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People

Home>포브스>CEO&People

김익환이 만난 혁신 기업가(23) 박태훈 왓챠 대표 

넷플릭스에 맞서는 데이터 분석의 힘 

정리=김민수 기자 kim.minsu2@joins.com·사진 전민규 기자
#넥없왓있. 넷플릭스엔 없지만 왓챠엔 있는 콘텐트를 가리키는 줄임말이다. 말 그대로 왓챠엔 넷플릭스보다 5배 많은 드라마와 15배 많은 영화가 있다. 넷플릭스가 2015년부터 2020년까지 한국 콘텐트 제작에 8000억원을 투자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왓챠도 조용하지만 꾸준히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다. 창업 10년 차 박태훈 대표가 말하는 왓챠의 경쟁력은 “자본이 베낄 수 없는 기술의 힘”이다. 김익환 한세실업 부회장이 박태훈 왓챠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박태훈 대표는 “넷플릭스와는 다른 방식으로 시도하기 위해 제작 방식 자체에 고민이 많다. 새로운 작품 기획 및 개발 시스템을 만들어보려고 준비를 탄탄하게 해나가고 있다. 아직 공개하기는 이르지만 작가, PD님들을 채용하고 있고, 빠르면 연말에 첫 제작 콘텐트를 선보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과학고를 조기 졸업하고 카이스트 전산학과를 거쳐 컴퓨터 전문가, 게임회사 경력까지 ‘콘텐트 사업’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어떤 계기로 왓챠를 구상하게 됐나.

콘텐트 사업을 해야겠다 생각하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개인화, 자동화, 추천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담은 서비스를 만들면 높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영화라는 도메인으로 시작한 이유는 가장 대중적인 콘텐트이기 때문이다. 책을 안 읽는 사람은 많지만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또 영화는 기본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메타데이터가 많기 때문에 추천 엔진을 만들기 좋을 거라고 판단했다. 영화 추천으로 시작해서 다른 콘텐트로 확장하자는 생각이었다.

카이스트 전산학과를 중퇴한 경력이 눈에 띈다.

대학 시절, 아이폰이 국내에 출시됐다. 당시 네이버, 다음에 온라인 서비스 전문가가 많았지만 모바일 전문가는 아무도 없었다. ‘지금 시작하면 전문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졸업까지 기다리지 않고 휴학하고 바로 마음 맞는 친구들을 모아 창업했다. 보통 창업 이후 3년 안에 90%가 망한다고 해서 망하면 복학하려고 했다. 운이 좋아 망하진 않았지만 복학하지 않으면 제적, 자퇴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복학할 수 없어서 자퇴를 한 것이다.

왓챠는 카카오벤처스의 1호 투자사다. 2012년 5월 카카오벤처스의 첫 포트폴리오사로 8억원을 투자받았다. 계기는 무엇이었나.

당시 김범수 카카오 의장님과 임지훈 전 카카오 대표가 찾아와서 투자를 직접 결정했다. 임지훈 전 대표는 소프트뱅크벤처스에 있을 때 알게 됐고, 퇴사 이후 연이 닿아 투자를 받게 됐다. 임지훈 전 대표는 모바일이라는 키워드에 투자하려 했고, 마침 왓챠에 젊고 실력 있는 엔지니어가 많아 첫 투자를 결심했다고 하셨다. 그때부터 외주 업무를 하지 않고 오롯이 사업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2013년 왓챠 정식 버전을 출시한 뒤 2년 만에 일본어 서비스를 잇따라 출시했다. 일본에 서비스를 빠르게 론칭한 이유는 무엇인가.

일본 시장이 매력적이고, 해볼 만한 시장이라고 생각했다. 일본에는 츠타야처럼 DVD를 대여하는 대형 체인점이 대중화되어 있다. 많은 사람이 츠타야에서 예전 작품들을 빌려 보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겠다고 판단했다. 또 일본 시장은 신뢰를 오랫동안 쌓아야 계약이 가능하기 때문에 일찍 진출해서 데이터를 쌓고, 현지 기업들과 신뢰 관계를 쌓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용자 취향 파악이 성공의 핵심


현재 OTT 서비스는 거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한 미국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넷플릭스와 다른, 왓챠 서비스만의 강점은 무엇인가.

