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푸스는 지난 2019년 창립 100주년을 맞아 세계적인 의료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글로벌 비전을 발표했다. 디지털 카메라 시장을 주도하며 새로운 사진 문화를 창조해온 올림푸스는 의료사업 중심으로 성장전략을 개편하면서 이제는 ‘메드테크(Medtech)’ 기업으로서 존재감을 떨치고 있다.
1949년 도쿄의 젊은 의사 우지 다쓰로씨는 치료할 겨를도 없이 죽어가는 위암 환자들을 보며 사람의 몸속을 직접 들여다볼 수 없을까 고민했다. 그러던 중 올림푸스의 카메라 기술자 스기우라 무쓰오씨를 만났다. 두 사람은 이듬해인 1950년 염화비닐호스에 소형 카메라를 넣어 만든 ‘위 카메라’를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세계 최초의 위 카메라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이후 올림푸스는 지속적인 연구개발(R&D)을 통해 현재 글로벌 소화기 내시경 시장의 70%를 점유하는 세계 1위 기업이 됐다. 전 세계 39개국에 93개 그룹사를 두고 있으며, 2019년 4월부터 2020년 3월까지 1년간 달성한 약 9조원의 전 세계 매출 가운데 약 7조원 이상이 의료사업에서 발생했다.

올림푸스는 수십 년 동안 카메라로 소비자에게 친숙하게 다가간 회사였지만, 시장의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며 지난해 말에 카메라 사업을 접었다. 오카다 나오키 올림푸스한국 대표는 “스마트폰에 좋은 카메라 기능이 탑재되면서 이해관계자들이 올림푸스에 기대하는 만큼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 의료사업에 집중하는 전략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올림푸스는 현미경, 소형 카메라로 시작해 광학기술을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발전해왔으며, 현재는 의료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의료기기는 인류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만큼 개발에서부터 상품 출시, 공급 유지 등 다양한 과정에서 비용이 발생한다. 혁신적인 제품 개발을 위한 R&D, 정부의 인허가, 사후관리 등 다양한 투자가 필요한 시장구조에서 진정한 글로벌 메드테크 기업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수익을 재투자해서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내는 구조가 필요하다. 올림푸스는 매년 매출의 약 10%를 R&D에 투자하며 인공수정을 위한 정자 선별 보조 AI 시스템 등 정밀진단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올림푸스에서 한국 시장의 중요성은 매년 커지고 있다. 아시아태평양(APAC) 지역 중에 올림푸스한국의 매출 비중은 35%로 인도, 호주, 뉴질랜드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 중에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올림푸스한국의 매출액은 20년 만에 40억원(2000년)에서 2230억원(2020년)으로 늘었다. 이 같은 성장세를 뒷받침하는 것은 2004년 한국에 진출한 이래 연평균 17%씩 성장해온 의료사업이다. 또 한국의 대표 산업 제품인 반도체 웨이퍼, 태양전지, LCD, LED 등을 검사하고 측정하는 산업 현미경 및 산업 내시경도 매출 성장을 견인했다.

올해로 6년째 올림푸스한국을 이끌고 있는 오카다 나오키 대표는 1984년 올림푸스에 입사한 이래 의료사업 외길을 걸어온 37년 차 베테랑이다. 그는 고령사회로 접어든 한국의 의료산업 성장을 위해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걸리는 위암은 초기에 발견하면 완치율이 90%에 달할 정도로 검진을 통해 빨리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다수의 한국인이 건강검진에서 내시경 검사를 받을 때 올림푸스의 소화기 내시경 시스템을 사용한다. 내시경으로 몸속을 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용종, 종양, 담석 등을 개복하지 않고 제거할 수 있는 처치구 1000여 종을 함께 사용함으로써 치료까지 가능하다. 올림푸스는 내시경 시술부터 진단, 치료, 세척까지 안전성을 검증받아 독보적인 국내 점유율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세계 소화기 내시경 시장 점유율 70%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암병원에서 개최된 ‘고잉 온 다이어리’ 전시회 개회식에 참석한 올림푸스한국 오카다 나오키 대표가 암 경험자들의 작성한 일기를 감상하고 있다.

