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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뱅’ 1위…마이너의 반란 통했다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최고 은행에 한국 금융기업 10개사가 이름을 올렸다. 카카오뱅크가 디지털 혁신을 무기로 1위를 차지한 반면 우리은행은 순위에 들지 못하는 이변을 낳았다.

세계 최고 은행에 선정된 한국의 10개 은행이 글로벌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 남짓이다. 월스트리트로 상징되는 세계 금융의 본산 미국이 75개로 가장 많은 베스트 뱅크를 배출했고, 일본이 50개로 뒤를 이었다. 아시아에선 일본에 이어 인도(30개). 중국(20개), 인도네시아(20개), 대만(10개), 아랍에미리트(10개) 등이 세계 최고 은행 목록에 이름을 올린 나라들이다.

이번 월드 베스트 뱅크 조사에서는 감사보고서·사업보고서상에 나온 매출이나 손익 규모는 평가 항목에 포함되지 않았다. 대신 전 세계 4만3000명 이상의 고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개별 은행에 대한 전반적인 만족도뿐만 아니라 신뢰도, 거래 약관, 고객 서비스, 디지털 서비스, 재무 자문(trust, terms and conditions, customer services, digital services, financial advice) 등 다섯 가지 하위 요소가 평가에 반영돼 정성적 측면에 초점을 둔 조사가 이뤄졌다.

전 세계 500개 은행 중 한국은 10곳


한국을 대표하는 베스트 뱅크 10곳에는 (1위부터 순서대로) 카카오뱅크, 신한은행, Sh수협은행, KB국민은행, NH농협은행, DGB금융그룹, KEB하나은행, IBK기업은행, 케이뱅크, 우체국금융이 선정됐다. 세세한 평가 지표가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올해 조사에서 특히 눈에 띄는 건 소규모 디지털 은행의 약진이다. 이는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공통된 현상이다. 자산 규모 수백조원을 자랑하는 시중은행을 따돌리고 순위표 최상단에 카카오뱅크가 이름을 올린 한국도 마찬가지다.

디지털과 모바일, 핀테크로 무장한 신진 테크기업의 약진은 이미 전 세계 금융가에서도 거스를 수 없는 트렌드가 됐다. 지난 2013년 설립돼 독일 베를린에 본사를 둔 디지털은행 N26은 최소 계정 잔액이나 계정 유지 관리에 대한 수수료를 물지 않는다. 심지어 예금 인출 수수료도 무료다. 시장가치 35억 달러로 평가받는 N26은 디지털 뱅킹 서비스를 통해 유럽에서 미국까지 시장을 넓히는 데 성공했다. N26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발렌틴 슈탈프(Valentin Stalf)는 “여전히 오프라인 세상에 갇혀 있는 수백만 명의 새로운 고객에게 흥미로운 디지털 뱅킹 기능을 계속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유럽에는 이 같은 디지털 금융 바람이 특히 거세게 불고 있다. 스위스에서는 신용카드 수수료를 완전히 없앤 모바일은행 네온(Neon)이 자국 내 쟁쟁한 은행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베스트 뱅크를 배출한 일본도 디지털 은행이 전통의 강자들을 밀어내고 수위를 차지했다. 20년 전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설립한 SBI스미신네트은행(SBI Sumishin Net Bank)이 1위를 차지한 게 대표적이다. 일본 최대 미디어·인터넷 대기업 중 하나인 라쿠텐이 설립한 라쿠텐은행(Rakuten Bank)이 2위, 2001년 소니그룹이 설립한 인터넷은행 소니뱅크(Sony Bank)가 3위에 오른 것도 인상적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은행으로 꼽힌 10개사를 봐도 이러한 트렌드를 엿볼 수 있다. 2020년 기준 자산 규모 26조원에 불과(?)한 카카오뱅크가 1위에 오르며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 은행으로 뽑힌 건 상징적이다. 지난 2017년 7월 출범한 카카오뱅크는 케이(K)뱅크에 이은 한국의 두 번째 인터넷 전문 은행이다. 국민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을 기반으로, 서비스 개시 첫날 24만 명이 계좌를 개설해 업계를 놀라게 했다. 이는 당시(2016년 기준) 시중은행의 1년 치 비대면 계좌 개설 실적(16만 개)을 하루 만에 가뿐히 뛰어넘은 기록이다. 초기 사업 성공을 우려하던 눈길은 기우였다. 2018년 순손실 209억원에 그쳤던 카카오뱅크는 2019년 순이익 137억원으로 흑자전환에 성공했고, 2020년에는 순이익 규모가 1136억원으로 급증했다.

