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소울의 삶과 미술심리(16) 

삶의 균형-실용과 장식 사이 

18세기 말, 서양권 각지에서 산업혁명을 겪으면서 미술을 바라보는 태도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오랜 시간 공들여 작업해오던 장인의 가치는 기계에 의한 노동력으로 대체됐다.

▎클림트 [유디트] 1901.
변화하는 사회의 움직임에 대처하기 위한 미술교육의 흐름도 달라졌다. 프랑스는 지역 산업체의 필요성에 맞는 지방 예술원을 설립했고, 독일은 미술공예학교를 설립했다. 영국은 전문적 디자이너를 양성하는 학교교육을 별도로 수립하지 못하면서 예술 상품의 질이 떨어지는 결과를 맞았고, 미국은 숙련된 노동자를 위한 미술교육에 몰입했다.

장식 속에 숨은 에로티시즘


▎시모네 마르티니 [수태고지] 1333.
19세기 말 산업혁명과 대량생산으로 수공예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장식예술의 설 자리를 되찾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다. 그 중심에 모리스앤코(Morris & Co)의 대표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가 있었다. 영국의 공예가이자 시인, 사상가이기도 했던 윌리엄 모리스는 영국의 비평가 존러스킨의 영향으로 중세를 동경했고, 손으로 하나씩 장식적인 것들을 만들어냈던 예술의 가치를 되살리려는 시도를 했다.

예술가들의 움직임도 달라졌다. 3D를 구현하려고 노력하던 회화에서는 입체감이 점차 사라지고 배경과 인물도 단순화됐다.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 폴 세잔을 시작으로 사물의 본질을 바라보려는 시도는 대상을 해체하고 재조합하는 입체주의와 구성을 해체한 신조형주의로 이어져 새로운 미술의 중심이 됐다. “가장 실용적인 것이 가장 아름답다”는 독일 미술학교 바우하우스의 미술 철학을 중심으로 한 미술계에서 장식성은 예스럽고 진부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회화 역사에서 가장 장식적인 예술가가 등장했다.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가 주인공이다.

클림트의 그림은 찬란한 황금빛 색채와 장식적인 문양이 주를 이룬다. 클림트가 이탈리아를 방문했을 때 그가 만난 것은 금과 같은 값비싼 재료를 활용한 중세의 화려하고 장식적인 회화였다. 그는 모리스와 마찬가지로 장식적인 중세미술에서 영향을 받았고 그 기법을 자신의 작품에 도입했다. 작품 대부분의 주제는 여성, 성, 죽음에 관한 것이었다. 장식적이고 화려한 기법과 사랑스러운 이미지들은 대중에게 낭만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그림에는 상당히 관능적이고 성적인 요소가 많다. 실제로도 수많은 여성과 관계를 가졌고, 에로티시즘을 가장 잘 구현한 작가라고 회자된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여자 영웅 유디트를 바라보는 클림트의 시선은 다른 작가와 달랐다. 유디트를 적으로부터 나라를 구한 영웅의 모습이 아니라 성적으로 도취한 여성으로 묘사한 것이다. 오른쪽 아래에 들려 있는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는 거의 보이지 않게 묘사되어 있고 가슴을 풀어헤친 관능적인 여성이 황홀경에 빠진 모습으로 관람객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녀는 옷을 대충 걸치고, 복잡한 문양이 드러난 황금 목걸이와 장식으로 치장하고 황금색 배경 앞에 화려하게 서 있다.

대부분의 화가가 유디트의 위대한 행동을 칭송하기 위해 유디트를 주제로 그림을 그렸기에 당시 사람들은 클림트의 그림에서 거부감을 느꼈다. 그림 속 유디트는 퇴폐적이며, 살인에 대한 죄책감과 같은 인간적인 모습은 전혀 드러나 있지 않다.

중세미술은 상징과 알레고리의 미술이다. 알레고리는 한 대상을 설명하기 위해 다른 대상을 사용하여 그 유사성을 적절히 암시하며 대상을 나타내는 수사법이다. 대상이 대상 그 자체가 아닌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수태고지]는 천사 가브리엘이 동정녀 마리아에게 예수님을 잉태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장면이다. 그림 가운데 있는 백합은 백합과에 속한 다년생 초본식물이지만 여기에서는 마리아의 동정과 순결을 의미한다. 비둘기는 성령을, 청자색 매발톱꽃은 후에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죽음을 슬퍼하는 성모를 상징한다. 중세미술의 알레고리는 꽃말, 탄생석, 별자리점 등과 같은 형태로 여전히 남아 있다.

중세미술의 영향을 받은 클림트는 그림 속에 자신만의 알레고리를 만들어 그려냈다. 성적인 주제가 주를 이루었던 그의 그림에서 네모는 남성성을, 동그라미는 여성성을 의미하기 시작했다.

다나에는 그리스 신화에서 아르고스 왕 아크리시우스의 공주이다. 왕은 자신의 딸이 낳은 자식이 자신을 죽이게 될 것이라는 신탁을 받고 불안감에 공주가 어떤 남자도 만나지 못하도록 철탑에 가두었다. 다나에는 상당히 아름다운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다나에의 아름다움에 대한 소문을 들은 제우스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황금색 비의 모습으로 철탑에 스며들어 다나에와 만난다.

