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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모가 들려주는 예술가의 안목과 통찰(30) | 왜곡의 조각가, 이환권 

입체와 평면이 공존하는 ‘형용 모순’에 대하여 

사진 김현동 기자
작가 이환권(47)은 사람의 몸이나 사물의 몸통을 실제보다 길게, 혹은 얇게, 아니면 납작하게 만들어 묘한 착시효과를 주는 조각가로 유명하다. 이런 그의 시도는 사물(인체 포함)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통찰과 맞닿아 있는데, 그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고 말한다. 조각가로서 본질과 형상의 관계를 알아내는 일에 천착하는 그는 “원인이 있으니 결과가 있는 것인데, (그것을 설명할) 언어가 없으니 본질과 형상의 관계도 (아직까지는) 없는 것”이라는, 선문답 같은 얘기를 한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예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7월 1~31일)은 그런 그가 새로 도전한 신작을 볼 수 있는 자리다.

▎비율을 왜곡한 조각으로 유명한 이환권 작가가 이번에는 입체와 평면이 하나로 이어진 신작을 선보였다. 이 작가를 후막동조 기법을 이용해 플래쉬 촬영했다.
정동교회와 서울시립미술관이 만나는 덕수궁 뒤 고즈넉한 사거리 돌담길에 앙증맞게 서 있는 일군의 조각을 본 분들이 이미 적지 않을 것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빠와 엄마, 아들과 딸 3대의 단란한 모습을 납작해 보이도록 비율을 왜곡해 표현한 ‘장독’(2008)다. 마당에 있는 아담한 장독들을 떠올리게 하는 이 작업은 작가 이환권의 이름을 널리 알린 대표작 중 하나다. 2007~2008년 미술시장이 뜨겁게 부풀어 올랐던 시절, 그는 주목받은 작가 중 하나였다.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추정가의 열 배 이상으로 작품이 팔리면서 대번에 스타 작가가 됐다.

자신만의 유니크한 스타일을 세상에 선보이고 싶다는 것은 모든 작가의 바람이자 구현해야 할 결과물일 터. 그는 어떻게 왜곡된 비율의 조각을 시작하게 됐을까.

“어릴 적 TV로 영화를 보는데, 사람의 모습이 뒤틀려 나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와이드 스크린용으로 촬영된 영화의 화면이 TV 브라운관과 비율이 달라 일어난 왜곡 현상이었다. 제대 후 복학한 어느 여름날 학교(그는 경원대 미대 환경조각과 및 대학원을 나왔다)를 어슬렁거리다 문득 그 생각이 나더라. 해보면 재미있겠다 싶었다. 남들과 전혀 다른 작품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1998년 여름에 흙으로 처음 모델을 만들었고, 이듬해인 1999년 FRP(플라스틱)에 자동차 염료로 도색한 인체 조각을 구상조각대전에 선보여 우수상을 수상했다.”


▎Untitled(2020), h1220 w1513 d1795㎜, pla shellac.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든 건가.

당시는 컴퓨터 영상 프로그램인 포토샵이 막 보급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당시 필름 카메라로 모델을 찍어 인화한 뒤 그것을 스캐너로 받아 포토샵 프로그램이 있는 친구 집에 가서 2박 3일 동안 20여 장을 작업했다. 그렇게 왜곡한 사진을 보면서 왜곡된 형태의 조각을 만들었는데, 조금 어지럽긴 했다. 하하.

잘될 것 같다는 느낌이 왔나.

시각적 시차랄까, ‘착시’라는 생각까지는 못 하고 만들어놓으면 그냥 신기할 것이다 싶었다. 정상과 다른 비율의 작품을 손으로 만들다 보니 모든 것이 예민해지더라. 본질을 새롭게 구현하는 일을 하면서 ‘우리가 인식하는 형태란 사실 상대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렇게 비율을 왜곡해서 작품을 만드는 작가가 또 있지 않나.

그때까지만 해도 없었다. 회화에서는 인물을 뚱뚱하게만 그리는 보테로라는 작가가 있다. 지금은 왜곡된 비율의 작품을 하는 작가들이 좀 생겨났다.

미술평론가 이진숙은 그의 작업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한 바 있다. “이환권은 포토샵을 통해 자유롭게 변형된 이미지를 다시 조각으로 만들어 중력의 법칙이 지배하는 현실의 공간으로 끄집어냈다. 그의 작품을 전시장에서 보면서 느끼는 ‘어지럼증’은 여기서 비롯된다. 평면인 컴퓨터 화면에서 변형된 이미지들이 공간을 점유하는 현실적인 존재로, 그것도 등신대 이상의 크기로 변형되어 등장했을 때, 관람객은 대부분 감상의 시점을 잃어버린 난감한 상태에 빠진다. 이환권의 세상에서는 뚱뚱한 사람도 늘씬해 보인다. 높이 175cm에 폭 20cm라는 특이한 비례의 인물의 등장은 현실의 공간 전체마저 일그러뜨린다. 이 난감함과 당황스러움이 바로 현대미술로서 그의 작품의 매력이다.”


▎Untitled(2019), h989 w906 d83㎜, pla shellac.