올림푸스한국의 의료사업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부가 내시경 검사를 건강보험으로 지원하는 제도의 역할이 컸다. 오카다 대표는 “일본은 내시경 검사에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데, 한국은 정부가 내시경 검사를 지원해주다 보니 결과적으로 내시경 검사 건수가 늘어나면서 우리 비즈니스도 함께 성장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내시경은 초정밀 의료기기로, 높은 수준의 수리 기술이 필요하다. 또 수리를 마친 완성품의 품질을 엄격한 기준과 프로세스에 따라 관리해야 한다. 올림푸스는 지난 2017년 오카다 대표의 강력한 리더십 아래 인천 송도에 370억원을 들여 의료 트레이닝 센터(KTEC)를 건립했다. 이는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의료기업 중 최대 규모의 통 큰 투자로 주목을 받았다.

그는 “글로벌 의료기업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사회공헌활동은 의료진과 환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이라며 “한국 의료진의 우수성과 성장 잠재력을 본사에 어필했고, 승인을 받아 과감히 투자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현재 KTEC는 의료인들이 기기 조작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종합 의료기술 교류 센터로서 국내 의학기술 발전의 토대가 되고 있다. 또한 이곳에는 의료기기의 수리 품질을 보장하는 집중수리센터도 위치해 있다.

내시경과 더불어 올림푸스의 또 다른 주력 분야는 복강경 시스템이다. 이는 외과수술 분야에서 복부에 조그만 구멍을 뚫고 기구를 넣어 들여다보며 수술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개복·개흉 수술과 달리 작은 구멍 몇 개만 뚫고 수술도구를 넣어 진행하는 복강경수술에서 복강경은 의사의 눈과 같다.

암을 초기 단계에서 발견하면 암 덩어리를 떼어내 치료를 하는데, 이때 메스로 수술 부위를 절개하는 개복수술보다 최소침습술인 복강경수술이 환자의 회복과 치료 과정에 도움이 된다. 특히 기존 2D 복강경과 달리 올림푸스의 3D 복강경은 환자의 배 속을 입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안전하고 정확한 수술을 돕고 수술 시간을 단축하여 복강경수술의 트렌드를 바꾸고 있다.

오카다 대표는 올림푸스의 3D 복강경 시스템의 수혜자이기도 하다. 그의 아내가 지난 2016년 올림푸스 복강경 시스템으로 왼쪽 신장에서 발견된 암조직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종양이 골프공 정도 크기로 꽤 큰 편이었지만 다행히 주변 조직으로 전이되지는 않았다”며 “복강경수술을 받은 덕분에 수술 후 회복도 빨랐고, 지금은 아무런 문제 없이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수술 후 회복 과정이 개복수술에 비해 훨씬 편하고 회복 속도가 빨랐다. 아내의 경우 복강경수술 한 달 후부터는 천천히 걸어 다닐 수 있었다”면서 “올림푸스의 복강경으로 내 가족의 생명과 건강을 지킬 수 있어서 다행이었고, 깊은 보람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복강경 시스템은 비교적 최근에 개발된 기술이기 때문에 복강경 장비에 익숙하지 않은 의료진도 있다. 올림푸스한국은 이러한 의료진을 위해 KTEC에서 복강경수술 트레이닝을 제공한다. 또 해외 학회에서 진행되는 실습이나 병원에서 진행되는 시술을 의사들이 KTEC에 모여 함께 보면서 워크숍을 진행하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병행하고 있다.

유연한 근무환경 추구

▎KTEC 전경. 2017년 10월 오픈한 KTEC은 의료진 및 임직원을 대상으로 제품 교육과 시연이 이뤄질 수 있는 트레이닝 룸과 실험실, 대강당 등을 갖췄다.

