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진호의 ‘음악과 삶’ 

자세히 들어야 예쁘고 오래 들어야 사랑스럽다 

세상에는 질서도 있고 무질서도 있다. 음악에도 질서가 있다. 질서와 무질서는 무엇일까.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는 카드게임에서 나오기가 가장 어려운 포커 최고의 카드 조합이다. 이 조합이 나올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네 가지뿐으로, 다섯 장을 사용하는 포커게임에서 그 확률은 0.0001539%이다. / 사진:위키피디아
카드게임을 공정하게 하려면 특정 참여자에게 좋은 패를 몰아주지 않도록 잘 섞어야 한다. 카드를 잘 섞으면 카드 배열은 무질서해진다. 게임 참여자들은 가지고 있던 무질서한 배열의 카드를 질서 있는 배열로 바꾸려고 한다. 5개의 광(光) 혹은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 같은 배열은 만들어내기가 가장 어려운 질서에 해당한다. 당신이 카드게임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질서를 취해 승리하기는 어렵고 (점수가 나지 않는) 무질서한 배열을 취함으로써 패하기는 쉽다. 세상에는 카드게임을 못하는 이가 많다. 80억 인류의 관점에서 본다면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 같은 배열은 인간 종이 얻기가 무척 어려운, 어떤 특이한 질서 상태이다. 질서는 그것을 구현하려는 의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루어내기가 쉽지 않다. 당신의 방은 웬만한 의지가 없다면 어질러질 가능성이 잘 정돈될 가능성보다 크다. 당신이 처음 성악 발성을 배운다면, 파바로티의 목소리를 내려는 당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당신의 목소리는 갈라지고 음정이 안 맞을 것이다.

인간이 변수가 되지 않는 자연에서, 발생할 확률이 무척 높은 상태 혹은 사건들은 곳곳에 편재하는 무질서일 가능성이 크다. 이 우주에는 무질서 상태가 더 많고 어쩌다 만들어진 질서 상태도 시간이 지나면 무질서해진다. 대조적으로, 발생할 확률이 무척 낮은 어떤 특이한 것은 질서다.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루트비히 볼츠만에 따르면, 과거와 미래의 차이는 자연스럽게 무질서해져서 특수하거나 특별한 상황이 점점 사라지는 것에 있다. 그러니까, 과거로 갈수록 이 우주는 특수하게 정리된 상태였다. 과학자들은 빅뱅 순간의 우주가 무척 질서정연한 것으로 생각하며, 종교적 예술가들은 천지창조를 질서정연한 것으로 표현했다. 반대로 우주의 종말은 미래에 있고, 그 이미지는 무질서하다. 한 개인의 늙음 및 죽음과 어떤 체계의 쇠락 역시 무질서 상태로 볼 수 있다. 물리학자들은 무질서로의 진행 과정을 빗대어 엔트로피가 증대한다고 말한다.

빅뱅이라는 특이한 질서 상태였던 우주에서 생명이 발생할 확률도 무척 낮았다.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한 물리학자 프랜시스 크릭은 생명체가 자연으로부터 생겨날 확률을 10의 -1000승으로 보았다. 생명 중에서도 고등한 종의 수는 무척 적다. 고등한 영장류 중에서 높은 수준의 지능을 가진 인간 종이 발생하고 진화할 확률 역시 무척 낮았다. 그런 인간이 만든 음악은 이 우주에서 발생할 확률이 가장 낮은 사건일 것이다.

