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의 수도 빈(Wien)이라면 무엇보다도 먼저 왈츠곡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이 연상된다. 그러고 보면 빈은 도나우강의 축복을 받은 도시인 듯하다. 빈의 명품 중심가 그라벤에는 바로크 양식의 삼위일체 기둥이 세워져 있다. 그런데 이 우아한 기념비는 수많은 빈 시민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대역병과 관련 있다. 또 이 끔찍한 대역병은 도나우강과 관련 있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빈 중심부에서 다소 떨어져 있다. / 사진:정태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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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오스트리아는 국토가 남한 면적의 85% 정도밖에 되지 않고 전체 인구도 850만 명 정도다. 오스트리아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후 이처럼 바다가 없는 작은 나라로 축소되고 말았지만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수세기 동안 유럽의 상당 부분을 지배한 합스부르크 왕조의 제국이었다. 수도 빈은 라틴어 및 이탈리아 표기인 비엔나(Vienna)로 영어권에 널리 알려져 있다. 현재 인구 200만 명이 넘지 않는 쾌적하고 품위 있는 도시로, 세계에서 살기 좋은 곳으로 손꼽힌다.
도나우강의 축복이러한 빈을 찬양하는 음악이 있다. 다름 아닌 요한 슈트라우스 2세(1825~1899)가 작곡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이다. 도나우강은 독일 남부에서 발원해서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헝가리,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몰도바, 우크라이나 등 여러 나라를 거쳐 흑해로 흘러가는데 그 길이는 장장 2860㎞에 달한다. 이 강은 나라마다 명칭이 다르다. 고대 로마인들은 다누비우스(Danubius)라고 했고, 영어권에서는 다뉴브(Danube)라고 한다. 독일어권에서는 도나우(Donau), 헝가리에서는 두너(Duna)라고 한다. 옛날 이 강은 방대한 로마제국의 북동쪽 국경선이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빈(Wien)의 기원은 2000년 전 로마제국이 도나우강 변에 세운 병영 도시 빈도보나(Vindobona)로 거슬러 올라간다.빈 시내 중심에 숲이 우거진 넓은 시립공원인 슈타트파크(Stadtpark)에는 왈츠의 왕 요한 슈트라우스 2세에게 바치는 기념상이 세워져 있다. 이 기념상은 도나우강을 상징하는 요정들의 모습이 새겨진 조각 아치로 장식되어 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날렵한 모습은 지금 이 순간에도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의 선율을 들려주는 듯하다. 이 왈츠곡은 매년 1월 1일 전 세계에 방영되는 빈 필하모니의 신년음악회에서 마지막을 장식하는데 이 곡을 듣는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이 설레는 마음으로 빈을 동경한다. 사실 이 곡처럼 빈이 지닌 우아함과 낭만, 환희에 찬 분위기를 단번에 잘 전달해주는 음악이 또 있을까? 이 곡은 원래 오스트리아 제국이 1866년에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한 후 암울한 분위기에 빠진 빈 시민들에게 희망을 불어넣기 위해 작곡한 것으로, 1867년에 빈에서 초연된 이래 시대와 국경을 넘어 전 세계 사람들을 유혹하는 음악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고 보면 빈은 도나우강의 축복을 받은 도시인 듯하다.
명품 중심가 그라벤에 세워진 페스트 기둥
▎왈츠의 왕 요한 슈트라우스 2세 기념상. / 사진:정태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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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스부르크 왕가의 영광이 곳곳에 배어 있는 빈의 심장은 슈테판 대성당이다. 슈테판 대성당 앞 광장은 ‘황금의 U(Goldenes U)’라고 하는 구역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 구역이 그렇게 불리는 이유는 명품 거리인 캐른트너 슈트라세, 그라벤, 콜마르크트가 마치 U자처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U자의 아랫부분 곡선에 해당하는 우아한 거리이자 광장인 그라벤은 코로나19 확산 때문에 요즘은 좀 썰렁하지만, 보통 때는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쇼핑을 하거나 카페에 앉아 햇살을 즐기고, 한 해를 보내는 12월 31일 밤에는 수많은 사람이 서로 어우러져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같은 왈츠 음악에 맞추어 흥겹게 춤춘다. 그러니까 그라벤은 도시 속의 응접실이자 무대인 셈이다. 그런데 독일어 그라벤(Graben)은 ‘구덩이’, ‘땅을 파낸 곳’을 뜻한다. 왜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보통 때 사람들로 붐비는 그라벤. 한가운데 삼위일체 기둥이 세워져 있다. / 사진:정태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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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은 오랜 역사가 중첩되어 있는 도시이기 때문에 땅을 파면 2000년 전 로마제국 시대의 유적이 발굴된다. 로마시대의 유적들을 보면 이곳은 당시에 방어 시설뿐 아니라 목욕장이나 하수도 등과 같은 도시의 위생 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라벤은 다름 아닌 로마시대의 빈 도보나 성벽 둘레에 방어용으로 파두었던 구덩이, 즉 해자(垓字)가 있었던 곳이다. 천년 동안 존재하던 이 군사용 구덩이는 1220년에 빈 시가지가 확장될 때 흙으로 메워졌다. 그 후 이곳은 합스부르크 황궁과 슈테판 대성당을 잇게 되면서 위상이 높아졌고 19세기에 더 확장되어 광장처럼 넓어진 이후부터는 품위 있는 건물이 많이 세워져 일약 화려한 명품가로 발전했다.
