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소울의 삶과 미술심리(15) 

완벽주의 - 삶을 어떻게 완성해나갈 것인가 

인간은 이상적인 상태를 향해 나아가려는 본능이 있다. 이러한 본능이 예술을 창조하고 더 나은 도구를 만들게 했으며 인류 발전을 이끌어왔다

▎모드 루이스 [봄의 소들] 1960
인간은 꿈을 가지고 이상을 향해 살아가면서 스스로 성장하기도 하고 성취감을 느끼며 그다음 단계를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가장 이상적인 상태에서 살고 있지는 않다. 각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상태에 대한 기준도 모두 다르다. 한국에서 대학 진학을 꿈꾸는 입시생들이 모두 서울대를 목표로 하지도 않으며, 이성을 만날 때도 가장 잘생기고 예쁜 연예인을 이상형으로 설정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상황과 가치관에 따라 기준은 사람마다 달라진다. 아직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없는 어린아이들조차 장래에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물어보면 모두 다른 대답을 한다.

완벽주의의 늪


▎모드 루이스 [고양이 세 마리] 1955
각자 설정한 이상이 모두 다르다는 전제하에, 이제는 한 개인의 삶에 집중해보자. 자신이 기대했던 삶과 가까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이 자신의 기준에서 일정 부분 만족스럽지 않은 삶을 살아간다. 특히 완벽주의 성향이 높은 사람들 중에는 자신이 기대했던 목표에 스스로가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목표치를 더 높게 정하며 스스로를 계속 실패자로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어 다이어트를 생각해보자. 80㎏에서 5㎏을 빼는 것을 목표로 다이어트를 시작한 사람은 75㎏이라는 숫자를 보는 순간 분명 성취감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완벽주의자들은 이때 70㎏도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다시 식단조절과 운동에 몰두한다. 이들이 72㎏에서 어느 정도 지쳐 멈추었다고 가정해보자. 분명 8㎏라는 많은 감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새로 설정한 숫자에 미치지 못했음에 스스로를 실패자로 여길 수도 있는 것이다. 일을 해나가는 과정에서도 분명한 성취를 이루면서 성장해가고 있는데, 새로 설정한 닿지 않은 목표들은 스스로를 주관적 실패자로 만들어갈 수 있다.

완벽주의자들과 달리 자신이 설정한 이상적 상태와 전혀 다른 상황에서도 만족할 수 있는 부분들을 더 크게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더 나은 상황이 아님에 불평하는 대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최대한 활용하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다. 이것은 현재에 머무르기를 택한다는 뜻이 아니다. 이상을 바라보느라 놓치고 지나가버리는 지금이라는 소중한 순간들의 충만함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오늘을 충분히 즐기고 만족하기 위해서는 오늘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그 노력에는 결국 성장이 뒤따른다. 캐나다 작가 모드 루이스(Maud Lewis)는 이러한 삶의 태도를 그림에 반영해 밝고 희망적인 이미지들을 담은 화가로 알려져 있다.

내가 찾아가는 나의 길


▎모드 루이스 [모델 T] 1962
캐나다를 대표하는 민속 화가 모드 루이스는 밝고 화사한 이미지로 알려져 있지만, 그녀는 지독히도 가난했고 선천적 류머티즘성 관절염으로 인해 왜소한 몸에 등, 다리, 손의 불완전한 움직임과 함께 평생을 살아가야 했다. 몸이 불편했던 모드에게 어머니는 그림을 그리게 했고, 그녀는 어린 시절 수채화로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어 5센트에 팔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그림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연이어 사망하면서 어려운 삶을 보내야 했다. 오빠 찰스는 몸이 불편한 그녀를 귀찮아했고 이모에게 그녀를 맡겼으나 이모 역시 그녀를 짐으로 여겼다.

그러던 중 그녀는 동네 상점에서 물고기 행상인이었던 44세 에버렛 루이스(Evertt Lewis)가 자신의 집에서 숙식을 하며 집을 정리해줄 가정부를 구하는 글을 보게 됐다. 그녀는 불편한 몸으로 10㎞를 걸어 곧바로 그의 집으로 갔다. 처음으로 자신의 삶을 독립적으로 살아가려는 선택이었다. 집안일을 잘하는 가정부를 기대했던 에버렛은 왜소하고 절뚝거리며 몸이 불편해 보이는 그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보육원 출신에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아가던 그는 전혀 다정하지 않았고, 그와 그녀는 서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집은 복층식 원룸으로 다락방에 있는 침대 하나에서 둘이 자야 했고, 1층에는 공간이 거의 없었다. 만족스럽지 않은 서로였지만 9㎡ 밖에 안 되는 누추한 환경에서 일할 지원자도 없었고, 모드 역시 이모의 집에서 벗어나 있을 곳이 필요했다. 둘은 함께 지내기로 결심했고, 몇 주 뒤 혼인신고를 했다.

최선이 불러온 성공


▎모드 루이스 [크리스마스 카드] 1963
그녀는 집을 꾸미기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물감으로 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릴 적 어머니가 그리게 했던 작은 크리스마스 카드를 그려 남편의 고객에게 5센트에 팔았는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렇게 번 돈으로 남편은 그녀에게 첫 유화물감을 선물했다. 거실 창문으로 빛은 거의 들지 않았지만 모드는 그림을 그리면서 늘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녀는 작은 나무판부터 쿠키 시트, 집 안의 스토브, 문, 빵 상자 등 그릴 수 있는 모든 곳에 그림을 그렸다. 그녀는 사랑하는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상황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그릴 수 있는 모든 곳을 캔버스로 생각했다.

