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소울의 삶과 미술심리 (14) 

통제위치-내가 불행한 건 어쩔 수 없어 

원치 않는 사건이 일어났거나 생각한 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누구나 기분이 좋지 않다. 그런데 그 사건에 대해 ‘운이 좋지 않았다’고 반응하는 사람도 있고, ‘준비를 잘 안 했더니 이런 일이 생겼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피터 폴 루벤스 [카인과 아벨] 1609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삶을 대하는 태도, 나에 대한 신뢰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수많은 자기개발서와 유튜브에 차고 넘친다. 과거에는 신선한 소재였던 자존감이라는 단어도 다루어진 지 오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태도를 갖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설명도 흔하다. 그런데 문득, 이런 노력들을 꼭 해야 할까라는 생각도 든다. 어차피 시간은 똑같이 흘러가고 정해진 업무를 수행하면 되고, 태도에 상관없이 돌아가는 상황은 비슷할 텐데 왜 이런 부가적인 노력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

그 이유는 ‘통제위치’라는 단어에서 찾을 수 있다. 통제위치는 어떤 사건의 원인이 자신이 조절할 수 있는 부분에 기인하는지, 자신이 조절할 수 없는 부분에 기인하는지에 관한 심리학 용어이다. 전자는 내적 통제위치가 높고 후자는 외적 통제 위치가 높다고 이야기한다. 인간을 포함한 많은 동물이 자신이 조절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을 때 삶의 방향성이 더욱 부정적으로 흘러갈 수 있으며, 그 이후의 사건들도 어쩔 수 없는 사건이라 치부해버리는 경향성이 있다.

승리자와 패배자


▎고흐 [슬퍼하는 노인] 1890
카인과 아벨은 『구약성경』 창세기에 등장하는 인물로, 아담과 이브의 아들들이다. 첫째 카인은 농사를 짓고 둘째 아벨은 유목생활을 했는데, 과일과 곡식을 바쳐 하느님의 사랑을 받은 카인을 아벨이 질투하게 되고 결국 다툼 끝에 아벨이 카인을 죽이고 만다. 건장해 보이는 두 남자, 그러나 결국 둘의 싸움에서 아벨이 승리자가 되는 순간을 플랑드르의 바로크 화가 루벤스가 생생히 묘사했다.

어떤 사건의 결과에 대한 믿음이 자신의 다음 행동에 미치는 영향은 인간과 가장 유사한 영장류는 물론이고 강아지를 포함한 포유류, 심지어 갑각류인 가재들의 행동연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바다에 사는 가재들은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다른 가재와 집게발을 휘두르며 싸우는 경우가 잦다. 싸움이 끝나면 모든 싸움이 그러하듯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데,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싸움 이후 바닷가재의 모습이다. 승리한 바닷가재는 세로토닌 수치가 상승하고 몸이 유연해지면서 몸집이 싸우기 전보다 더 커 보인다. 반면에 패배한 바닷가재는 세로토닌 수치가 낮아지면서 몸이 위축되는 결과를 보였다.

싸움에서 패배한 바닷가재는 더는 상대와 싸우려고 하지 않고, 과거에 이겼던 상대와의 싸움도 포기해버린다. ‘난 더는 이기지 못할 거야’라는 패배감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싸움에서 패배한 바닷가재도 과거에는 누군가와 싸워 이긴 경험이 있는 경우도 꽤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승리를 모두 지워버린 듯 싸움에서 진 바닷가재는 한동안은 경쟁할 의사가 사라져버린다. 바닷가재는 싸움에서 패배한 것이 어쩔 수 없는 힘의 차이라고 분명히 인식하고, 자신이 그 상황을 바꿀 수 없음을 직감한다. 외적 통제 위치와 무력감이 동시에 발생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싸움을 직접 목격하지 않은 다른 바닷가재들은 위축된 바닷가재를 보며 단번에 낮은 서열임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믿음의 차이가 다른 가재들에게도 전달된 것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성공


▎뭉크 [잿더미] 1894
인생에서 패배를 맛본 사람들도 이와 유사한 패턴을 보인다. 성장하고 살아오는 과정에서 여러 번 성취감을 맛본 사람이라 하더라도 한 번의 실패는 인생을 크게 무너뜨리기도 한다. 문제는 그 후에 좋은 일이 생기거나 노력에 따른 결과를 성취했을 때도 ‘열심히 했더니 좋은 결과가 생겼다. 또 해보자!’라고 외치던 자신은 온데간데없고 ‘에이, 이번에 운이 좋았지 뭐…’, 혹은 ‘거래처를 잘 만난 거지 뭐’ 등 외부적인 요인들이 자신에게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혹시 다시 실패할까 두려워 소극적이 되기도 하고, 평소 즐겨 하던 것을 즐기지 못하며, 어깨가 축 처진 모습을 보인다. 인간은 타인에 대한 변별 능력이 바닷가재보다 훨씬 더 날카롭다. 외적 통제위치가 높아진 사람들은 눈빛, 걸음걸이, 말투 등 겉으로 보이는 모습들을 통해 어떤 사람인지 다른 사람들에게 읽히고 만다. 그 사람의 권력이나 재력과 같은 추가적인 정보는 이를 다시 뒤집을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특별한 배경이 없는 한 만만해 보이는 사람과 어려워 보이는 사람이 한순간에 결정된다는 것이다.