넷플릭스는 대형 콘텐트(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승부를 보려고 하는 회사라 우리와는 시장 접근 방식이 다르다. 왓챠는 데이터와 기술을 탄탄히 갖춘, 고도화된 추천 알고리즘이 강점이다. 회사의 DNA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전략으로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서비스 출시 초기에만 해도 넷플릭스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회의적인 시선이 많았다. 초기에 유저들을 확보할 수 있었던 비결은.

2012년 왓챠피디아(영화 평가 및 추천 서비스)를 론칭하기 전에 타깃 유저들을 인터뷰할 때, 2시간짜리 영화 한 편 보려고 1시간 동안 뭘 볼지 찾아 헤매는 게 힘들다는 피드백이 많았다. 콘텐트가 아무리 많아도 뭘 볼지 고르는 과정이 고통스럽다는 거였다. 헤비 컨슈머일수록 이런 고민을 하더라. 그래서 우리는 유저 개인의 취향에 맞는 영화를 추천해주는 왓챠피디아를 론칭했고, 단기간에 꽤 많은 유저를 확보할 수 있었다.

각 OTT 플랫폼의 ‘오리지널을 제외한 모든 콘텐트’를 공급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데.

왓챠에는 영화, 드라마, 예능,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등 콘텐트 9만 편이 있다. 넷플릭스와 비교하면 드라마는 5배, 영화는 15배 정도 많다. 왓챠 안에서도 독점 콘텐트가 꾸준히 늘고 있기 때문에 왓챠만 보는 사람도 늘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오리지널 콘텐트 제작 계획을 발표했다.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넷플릭스와는 다른 방식으로 시도하기 위해 제작 방식 자체에 고민이 많다. 새로운 작품 기획 및 개발 시스템을 만들어보려고 준비를 탄탄하게 해나가고 있다. 아직 공개하기는 이르지만 작가, PD님들을 채용하고 있고, 빠르면 연말에 첫 제작 콘텐트를 선보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모두 다르고, 누구나 틀릴 수 있다


▎(왼쪽부터)김익환 한세실업 부회장과 박태훈 왓챠 대표.
넷플릭스 등 다른 OTT 서비스도 나름의 알고리즘을 갖고 있는데 왓챠만의 비결은 무엇인가.

우리가 넷플릭스의 알고리즘을 정확하게 몰라서 비교할 수 없지만 방향이 다르다. 넷플릭스가 오리지널 콘텐트 제작에 집중한다면, 우리는 사용자 취향에 맞는 콘텐트를 잘 추천하는 게 목표다. 그동안 콘텐트 업계가 제작자와 투자자들의 감으로 성공 여부를 측정했다면, 우리는 추천 엔진의 분석 결과를 토대로 판단하기 때문에 훨씬 정교하고 예측가능한 형태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왓챠만의 독특한 일하는 방식이 있다면 알려달라.

특별한 건 아니지만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지향한다. 항상 더 좋은 아이디어가 선택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임원이 말했으니까 듣고, 인턴이 말해서 안 듣는 게 아니라, 동등한 장에서 아이디어를 비교하고 선택하도록 노력한다. 영어 이름을 쓰는 것도 “대표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보다는 “티팍(박 대표의 영어 이름)이 이렇게 말했어”가 더 수평적인 대화가 가능하다. 우리가 구호처럼 자주 쓰는 말이 있는 데 바로 ‘내가 틀릴 수도 있다’이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해서 과거의 정답이 지금은 오답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문화를 중요시한다.

‘싫어하는 것을 꼭 묻는다’는 면접 방식이 인상적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좋아하는 건 이유가 없을 수 있지만, 싫어하는 건 대부분 이유가 있다. 우리가 일하는 방식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 퇴사하는 걸 보면서 서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기 위해 그 사람을 최대한 알 수 있는 질문들을 던지려고 한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많을 것 같다. 왓챠 직원들이 모두 공유하는 문화가 있다면.

‘다름’이 당연한 문화라고 할 수 있겠다. 다양한 사람이 모여 각자의 다름을 존중하는 게 조직문화 근간에 깔려 있다.

어떤 인재를 선호하는지 궁금하다.