클림트는 다나에가 사랑에 빠져 동침하는 모습을 상상하여 그림으로 그렸다. 일반적인 그림과 달리 정사각형 캔버스를 선택한 클림트는 마치 다나에가 캔버스에 갇혀 있는 것처럼 웅크린 모습을 그려냈다. 금발머리를 늘어뜨린 육감적인 허벅지 사이로 황금비로 변한 제우스가 폭포처럼 흘러내린다. 처음으로 남자를 받아들이는 순간을 금색과 네모난 형상이라는 상징적인 모습으로 나타냈다. 다나에의 두 뺨은 붉게 상기되어 있고, 입술은 살짝 벌린 채 황홀해하고 있다. 폭포수처럼 흘러내린 금빛 밑에는 사각형들이 보이며, 정사각형 캔버스도 철탑이자 남성성을 상징한다. 다나에를 살짝 가리고 있는 비단 천에는 여성성을 상징하는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다. 아버지가 만들어놓은 족쇄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남성을 받아들이는 성스럽고 순수한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이다.


▎구스타프 클림트 [다나에] 1908.
키스의 알레고리


▎구스타프 클림트 [키스] 1908.
예술 작품이 상품화된 정도가 작품의 성공을 가늠하는 척도라면 클림트의 [키스]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그림일 것이다. 클림트는 양귀비꽃이 활짝 핀 절벽 끝에서 키스를 나누는 남녀를 그렸다. 금빛에 과장된 장식을 입혔지만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다.

이 작품에서 클림트는 남성성을 상징하는 네모와 여성성을 상징하는 동그라미의 알레고리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남성의 몸에 가득 찬 네모가 여성의 어깨 아래 부분에서 여성의 몸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다나에]와 마찬가지로 직접적으로 성행위를 하는 모습을 그리지는 않았지만 남녀가 관계를 가지는 모습을 표현했다. 황홀경에 빠진 듯한 여성이 남성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의 머리에 씌워져 있는 화관은 두 사람의 행위를 성스럽게 보이도록 만든다.

[키스]가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이유는 아름다운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맨발을 절벽 끝에 디디고 무릎을 꿇고 있는 여성은 위험하고 불안정해 보이기까지 한다. 에로티시즘을 자신만의 알레고리로 풀어낸 클림트는 긴장감과 황홀감을 담은 금빛의 키스를 완성했다.

실용적인 것도 장식적인 것도 아름답다

실용적인 것과 장식적인 것 중 더 중요한 요소란 존재하지 않는다. ‘가장 실용적인 것이 가장 아름답다’라는 문장이 참이라면 디자인은 존재할 의미가 없다. 가장 싸고 기능 좋은 것이 제일 좋은 것이 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벽에 그림을 거는 것은 어떤 실용적 목적도 채워주지 않는다. 굿즈나 피규어는 존재가치가 없고, 가방도 튼튼하고 많이 담을 수 있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 여행이나 연애, 결혼 등은 가장 가성비가 떨어지는 행위가 될 것이다.

기능적이고 실용적인 것은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나 토기에 빗살무늬를 넣는 순간부터 인간은 장식성을 추구해왔다. 그리고 장식에 자신의 주관적 의미를 부여하는 알레고리의 연결체계를 만들어나간다. 사랑하는 사람이 선물해준 반지는 실용성은 없지만 손가락을 더 빛나게 만들어주며, 영원한 사랑의 약속이라는 상징성을 띤다. 피규어는 공간을 차지하는 플라스틱 덩어리가 아니라 열심히 일한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특정 브랜드가 주는 긍정적 이미지를 공유하기 위해 고가의 시계나 가방을 구매하기도 한다.

심미성만 고려해 기능이 좋지 않은 대상을 선택하는 것은 1900년대 초반에는 바보 같은 행동으로 여겨졌지만, 자동화된 시스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돈을 들여 수동식 자동차를 사거나 아날로그식 제품들을 구매한다. 대인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만날 때 나에게 이득이 되는 사람만 만나고 살지는 않는다. 함께 있을 때 즐겁고,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누군가는 나의 삶을 한 단계 더 윤택하게 만들어준다. 이 윤택함이 삶의 장식이다. 일하고 저축하고 필요한 것만 소비하는 삶은 기능성이 높은 삶이지만, 무료하고 즐거움이 필요한 상황에서 우리는 플랫함을 장식해줄 여행, 취미, 만남, 사랑을 찾는다. 일의 능률을 높이고 돈을 잘 버는 실용성과 삶을 즐겁게 하고 움직이게 만들어주는 장식성은 모두 필요하다. 이 둘이 현명하게 어우러진다면 자신의 삶에 가장 이상적인 균형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실용적인 것도, 장식적인 것도 모두 아름답다.

※ 김소울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교에서 미술치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국제임상미술치료학회 회장이며 가천대학교 조소과 객원교수이자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이다. 현재 플로리다마음연구소 대표로, 『치유미술관』 외 12권의 저역서가 있다.

202106호 (2021.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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