소리에서의 질서


▎탁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전인권. 그의 창법은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목소리를 정교하게 정제하여 소음을 최소화하는 클래식 성악의 벨칸토(Bel Canto) 창법의 대척점에 있다. 전인권의 창법은 말칸토(Mal Canto)라고 형용할 수 있다. 나쁜 목소리. 하지만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전인권의 팬들은 전인권의 노래를 오래, 자세히 들어서 그 아름다움을 인지한 이들이 아닐까. / 사진:위키피디아
음악에서 사용되는 음악적 음(tone)은 질서 있는 특이한 소리로서, 만들어내기가 무척 어렵다. 일상에서 잘 들리고 음악에서는 쓰기 어려운 소리는 발생할 확률이 높으며, 그 안에는 질서가 없다. 소리에서의 질서라고? 소리는 주어진 시간, 이를테면 1초 동안 어떤 물체가 여러 번 진동함으로써 발생한다. 복수의 진동을 구성하는 각 진동 간 수학적 관계를 생각해보자. 어떤 물체가 첫 번째로 진동하고, 이어서 두 번째로 진동하다가 마지막으로 n번째 진동이 있다고 치자. 쉽게 설명하려고 만들어낸 이 가상적 상황에서 두 번째 진동의 값이 첫 번째 진동 값의 두배이고 세 번째 진동 값이 첫 번째 진동 값의 세배라면? 이렇게 단순하지만 정교한 수학적 패턴의 진동들이 이 우주에서 발생할 확률은 어떨까. 낮다. 인간이 없는 자연 세계에서 이런 소리는 거의 없으며 인간사회에서도 희귀하다. 그런 진동을 발생시키는 도구는 과거에는 특별한 장인만이, 지금은 과학으로 무장한 기술자들만이 만든다. 악기는 이들의 특별한 노력이 구현해낸 도구이며 만들기가 무척 어렵다. 이렇게 만들어질 확률이 무척 낮은 명기를 아무나 되지 못하는 최고의 연주가가, 전문적 작곡가가 어렵사리 작곡한 곡을 연주하는 사건. 이 우주에서 발생할 확률이 무척 낮은 사건이다.

사람들은 어떤 음악은 좋아하고 어떤 음악은 싫어한다. 개인의 취향 때문이다. 사람들의 음악에 대한 '희미한 인지'도 호불호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사실 사람들은 세상 모든 것에 대해 한편으로는 취향을 가지며, 다른 한편으로는 희미하게 바라본다. 희미하다는 것은 우리가 대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는 인간이 만든 질서 사례다. 인간이 정한 질서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자세히 봤을 때 모종의 질서를 구성하는 카드 배열도 있다. 그런 질서는 게임 참가자에게 의미가 없다. 그런 배열은 질서로 여겨지지 못할 수 있다. 클래식 성악의 세계에서 목소리가 쉬면 좋은 발성이라고 평가하지 않는다. 목소리가 갈라지고 쉰 소리, 무척 탁한 소리로 노래하는 전인권을 좋아하는 이들은 어떤가. 그들은 전인권에게서 다른 이들이 듣지 못하는 특별함을 듣는다. “잘 생각해보면, 어떤 구성이든 특별하기는 하다. 어떤 구성이든 상세한 부분까지 모두 관찰해보면, 독자적 방식으로 특성을 부여할 수 있기에 모두 특별하다고 볼 수 있다. 모든 엄마에게 자신의 아이는 유일하고 특별한 존재인 것처럼. 어떤 구성이 다른 구성에 비해 좀 더 특별하다는 개념은 (그 대상의) 어떤 측면만 봤을 때 의미가 있다. 특수성이라는 개념은 세상을 대략, 희미하게 바라볼 때만 만들어진다. 볼츠만은 엔트로피가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가 세상을 희미하게 설명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카를로 로벨리,『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41쪽)

늘 그래 왔던 것처럼 희미하게 음악을 들어보자. 사람들이 어떤 교향곡을 듣는다. 50~60명으로 구성된 교향악단이 내는 소리는 사실 50~60개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많은 소리를 다 듣지 못하며, 안 듣는다. 선율 혹은 주제라고 불리는 가장 중요한 음악적 요소에 주의를 기울인다. 대중가요를 들을 때도 이렇게 위계적인 방식으로 음악을 듣는다. 덜 중요한 반주는 잘 안 듣고, 중요한 것-일반적으로는 선율-을 중점적으로 듣는다. 동시에 복수의 선율이 정교하게 결합하기라도 하면, 음악에 대한 사람들의 지각은 더욱 희미해질 것이다.

