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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현이 만난 아트 인플루언서(8) 송제용 마포문화재단 대표 

“코로나19가 장벽?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계는 지난해 툭하면 행사 취소 소식을 전해왔다. 대규모 국공립 기관조차 코로나19 상황 변화에 속수무책으로 휘둘리며 대부분 소극적으로 대처했다. 그런데 작은 지역문화기관인 마포문화재단은 달랐다. 지난해 3월 부임한 송제용(56) 대표의 진두지휘로 모든 사업을 디지털 플랫폼으로 옮겨 적극적으로 진행했다. 서울 공연장 최초로 QR코드 입장 시스템 도입부터 ‘디지털 콘택트’로 소통한 클래식 축제, 주민 커뮤니티 예술의 비대면화까지, 명실공히 공연계 디지털 트렌드를 견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3월 취임한 송제용 마포문화재단 대표는 코로나 시대 공연계 디지털 트렌드를 선도해왔다.
“정신은 좀 없었죠. 직원이 100명이 넘는데 초면부터 전부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잘 알아보지도 못하고, 스킨십도 편하게 못 했으니까요. 그런 게 불편했지, 다른 건 괜찮았어요.”

취임과 동시에 부딪친 ‘코로나19’라는 장벽에 대한 힘겨운 도전기를 털어놓으리라 예상했지만, 부임 첫해를 마감하는 소회가 의외로 싱거웠다. 30년 가까이 언론사에서 온갖 문화사업을 추진하며 잔뼈가 굵은 기획자인 그에게 ‘벽 뚫기’는 어려운 도전이 아니었던 것이다.

“남들이 다 하는 취소, 저는 안 하고 싶더군요. 제가 영어를 못하지만 중2 때 배운 단어 ‘네버더레스(Nevertheless)’,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참 좋아해요. 꼴통 기질도 있고, 집요하죠. 여기 뭘 하러 왔지 안 하러 온 게 아니니까요. 그 와중에 믿고 따라준 직원들이 고맙죠. 이상한 대표가 와서 이거 하자 저거 하자 들들 볶아대니까.(웃음)”

그는 취임하자마자 마포의 시그니처인 탭댄스 페스티벌 등 준비 중이던 공연을 발 빠르게 온라인 생중계로 돌렸다. 매년 가을 한 달 넘게 치러온 마포 M 클래식축제는 마포 곳곳의 명소에서 촬영한 영상 콘서트 시리즈로 전환해 코로나 시대 새로운 공연 모델을 제시했고, 온라인 관객 10만 돌파라는 성과를 거뒀다. 특히 성악가 캐슬린 김, 김주택, 김현수와 구민합창단이 온라인에서 앙상블을 이룬 ‘100인 비대면 대합창’이 돋보인 메인콘서트는 실시간 접속자 국내 최고 기록(1만9637명)을 세우며 공연계 화제의 중심에 섰다.

“제가 지금도 신문 7~8개를 보는데, 궁금하거나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게 있으면 잘 메모해두거든요. 10년 전쯤 에릭 휘테커라는 작곡가가 ‘가상 합창제’란 걸 열었다는 기사를 보면서 ‘왠 또라이냐’ 싶더군요. 그래도 재밌는 아이디어라 생각해 메모를 남겨놨는데, 이번에 그게 떠올라서 밀어부쳤죠. 솔직히 이렇게 잘될 줄은 몰랐어요.(웃음)”

12월엔 주민 커뮤니티 예술 사업까지 온라인 페스티벌을 열어 시니어 관객들을 줌(ZOOM) 화면 앞으로 끌어모았는데요.

문화재단이 꼭 챙겨야 하는 게 엘리트 공연보다 주민들 참여 문화거든요. 페스티벌뿐만 아니라 지난해 커뮤니티 사업 자체를 온라인으로 진행했는데, 지역문화팀에서 사전교육도 하고 일대일로 쉽게 따라 할 수 있도록 안내를 잘해서 어르신들도 무리가 없었어요. 그분들도 코로나19로 단절된 상태가 되니까 더욱 열의를 보이시더군요. 주민들 의지가 대단해서, 우리가 적당히 할 수가 없었어요.

