머리 아닌 ‘ 소사’가 돼라”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아웃소싱 업계 최초로 매출 1조원 시대를 연 삼구아이앤씨. 50년이 넘는 기업의 역사를 이끌어온 구자관 책임대표사원은 창업 때나 지금이나 스스로를 사원이라 부르며 몸을 낮춘다.

삼구아이앤씨는 국내 1위 인력 아웃소싱 전문기업이다. 청소부터 건물 등 시설관리, 제조, 물류, 케이터링(식음료 생산) 등 다른 기업이 본연의 업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궂은일을 도맡아 처리한다. 지난해에는 아웃소싱 최초로 매출 9840억원(연결 기준)을 달성해 업계를 놀라게 했다. 아웃소싱 한 우물로 매출 1조원 시대를 연 삼구아이앤씨는 구자관 책임대표사원이 지난 1968년 창업했다. 군 전역 직후 세제와 청소도구를 들고 도우미 아주머니(구 책임사원은 이들을 항상 ‘여사님’이라 부른다) 두 명과 시작한 식당 청소가 시작이었다.

정확한 창립기념일조차 희미한 청소 대행업체가 대한민국을 넘어 글로벌 아웃소싱 일등 기업의 꿈을 실현하는 데는 구 책임사원 특유의 도산정신이 바탕이 됐다. 2020년 11월 제5대 도산아카데미 이사장으로 취임한 그는 경영과 삶 모두에서 도산의 정신을 올곧이 새기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자 책임이라고 말했다. 손욱의 대화 열일곱 번째 순서에선 창업 이래 53년간 맨손으로 매출 1조원 신화를 써낸 구 책임사원의 도산 경영을 경청했다. 스스로 회장 대신 사원으로 불리길 원하며 평생 낮은 자세로 경영에 임한 53년의 철학이다.

손욱: 도산아카데미 이사장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도산 안창호는 생전에 “낙망은 청년의 죽음이요,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요즘은 모두가 ‘이생망’이라고 한탄만 하더군요. ‘이번 생은 망했다’는 말입니다. ‘헬조선’에서 더 발전했다고 해야 할까요? 언론도 긍정적인 이야기는 없고 온통 부정적인 내용만 쏟아내는 것 같습니다. 지금이야말로 도산의 정신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 아닐까요?

구자관: 도산아카데미는 지난 2000년에 창립됐습니다. 당시 흥사단 안에 도산기념사업회가 있었지만 도산의 사상과 철학을 후세에 전파할 조직이 마땅치 않았죠. 1989년 흥사단 부설기관으로 출발한 도산아카데미연구원이 전신으로, 2000년에 지금의 이름으로 등록했습니다. 김재순 전 국회의장이 초대 이사장을 맡으셨고, 이후 김태인 삼부해운 회장, 오명 전 부총리, 강석진 전 GE코리아 회장이 맡아주셨습니다. 제가 그다음을 잇게 됐는데 걱정이 태산입니다. 하늘 아래 가장 존경하는 분이 도산인데, 제가 뭘 안다고 이사장 자리에 이름을 올리느냐며 계속 고사했었죠.

손욱: 겸손의 말씀이십니다. 우리 사회와 재계에서 도산정신을 몸소 실천하시고 계시지 않습니까. 어려운 시기일수록 도산의 정신을 되새겨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1900년대 초 나라를 잃었을 때 “젊은이들이 절망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했던 이가 바로 도산이었죠. 항상 ‘나가자’는 구호를 꼭 세 번씩 먼저 외치셨다고 해요. “나라를 바로 세우지 못해서 일제에 빼앗겼다. 그건 가정이 바로 서지 못해서다. 가정을 바로 세우려면 인격을 바로 세워야 한다. 그러니 거짓말하지 말라. 내 자신이 바로 서야 가정이, 그다음 나라가 바로 선다”고 하셨습니다. 즉 애기애타(愛己愛他)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게 바로 나를 사랑하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뭐든지 내 것 먼저예요. 그러니 갈등이 생기죠. 우리 조상은 오랜 예부터 홍익인간, 즉 나눔과 배려의 삶을 중시했습니다. 그걸 모르고 살았어요. 도산 선생은 한 번도 남 위에 서서 따라오라 한 적이 없었습니다.

