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소울의 삶과 미술심리(18) 

모방- 다른 사람을 통해 나를 성장시키다 

나만의 것을 만들고 싶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개발하고, 창조하고, 생각해 나아가는 모든 사람의 목표가 될 수 있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삶을 살고 싶지 않고, 누구라도 대체할 수 있는 행위 등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은 세상에 ‘나’라는 존재를 남기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이기 때문이다.

▎호쿠사이 [가나자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19세기
광고에서는 새로운 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세상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것이 나왔다고 강조하며 제품의 특별함을 이야기한다.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돋보이는 뮤지션은 ‘완전히 새로운 음악’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렇기에 ‘누군가를 따라 한 것 같다’ 혹은 ‘누군가의 것과 비슷하다’라는 평가는 무조건적으로 나쁜 평가라는 생각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줏대 없는 것이고, 자신의 것을 만들려 하지 않는 게으른 사람이라 생각하기도 하고, 자신이 없기에 다른 사람의 것이나 따라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거와 연결점 없이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것이 존재할 리는 만무하다. 휘어지는 LED 화면이 처음 나왔을 때 세상에 없던 것이 나왔다는 환호를 받았으나, 기존의 LED 화면이 존재했기에 그다음이 존재하는 것이다. 새로운 기술은 기존 기술의 부재 위에는 결코 만들어질 수 없다. 세계적인 아티스트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가 대상을 여러 각도의 시선으로 분해해서 그림을 그림으로써 ‘입체주의’라는 새로운 미술 사조를 발표했지만, 입체주의가 완성된 바탕에는 1906년 사망한 현대미술의 아버지 폴 세잔(Paul Cezanne)의 영향력이 컸다. 그렇기에 나만의 가치 있는 무언가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있던 것들로부터 배워야 한다.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훈련


▎우타가와 히로시게 [가메이도의 매화 정원] 1875(좌), 빈센트 반 고흐 [꽃핀 매화나무] 1887
인상주의 화가들이 일본 목판화 우키요에를 모작한 것은 다른 사람의 것을 모방해 자신을 성장시키려 했던 대표적인 움직임 중 하나이다. [가나자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는 일본식 식당이나 술집에 가면 볼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목판화 중 하나인데, 처음 이러한 작품이 유럽에 소개되었을 때 화가들은 전혀 새로운 방식의 미술작업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당시는 밀레의 [만종]처럼 완성도 높고 단단해 보이는 그림이 사랑받던 시절이었고, 인상주의라는 새로운 화풍이 막 도래하고 있었다. 두꺼운 외곽선을 그리고 평면적인 색상 처리, 가운데 주인공이 있지 않아도 된다는 새로운 시각은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우키요에의 주제와 구도, 색상 표현 등으로 타인의 것을 나만의 색으로 만들려는 시도들을 했고, 처음에는 그것을 모방하는 단계에서 시작했다. 빈센트 반 고흐는 다른 작가의 작품에 드러난 강점을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기 위해 모작도 즐겨 했는데, [꽃핀 매화나무]는 고흐의 그 중 하나였다. 드가, 모네, 마네, 고흐 등 수많은 인상주의 화가가 우키요에 판화를 모방하고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고 표현해냈다.

삶은 배움의 연속이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훈련이 필요하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서 생존이 보장된 상황에서 시작하는 것은 주변에서 먼저 성장한 사람들을 보고 모방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자신만의 성격과 가치관을 만들어나간다. 디자이너들에게 ‘창의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시작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작품을 많이 보는 것이라는 대답을 한다. 방 안에서 혼자 고통과 맞서다 보면 문득 떠오르는 것이 창의성이 아니라는 말이다. 많이 보는 것, 많이 따라 해보는 것, 더 넓은 시점을 갖는 것, 그것이 나만의 것을 만들기 위한 시도가 된다.

나만의 색깔로 재해석하다


▎장 프랑수아 밀레 [씨 뿌리는 사람] 1850(좌), 빈센트 반 고흐 [씨뿌리는 사람] 1889
처음에는 완전한 모방으로 시작할 수 있으나, 그 이후에는 자신만의 색으로 재해석해나가며 스스로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고흐는 20대에 화랑에서 일하면서 밀레(Jean Francois Millet)의 작품을 동경하며 그를 통해 자신의 미술 가치관을 확립했다. 따라서 고흐가 밀레의 수많은 작품을 재해석했던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었다.

고흐는 밀레의 [만종]을 비롯해 다양한 작품을 자신의 감각으로 재해석했다. 고흐의 재해석 행위는 단지 그림을 배워나가는 과정에서의 단편적인 활동이 아니라 미술작업 전반에 걸쳐 지속되었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고흐는 사망한 해인 1889년에 [씨 뿌리는 사람]을 작업했다. 밀레의 작품과 같은 대상, 같은 구도로 작업했지만 우리는 작품을 보면 바로 고흐 특유의 붓 터치와 색채를 읽어낼 수 있다. 빈센트 반 고흐의 서명이 보이지 않더라도 말이다. 이것이 모방을 통한 자기 성장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과 같은 고흐의 대표작에서는 고흐만의 독특한 미술 세계가 명확히 보이지만, 그러한 작품을 만들어내기까지 수많은 작품을 모작하고 재해석해나가는 과정이 존재했다. 고흐가 다른 작가의 작품을 따라 그리는 작업들을 자존심 상해하거나 부끄러운 것이라고 여겼다면 어쩌면 지금 우리가 감탄해 마지않는 고흐의 작품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천재적인 예술가가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겪었던 모방의 과정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었다.

모방을 통해 성장하다

세계적인 미술사학자 잰슨(H.W. Janson)은 저서 『서양미술사』에서 미술작품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로 독창성과 전통을 이야기했다. 작품의 독창성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이전에 존재했던 과거와의 연결점이 분명히 필요하며, 한 작품이 탄생한 바탕에는 다른 작가에게서 받은 영향력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인터뷰에서 “가장 영향을 주었던 인물이 누구인가요?”라는 질문을 자주 들을 수 있는데, 이때 어떤 사람을 닮기 위해 노력했고, 모델링을 해왔는지에 대한 설명은 그 사람을 더 깊이 있게 만드는 요소이다. 배우려는 이유로, 존경의 이유로, 그 자체에 매력을 느꼈다는 이유로 우리는 누군가를 따라 하고 비슷하게 행동하려는 시도를 하는데, 그것은 부끄럽거나 비생산적인 것이 아니라 성장을 위한 단계 중 하나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른 사람의 모습을 따라 하기에 급급하고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비교해가며 열등감을 느끼는 것은 스스로를 갉아먹는 비생산적인 행동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의 강점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재해석해 활용한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 될 수 있다. 모방하며 성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색을 잃지 않아야 하며, 자신이 무엇을 위해 타인을 모방하는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 다른 사람의 것을 배우고 흡수해나가는 시간이 스스로의 창의성을 위한 노력과 만나게 된다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색이 분명히 빛나게 될 것이다.

※ 김소울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교에서 미술치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국제임상미술치료학회 회장이며 가천대학교 조소과 객원교수이자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이다. 현재 플로리다마음연구소 대표로, 『치유미술관』 외 12권의 저역서가 있다.

202108호 (2021.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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