카카오뱅크의 실적은 순익 규모만 2조~3조원대에 달하는 시중은행과 비교하기에는 여전히 민망한 수준인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오프라인 점포 하나 없이 설립 3년 만에 거둔 성과치고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출범 직후 ‘은행권의 메기 역할에 그칠 것’이라던 전통 금융업계의 전망도 이미 무색해졌다.

이용자를 끌어모으는 플랫폼의 위력을 제대로 보여준 카카오뱅크의 약진은 8월 예정된 기업공개(IPO)를 통해 절정에 달할 전망이다. 카카오뱅크와 주관사가 내 건 공모가 밴드는 3만3000~3만9000원으로, 밴드 상단 기준으로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하면 약 2조5500억원을 조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시가총액은 15조원대에서 최대 18조원까지 가능할 전망이다. 국내 은행업계 1, 2위를 다투는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의 시총이 20조원 초반대임을 감안하면, 카카오뱅크에 쏠리는 시장의 기대감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글로벌 은행에 불어닥친 디지털 금융 바람


올해 월드 베스트 뱅크에 포함된 한국 은행들의 순위표를 보면 카카오뱅크에 이어 Sh수협은행(3위), DGB금융그룹(6위), K뱅크(9위), 우체국금융(10위) 등이 눈길을 끈다. 쟁쟁한 시중은행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고객의 선택을 이끌어낸 ‘마이너의 반란’이다. 10개 베스트 뱅크 가운데 4대 시중은행 중 유일하게 우리은행이 탈락한 것도 이변이다.

카카오뱅크, 신한은행에 이어 3위를 차지한 Sh수협은행은 지난 2016년 12월 1일 수협중앙회의 신용사업 부문이 물적분할돼 설립됐다. 수협중앙회가 지분 100%를 소유한 수협은행은 해양수산정책자금 대출과 어업인 지원, 해양 및 항만자금 지원 등 해양수산 부문에서 확고부동한 시장 지위를 갖추고 있다. 국내 은행의 농림·어업 관련 대출금의 상당 부분을 취급하는 것도 수협은행의 강점이다. 실제로 2020년 12월 말 수협은행의 총대출 중 24.4%인 8조56000억원을 해양수산 부문 대출이 차지했다.

수협은행은 물적분할 이후 주택담보대출 같은 가계여신 위주로 포트폴리오 정비에 나섰다. 그 결과 자산건전성 지표가 크게 개선되고 있다. 다만 시중은행에 비해 부족한 시스템 안정성과 위험자산 부실에 대비하기 위한 자본적정성 확보는 수협은행이 풀어야 할 숙제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수협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은 2020년 말 기준 14%로, 시중은행 평균인 17.1%, 지방은행 평균인 17.5%에 미치지 못했다. 2019년 3193억원이었던 영업이익도 2020년 2675억원으로 쪼그라들어 1년 새 16.2%나 줄었다.