구자관: 임시정부를 상해 하나만 아는 경우가 많은데, 당시 6개가 있었습니다. 도산이 미국에서 유학하고 중국 상해로 독립운동 하러 오니 6개 임시정부가 중구난방이었어요. 내무총장 서리부터 시작해 하나로 통합한 분이 바로 도산입니다. 도산은 처음부터 “나는 여러분의 머리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기 이 자리에 왔다”고 말씀하셨어요. 애기애타와 애민애족을 생각지 않았으면 임시정부마저 계속 분열돼 있었을 것입니다.

손욱: 도산은 특히 정직을 강조했죠. 오늘날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도산정신을 배우고 익혀 시대에 맞는 인성을 갖춘 인재들로 자라나길 소망합니다.

구자관: 맞습니다. 도산은 거짓말을 너무나 싫어했어요. “거짓말을 했으면 자다가도 통회하라”고 하셨죠. 다른 이에게 거짓말하지 말라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입니다. 도산은 동지가 자기를 속이면 그냥 속으라고 했어요. 얼마나 큰 배짱입니까. 담대한 분이죠. 이런 분이 당시에 안 계셨다면 우리 역사가 어찌 됐을까요. 이봉창 열사의 배후로 연루돼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셨다가, 몸이 망가져 서울대병원에서 순국하셨습니다. 해방 전 돌아가시면서 “나는 죽으면 백성들과 똑같은 자리에 묻히고 싶다”고 하셨고, 그래서 망우리에 모셨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지금의 도산공원을 만들면서 옮겨 왔어요.

손욱: 정직이라는 말이 뱉기는 쉽지만 실천하기는 정말 어렵죠. 미국 유학 시절부터 정직을 실천한 도산의 일화가 본래 유명합니다.

구자관: 도산이 16살 되던 해 평양에서 청일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외국놈들이 쳐들어와 남의 집 앞마당에서 전쟁을 치르니 너무나 비통해하셨죠. 정규학교 대신 서당에 다니던 도산은 청일전쟁을 목도한 후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하지만 공부 대신 결국 귤 농장에서 일해야 했죠. 미국에 먼저 자리 잡은 조선인들은 대개 사탕수수와 귤 농장에서 노예처럼 일했습니다. 노예나 다름없는 이들이 성실히 일했겠습니까. 미국인 농장주들도 제 나라도 없는 이들이 일까지 무성의하게 하니 사람 취급을 안 했죠. “귤 하나를 따더라도 정성을 다해서 따라.” 도산의 애기애타 설파에 교포들이 변화하기 시작했고, 미국인 농장주들도 변화한 조선 민족을 우수하게 보기 시작했어요. 아직도 안창호를 모르는 젊은이가 많습니다. 굉장한 비극이에요. 민족의 스승이자, 오늘날 대한민국 정신의 뿌리를 모르는 것과 같아요. 도산은 순수한 독립운동가 이전에 나라의 사상과 철학을 올곧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인간이 가장 훌륭한 인간인지를 전한 사상가입니다. 거짓말이 난무하는 세상이에요. 지금의 정치인들을 보면 도산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도산은 독립운동가 이전에 사상가


손욱: 나라의 근간으로 삼을 만한 정신적인 지주가 계셨는데, 우리가 모시지를 못한 것이죠. 잊어버리고 살았습니다. 책임사원님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아웃소싱이라는 업종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사업이죠. 3만7000명에 달하는 직원을 이미 도산정신으로 대하고 계십니다. 책임대표사원으로 그들을 모시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렇게 많은 임직원이 한마음으로 움직일 수 있는 건 책임사원님께서 펼치시는 도산정신이 있기에 가능한 거라 봅니다.

