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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호의 생각 여행(18) 유럽의 중심 프랑크푸르트에서 독일의 자긍심을 보다 

 


▎독일 지성의 상징인 괴테의 동상이 프랑크푸르트 괴테 광장에 서 있다. 프랑크푸르트 경제의 상징인 코메르츠방크 타워(Commerzbank Tower)를 배경으로 촬영했다.
유럽 출장을 갈 때 꼭 들러야 하는 곳은 유럽 경제와 교통의 중심지인 독일 프랑크푸르트다. 인천공항에서 이륙해서 서쪽으로 30~40분간 비행하면 중국 동해안이 보이기 시작하고 다시 비슷한 시간을 날면 베이징을 지나 곧 만리장성을 넘어선다. 이윽고 황량한 고비사막이 나타난다. 사막을 지나서 연결되는 시베리아 대륙 위를 날아 북유럽 헬싱키 상공을 통과하면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한다. 약 11시간 정도를 비행하여 도착하면 현지 시간은 통상 오후 5시 전후다. 프랑크푸르트를 찾을 때마다 즐겨 묵는 시내 중심의 슈타이겐베르거 프랑크푸르트 호프(Steigenberger Frankfurter Hof) 호텔에 여장을 푼다. 호텔 가까이에 있는 괴테 광장으로 걸어 나가서 산책도 한다. 시차도 극복할 겸 여러 명품숍이 있는 괴테 스트라세를 어슬렁거리며 걸어본다. 우리나라 로데오 거리와 비슷하다. 프랑크푸르트에 괴테 광장, 괴테 거리, 괴테하우스가 있는 것을 보면 프랑크푸르트 시민들과 독일 국민에게 괴테가 얼마나 큰 존경을 받는지 짐작할 수 있다.

유럽 중앙은행 앞에는 유로화를 상징하는 큰 조형물이 있다. 여기에 붙은 별의 개수는 유럽연합(EU)에서 유로화를 사용하는 나라의 숫자이다. 카이저 거리까지 걷고 나서 다시 호텔로 돌아와 로비의 바에서 독일 맥주를 한두 잔 마시며 다음 날 바쁜 일정을 위해 휴식을 취한다.

1년 내내 열리는 글로벌 박람회·전시회


▎비스바덴 시내에 있는 세계 최대 뻐꾸기시계를 사람들이 둘러보고 있다.
프랑크푸르트를 자주 방문했던 이유는 한 해에 몇 번씩 북유럽으로 출장을 가기 위해 유럽의 교통 중심지인 프랑크푸르트에서 환승하는 것이 제일 편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사업상 중요한 세계적인 전시회(ISH: 냉난방 공조 전시회)가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특히 2년마다 열리는 냉난방 공조 관련 전시회는 꼭 방문해서 전 세계 산업 흐름을 관찰하며 심도 있게 관람해야 한다. 지난 30년 동안 전시회에 참여하면서 확연한 기술의 변화를 확인했고 그에 따라 대응 전략을 수립해 실행할 수 있었다.

독일에서 열리는 전시회는 미국이나 우리나라 전시회와는 조금 다르다. 각 기업 전시관에서 음료와 간단한 식사를 제공하며 마치 파티를 열 듯 고객들과 깊은 유대 관계를 형성한다. 프랑크푸르트에서는 산업 분야별로 세계적인 전시회가 연중 열린다. 다양한 산업과 시너지를 일으키며 큰 경제적 수익도 얻는다. 수많은 인파가 전시회에 참여하기 위해서 독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날아온다. 전시 기간 동안에는 호텔 예약도 무척 힘들고 가격도 엄청나게 비싸다. 수많은 전시 관계자가 프랑크푸르트에서 숙박하고 식사하고 마시고 관광한다. 따라서 건축 관련 업체, 화물운송업자, 택시, 호텔, 요식업자, 소매업자들에게도 1년 내내 대단한 수입을 안겨준다. 냉난방 공조 관련 전시회를 오랜 기간 동안 찾으면서 전시회나 박람회 산업이 국가 산업 발전이나 기업 기술 발전에 대단히 중요한 분야라는 것을 보고 배웠다. 우리나라의 핵심 산업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갖게 됐다.

주 프랑크푸르트 총영사관에서 펴낸 ‘2020년 독일 박람회 산업 현황 및 2021년 전망’이라는 보고서를 검토해보았다. 박람회 산업은 매년 독일 경제에 약 280억 유로 규모로 기여하고, 2020년 박람회 참가 기업 수는 24만8000개사, 방문자 수는 156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독일 수출의 최대 20%가 무역박람회에 참여함으로써 발생한다. 그러나 2020년은 코로나19로 인하여 박람회 참가 기업의 60%를 차지하는 해외 기업이 참여하지 못했고, 참가자도 예상에 훨씬 못 미치는 430만 명에 그쳤다. 전시회 취소로 인해 지난해에는 수십억 유로에 달하는 손실이 발생했다고 한다.