지난해 마지막 공연 [인디 크리스마스 선물]은 19개 밴드가 12월 21일부터 3일간 온라인 릴레이 공연을 펼쳤는데, 이승환·이날치·크라잉넛 등 라인업이 화려했다. 이 공연을 촬영한 서울독립음악창작소는 재단이 최근 운영권을 따 신인 뮤지션 육성의 장으로 활용에 나선 공간이다. “꿈은 있는데 현실이 받쳐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멋진 선배들과 함께 시작할 기회를 주는 의미의 공연이었어요. 그런 취지를 잘 설명하니 유명 뮤지션들도 차비 정도 받고 동참해주셨죠. 음악하는 사람들이 문턱을 느끼지 않게, 공평하게 도와주는 게 음악창작소의 비전이니까요. 그런데 예산이 적어서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요. 올해는 커머스 사업도 해보려고 해요. 팬데믹 상황에 맞게 극도의 친환경 상품을 아티스트와 협의해서 만들고, 판매해서 아티스트를 지원하는 거죠.”

[인디 크리스마스 선물]은 단순한 공연 중계가 아니라 뮤지션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날것 그대로 볼 수 있는 콘셉트라 신선했어요.

원래 시놉시스를 주고 드라마 콘서트처럼 찍으려고 했는데 예산이 줄어서 드라마처럼은 못 해도 리허설 콘서트처럼 찍어달라고 했어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좀 어설퍼도 자연스럽고 생동감 있는 걸 좋아하잖아요. 영상을 많이 보는 사람들 방식으로 접근한 겁니다. 관전하는 사람 기준으로 만들어야지 제작하는 사람만 좋으면 뭐하나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고 7일째 보기 좋았더라는 건 하나님이니까 그렇고, 저 같은 사람들은 보는 사람에게 흥행이 되야 하는 거죠.(웃음)

세상 모든 행사엔 ‘펀(fun)’ 있어야


▎지난해 12월 열린 커뮤니티 예술사업 ‘꿈의무대’ 디지털 콘택트 페스티벌에는 김명곤 마포문화재단 이사장이 깜짝 출연했다. / 사진:마포문화재단
송 대표의 머릿속에는 대중의 취향을 저격할 만한 각종 아이디어가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업계에서 정평이 난 아이디어맨으로, 앞서가는 안목으로도 유명하다. 요즘 뜨는 AR 전시를 이미 8년 전에 열었고, 2015년 전국에서 대박을 친 세계 최초의 수중사진작가 ‘제나 할러웨이’ 전시도 그의 기획이었다. 제나할러웨이는 당시 자국인 바레인에서도 개인전을 해본 적 없는 무명작가라 모두가 반대했지만, 그는 성공을 확신했다.

“그야말로 인터넷 서핑하다가 눈에 띄었어요. 당시만 해도 ‘만들어진’ 사진이 드물 땐데, 수중에서 패셔너블하게 연출한 사진들이 궁금하더군요. 제가 궁금한 건 못 참거든요. 당장 메일부터 보냈죠. 20일 후에 ‘너 누구냐?’고 답이 왔는데, 한국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더군요. 무명작가다 보니 주변에서 하도 반대를 해서 ‘잘 안 되면 퇴사하겠다’고 배수의 진을 치고 출고부터 폐차까지 혼자 했는데, 막상 개막일이 다가오니 불안하더군요.(웃음) 살이 4.5kg이나 빠질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했어요. 결국 개막일에 울었습니다. 예술의전당에서 공짜 전시만 하던 작은 전시실을 겨우 빌렸는데, 첫날 관람객 행렬이 바깥까지 이어졌거든요. 두 달 내내 꽉 차고, 1년 동안 전국 투어를 돌며 10억원 넘는 순수익을 올렸죠.”

요즘은 어떤 게 궁금하신가요.

길 가다 보면 젊은 사람들이 걸어 다니면서도 휴대폰을 보더군요. 세상과 접속하는 수단이 신문, 방송이 아니라 모바일이 된 건데,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팬데믹이 되니까 영상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모바일 화면을 보는 사람들은 어떤 걸 좋아하는지 연구하면서 우리가 만드는 영상에 VR, AR도 넣어보고, 1인칭 시점 촬영도 실험해보고 있죠. 아무래도 내가 코로나와 함께 왔다가 함께 갈 것 같은데, 그게 오히려 기회가 된 것 같아요. 영상 만드는 당위성도 성립되고, 젊은 분들한테 어필할 수 있는 모티브가 됐으니까요.

2021년에도 당분간 코로나 상황이 이어질텐데, 어떤 계획이 있으신가요.