구자관: 과찬이십니다. 다만 도산정신을 강조하는 건 제 의무이자 운명이라 생각합니다. 직원들에게 “나를 사랑하라”고 강조하죠. 제 앞가림도 못하는데 남을 위해 뭘 하겠습니까. 스스로 가진 것도 없고 바로 서지 못했다면 남을 위해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겁니다. 콩 한쪽을 나눠 먹을 게 아니라, 10개를 가지고 5개로 나눠 먹어야죠. 기업이라면 수익을 남겨야 남을 도울 수 있습니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게 내 식구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거예요. 제게 경영 철학을 묻는 분이 많습니다. 초등학교 졸업장도 없고, 야간고둥학교 나와 대학 근처도 못 가본 사람이 무슨 철학이 있겠느냐고 답하죠. (구 책임사원은 2000년 대 들어 용인대학교 경찰행정학과 학사와 서강대학교 경제대학원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경영 원칙은 있습니다. 직원들이 배고플 일 없고 배불리 먹이는 게 내 일이라는 거죠. 요즘 밥 굶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 책임이 제게 있는 것이죠. 기업의 근본은 직원입니다. 이들이 잘 먹고 잘살게 하는 게 바로 제 소원이에요. 삼구는 연 매출이 1조6000억원에 이르는 회사입니다. 대개 당기순이익을 1000억원쯤으로 예상하는데, 지난해에 200억원을 못 벌었어요. 상여금 지급 때가 되면 총괄사장과 가끔 다투기도 합니다. CEO와 CFO는 가용자금을 어느 정도 모아야 한다고 하고, 저는 내 식구를 돕는 게 우선이라고 하죠. “먼저 상여금 줘봐라. 그럼 열심히 일해서 더 번다”는 게 항상 하는 말입니다. 고객사 입장에선 돈 벌어서 직원들에게 다 준다 할지 모르지만, 우리 직원들이 당당하게 최고의 대우를 받는 게 제 사업의 목표죠.

손욱: 도산이 처음 미국 귤 농장에 가보니 이미 조선인은 게으르고 거짓말하는 민족이 돼 있었어요. 사는 집도 엉망진창이니 미국인들이 인간 취급을 안 했죠. 이민 온 여러 민족 중 꼴찌 취급을 받았습니다. 도산은 우리 스스로가 바뀌어야 한다고 다짐했어요.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청소를 해주었죠. 난데없이 젊은 청년이 계속 찾아와 청소를 하고, 그렇게 이야기를 나눌수록 사람들의 마음에도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귤 하나를 따더라도 나라를 바로 세운다는 마음으로 하라.” 그렇게 미국 사회에서 조선인의 위상이 올라갔습니다. 노예 같은 인간들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들로 변한 것이죠. 지역의 한 독지가가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변했느냐”고 묻자 “한국에서 젊은 청년이 와서 이렇게 우리를 변화시켰다”고 했답니다. 도산은 “당신들이 원하는 게 뭐냐”고 묻는 독지가의 도움을 받아 흥사단의 전신인 신민회를 세웠습니다. 조직 창립 자금도 1년 만에 다 갚았죠. 정직과 애기애타 정신이 있었다면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지 않았을 거라 한탄했어요. 도산정신을 실천하시는 삼구의 경영 자체가 직원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비슷한 정신을 심어놓은 거라 봅니다. 3만7000명이 한뜻으로 일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를 가족들에게 전파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어마어마한 거죠.

구자관: 장년층 정도만 돼도 도산이 마음의 스승인 경우가 많습니다. 젊은 세대에 와서 퇴색돼 안타까울 뿐이죠. 어느 정도 먹고살게 되면서 그만큼 절박함이 사라졌기 때문일까요. 다만 사내에선 철저하게 도산 경영을 실천하려 노력합니다. 첫째 남을 속이지 마라. 철저하게 남을 위해 일하라, 즉 애기애타를 실천하라. 먼저 나를 잘 관리하고 남을 잘 보살펴라. 조석으로 이를 강조합니다. 우리 회사가 위대한 분의 삶을 100% 실천할 순 없어도 그 정신을 공유하려 하죠.

손욱: 구체적인 경영 원칙을 보여주는 사례가 궁금합니다.

구자관: 한 달에 한 번 월례회를 엽니다. 저와 본사 직원 200여 명이 참석하죠. 35년간 아침 6시 20분에 회의를 시작했는데, 요즘은 코로나19로 인해 모두 화상으로 참석합니다. 베트남·미국·폴란드·중국부터 부산·대구·광주·울산·인천까지 다 모이면 화면이 꽉 차죠. 정해진 시작 시간이 돼서도 참석하지 못하면 화면에 아예 뜰 수가 없어요. 예전 오프라인 회의 때는 6시 20분이 되면 아예 문을 잠갔죠. 저도 늦으면 못 들어갔습니다.

