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남의 TRAVEL & CULTURE | 이탈리아 로마(Roma)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 150년 

로마제국의 멸망 후 이탈리아반도는 오랜 기간 동안 크고 작은 나라로 갈라져 여러 외세의 지배를 받았다. 이탈리아는 1861년이 되어서야 제1차 통일을 이룩했고 1870년에는 교황령의 수도 로마를 흡수했다. 이로써 로마는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수도가 됐다. 로마 심장부에 세워진 초대왕 빗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은 이탈리아 통일의 역사를 생생하게 증언한다.

▎로마의 심장부에 세워진 빗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 / 사진:정태남
지구상에서 가장 특별한 도시로 손꼽히는 로마(Roma). 로마에는 ‘영원의 도시’, ‘역사의 도시’, ‘예술의 도시’, ‘종교의 도시’, ‘유럽 도시의 어머니’, ‘유럽 문화의 요람’ 등 여러 가지 수식어가 항상 따라붙는다. 이러한 로마에서 일 년 중 가장 의미 있는 날을 꼽는다면 아마 4월 21일이 아닐까? 다름 아닌 ‘로마의 생일’이기 때문이다. 그날은 까마득한 옛날 팔라티노 언덕에서 양치기들의 수호 여신 팔레스의 축제가 열리던 날이다. 로마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기 753년 전에 창건됐으니 올해 2774번째 생일을 맞는다. 오늘날 ‘로마 생일’ 기념행사는 보통 현재 로마 시청이 자리 잡고 있는 캄피돌리오 언덕에서 열린다. 이 언덕은 고대 로마시대에 유피테르 신전이 세워져 있던 곳으로 로마에서 가장 신성한 언덕으로 여겨졌다. 이 언덕 남쪽으로는 로마 건국 이야기가 깃든 팔라티노 언덕과 로마제국의 심장부 중의 심장이었던 포룸 로마눔(Forum Romanum, 이탈리아어 표기는 Foro romano)의 유적이 펼쳐져 있고 그 너머로는 로마제국의 영광을 웅변하는 콜로세움이 보인다.

미천한 도시국가에서 강력한 대제국으로


콜로세움 바로 앞에 제국공회장 거리(Via dei fori imperiali)라고 하는 다소 널찍한 직선도로가 쭉 뻗어 있는데 이 길 중간쯤에 있는 로마제국시대 유적의 벽에 걸린 커다란 대리석 지도 네 개가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이 지도는 한 점에 불과했던 미천한 도시국가 로마가 왕정시대, 공화정 시대를 거쳐 거대한 제국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첫 번째 지도는 기원전 8세기 중반 로마 건국 초기의 영역을 나타낸다. 당시 이탈리아반도 중북부 지역에는 선진국 에트루리아가 있었고 남부 지역에는 그리스 사람들이 이주하여 세운 마그나 그라이키아(Magna Graecia: 대(大)그리스)가 있었다. 조그만 도시국가 로마는 팔라티노 언덕과 캄피돌리오 언덕을 비롯하여 모두 일곱 개 언덕을 중심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점점 세(勢)를 넓혀 주변의 땅을 조금씩 점령해나가더니 세력을 키워 에트루리아와 마그나 그라이키아를 흡수하여 마침내는 이탈리아반도 전체를 모두 손아귀에 넣었다. 그다음에는 눈을 바다로 돌려 천신만고 끝에 해상 강대국 카르타고를 누르고 지중해 세계의 주인이 됐는데, 두 번째 지도는 기원전 3세기에 공화정 체제의 로마가 카르타고를 누른 다음의 영토를 보여준다. 세 번째 지도는 기원후 1세기 초 제정시대(로마제국)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확장된 영토를 보여주고, 네 번째 지도는 기원후 2세기 트라야누스 황제에 의하여 제국의 영토가 최대로 확장된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로마는 유럽 상당 부분과 북아프리카·중동지역에 이르는, 인류 역사상 보기 드문 거대하고도 강력한 제국을 건설했던 것이다.


▎캄피돌리오 언덕에서 내려다본 포로 로마노 유적과 그 너머 콜로세움. 오른쪽이 팔라티노 언덕이다. / 사진:정태남
그런데 번영과 평화의 시대를 구가한 로마제국은 3세기부터 멸망의 길로 접어들었고 마침내 476년에는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 후 황제가 없는 로마는 교황이 구심점이 되는 기독교 세계의 수도가 됐는데, 기독교의 수도 로마를 상징하는 세계 최대의 성전이 바로 베드로 대성당이다.

이탈리아의 통일


▎대제국을 이룬 로마의 발전과정을 보여주는 4개 지도. / 사진:정태남
로마제국이 멸망한 후 이탈리아는 오랜 기간 동안 크고 작은 나라로 갈라져 여러 외세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다가 19세기에 들어 이탈리아 사람들은 통일의 중요성을 느끼기 시작했으며, 1848년부터는 본격적으로 통일운동에 나섰다. 이탈리아에서는 ‘통일’이라는 말 대신에, ‘다시 솟아남’이라는 뜻의 명사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라는 말을 많이 쓴다. 단순히 ‘통일’이라는 다소 평면적인 표현보다는, 부활의 깊은 뜻을 담고 있는 리소르지멘토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과거의 찬란했던 역사를 다시 이어받겠다는 뜻이리라.