시중은행에 비해 부족한 오프라인 지점망은 수협은행의 또 다른 약점이다. 수협중앙회 산하의 전국 조합 영업점은 623개에 달하지만 은행 영업점만 놓고 보면 130개에 불과하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금융업계의 영업 환경이 비대면 채널로 급격히 옮겨가면서 수협은행이 디지털 금융 서비스 역량 강화와 고객 대응에 힘을 쏟는 이유다. 지난해 11월 취임한 김진균 행장은 디지털 금융 역량 강화를 경영 목표로 내세웠다. 2018년 처음 선보인 모바일뱅킹 애플리케이션 ‘헤이뱅크’도 지난해 3월 대대적인 리뉴얼에 나섰다. 간편이체, 전화번호를 통한 송금, 시중은행과 연계된 오픈뱅킹, 비대면 전용 상품 등의 서비스가 인터넷 전문은행 수준의 플랫폼으로 개편됐다는 평가다. 이번 월드 베스트 뱅크 조사에서도 탄탄한 영업 기반과 디지털 역량 강화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빅테크, 기존 금융 강자들 넘어서나


카카오뱅크, N26, SBI스미신네트은행 등 디지털 혁신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손에 쥔 테크기업들의 등장은 금융업 전반의 디지털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더욱이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비대면 연결(Ontact)이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트렌드로 부상하면서 이러한 금융권의 변화 속도는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국내에선 이미 2020년 8월부터 본격 시행된 ‘데이터 3법’이 금융의 디지털화를 가속화하는 촉매제가 되고 있고, 올해 시행될 마이데이터(MyData) 사업자 선정도 폐쇄된 구조의 금융 독점을 허물어뜨릴 전망이다. 정보 면에서 기존에 독점적 지위를 누리던 은행은 정보 주도권을 내려놓게 됐고, 이를 통해 빅테크나 핀테크 기업들이 새로운 금융 플랫폼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됐다. 마이데이터 사업의 경우, 핀테크 선진국으로 꼽히는 영국이 데이터 공개 대상을 주요 9개 은행에서 25개 은행으로 점진적으로 확대한 반면, 한국은 은행은 물론 카드사, 보험사까지 전 금융권을 아우르는 데이터가 개방될 예정이다.

카카오와 네이버 등 막대한 규모로 이용자를 선점한 플랫폼 빅테크들과 전통 은행 간의 경쟁도 심화될 전망이다. 철저하게 사용자적인 환경에서만 보면 이들 빅테크 기업이 은행에 비해 열위에 놓인 것도 아니다. 카카오뱅크 고객 수는 출범 초기인 2017년 말 KB국민은행 고객 수의 16% 정도였지만, 2020년 6월 말에는 38%까지 증가했다. 카카오뱅크의 기반인 카카오톡만 놓고 보면 고객 수가 오히려 KB국민은행보다 많다.

과거에 없던 경쟁자와의 싸움은 전통 금융기관들이 맞닥뜨린 현실이다. 무디스가 뱅크오브아메리카, 시티그룹,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투자은행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들이 가장 중대한 사업상 위협으로 꼽은 건 구글페이, 애플페이, 아마존렌딩 등 빅테크와의 경쟁과 이로 인한 고객 유출이었다. 이는 비단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미국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2017~2019년간 평균적으로 총영업비용의 18.3%를 IT관련 비용으로 지출했다. 금액으로는 약 80조원(724억 달러)에 달한다. 반면 국내 은행은 2018년 기준 총예산 24조8000억원 중 2조6000억원만 IT 비용으로 썼다. 10.6% 수준이다. 한신평은 글로벌 투자은행 수준으로 관련 투자비용을 늘릴 경우 국내 은행(시중은행+지방은행)의 총자산이익률(ROA)은 0.59%에서 0.48%로 떨어지는 것으로 분석했다.

시장에 충격파를 던지는 데 성공한 뉴플레이어들도 풀어야 숙제가 있는 건 마찬가지다. 카카오뱅크와 K뱅크 등 국내 인터넷 전문 은행은 아직까지 예대마진 중심의 비즈니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오랜 저금리 상황으로 인해 예대마진 수익이 과거에 비해 떨어진 상황이고, 고객 데이터 부문에서 아직까진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 기존 은행들의 디지털화도 무서운 속도로 빅테크들을 따라잡고 있다. 비대면 영업 방식이라는 틀 외에 기존 은행의 영업 방식과 차별화되는 혁신을 지속적으로 이뤄내야 한다는 뜻이다.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

202108호 (2021.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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