손욱: 작은 약속부터 지켜야 한다는 뜻은 알겠는데, 그렇게 엄하게 하면 직원들의 반발은 없습니까?

구자관: 회의 시간은 곧 약속입니다. 제 방에서 뒷문으로 들어갈 수 있어도 그렇게 하지 않아요. 제가 법을 안 지키면 누가 지키겠습니까. 35년간 지켜온 원칙이에요. 사원들이 제게 와서 “책임사원님, 이건 심합니다. 1분은 너무하지 않습니까. 전화 받다가 놓칠 수도 있는데…”라고 합니다. “좋아요, 1분은 봐줍시다. 그럼 1분 1초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1초 정도는 봐줘야지요. 그럼 1분 2초는 어떻게 하죠?” 이렇게 물으니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더군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지각이 없습니다. 약속은 작은 것이든, 우리끼리 하는 것이든 신뢰, 즉 신용이 바탕이 되는 일입니다. 도산정신의 정수죠. 아침 8시가 출근시간인데, 예전에는 타임체커가 있어서 1분이라도 늦으면 아예 집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별다른 페널티도 없지만 항의도 많이 받았어요. 이렇게까지 엄격하게 적용하는 건 기본을 지키자는 뜻에서입니다. 작은 약속을 지키면 큰 약속도 지킬 수 있죠. 골프장에 가면 라커룸에 슬리퍼가 가지런히 놓여 있어요. 환복할 때 신고선 흐트러진 채로 나가게 마련이죠. 운동 끝나고 샤워하러 갈 때도 휙 벗고 들어갑니다. 저는 여태껏 단 한 번도 제가 쓴 물건을 제대로 놓지 않고 나온 적이 없어요. 원래 있던 자리에 가지런히 놓습니다. 슬리퍼가 흐트러져 있으면 일부러 제가 신고 원위치에 놓죠. 저만 보면 골프장 직원들이 고개 숙여 인사합니다. 저를 존중하고 정중히 대하는 마음이 진심에서 우러난 거라 봐요. 신발 반듯하게 놓는 데 2초면 됩니다. 그걸 제가 하면 거기 직원은 다른 일에 더 힘쓸 수 있어요. 식당에서 밥 먹고 나서도 의자 한 번 제 위치에 놓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유난스럽다 할 수 있지만, 다른 이를 먼저 생각하는 자세 때문입니다. 우리 회사 직원들도 마찬가지예요. 큰 거, 위대한 약속 지킬 필요 없습니다. 작은 일부터 실천하면 돼요.

작은 일, 작은 약속부터 실천해야


손욱: 회장이라는 직함 대신 총괄사장을 따로 두시고, 책임대표사원으로 스스로를 칭하신 것도 보기 드문 일입니다. 기업에서 스스로의 역할이 무엇이라 보십니까?

구자관: 전 회사의 소사(小使)입니다. 옛날 학교 소사는 화장실이 지저분하면 청소하고, 문 고장 나면 고치고, 유리창 지저분하면 닦고, 학부형 오면 응대하던 사람들이었어요. 전 회사 사장이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봅니다. 머리가 되기 위해서, 우두머리가 되기 위해 온 사람이 아니라, 직원들을 섬기러 온 사람이죠. 그게 바로 소사입니다. 회사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이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도록 하는 게 바로 CEO의 역할이에요. 밤낮 일 못한다고 욕하는 게 CEO가 할 일이 아닙니다. 매출이 1조원을 넘어섰다지만, 단 한 번도 잔고를 확인해본 적이 없어요. 전표에 사인 한 번 한 적도 없습니다. 제 월급도 비서가 관리하는데, 통장을 들여다보고 따진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런 일도 없지만, 그 돈 좀 비서가 쓰면 어떻습니까. 믿고 맡겼는데요. 우리 같은 아웃소싱 회사가 6만 개가 넘습니다. 그중 1등 한 게 제가 잔소리해서가 아닙니다. 전 회장도 아니고 책임대표사원이에요. 사내에선 그저 책임사원으로 부르죠. 구체적인 경영과 모든 자금 집행은 총괄사장이 결정합니다. “이 돈을 왜 이렇게 썼냐”고 물어본 일도 없어요. 그런 거까지 내게 보고하지 말고, 직원들 보너스 얼마나 더 줄지나 고민하고 물어보라고 말합니다.

