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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창원 3빌리언 대표 

AI가 찾아내는 7000개 유전자 질환 

원인을 알 수 없는 희귀질환의 80%가 유전적 질환이다. 설립 5년 차 스타트업인 3빌리언은 유전자변이 분석과 진단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기존 대비 90% 이상 줄여 업계를 놀라게 했다.

지난 2011년 미국에서 출간된 『니콜라스 볼커 이야기(The Story of Nic volker)』는 어린 희귀병 환자와 그를 살리려는 의료진·가족의 분투를 담아낸 책이다. 그해 퓰리처상을 받은 책 속에는 두 살 무렵 엉덩이에 이상한 종양이 생긴 아이가 이후 4년간 삶과 죽음의 문턱을 오간 모습이 드라마처럼 펼쳐진다. 음식을 삼킬 때마다 내장에 구멍이 생기는 증상은 어떤 치료법을 동원해도 무용지물이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아이 앞에서 의료진은 마지막으로 게놈(genome), 즉 유전체분석을 시도한다. 수개월에 걸쳐 이뤄낸 니콜라스의 게놈 분석은 결국 유전자변이를 원인으로 밝혀냈고, 골수이식으로 완치라는 기적을 써냈다.

2000년대 초반, 인류는 게놈 프로젝트를 통해 인간 게놈의 전체 염기서열을 완전히 읽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는 인류의 달 탐사 이후 가장 인상적인 과학적 성과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니콜라스 볼커는 유전자 해독 결과를 최초로 치료에 사용해 완치에 성공한 사례다. 이후 유전체 분석을 비롯한 생물정보학(바이오인포메틱스) 분야의 발전 속도는 눈부실 정도다. 한 사람의 게놈을 완전히 읽어내는 데 10년간 3조원을 쏟아부었던 2000년에 비해, 지금은 100만원도 안 되는 비용에 이틀 정도 시간만 들여도 충분하다.

최근 유전체분석 기술은 인공지능(AI) 같은 첨단 ICT 기술과 융합하면서 20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 핀테크를 넘어 테크핀이 주류로 자리 잡고 있듯이, 테크를 기반으로 한의과학 분야가 본격적으로 개화한 셈이다. 특히 거대 자본과 인프라가 필수였던 유전체분석 산업은 AI가 접목되면서 소규모 스타트업에도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금창원 대표가 지난 2016년 창업한 3빌리언(3billion)이 대표적이다. 3빌리언은 AI로 유전자변이를 해석해 7000여 개에 이르는 희귀질환을 한 번에 진단해 내는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이다. 2016년 한국에서 출간된 『니콜라스 볼커 이야기』를 번역한 이가 바로 금 대표다. 금 대표는 “직접 개발한 AI 알고리즘인 ‘3cnet’로 유전자를 1분 안에 해석하고, 5분 안에 희귀질환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판단해 정확한 진단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경쟁사들보다 진단에 걸리는 시간은 99%, 비용도 90%까지 낮춘 혁신 기술이다. 금 대표는 카이스트 바이오시스템 학 석사를 거쳐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생명정보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이후 유전체분석 전문기업인 마크로젠에서 임상진단 개발부를 이끌다가 2016년 유전체분석과 진단에 집중하기 위해 스핀오프에 나섰다. 3빌리언은 인간 몸속에 있는 30억 개 DNA를 의미한다.

게놈, 유전체분석 같은 말은 여전히 낯설다.

인간의 몸에는 약 2만 개 유전자가 있고 유전자 1개는 평균 1만2000개 정도의 DNA로 구성된다. 유전자 검사를 하는 목적은 여러 가지인데, 3빌리언은 진단, 곧 질병의 원인을 찾는 데 주력한다. A라는 유전자가 B라는 질환을 유발하면, B가 곧 유전질환이다. 희귀질환의 80%가 유전질환이기 때문에, 사실상 우리가 거의 모든 희귀질환을 진단하는 셈이다.