보이는 모습에 신경 쓰는 이유는 단순히 다른 사람에게 있어 보이기 위함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나의 감정과 태도에 다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자아가 튼튼한 사람이라면 한 번의 실패에 과도하게 위축되지 않을뿐더러 다른 사람의 평가에도 덜 예민하겠지만, 그런 사람들이 결국 당당한 모습으로 보인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미 위축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더욱 예민하게 받아들이게 되고 다시 돌아오는 시선에 스스로 초라해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과 가치관이 맞지 않거나 부정적인 삶의 태도를 가진 타인은 내가 어떤 태도를 취해도 여전히 나를 낮게 여길 수 있다. 다른 사람의 눈으로 자신을 평가하고 깎아내릴 경우 그런 태도에 흔들리는 자신을 바꾸어야 하겠지만 자존감이 낮아진 상태에서는 다른 사람의 눈빛과 말은 참으로 버겁게 다가온다.

패배적인 생각에 갇히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한 번 그런 일이 벌어지고 나니 걷잡을 수 없이 계속 빠져들고 사람들도 나를 패배자로 취급한다는 것은 쉽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이다. 보이는 태도가 권력이나 재력을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다른 사람으로부터 어떤 대접을 받을 것인지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기 때문이다.

자기 돌봄을 잊어버리는 사람들


▎뭉크 [목소리] 1893
나와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자기 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 것들이고 다른 사람이나 운, 환경적인 요소 등 외부적인 곳으로 돌려버리는 경우, 마음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자기를 싫어하게 되고, 스스로를 점차 돌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가치를 의심하고, 나약한 부분들에 집중하고, 실패한 과거를 떠올리며 살아가면서 자기혐오를 느끼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돌보는 것을 아예 포기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은 자기혐오적인 부분들에 괴로워하고 자괴감을 느끼지만 자신이 어떤 부분에서 약하고 쉽게 무너지는지는 알아보려 하지 않는다. 사람마다 특별히 더 예민한 부분들이 있고 개인적인 어둠들이 존재하는데, 그 어둠이 무엇인지 파악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부분이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지를 알고 있다면 통제위치가 외부적인 곳으로 자꾸 향하거나 무력감과 우울감에 빠져드는 것을 줄여나갈 수 있다. 원인을 알면 그것을 회피하며 살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심리치료 현장에서는 특정 대상에 공포증을 가진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누군가는 뱀과 같은 파충류를, 누군가는 어둠을, 누군가는 비행기와 같은 탈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런데 이런 공포증을 가진 모든 사람이 심리치료를 받으며 살아가지는 않는다. 그 공포 대상을 접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뱀과 만나지 않는 환경에서 살면 되고, 보조 조명을 집에 구비하여 밤에도 어느 정도의 빛과 함께할 수 있고, 비행기가 무서우면 해외여행은 가지 않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자신의 목소리에 집중하기

[목소리]는 뭉크가 그려낸 첫사랑의 그림이다. 뭉크는 자신에게 오랜 시간 상처를 주었던 기혼 여성 탈로를 한동안 검은 배경에 어두움만 가득 채우는 모습으로 그렸다. 그러나 그는 담담히 밝은 빛 아래에 하얀 옷을 입고 있는 그녀를 그려낼 수 있게 됐다. 스스로를 괴롭히는 어둠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자신을 나약하게 만드는 어둠의 원인을 안다면 그로부터 조금은 떨어진 삶을 살아가는 선택을 하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평소에는 운동도 열심히 하고 식단도 조절해서 먹는데, 맛있는 음식이 눈앞에 쌓여 있으면 폭식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뷔페는 피하는 것이 좋다.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에너지가 과도하게 고갈되고 우울해지는 사람이라면 대면 미팅이나 회식을 최대한 줄일 수도 있다. 우울한 사람들을 보고 쉽게 우울감에 전염된다면 습관적으로 퇴근 후 보는 유튜브나 넷플릭스에서 굳이 우울한 영상을 클릭하지 않는 것이 좋다. 나는 나 스스로를 침체시키지 않는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다.

어둠에서 한 발 떨어져 나를 바라본다면 다시 성공과 실패를 마주했을 때 그 원인이 분명히 보일 것이다. 어떤 결과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는 내적 통제위치가 높은 사람들은 성공했을 때는 스스로를 칭찬하여 더 나아가려 하고, 실패했을 때는 잘못된 부분을 찾아 수정해가려 한다. 그러나 그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외적 통제 위치가 높은 사람들은 성공했을 때는 운으로 치부해버리고, 실패했을 때는 남 탓을 하며 변화하고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지금까지 성장해오는 과정에서는 분명 자신의 내부에서 발생하는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여왔다는 것이다. 공부할 때는 시험문제가 공부하지 않은 부분에서만 나왔다고 탓하지 않고 예상문제를 더 많이 풀지 않은 자신을 탓했을 것이며, 좋은 사람과 연애를 할 때도 얼마나 진심을 보이느냐에 따라 연애 결과가 달라졌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만약 어떤 결과나 상황이 나를 잠시 좌절시키고 있다면 다른 곳에서 원인을 찾을 것이 아니라, 과거 자신이 여러 상황을 잘 이겨내고 지금까지 해왔듯이 ‘나’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 김소울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교에서 미술치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국제임상미술치료학회 회장이며 가천대학교 조소과 객원교수이자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이다. 현재 플로리다마음연구소 대표로, 『치유미술관』 외 12권의 저역서가 있다.

202104호 (2021.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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