손욱: 신뢰가 바탕이 됐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구자관: 만약 CFO가 절 속여왔다면 이미 회사 문 닫고 무너졌을 테죠. 우리 같은 업종에서 매출 1조6000억은 상상하기 어려워요. 믿음과 신뢰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겁니다. 그게 바로 도산의 정신이죠. 제가 할 수 있는 게 그거밖에 없어요. 나는 이 회사의 주인이 아니라 소사다. 말로는 직원들에게 일을 맡긴다고 하지만 뒤에서 만날 따지는 CEO가 많습니다. 작은 회사일수록 특히 그렇죠. 지속발전의 바탕이 뭘까요? 신뢰와 신용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 위임이라고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일을 맡겨야 해요.

손욱: 그러면 책임대표사원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구자관: 삼구에서 전문경영인들이 못하는 게 딱 두 개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오로지 제가 무한 책임지는 사안이란 뜻이죠. 첫째, 사람 쓰는 일입니다. 신입사원 채용은 제가 일일이 다 면접을 봅니다. 인사권을 쥐려는 게 아니에요. 사람 하나 잘못 들여 망하는 회사가 많습니다. 삼구에는 제 일가친척이거나 혈연관계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어요. 26개 자회사 사장은 100% 사원 출신입니다. 외부 수혈도 단 한 명이 없어요. 모두 사원으로 들어와 안에서 키운 인재들이죠. 신입사원 면접 볼 때 어떻게 합니까. 1000명씩 되는 인재들을 4차 최종면접까지 해가며 뽑아요. 대충 하는 거 아니잖아요. 다 그 안에 인재가 있어요. “상관인 당신이 예의주시하지 않고 교육을 시켜야 한다. 내부에서 인재를 찾아라”고 말합니다. 지난해 34기 공채를 모집했는데, 총괄사장이 공채 1기입니다. 삼구에선 정년을 두지 않으려 해요. 일할 능력이 충분하면 계속 일하는 게 회사에도 좋습니다. 자기 부하직원을 위로 올릴 배짱과 자존심, 안목이 없으면 회사 그만둬야죠. 저부터 전문경영인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아요. 총괄사장에게 한 번도 말을 놓은 적이 없습니다. 뭔가를 지시한 적도 없죠. 나이나 직급에 관계없이 우리 임직원은 모두 능력을 펼칠 수 있는 한 정년이 없어요. 그게 원칙입니다. 신입사원을 최종적으로 뽑는 사람은 저죠. 즉, 제가 결정한 일이니 끝까지 제 책임입니다. 그러니 책임대표사원이죠.

손욱: 채용 말고 책임대표사원의 또 다른 권한이 무엇인지 정말 궁금해집니다.

구자관: 기업 하는 사람이니,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게 사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는 경우가 그렇죠. 사내에서 전문가란 사람들이 모두 모여 기획, 연구, 검토해도 성공 확률이 낮아요. 그런 걸 제 허락 없이 했다가 망하면 어떻겠습니까? 어떤 일이든 누군가에게는 책임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책임사원님, 이 사업 하려는데 어떠십니까” 물으면 담당자는 제게 건의한 것뿐이에요. 최종 결정은 제가 한 거죠. 결국 사업이 잘못되면 제가 책임지는 겁니다. 인사와 신사업, 이 두 가지 리스크는 끝까지 제 책임입니다. 그게 저와 삼구의 경영 원칙입니다.

※ 손욱 전 회장은… 40여 년간 삼성그룹에서 근무한 정통 ‘삼성맨’이자 국내 최고의 기술경영자(CTO)로서 평생을 혁신에 전념해왔다.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을 최측근에서 보좌했고, 삼성그룹의 프로세스 혁신과 정보 시스템 구축도 그의 작품이다. 삼성인재개발원장, 삼성종합기술원장 이후 농심에서 현역 생활을 마친 손 전 회장은 현재 한국형리더십연구회 회장, 감사나눔운동 전파 등 사회문화 운동으로 또 다른 혁신을 전파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202101호 (2020.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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