유전자변이 해석에 특화된 기술을 보유했는데.

진단을 위해선 건강한 표준 DNA와 희귀질환자의 DNA를 비교해야 한다. 평균적으로 0.1% 정도가 정상적인 DNA와 다른 염기를 가지고 있다. 1만2000개 DNA 중 약 12개 정도다. 그중 유전자 기능을 망가뜨리는 변이를 찾아야 하는데, 이를 병원성변이라 부른다. 문제는 발견된 변이가 특정 질환을 일으키는 원인인지 아닌지를 판독하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희귀질환과 관련 없는 변이로 판독되는 경우가 95%인데, 나머지 5%마저도 그동안 진행한 수많은 임상을 통해 알려진 경우들이다. 우리는 이 95%의 변이를 AI로 진단해낸다. 경쟁사에 비해 진단 속도와 비용을 90% 넘게 줄였다. 정확도도 획기적으로 높였다.

기존 유전자 분석·검사와 어떻게 다른가.

기존에는 유전자 1~2개만 분석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2만 개에 달하는 유전자를 한 번에 분석하는 건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자연스럽게 AI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3빌리언은 자체 개발한 AI 알고리즘(3cnet)으로 7000개 넘는 유전질환을 한 번에 진단해내는 데 성공했다. 유전자 관련 질병은 한 달이면 평균 20개가 새로 나온다. 원인을 모르는 희귀질환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의사도 새롭게 출현한 질병에 무지하기는 마찬가지다. 정확한 진단과 검사 기술이 꼭 필요한 이유다. 2012년 무렵만 해도 한 사람의 유전체를 분석하는 데 10억원이 들었다. 지금은 수백만원대로 떨어졌지만, 3빌리언은 이를 699달러로 낮췄다. 글로벌 경쟁사 대비 절반 가격이다. 변이 해석에 들이는 시간도 이틀 정도에서 5분으로 단축했다.

변이 해석과 진단의 속도만큼 정확도도 중요하지 않나.

물론이다. AI를 학생이라 이해하면 쉽다. 누가 더 많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하느냐가 AI의 능력치를 좌우한다. 유전자 변이를 잘 해석해내려면 변이 해석 데이터를 그만큼 많이 학습해야 한다. 우리가 자체 개발한 AI 알고리즘 3cnet는 과거 바둑으로 유명했던 알파고처럼 딥러닝 기반이다. 딥러닝은 네크워크를 기반으로 한 학습을 통해 최종 결론을 내리는 방식을 말한다. 3cnet는 특히 전이학습 기술을 활용한다. 데이터가 풍부한 분야에서 진단한 학습 결과를, 반대로 데이터가 부족한 부분으로 전이해 학습해내는 기술을 말한다. 현재 시가총액이 수십조에 달하는 몇몇 글로벌 경쟁사에 비해 3빌리언의 변이 해석이 14%가량 더 정확하고, 10% 정도 더 넓은 영역을 해석해내고 있다.

유전자변이 해석과 진단 세계 최고 기술력


소규모 스타트업의 기술력이 글로벌 기업보다 앞서나가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현재 3빌리언 직원은 38명 정도다. 의학과 유전공학 전공 출신이 5명, 인공지능 등 ICT 관련 인력이 17명, 생명공학을 전공한 실험실 인력 5명 등이다. 기존 유전자 진단 회사들과 달리 우리는 처음부터 AI 기반 시스템 구축에 공을 들였다. 사실 AI만으로 뛰어난 경쟁력을 담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유전자를 진단하는 프로세스는 수십 단계에 이르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에를 들어 유전자변이를 찾는 기술을 어떻게 개발할 것인지, 방대하고 비슷한 영역이 많은 인간 게놈을 어떻게 더 정확히 배열할 것인지 등 소소한 기술력이 쌓이고 쌓여 결국 큰 경쟁력을 만들어낸다. 대부분의 경쟁사가 유전자 재분석 비용에 200달러 정도를 받지만, 우리는 이를 제로(0)로 만들었다. 매일매일 미진단 변이들을 AI 알고리즘을 이용해 자동으로 분석해내기 때문이다. 글로벌에서 우리가 유일하다. 특정 염기에 데이터를 붙이는 과정만 해도 기존 1시간 이상 걸리던 걸 1분 이내로 줄였다. 이제까지 없었던 기술이다. 작은 프로세스의 혁신이 결국 우리만의 차별점이자 경쟁력의 원천이다.