그라벤 한가운데에는 바로크 시대의 무대장식 같은 하얀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이 기념비 한쪽 면에는 찬란한 금빛으로 장식된 합스부르크 왕가의 휘장과 그 위에 구세주 신의 아들에게 바친다는 내용의 금빛 라틴어 문구가 선명하다. 이 기념비는 17세기에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흑사병이 물러난 다음에 세워졌다. 이 대역병은 런던과 나폴리를 휩쓴 다음 1679년에는 빈에도 공포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더니 당시 빈의 인구 약 10만 명 중 자그마치 7만6000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도시를 완전히 황폐화했다. 당시 빈 거리 곳곳에는 죽은 사람들의 시체가 널렸으며, 생명이 붙은 자들은 하늘의 자비를 간구했다. 이런 참혹한 상황에 처했던 당시 황제 레오폴트 1세는 흑사병이 물러나면 하늘의 은총에 감사하는 기념비를 세우겠다고 맹세했다. 그 후 흑사병이 수그러들고 죽음의 그림자가 걷히자 이 기념비는 젊은 건축가 피셔 폰 에를라흐를 비롯한 여러 조각가와 무대미술가의 손에 의하여 1682년에 착공, 1692년에 완공됐다.
▎캄바로크 양식의 삼위일체 기둥 / 사진:정태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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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념비는 높이가 21m이고, 3면 및 3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삼위일체를 상징한다 하여 ‘삼위일체 기둥’이라고 한다. 또 독일어로는 ‘페스트 기둥’을 뜻하는 페스트조일레(Pestsäule)라고도 한다. 이 기념비의 상단은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형태인데 천사들의 형상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꼭대기에 있는 금빛 조각 그룹은 구름 위에 앉아 있는 삼위일체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중간 부분에는 겸허하게 무릎 꿇은 황제 레오폴트 1세의 모습이 보이고 그 아래에는 신앙의 힘으로 아기 천사가 마귀 모습을 한 역병을 물리치는 모습이 역동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 후 이러한 페스트 기둥은 합스부르크 제국 내 여러 도시에 세워졌다. 그런데 이런 끔찍한 역병이 창궐하게 된 것은 따지고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도나우강 때문이기도 하다.
도나우강의 저주
▎무릎 꿇은 레오폴트 1세(위)와 신앙의 힘으로 역병을 물리치는 모습(아래). / 사진:정태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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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우강은 빈의 도심에서 좀 떨어져 있다. 즉 런던의 템스강, 파리의 센강, 로마의 테베레강, 프라하의 블타바강과 달리 빈의 도심에서 도나우강으로 향하는 접근성은 떨어지는 편이다. 그 대신에 도나우강 본류와 연결된 운하인 도나우카날(Donaukanal)이 빈의 도심을 스치며 흐른다. 빈은 동서교역의 중심지로 수많은 상품이 도나우강을 통해 들어오고 나가던 요충지였는데 교역품을 하역하고 보관하는 물류 창고는 도나우카날 주변에 몰려 있었다. 당시 배들이 정박했던 지점에는 현재 ‘요한 슈트라우스’라는 상호의 선상 레스토랑이 정박해 있다.
한편 역사를 뒤돌아보면 빈은 오늘날의 명성과 달리 한때 매우 불결한 도시로 여겨진 적이 있었다. 사실 유럽 다른 곳에서 역병이 돌면 ‘비엔나 죽음’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당시 빈은 로마시대와 달리 하수도와 같은 기본적인 도시 위생 시설조차 없었던 데다가, 인구밀도가 아주 높아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으며, 거리에는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버린 오물과 쓰레기들이 나뒹굴어 곳곳에서 악취가 풍길 정도로 도시의 위생 상태가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게다가 수출입품을 보관하는 물류 창고에는 의류, 천, 카페트, 곡물 등이 몇 달 동안 보관되었는데 이곳에는 수많은 쥐가 서식하며 돌아다녔다. 이러한 도시환경에서 도나우강을 통해 외부에서 들어오는 전염병이 한번 퍼지기 시작하면 빈은 순식간에 죽음의 도시로 변해버렸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축복의 강인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은 저주의 강이기도 했던 셈이다.
▎도나우카날에 있는 ‘요한 슈트라우스’ 선상 레스토랑. / 사진:정태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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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태남은… 이탈리아 공인건축사, 작가 정태남은 서울대 졸업 후 이탈리아 정부장학생으로 유학, 로마대학교에서 건축부문 학위를 받았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건축 외에 음악· 미술·언어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30년 이상 로마에서 지낸 필자는 이탈리아의 고건축복원전문 건축가들과 협력하면서 역사에 깊이 빠지게 되었고, 유럽의 역사와 문화 전반에 심취하게 되었다.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대기업·대학·미술관·문화원·방송 등에서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역사, 건축, 미술, 클래식 음악 등에 대해 강연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 『건축으로 만나는 1000 년 로마』,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