오카다 대표가 2015년 올림푸스한국 대표로 부임하자마자 처음 한 일은 직원들의 공통 목표를 반영한 경영 비전을 만든 것이다. 그는 “본사의 경영 비전은 있었지만, 한국 직원들의 공통된 목표를 반영한 우리만의 비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면서 “Bottom-up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결과를 도출했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올림푸스한국은 전 직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와 1:1 인터뷰, 워크숍을 통해 원하는 회사상에 대한 의견을 취합한 결과, ‘최고의 광학 및 의료 기술과 솔루션을 제공하여 고객과 인재가 함께 성장함으로써 한국 사회의 건강과 행복에 공헌하는 기업’이란 새로운 경영 비전을 수립했다.

인터뷰차 방문한 올림푸스 사옥은 스마트 오피스 환경을 완벽히 구축하고 있었다. 자율좌석제와 재택근무 제도, 법인 스마트폰과 오피스365 등을 도입해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업무에 몰입할 수 있도록 했다. 오카다 대표는 2017년 서초동 마제스타시티로 사옥을 확장 이전한 이후 모바일 오피스를 구축했다. 전 직원에게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지급하며 급변하는 근무 환경에 맞게 모바일 업무 환경을 갖췄고, 코로나19 확산 이후 재택근무를 도입하면서 더욱 빛을 발했다. 올림푸스한국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격상된 후 100% 재택근무 체제로 전환했다. 오는 4월부터는 코로나19와 상관없이 주 2회 재택근무를 실시한다. 재택근무의 어려움을 보완하기 위해 특정 지역에 위성 오피스를 만들어 근처에 사는 직원들이 필요한 업무를 볼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이 같은 변화에 대해 오카다 대표는 “업무 환경이 바뀌어도 서로 다른 가치관을 존중하고 업무를 추구해나가야 한다”면서 “시간 관리가 아니라 성과관리 중심으로 개발 및 투자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암 환자 위한 사회공헌 활동 활발

▎KTEC 트레이닝 랩.

올림푸스한국은 암 진단 및 치료 솔루션을 제공하는 의료기업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펼치고 있다.

암 경험자들이 정서적으로 건강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아이엠 카메라’ 프로그램은 모범 사례 중 하나다. 국내 주요 종합병원과 협력해 암 경험자들에게 카메라 작동법 및 사진촬영 교육, 출사 등 약 한 달간 수업을 진행하고, 수업 과정이 끝나면 병원 로비나 복도에 사진을 전시했다. 올림푸스한국은 암 경험자들이 직접 촬영한 사진 작품을 전시함으로써 다른 환우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암 경험자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아 ‘2019 글로벌 CEO 어워즈’에서 최고 영예인 ‘Most Valuable’ 상을 수상했다.

지난해부터는 대한암협회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고잉 온(Going-on) 캠페인’을 시작했다. 암 조기검진, 치료기술 발달 등으로 암 생존율이 높아짐에 따라 암 경험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 이들의 사회 복귀를 지원하기 위해 기획했다. 캠페인 이름은 암 발병 후에도 암 경험자들의 아름다운 삶은 계속된다는 의미를 담았다.

주요 프로그램으로는 암 경험자들 간의 경험 공유와 전문의 상담을 통해 정서적으로 지원하는 ‘고잉 온 토크’, 심리 치유 프로그램이 가미된 음악 예술 활동인 ‘고잉 온 하모니’, 1인 크리에이터 육성을 위한 영상 콘텐트 교육 ‘고잉 온 스튜디오’, 암 경험자들이 일기를 쓰며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는 기회를 갖는 ‘고잉 온 다이어리’가 있다. 이 같은 프로그램들은 암 경험자 및 가족 340명을 대상으로 그들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영역과 선호하는 정보 전달 방식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기획됐다. 오카다 대표는 “‘인류의 삶을 더 건강하고 안전하고 풍요롭게’라는 회사의 존재 의의에 부합하기 위해 암 경험자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과 정서적 지지를 위한 활동에 앞장서고 있어 뿌듯하다”고 밝혔다.

- 김민수 기자 kim.minsu2@joongang.co.kr·사진 김경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