글로벌 기업 중에는 AI를 활용하는 곳이 없나.

아니다. 거의 모든 유전자분석 기업이 AI를 이용한다. 다만 우리는 창업 때부터 AI를 주축으로 한 셋업에 충실했다. 전이학습이라는 딥러닝 방식을 이 분야에 도입한 것도 3빌리언이 최초다. 38명이라는 인력 규모가 작은 것 같지만, 유전자변이 해석과 진단만 전담하는 팀만 떼어놓고 보면 규모 면에서는 글로벌 기업과 비슷하다. 큰 기업은 그만큼 사업 범위가 넓고 다양하기 때문에 유전자변이 진단에만 몰두하기 힘든 구조다. 우리가 그 틈새시장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게 된 셈이다.

AI는 결국 데이터를 누가 더 많이 확보하느냐의 싸움이다.

정확하다. AI 기반의 딥러닝 모델은 10개가 넘는다. 본질은 데이터 자체의 경쟁력이다. 현재 3빌리언은 1만 명을 대상으로 진단을 완료해 데이터를 확보했다. 2019년 말까지 2500명 수준이었는데, 지난해에만 7500명을 추가했다. 올해는 1만5000명까지 늘리는 게 목표다. 글로벌 톱티어 수준이다. 특히 우리는 아시아 국가에 대한 데이터가 풍부한 편이다. 데이터 확보는 결국 AI 알고리즘의 성능을 높이는 원천이다. 2023년까지 관련 데이터를 5만5000건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시뮬레이션 결과, 그 정도면 AI 분석의 티핑포인트가 되리라 예상한다.

데이터는 어디서 어떻게 확보하나.

제일 심플한 건 의사의 오더를 많이 받아내는 거다. 엑스레이 촬영 장비를 생각하면 쉽다. 환자가 ‘○○사 제품으로 찍어달라’고 말하지 않지 않나. 이와 마찬가지로 의사가 3빌리언의 진단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오더를 낼 수 있다. 의료 현장에서 최종적인 진단 결과를 내리는 건 결국 의사 개인이다. 우리의 비즈니스 타깃팅도 의사가 될 수밖에 없다. 현재 31개국, 83개 기관에 3빌리언의 서비스를 공급하고 있다. 올해 두 배 정도로 늘리는 게 목표다. 새로운 진단 기법이 아무리 정확하다 해도 처음에는 아무도 쓰려 하지 않는다. 진단 가이드라인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현재는 미국 의료 시장에 주력하고 있다. 미국이 전 세계 의료 서비스와 진단의 표준격이기 때문이다. 미진단 희귀질환자가 병원을 찾으면 3빌리언의 서비스를 이용하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의료 서비스는 결국 신뢰의 영역이다. 커뮤니티의 신뢰 확보에는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다. 한국에선 아산병원을 비롯해 대부분의 대학병원 및 대형 병원과 함께 연구 과제를 진행 중이고 임상 검증을 마친 논문도 10여 편 펴냈다. 다행히 3빌리언의 진단 기법을 도입한 의사들의 95% 이상이 최종 진단 결과에 동의했다.

글로벌 제약사 등과 협력한 사례는 없나.