소위 ‘모범생’보다는 진취적인 인재를 선호한다. 왓챠에는 내부 보고나 결재 문서가 전혀 없다. 자신의 주관, 경험, 지식을 최대한 활용해 판단해 먼저 실행하고 결과를 공유한다.

왓챠에만 있는 업무 툴이 있다면.

3~4년 전에 실수나 실패 경험을 공유하는 ‘Fail Log’라는 채널을 만들었다. 직원이 늘면서 각자 업무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고, 어떻게 해결했고, 문제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향후 어떻게 해야 할 것 같다는 내용을 공유한다. 전 직원이 슬랙에서 다 볼 수 있기 때문에 다른 팀이 어떤 업무를 어떻게 했는지 추적해서 볼 수 있다.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방법을 모두 함께 배울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내부 기밀 사항들이 외부에 새어 나가지는 않는지.

새어 나간 정보로 베낄 수 있는 기술이라면 어차피 경쟁력이 없는 기술이다.

코로나19 이후 ‘집콕’이 대세가 됐다. 콘텐트 수요가 많이 늘었을 것 같은데.

단기적으로 보면 OTT 수요가 많이 늘었다. 유저 1인당 시청 콘텐트 수가 늘었지만 장기적으로는 코로나 사태가 빨리 해결돼야 한다. 현재 콘텐트 제작이 멈춘 국가들이 대부분이라 이 상황이 장기화되면 콘텐트 총량이 줄어든다. 극장이 무너지면 배급사, 유통사, 홍보사 등 전체 생태계가 무너지게 되어 위기가 올 수 있다.

OTT의 성장으로 어느새 지상파 TV가 영향력을 많이 잃은 것 같다. 기존 콘텐트 제작 주체인 방송 3사와 영화사들은 앞으로 어떻게 변해야 할까.

대대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무료 유무선 송신, 리니어 채널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아직 내부 인력 구조, 문화 등 여러가지가 기존 문화에 맞춰져 있어서 다들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 예전만큼의 지위는 갖지 못하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맞는 방향으로 바뀌어나갈 거라 본다. 영화산업 관계자들도 고민이 깊다. 극장이 블록버스터 작품 위주로 상영하면서 국내 영화 제작비도 많이 올랐다. 대다수의 영화 관계자가 코로나19가 종식된 이후에도 전체 관객 규모는 절반으로 줄어들 거라 예상하고 있다. 현재의 제작 구조에서 예산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근본부터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넷플릭스의 투자를 못 받으면 영화를 못 만든다”는 위기감이 있다.

디즈니, 넷플릭스 등 거대 자본을 갖춘 경쟁사들에 비해서는 (왓챠의) 마케팅 규모가 작을 수밖에 없을 듯하다. 향후 국내 및 세계 시장에서의 마케팅 전략이 있다면.

가장 좋은 마케팅은 오리지널 콘텐트를 만드는 것이다. 아울러 우리는 IT 기술 기반의 회사이기 때문에 서비스에 가입하게 만드는 다양한 실험을 시도해나갈 것이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기술 역량이 없으면 못하는 강력한 시도들을 차차 진행해나가려고 한다.

2020년은 동영상 스트리밍 기업인 기드소프트를 인수하고, CGV와 MOU를 체결하는 등 바쁜 한 해였다. 해외 진출 및 코스닥 상장 계획은 얼마나 진행됐나.

2021년에 동남아 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코로나 사태로 인해 상황을 좀 더 지켜보는 중이다. 코스닥 상장도 좋은 타이밍을 고민하고 있다. 머지않아 상장 소식을 전할 수 있을 것 같다.

연평균 190% 수준의 매출 성장을 이루고 있다. 왓챠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OTT 서비스로는 짧게는 5년, 길게는 7년 안에 아시아 지역에서 유료 구독자 수천만 명을 확보하려고 한다. 장기적으로는 10년, 20년 뒤에 세계 어느 곳에서나 당연하게 사용하는 서비스로 만들고 싶다.

※ 김익환은… 노동력 위주의 제조업인 한세실업에 IT를 접목해 성과를 내고 있는 혁신 CEO다. 한세드림, 한세엠케이, FRJ 등 패션 자회사들의 경영에 직접 참여해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끌며 지난해 1조9224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다. 최근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관심을 갖고 국내외에서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2102호 (2021.01.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