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가 구글과 소프트뱅크그룹을 거쳤던 미국 로봇 기업을 인수한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이번 인수에 사재를 투자하기도 했다. 미래 먹거리를 갈구하는 현대차는 ‘로보틱스’ 기술과 사업을 내재화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 사진:현대자동차그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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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그룹이 미국 로봇 전문업체를 인수한다. 지난해 12월 11일 현대차그룹은 미국 로봇업체 ‘보스턴 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 지분 80%를 소프트뱅크그룹으로부터 8억8000만 달러(약 96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소프트뱅크그룹으로부터 구주(6억3000만 달러)를 인수하고,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신주(2억5000만 달러)를 인수하는 식이다. 소프트뱅크그룹은 20%를 보유하게 된다. 현대차그룹 측 지분 80%의 구성을 보면, 현대차 30%, 현대모비스 20%, 현대글로비스 10%이고, 나머지 지분 20%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사재 약 2400억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특히 정 회장의 사재 출연 소식에 이목이 쏠렸다. 이례적인 일인 데다 그룹사가 취득한 지분 중 4분의 1이나 될 정도로 중량감이 있어서다. 자동차업계는 최근 몇 년간 정 회장이 해온 말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그는 줄곧 “현대차그룹은 세계 최고 기술기업을 찾아내 투자하고 육성해야 한다”며 “현대차그룹 미래 사업의 50%는 자동차, 30%는 UAM(도심항공모빌리티), 20%는 로보틱스가 맡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는 것. 실제 이번 인수 발표 직후 정 회장은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Smart Mobility solution)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는 현대차그룹의 역량에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보틱스 기술이 더해져 미래 모빌리티의 혁신을 주도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로보틱스 기술 더해 미래 모빌리티 혁신 주도할 것”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4족 보행 로봇 ‘스팟’(왼쪽)과 2족 직립보행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 사진:현대자동차그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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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어떤 회사일까.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회장이 애완견으로 키우는 4족 보행 로봇 ‘스팟’을 만든 기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92년 카네기멜론대학교와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교수였던 마크 레이버트가 MIT공대 연구소에서 독립하며 차린 회사다. 2000년대 초반부터 4족 로봇을 시장에 내놓으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지난 2004년에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 하버드대 등과 네 발 보행이 가능한 운송용 로봇 ‘빅도그(Big Dog)’를 개발했고, 2005년에는 미국 국방성 산하 고등기획연구원(DARPA)으로부터 연구자금으로 100억원을 받기도 했다.단순히 4족 보행 로봇을 만들어서 주목받는 건 아니다. 험한 지형이나 어떤 충격에도 넘어지지 않을 만큼 순간적인 균형 회복 능력을 뒷받침하는 기술력에 있다. 미국 나사와 국방성이 원전사고가 난재해 지역이나 달, 화성 등 미지의 험지 등에 4족 로봇을 투입하려고 했던 이유다. 2016년에는 사람처럼 2족 직립보행이 가능한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출시하며 물구나무서기, 공중제비 같은 고난도 동작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만큼 자율주행 및 보행·인지·제어 등에서 상당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현대차그룹 차원에서도 기대가 크다. 현대차는 2020년 기준 444억 달러 규모인 글로벌 로봇 시장이 20205년이면 1770억 달러 규모가 넘을 거라 본다. 시장 성장 배경에 모빌리티와 산업 분야가 자리하고 있다. 먼저 친환경차·자율주행차는 완전한 자율주행과 차량사물통신(V2X: vehicle to everything)을 통한 커넥티드 서비스와 더불어 각각의 부품을 완벽하게 제어해 주변의 상황 변화 등을 즉각 감지·대응하는 데 로봇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산업 현장에서는 제조 로봇을 비롯해 물류 운송 로봇 등이 이미 활용되는 상황. 간단한 안내·지원, 헬스케어뿐 아니라 공사 현장, 재난 구호, 개인 비서 등 새로운 로봇 시장 진출에도 기대를 걸 법하다. 당장 현대차와 함께 보스턴 다이내믹스 지분 인수에 참여한 현대모비스는 사후 서비스 부품 공급 영역에, 현대글로비스는 물류센터 등에 로봇을 먼저 배치할 계획이다. 이 두 기업이 현대차그룹의 로봇 관련 종합 솔루션 사업에서 한 축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현대차그룹은 “우선 기존 사업(자동차 제조)에 적용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겠다”며 “장기적으로는 로봇을 하나의 독립적인 사업 분야로 키워 별도 산업군으로 내세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