유전질환이 대부분인 희귀병의 원인을 정확히 찾아내는 것이 제약사의 큰 미션 가운데 하나다. 원인이 명확하면 신약 개발이 그만큼 쉽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글로벌 제약사와 타깃 질병에 대한 진단을 함께한 사례가 있다. 진단 비용을 제약사가 지원한 케이스다. 기존 방법으로 한 건도 못 찾았던 질병 원인을 우리 서비스로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타깃 환자 20명 중 1건의 병원성변이를 찾아냈는데, 이것만 해도 제약사 입장에선 본전을 뽑고도 남은 셈이다.

신약 개발 플랫폼으로 성장하겠다

실제로 의료 현장에서 3빌리언의 진단을 통해 완치된 사례가 있나.

지금까지 1만 명에 달하는 환자의 유전자 분석을 해냈으니 많은 사례가 있다. 다만 의료법상 개인정보를 우리가 전달받을 수는 없어 알음알음 듣는 정도다. 어제까지 걷지도 못했던 환자가 오늘 뛰게 된 드라마틱한 사례도 들었다. 치료는 정확한 진단이 핵심이다. 일반적으로 약이 없으면 치료가 어렵다는 인식이 많은데, 꼭 그런 건 아니다. 니콜라스 볼커 사례처럼 외과적인 수술로 완치되는 경우도 많다. 유전자는 결국 단백질이다. 특정 단백질이 없으면 그 단백질을 주입하면 되고, 반대로 특정 변이를 일으키는 단백질이 있다면, 이를 억제하는 물질을 투입하면 된다. 진단 기술이 발전하는 만큼 치료 방법도 다양해질 것이다.

유전체분석 시장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앞으로 5년 내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10개국에서 연간 700만 건이 넘는 유전자분석 오더가 예상된다. 1건당 100만원만 잡아도 7조원 규모 시장이다. 산업과 기술 발전 속도가 눈부시게 빠르지만, 아직 어떤 기업이 글로벌 톱티어라 부를 수 없을 만큼 춘추전국시대다. 현재 기술 수준에선 3빌리언이 1등이라 자부한다. 유전자 실험에서 출발한 경쟁사와 달리 우리는 바이오 ICT를 기반으로 출발했다. 사업 출발과 회사의 DNA 자체가 다르다. 경쟁사들이 여러 제품과 서비스에 분산돼 있는 동안, 우리는 유전자변이 해석과 진단이라는 한 분야만 팠다.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일수록 하나의 전문 분야에 올인해야 생존할 수 있다.

상장 계획도 들었다.

내년이나 내후년을 목표로 코스닥에 상장할 계획이다. 현재 주관사를 선정했고, 기술특례 상장을 추진 중이다. 지금까지 150억원 정도의 투자를 유치했는데, 상장 후 300억~500억원 정도의 투자금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다. 상장으로 확보한 자금은 글로벌 진출에 활용할 예정이다. 가장 큰 시장인 미국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서다. 해외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선 해당 국가의 환자 샘플을 확보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선 현지 랩 설립과 인증이 반드시 필요하다. 유럽과 일본 진출도 계획 중이다.

3빌리언이 꿈꾸는 사업적 목표는 무엇인가.

유전체분석과 진단에서 가장 앞서나가는 기업이다. 희귀질환 진단을 위해선 3빌리언의 기술이 필수인 단계로 성장하려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신약 개발 플랫폼이 목표다. 희귀질환을 유발하는 단백질을 저해하거나 활성화하는 게 결국 신약의 개념이다. 타깃이 명확해지면 신약후보물질을 인공지능 기반으로 디자인할 수 있다. 마지막 단계인 임상에서 1상은 약물의 안전성을 검증하는 것인데, 희귀질환에 대한 데이터가 많을수록 이를 기반으로 한 안전성을 더욱 확대할 수 있다. 신약후보물질을 글로벌 제약사와 함께 개발할 수도 있고, 우리가 직접 개발·제조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빠르면 2023년까지 신약후보물질에 대한 라이선싱을 받는 게 목표다. 우리가 만든 후보물질을 글로벌 제약사가 구입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사진 원동현 객원기자

202102호 (2021.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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