질서와 무질서, 무질서의 정도를 측정하는 개념인 엔트로피는 19세기 열역학 분야에서 비롯되었지만, 20세기에 와서는 정보학 분야에도 수용된다. 여기서 엔트로피는 정보량이며 측정 단위는 비트(bit)다. 정보학자 클로드 셰논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사건들이 일어날 확률을 정보량이라 불렀다. 정보량 개념은 음악학에 수용되었다. 20세기 중반, 미국의 리처드 핑커턴은 음악에서 도, 레, 미, 파, 솔, 라, 시의 음 각각이 출현한 확률을 정보량으로 보았다. 각 음을 정보학자들이 말한 사건으로 고려한 것이다. 핑커턴은 단순한 노래들에서 상술한 음 각각의 출현 횟수를 센 후 정해진 공식으로 계산해 각 곡의 정보량을 얻었다. 핑커턴 이후 크노포프와 허친슨은 도, 도#, 레, 레#, 미, 파, 파#, 솔, 솔#, 라, 라#, 시의 12음의 사용 빈도를 세어 계산했다. 계산 결과, 모차르트 작품에서는 3.009bits, 멘델스존에게서는 3.039bits, 슈만에게서는 3.048bits,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에게서는 3.397bits의 값을 얻었다. 작품이 현대에 쓰였을수록 그 작품의 비트 값은 커졌다. 이것은 7개이건 12개이건 각 음의 사용 빈도가 동등해지는 추세를 음악사가 확인해준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관점에서 각 음의 사용 빈도가 완전하게 동등할 경우 정보량은 가장 많고 비트 값도 가장 크며, 각 음의 사용 빈도가 차별적이라면 비트 값은 작다.

각 음의 사용 빈도가 거의 동등한 음악이 실제로 있다. 1923년에 쇤베르크가 창안한 12음기법 음악은 한 옥타브에 있는 12개의 서로 다른 음 모두를 평등하게 사용하자는 취지에 따라 쓰였다. 쇤베르크는 12음기법을 '12음의 민주화'로 불렀다. 이것은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이 엔트로피를 '민주화를 향한 경향'으로 묘사한 것을 떠올리게 한다. 어떤 고립계의 요소들이 민주적으로 혹은 평등하게 재배치될 경우 엔트로피 값은 커진다. 우주에서 가장 큰 고립계는 우주 그 자체이고, 우주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쪽으로 점점, 반드시 변해간다.

다른 관점에서 봐야 희미한 지각에서 벗어나

정보량이 너무 적은 질서는 뻔하다. 비트 값이 적은 음악은 단순해 재미가 없을 수 있다. 정보량이 너무 많은 계는 무척 복잡하며, 이해하기 어렵다. 객관적 세계의 무질서 정도를 가리켰던 엔트로피가 인간의 무지 정도를 가리키는 정보량이 된 것이다. 우리에게 무질서해 보이는 것은 우리가 그것에 숨겨진 질서를 모르는 것이다. 블랙홀은 우주에서 가장 엔트로피가 높고, 우리는 그 내부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 모른다. 잘 모르는 것은 예측하기 어렵고, 잘 아는 것은 예측하기 쉽다. '안 봐도 드라마'라는 표현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는 것으로, 재미없다는 의미다. 축구 경기를 어떤 계로 생각해보자. 브라질과 독일의 경기는 예측이 어렵고, 그래서 흥미롭다. 브라질이 이길 확률과 독일이 이길 확률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독일과 동남아 어떤 나라의 경기는 독일이 이길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크기에, 재미없을 수 있다. 이 이야기는 승리와 패배의 관점만으로 축구를 볼 때 맞다. 미얀마 팀이 독일 팀과 경기를 할 때 우리는 민주화를 추구하는 미얀마 국민의 바람이 미얀마 팀의 경기에 반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얀마 팀이 지더라도 우리는 경기를 휴먼드라마로 흥미롭게 볼 수 있다. 이렇게 다른 관점에서 봐야 희미한 지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우리는 희미하게 봤을 때 질서가 없어 보이는 곳에서 관점을 달리하여 숨어 있는 질서를 애써 찾아낼 수 있다. 나태주 시인이 말했듯이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음악도 그러하다.

※ 김진호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 대학교의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매혹의 음색』(갈무리, 2014)과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갈무리, 2017) 등의 저서가 있다

202107호 (2021.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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