코로나19 유행 기간 중 현장 박람회에 대한 대안으로 디지털 박람회가 열리고는 있다. 하지만 참여 기업 대다수는 여전히 현장 박람회를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박람회 관련 주요 인사들도 여전히 현장 박람회에 미래가 있다고 답했다. 이를 위해 기존 박람회가 빨리 변화해서 디지털화에 힘쓰고 하이브리드 방식이 표준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독일의 전시 산업을 벤치마킹해 서울 삼성동에 새로이 들어설 종합전시장이 세계에서 손꼽히는 명소가 되어 우리나라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

해외여행을 하면 사업상 하는 일 외에 그 지방의 맛집이나 전통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식당을 찾아 식사하는 것이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프랑크푸르트에 출장이나 여행 갈 때 종종 들르는 맛집은 독일의 전통 돼지고기 모둠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아돌프 바그너(Adolf Wagner) 식당이다. 이곳에선 특이하게도 시큼털털한 애플와인만 제공한다. 그런데 이 와인이 의외로 돼지고기 맛과 잘 어울린다. 항상 손님이 많아서 길게 줄을 서 기다려야만 한다. 음식 맛도 좋고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즐길 만한 명소다.

패전과 분단의 아픔 이긴 독일인의 저력


▎프랑크푸르트를 대표하는 전시장 메쎄 프랑크푸르트 (Messe Frankfurt)의 내부 모습.
해외여행의 또 다른 보너스는 현지 미술관이나 박물관 관람이다. 프랑크푸르트에는 10만 점이나 되는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슈테델 미술관(Städelsches Kunstinstitut)이 있다. 지난 출장 때는 운 좋게 유명한 르네상스 시대 화가 중 한 명이자 베네치아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화가인 티치아노의 특별전이 열렸다. 반나절 시간을 내 ‘티치아노와 베네치아의 르네상스전’을 관람했다. 그의 대표작 ‘우르비노의 비너스(Venus of Urbino)’, ‘천상과 세속의 사랑’, ‘성모 승천’ 등 색채주의의 특징을 보여주는 작품을 만났다. 또 다른 베네치아 르네상스 거장들의 작품을 볼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다.

독일에 관한 칼럼을 쓰다 보니 문득 과거 젊은 시절, 무거운 샘플을 들고 기차 편으로 독일 전역을 돌며 세일즈하러 다니던 때가 떠오른다. 그 참에 독일 지도를 펴보았다. 북쪽 함부르크에서 출발해 브레멘, 하노버, 프랑크푸르트, 슈투트가르트를 거쳐서 남쪽 뮌헨까지. 서쪽으로는 뒤셀도르프, 쾰른, 본까지 다녔다. 당시에는 대부분 기차역에 에스컬레이터가 없어서 무거운 샘플 가방과 옷을 넣은 큰 트렁크를 들고 땀을 뻘뻘 흘리며 높은 계단을 오르내리곤 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여행 자유화가 안 되어서 단수 여권을 들고 다녀야 했다. 해외 수출의 역군으로 뛰던 젊은 날 아름다운 추억이다.

독일이 통일된 이후에는 동쪽의 수도 베를린, 라이프치히, 드레스덴을 방문했다. 그리고 큰 도시 주변의 유서 깊고 아름다운 도시들인 하이델베르크, 뷔르츠부르크, 비스바덴 등을 짬이 날 적마다 돌아보았다. 이렇게 독일을 여행하다 보면 그들이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라는 사실을 여러 곳에서 체감할 수 있다. 공항 도착 때, 고속도로를 달릴 때, 기차나 자동차로 국경을 넘어설 때, 또 상점에서 쇼핑하거나 시내를 거닐 때, 심지어 시골 마을을 찾을 때도 유럽에서 가장 강하고 부자인 나라의 힘을 느낄 수 있다.

프랑크푸르트와 독일을 찾을 때마다 항상 마음속으로 하는 질문이 있다. 프랑크푸르트 시의 인구는 70만 명 남짓인데 어떻게 이 도시가 유럽의 경제 중심지가 될 수 있었을까? 독일은 1·2차 세계대전 패전국이었지만 라인강의 기적을 일으켰고 지금은 통일까지 이루어서 세계 강대국 중 하나로 글로벌 무대에 정치·경제적인 영향력을 크게 행사하고 있다. 전쟁에 두 번이나 진 패전국이 어떻게 유럽을 이끄는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었을까? 더불어 독일은 어떻게 평화통일을 준비하고 실현해냈을까? 또 세계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는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 기업을 어떻게 이렇게 많이 보유하고 있을까? 정말 궁금한 대목이다.