통일운동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때 이탈리아반도 안에서는 토리노를 수도로 하는 사르데냐 왕국만이 외세의 간섭 없는 입헌군주제 왕국이었는데 사보이아(Savoia, 영어로는 Savoy) 왕가의 빗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Vittorio Emanuele II)가 왕이었다. 이탈리아 통일운동은 바로 그를 구심점으로 전개됐다. 이리하여 이탈리아 사람들은 길고 험난한 과정을 거치고 난 후 외세를 몰 아내고 1861년에 ‘이탈리아 왕국’이라는 국명으로 이탈리아 북동부 지방과 교황령을 제외한 채 일단 제1차 통일을 이룩했다. 그러니까 로마제국이 멸망한 지 약 1400년이 지난 다음이었다. 이때 통일운동의 중심지였던 토리노가 이탈리아 왕국의 첫 번째 수도가 됐다가 4년이 지난 1865년에는 르네상스의 발상지 피렌체가 임시 수도가 됐다. 그 후 1870년 9월에는 끝까지 버티던 교황령의 수도 로마가 이탈리아 왕국에 합병되고 이어서 10월에는 로마가 마침내 이탈리아의 수도로 선포됐다. 그 옛날 팔라티노 언덕의 조그만 촌락에서 시작하여 주변의 땅을 하나씩 점령하고 이탈리아를 모두 흡수했던 로마가 그로부터 2200여 년 후에는 도리어 이탈리아에 흡수된 셈이다.


▎세계 최대의 성전 베드로 대성당. / 사진:정태남


이탈리아 통일 기념관


▎로마 여신 아래에 있는 보초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 / 사진:정태남
이탈리아 주요 도시의 중심부에는 이탈리아 왕국의 초대 왕 빗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동상이나 그에게 바치는 길 또는 광장이 있다. 로마에서는 캄피돌리오 언덕 북쪽 면에 그에게 헌정한 웅대한 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이를테면 ‘이탈리아 통일 기념관’인 셈이다. 마치 로마의 얼굴 같은 이 기념관은 지금은 돌덩어리로 변해버린 로마제국의 유적들을 배경으로 우뚝 솟아 있으니 리소르지멘토라는 말이 던져주는 의미를 더욱 실감 나게 한다.

이 기념관의 건립은 빗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가 1878년에 서거한 다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념관 건립 설계 공모전에서 당선된 30세의 젊은 건축가 삭코니(G. Sacconi)의 계획안에 따라 기념관은 1885년에 착공된 지 26년이 지난 1911년 6월 4일, 통일 이탈리아 왕국 성립 50주년에 맞추어 완공됐다. ‘불과’ 110년 전에 완공됐으니까 2800년 역사가 중첩된 로마 중심부에서는 아주 새로운 건물인 셈이다.

이 기념관은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신전과 같은 모습을 하고 위압적인 규모로 시가지의 분위기를 압도한다. 입구에 펼쳐진 넓은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조국의 제단에 다다르게 된다. 이 제단은 원래 설계도에는 없었지만 제1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들의 제의로 1921년에 추가됐다. 이곳에는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전사한 무명용사가 묻혀 있고 보초 두 명이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을 지키고 있다. 그 뒤에는 로마를 상징하는 여신상이 이를 내려다보고 있다. 기념관 한가운데는 빗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거대한 청동 기마상이 초점을 이룬다.

기념관 상부는 모두 20개 기둥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데, 이것은 이탈리아를 구성하는 20개 주(州)를 의미한다. 그 위 정상부 양쪽에는 개선마차를 탄 승리의 여신 빅토리아가 로마의 하늘로 높이 날아갈 듯하다. 이 기념관을 장식하는 수많은 조각은 이탈리아 전역에서 선발된 조각가들의 작품들이다. 따라서 이 기념관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이탈리아 조각예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최대의 옥외 조각공원인 셈이다.


▎캄피돌리오 언덕을 가리는 빗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 / 사진:정태남
그런데 로마 시민들 중에는 이 웅장하고 멋진 기념관에 싸늘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들은 이 기념관이 잘라놓은 결혼 케이크 같다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또 기념관을 마감한 대리석은 북부 이탈리아의 브레샤산(産)이라서 로마에서 전통적으로 쓰는 로마 근교의 티볼리산(産)에 비해 너무 하얗기 때문에 로마의 도시 분위기와 맞지 않는다고 꼬집는다. 또 기념관이 너무 웅장하여 유서 깊은 캄피돌리오 언덕을 완전히 가리고 있다는 것도 지적한다. 이런 여러 연유로 한때 기념관 철거론이 대두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 기념관이 이탈리아 통일의 역사를 생생하게 증언해준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한편 이탈리아 왕국은 1946년에 국민투표에 의해 이탈리아 공화국으로 바뀌었다.

※ 정태남은… 이탈리아 공인건축사, 작가 정태남은 서울대 졸업 후 이탈리아 정부장학생으로 유학, 로마대학교에서 건축부문 학위를 받았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건축 외에 음악·미술·언어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30년 이상 로마에서 지낸 필자는 이탈리아의 고건축복원전문 건축가들과 협력하면서 역사에 깊이 빠지게 되었고, 유럽의 역사와 문화 전반에 심취하게 되었다.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대기업·대학·미술관·문화원·방송 등에서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역사, 건축, 미술, 클래식 음악 등에 대해 강연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 『건축으로 만나는 1000 년 로마』,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202104호 (2021.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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