질병관리청에 있는 지인 말이 6월 전후해서 코로나가 현격히 사그라질 거래요. 그걸 전제로 난지천공원에서 ‘왈츠 앤 마치’ 콘셉트로 대대적인 파크콘서트를 열 겁니다. 오케스트라가 왈츠를 연주할 때 미디어파사드에 요정이 날아다니고, 행진곡을 연주하면 AR로 로봇 태권브이가 날아오르는 모습을 연출하는 거죠. 코로나로 지쳐 있던 분들 힐링하시라고요. 경의선 철길에서는 사주·관상 페스티벌을 열 겁니다. 외국 악기로 궁상각치우를 연주하는 ‘코리아리듬터치’ 페스티벌도 열고 싶고, 올해 꼭 하고 싶었던 홍대거리 제야의 밤 카운트다운 행사도 해야죠. 연말이면 홍대 클럽에 만 명 이상 모인다는데, 11시 반부터 불꽃놀이를 하고 축제거리를 만들면 ‘제야의 종소리’ 행사엔 아무도 안 가지 않을까요.(웃음)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많은데, 의회에서 여러 아이디어를 내면 ‘하나만 얘기하시라’고들 하시네요.(웃음)

‘사주·관상 페스티벌’을 열겠다는 구상이 특이한데요.

10대부터 70대까지 다 함께 즐길 수 있고 의미도 있는 페스티벌을 구상하는 게 제 미션이라 생각해요. 지금 ‘마포나루 새우젓 축제’가 유명하지만, 마포에서 새우젓이 나는 것도 아니고 왜 우리가 하는지도 모르겠더군요. 마포에 대해 공부해보니 토정 이지함 선생이 마포나루터에서 토정비결도 봐주고, 창업·취업 컨설팅도 해줬다고 해요. 한국 사람치고 점 보는 것 싫어하는 사람 없잖아요. 또 마포가 모든 술의 시작인 거 아세요?(웃음) 마포나루터에서 머슴이 먹던 게 탁주, 상인이 먹던 게 청주, 세 번 거른 삼해주가 양반이 먹던 소주인데, 삼해주가 대구로 가서 이강주, 안동에 가서 안동소주가 됐죠. 우리와 계약한 식당에 가면 점도 봐주는 식으로 술과 결합해서 상권도 살리고, 창업·취업 컨퍼런스까지 연결하면 세상에서 가장 재밌고 의미 있는 축제가 되지 않을까요. 세상 모든 행사에는 ‘펀(fun)’이 있어야 하니까요.

“좋아서 하는 일은 지치지 않죠”


▎지난해 9월 열린 마포 M 클래식 축제의 메인콘서트는 실시간 접속자 국내 최고 기록을 세웠다. / 사진:마포문화재단
송 대표와의 대화는 그야말로 ‘펀(fun)’ 자체였다. 어린 시절 뮤지컬 영화 [메리포핀스], [사랑은 비를 타고] 등을 보며 뮤지컬 배우를 꿈꿨다지만 개그맨을 했다면 대성했겠다 싶다. 본인도 재미 하나만큼은 누구에게도 양보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한창 리모델링 중으로 10월 완공되는 마포아트센터도 주민에게 재미를 주는 공간으로 거듭나게 하고 싶다고 했다.

“제가 어렸을 땐 창경궁이 ‘창경원’이었는데, 코끼리 같은 낯선 동물이나 이름도 몰랐던 벚꽃을 구경하고, 생전 못 먹던 사이다를 먹을 수 있었던 흥미진진한 곳으로 제 기억에 남아 있죠. 우리 센터도 젊은 부부들이 주말에 아이들과 딴 데 안 가고 늘 오고 싶게 만드는 재미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요. 제 꿈 중 하나가 폐교를 인수해서 복합문화공간을 만드는 것이었거든요. 봉사라는 표현은 가증스럽고, 일하다 현장에서 죽는 게 소원이에요. 우리 집 가훈이 ‘요차불피(樂此不疲)’거든요. 좋아서 하는 일은 지치지 않는다는 뜻이죠.”

※ 유주현은…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일본의 다카라즈카 가극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학창 시절 백일장과 사생대회를 휩쓸던 영광의 기억을 품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며 살아왔다. 2010년부터 중앙SUNDAY에서 공연을 중심으로 영화, 문학, 음악, 미술 등 문화예술을 독자들에게 더욱 가까이 전달하고자 부단히 글을 쓰고 있다.

202101호 (2020.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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