독일이 성공한 근본 원인을 그동안 독일인들과 교류한 경험을 바탕으로 주관적인 사유를 해보았다.


▎메쎄 프랑크푸르트 외부에 태극기와 더불어 만국기가 게양되어 있다.
첫 번째 성공 요인은 독일인의 자긍심(自矜心, 스스로에게 긍지를 가지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독일에는 최고 성능의 자동차로 속도제한 없이 질주할 수 있는 고속도로인 아우토반이 있다. 이러한 시스템이 가능한 것은 속도제한이 없어도 안전하게 교통질서를 지키는 자긍심을 바탕으로 한 시민정신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독일 고속도로의 사고율은 세계적으로 낮은 편이다. 속도제한이 없는 고속도로를 달려보면 추월하는 자동차와 양보하는 자동차의 주행이 아주 자연스럽고 멋지게 유지된다. 한 편의 예술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와 더불어 초고속으로 달리는 자동차를 수용할 수 있는 최고 품질의 고속도로가 있다.

독일에는 수많은 히든 챔피언 기업도 있다. 잘 알려지지는 않지만 전문 분야에서 특화된 경쟁력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을 지배하는, 작지만 강한 우량 강소기업(強小企業)을 말한다. 다른 나라가 갖고 있지 못한 이 모든 선진 시스템의 바탕에 독일인의 자긍심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긍심, 즉 독일인 스스로 긍지를 가지는 마음은 모든 분야에서 세계 최고를 지향하게 만든다. 개인도 주관이 확고해서 수준 높은 시민의식과 민도를 창출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원동력이 동서 독일이 평화롭게 통일된 원천이지 않을까 유추해본다.

나아가 독일인은 사유의 힘, 즉 생각의 힘이 대단히 큰 사람들이다. 그래서 어떤 분야든, 예를 들어서 철학, 음악, 과학기술, 교육 등에서 세계를 리드하는 수준을 유지한다. 이렇듯 개인이 성공하고 한 나라나 사회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긍심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둘째, 독일인은 개인과 집단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나 신념인 자신감(自信感, Self-Confidence)과 근면함으로 ‘라인강의 기적’을 일으키고 패전의 상처를 딛고 재건했다. 반드시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강력한 의지가 경제를 부흥하고, 결국 통일까지 이루어내지 않았을까? 인접 국가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실행한 브란트 총리의 무릎 사과도 바로 이런 자신감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개인이나 기업이 성공하기 위해선 자신감 확보가 출발점이 되어야만 한다. 그래야 성공이라는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셋째, 인재 육성이다. 독일의 노벨상 수상자는 전체 109명으로 세계 3위이자 미국, 영국과 함께 현재 수상자 수가 세 자릿수 이상인 나라이다. 화학상 30개, 물리학상 33개 등 과학 분야에서 유독 강세를 보이고 있다. 책임감 있고 유연하게 열린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하는 리딩 그룹의 육성과 선진 교육 시스템을 통한 과학 인재 양성이 독일을 강대한 나라로 견인하고 있다. 우리 기업이나 국가의 성패도 마찬가지다. 미래는 훌륭한 인재를 얼마나 잘 양성하느냐에 달려 있다.

귀국하려고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이동하는 중간에 온천으로 유명한 비스바덴에 잠깐 들렀다. 피부병과 류머티즘을 치료하거나 장기 요양을 위해 독일인들이 많이 찾는 지역이다. 길거리에서도 온천수가 나오고 유황 온천수가 나오는 분수도 있다. 다음에 다시 그곳을 찾으면 반드시 온천도 즐겨보리라. 비스바덴 거리에 있는 세계 최대 뻐꾸기시계 사진을 찍고 공항으로 향한다. 저녁에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이륙하니 창밖이 금세 어두워진다.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며 개인, 기업, 국가의 성공 비결인 자긍심(Self-Esteem), 자신감(Self-Confidence), 인재(Talent)를 자꾸만 되뇌어본다.

※ 이강호 회장은… PMG, 프런티어 코리아 회장. 덴마크에서 창립한 세계 최대 펌프제조기업 그런포스의 한국법인 CEO 등 37년간 글로벌 기업의 CEO로 활동해왔다. 2014년 PI 인성경영 및 HR 컨설팅 회사인 PMG를 창립했다. 연세대학교와 동국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고, 다수 기업체, 2세 경영자 및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경영과 리더십 코칭을 하고 있다. 은탑산업훈장과 덴마크왕실훈장을 수훈했다.

202106호 (2021.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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