조각의 새로운 미래를 보여주다


▎Untitled(2020), h1758 w1191 d2677㎜, pla shellac.
가로수길 초입에 있는 예화랑은 젊은이들이 많이 오가는 곳에 있는 만큼 시각적 임팩트를 중요시하는 갤러리다. 어머니에 이어 2대째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는 김방은 대표는 2017년에 이어 두 번째로 이환권 작가의 개인전을 열게 된 이유에 대해 “조각의 새로운 미래가 궁금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신작의 특징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입체와 평면이 하나를 이룬 ‘평면 입체 조각’이다. 입체와 평면이 하나라니, 얼핏 ‘형용 모순’처럼 느껴지는 이 수식어는 이환권 작가의 신작을 설명하는 키워드가 된다. 밀대로 거실 바닥을 청소하고 있는 주부의 모습(사진1)을 보자. 밀대를 든 손까지의 상반신은 허공에 조각으로, 허리부터 맨발까지 하반신은 바닥에 납작하게 붙어 있다. 잠에서 막 깨어나 아침 햇살 가득한 창가에서 시원하게 기지개를 켜는 잠옷 차림의 중년(사진3)도 상반신은 입체, 하반신은 평면이다. 이렇게 대지나 벽면과 붙어 있는 신체의 일부(주로 하반신)는 현실에서 결코 도망칠 수 없는 현대인을 은유하는 것이 아닐까.

또 다른 특징은 인물의 발바닥이나 신발 바닥, 의자나 화분의 밑바닥이 위를 향해 나타나 있다는 점이다. 실제 생활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위와 아래가 한 방향으로 있는, 역시나 모순적인 상황인데 작가는 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발자국은 흔적이다. 많은 미술가가 흔적에 대한 작업을 한다. 우리와 주변의 것들은 결국 다 사라지고 남는 것은 흔적뿐이다. 나는 어떤 지점의 흔적을 남기고, 관람객에게 그 원인을 유추하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원인은 없었다.”

실제는 사라지고 흔적만 남아 있다


▎신작 앞에 서 있는 이환권 작가.
원인이 없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뭔가를 만들려고 노력해왔다. 그것도 이 세상에 없던 언어로 말이다. 그것이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냥 만들려고 노력했다. 방정식처럼 모르는 뭔가를 대입해 풀 수 있는 수식을 만들고 싶었는데, 만들려는 작업은 못 하고 좌대만 만든 것 같다.

이번 신작이 ‘그림자 작업’이라는 설명과 관련이 있나.

내 작업은 왜곡과 허상을 담고 있다. 왜곡된 상은 허상과 단계가 다를 뿐 같은 맥락이다. 때로 허상이 더 진짜 같다. 내 작업은 눈에는 보이지만 실제는 없는 작업이다. 그런 면에서 ‘그림자 작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림자는 우리를 닮은 모양새다. 껍데기만 만들었는데, 그것이 그림자이기 때문에 그 원인을 자꾸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그림자의 원인이 없다. 세상도 이와 닮아 있다. 현실 자체가 그림자이고, 우리도 그림자이다. 수면등을 켜놓고 분유를 먹고 있는 아이는 내 아들의 모습이다. 아이를 키운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몇 달만 지나면 어느새 훌쩍 자란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내 곁에서 젖병을 들고 있던 아이는 어디로 가버렸을까. 그렇게 우리는 계속 변화하고, 늙어가고 있다. 우리는 허상이고, 그래서 그림자와 다를 바가 없다.

실제 사람과 아주 똑같이 생긴 조각도 있던데, 하이퍼 리얼리즘도 추구하는 건가.

내 작품은 하이퍼 리얼리즘이 아니다. 실제 같은 이미지가 느껴질 정도로만 만든다. 조금 정교한 정도다. 인간은 주름살조차 계속 바뀐다. 어떤 면에서 하이퍼 리얼리즘 작품이 인간보다 더 진짜 같다.

조각은 당신에게 무엇인가.

그림은 한 컷의 장면이지만, 조각은 (보이지 않는 곳까지) 완결을 지으려는 행위이기에 무겁게 느껴진다. 그 무거움은 물성과 뭔가를 내재한 종합예술이라는 점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현실을 다 알 수 없다. 근원적인 것은 모르는데 단편적인 것만 보고 마치 아는 것처럼 행세하며 어떤 것인지 규정한다. 조각가는 규정화된 세상에서 규정되어 있지 않은 것을 드러내는 사람이다.

조각이 사라지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세상이 정보로 대체되고 있다. 라스코 동굴벽화를 실제로 본 사람이 몇이나 되나. 이미테이션만 볼 뿐이다. 조각이 살려면 자기를 지우고, 대신 자기의 언어를 남겨야 한다.

※ 정형모는… 정형모 중앙 컬처앤라이프스타일랩 실장은 중앙일보 문화부장을 지내고 중앙SUNDAY에서 문화에디터로서 고품격 문화스타일잡지 S매거진을 10년간 만들었다. 새로운 것, 멋있는 것, 맛있는 것에 두루 관심이 많다. 고려대에서 러시아 문학을 공부했고, 한국과 러시아의 민관학 교류 채널인 ‘한러대화’에서 언론사회분과 간사를 맡고 있다. 저서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과 함께 만든 『이어령의 지의 최전선』이 있다.

202108호 (2021.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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