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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세상과 나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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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자주 가나.일 년의 3분의 1은 여행으로 보낸 것 같다. 물론 코로나19 이전 얘기다. 미국 오리건주 몬타나에 있는 한 비영리재단의 이사로 있는데, 정기적으로 이곳에 간다.여행지를 고르는 기준이 있다면.화장실이 깨끗해야 한다. 그래서 잘 안 가는 나라도 있다.인상적이었던 여행은.한 5년쯤 전에 포르투갈에 갔을 때, 산악자전거도 가져갔다. 첫날 멋지게 타고 나갔는데, 그만 넘어져 안경이 깨지고 어깨도 부러졌다. 더 안타까운 것은 거리를 걷다가 BMW 요트 스쿨을 발견하고 매주 토요일에 요트를 배우기로 했는데 무산된 것이다. 요트 운항법을 꼭 한번 제대로 배워보고 싶었기에, 그래도 가르쳐달라고 애걸했지만 “두 손이 온전해도 바다에 빠진다”며 단칼에 거절하더라. 너무 슬퍼서 웃음만 나왔다. 그래서 와인만 마시다 돌아왔다. 하하.포르투갈 여행을 버킷 리스트로 삼는 사람이 많다.마침 제2스튜디오가 포르투갈의 한 섬에 있다. 하이브리드적인 장소를 찾다가 포르투갈을 골랐고, 어찌하다 보니 섬 프로젝트도 진행하게 됐다. 제목이 ‘이스트맨(Eastman·동방박사)’이다. 이 섬은 15세기부터 사람들이 살던 곳인데 5개 서로 다른 지역의 흙과 오래된 목재를 모아 5m짜리 의자를 만들었다. ‘자연+인간’의 역사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유튜브에서 ‘hunchung lee’ 치면 나온다. 이에 대한 대응처럼, 제주도에 ‘웨스트맨’ 작업도 진행 중이다. 비영리 작업으로, 기업의 후원도 알아보고 있다.
‘완벽에 대한 무관심’이라는 한국적 미학이 바탕이번 전시는 의자라는 사물의 세계로 깊이 있게 들어간 의미가 있다고 작가는 설명했다. 건축학 박사 과정을 공부하며 익힌 구조적 요소도 녹아 있다. “컬렉터분들도 이번 전시는 왠지 편안하다, 완숙미가 느껴진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지금까지 매번 새로운 것을 보여드리기 위해 스펙트럼을 계속 넓혀 전시를 했다면, 이번에는 하나에 깊게 빠져보았다고 할까요.”그는 도자기는 우연이 많이 개입하는 예술로, 가마 안에서 무수히 많은 변화가 생기며, 자신은 그저 ‘불 때는 과정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도자기 하는 작가는 재료에 선택된 사람들이며, 도자기는 작가를 겸손하게 만드는 매체”라는 것이다. 누군가 완성하는 것을 자신의 노동으로 도와줄 뿐.이번 전시에는 2020년 만든 신작 35점이 나왔다. 제작에는 각각 한 달에서 석 달 정도 걸렸다. 박여숙 대표는 “이헌정 작가의 작품은 ‘면’이 모여 ‘각’을 이루면서 ‘덩어리’가 되지만, 그 각은 ‘모’가 나 있지 않다”며 “현대적이지만 한국 전통 도예의 멋스러움을 알기에 경쟁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미술평론가 이건수에 따르면, 그의 작품은 ‘완벽에 대한 무관심’이라는 한국 미술의 미적 본질에 바탕을 두고 있다. “물레에 근거한 전통적인 도예는 절대적인 대칭과 수적인 비례를 근간으로 만들어졌다. 중심점과 중심선이 허용하는 영역을 벗어나기 힘든 원심력의 산물인 것이다. 이헌정의 거의 모든 작품은 이 원심력을 왜곡시키고 탈피한다.”(전시 서문 중)
이 작가는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처음 한 전시에서 물이 줄줄 새는 도자기를 선보였는데, 그 작품의 가치를 인정해준 사람이 박 대표였다고 술회했다. 그러면서 “전통은 논리로 계승하는 것이 아니다. 깨우친 것이 작품에 녹아들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그런 가치는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먼저 알아보았다. 그의 이름이 대중에 알려진 것도 2009년 스위스 바젤 아트페어에서 할리우드 배우 브래드 피트가 그의 작품을 구입하면서부터다(작가는 이제 제발 ‘브래드 피트의 작가’ 같은 말은 그만 써달라고 읍소했다). “사실 그 전에, 1997년쯤에 ‘빛의 작가’로 유명한 제임스 터렐이 한국에 왔다가 제 작품을 보고 갤러리스트한테 5000달러를 준 뒤 ‘이걸 작가에게 주고 작가가 원하는 걸 만들어달라고 해라’ 하셨대요. 나중에 터렐이 운영하는 작가 레지던시 모집 공고가 났길래 거기 합격해 ‘제가 그때 그 작가입니다’라며 인사하고 싶었지만, 선정되질 못했어요. 안타깝죠.”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영국의 건축가 노먼 포스터, 인도 출신의 설치미술가 수보드 굽타, 미국 랩퍼 퍼프 대디도 그의 고객이다.경기도 양평에 있는 공방 ‘바다’에 빠져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직장인처럼 규칙적으로 작업을 한다는 이 작가는 “나이 오십 전까지는 검증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초조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냈다”며 “이제는 차라리 좀 순수해진 듯하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이 한숨 여유로워진 이유일 터다.코로나19로 여행이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지만, 작가는 다시 어딘가로 마음의 여행이라도 떠날 것이다. 그의 예술은 여전히 계속되어야 하기에.
※ 정형모는… 정형모 중앙 컬처앤라이프스타일랩 실장은 중앙일보 문화부장을 지내고 중앙SUNDAY에서 문화에디터로서 고품격 문화스타일잡지 S매거진을 10년간 만들었다. 새로운 것, 멋있는 것, 맛있는 것에 두루 관심이 많다. 고려대에서 러시아 문학을 공부했고, 한국과 러시아의 민관학 교류 채널인 ‘한러대화’에서 언론사회분과 간사를 맡고 있다. 저서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과 함께 만든 『이어령의 지의 최전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