모드가 남긴 그림들은 대부분 크기가 작다. 류머티즘으로 인해 손을 많이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남편의 고객으로부터 반응이 좋아지면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한 미국인 고객은 그녀에게 그림을 주문했다. 그녀의 작품이 사랑받기 시작하면서 마샬에 있는 그들의 집은 작업실이자 그림을 판매하는 화랑으로 변했다. 집의 위치가 노바스코샤 서부의 주요 고속도로이자 관광 루트였던 것이 도움이 됐다. 대문에 ‘그림을 팝니다’라는 팻말을 걸어놓았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림을 사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더 유명해졌다. 특히 CBC-TV의 Telescope에 출연하며 대중적 관심을 받게 되었고, 로버트 스탠필드 캐나다 총리가 직접 마샬타운의 집에 방문해 작품을 사기도 했다. 1970년 미국 백악관에서도 그녀의 그림 두 점을 주문했다. 동물들과 자연은 모드에게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자원들이 됐다. 마샬의 작은 집에서 태어난 그녀의 그림 세계는 붓과 물감을 통해 점차 확장돼 나갔다.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그려내는 그녀의 눈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한계가 많아 보이는 그녀였지만 스스로 그 한계를 없애나갔다.

완벽하지 않지만 내게는 완벽한


▎Steve Farmer의 사진 [모드 루이스의 집]
모드가 다니거나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은 많지 않았다. 멀리 나가기도 어려워 주로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그림을 그렸지만 집은 매우 협소했다. 에버렛과 결혼한 이후 평생 동안 자신의 동네 밖으로 나가지 않고 오두막집에서 그림만 그리며 살았다. 그러나 그녀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나는 내 집이 좋습니다. 내 앞에 붓 하나만 있으면 그걸로 충분해요.”

사물을 직접 보고 그리는 것이 아니라 기억과 상상에 의존한 그림이 대부분이었다. 동물을 사랑했던 그녀는 소, 말, 새, 닭, 사슴, 고양이 등을 그렸고, 어린 시절의 기억들과 가끔 나가는 남편과의 외출에서 얻은 기억들을 물감으로 그려나갔다. 몸이 불편했지만 그림을 그리려는 열정이 있었고 아주 작은 행복에도 감사할 줄 알았다. 그녀의 그림은 그녀의 상상을 통해 완벽한 그림이 됐다.

과거 모드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아이를 출산했다가 출산 직후 다른 집에 입양을 보낸 적이 있었다. 장애가 있고 수치스러운 일을 겪은 그녀를 가족들은 짐스러워했다. 그녀의 남편 에버렛은 보육원에서 온갖 일을 하며 자라 사람들과 온정을 주고받는 것이 익숙지 않은 사람이었다. 미완성이었던 이 두 사람은 상처를 안아주며 서로에게 완벽한 사람이 되어갔다. 모드는 1970년 63세 나이로 사망했고, 그녀가 죽는 순간까지 에버렛은 그녀의 곁을 지켰다. 캐나다 노바스코샤 미술관에는 모드와 에버렛이 살았던 작은 집이 복원되어 전시되고 있고 캐나다의 우표에도 모드 루이스의 작품이 그려져 있다.

변화하는 삶의 장면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치의 소중함을 쉽게 망각한다. 더 성공하고 싶고, 더 이름을 알리고 싶고, 더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기 위해 노력하다가 지금 나의 행복을 나중으로 미루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지금보다 더 나아져야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스스로의 한계를 정의하기도 하고, 그로 인해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을 무의미하게 느끼기도 한다.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정신없이 하루가 시작되고 바쁜 업무를 하나씩 수행해가면서 사람들은 자신이 설정한 틀에 완벽히 맞추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그것이 칼같이 지켜내는 매일의 루틴일 수도 있고, 식사 후 3분 이내에 무조건 양치질이라는 기본적인 위생에 관련된 것일 수도 있다. 아무리 자유롭게 사는 사람들이더라도 자신과의 약속과 생각의 틀은 존재한다. 그것이 어느 정도로 엄격함을 지니느냐에 따라 스스로에 대한 만족도는 달라질 것이다.

완벽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하는 경향성이 높다. 모든 것을 자신이 정한 틀에 넣어 행동하고 그렇지 못한 변화나 제어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근본적 공포가 있는 것이다. 인간은 모두 나이가 들고, 상황도 변하기에 모든 것을 자신의 통제하에 둘 수는 없다. 어떤 소수의 운 좋은 사람들은 목표해왔던 틀 안에 자신의 인생이 꼭 맞아떨어지면서 살아갈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외부 환경이나 내적 변화로 인해 틀에 맞지 않는 시간들이 늘어난다. 완벽하고 이상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질 수도 있으나 자신이 정한 규칙과 이상적인 틀이 변화를 만나는 순간 좌절감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조금만 뒤틀려도 그것이 실패로 느껴지고 자신은 행복할 자격이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모든 삶에는 목표가 있고 꿈이 있다. 목표가 있기에 우리는 오늘과 내일을 살아갈 수 있지만 삶은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가 태반이다. 이때 어떤 기지를 발휘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미래가 바뀌기도 한다. 변화에 좌절하고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지 않을 수도 있고, 변화하는 상황에 자신의 오늘을 다시 세팅해가며 전진할 수도 있다. 원하는 삶에 닿기 위해서는 하나의 목표를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그것을 바꿀 수도, 버릴 수도 있는 유연성,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다른 방향으로 틀고 바꾸어 갈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

※ 김소울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교에서 미술치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국제임상미술치료학회 회장이며 가천대학교 조소과 객원교수이자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이다. 현재 플로리다마음연구소 대표로, 『치유미술관』 외 12권의 저역서가 있다.

202105호 (2021.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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